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5
호화스러운 인맥
“주영원 감독님?!”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찍은 주영원 감독님은 누구나 알만한 인물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아이돌 뮤직비디오 찍는 데 부를 수 있지? 뜬금없고 호화스러운 인선이었다. 상상도 못 했다.
“주영원 감독님이라고? 진짜?”
박하는 믿지 못하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나도 내 청각을 의심했으니 과한 반응은 아니었다.
“진짜. 어릴 때부터 알던 분이라서 열심히 졸랐더니 들어주셨어. 나를 조카처럼 생각하시거든.”
천만 감독 삼촌? 초록 형의 인맥이 넓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넓을 줄이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라면, 부모님과 연이 있어서 감독님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조카? 감독님이 삼촌? 어쩌다 알게 됐어?”
초록 형의 가정사에 대해 잘 모르던 지온은 대놓고 직구를 날렸다. 궁금했던 차라 나도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가 배우라서. 오래전부터 주영원 감독님이랑 친구셨고.”
주영원 감독님과 친구인 남씨 성의 배우라면. 곧바로 떠오르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있었다. 주영원 감독님의 천만 영화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던 국민배우 남경욱.
“경욱 남? 남경욱 배우?”
지온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남경욱 배우를 알았다고 했다. 팬이라고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아는 배우였고, 3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런 배우가 아버지라면 자랑스러울 법도 한데, 초록 형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아 했다. 부자 관계가 원만하진 않은 듯했다.
“보통은 얘기 안 해. 괜히 시끄러워지거든. 그나마 아버지가 내 얼굴을 언론에 공개한 적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 초록 형의 아버지는 사생활이 깨끗하진 않으셨다. 옛날에 크게 스캔들이 터진 적도 있었다. 온 국민이 알게 될 만큼.
그때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을 초록 형이 얼마나 시달렸을지. 스캔들이 과장되어 퍼진 거라지만, 여러모로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밝히기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너희는 알고 있어야지. 그래도 나를 배우 남경욱의 아들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국민배우의 아들로 사는 일도 쉽진 않구나. 초록 형을 남초록이 아니라 배우 남경욱의 아들로만 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유추해볼 수 있었다.
거기다 사이도 좋지 않으니, 아버지의 친구인 주영원 감독님에게도 부탁하기가 꺼려질 만도 했다. 어릴 때부터 알았다 해도 아버지와 관계된 인맥이니까.
“고마워. 초록 형.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별말씀을. 이원아, 나 리더다웠어?”
“응. 정말.”
우리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다. 망설여졌을 텐데.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였다.
박하는 벌써 초록 형을 껴안고 칭얼거리고 있었다. 서혼 형은 옆에 딱 붙어서 머리 위에 큰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가끔씩 쓰다듬으면서.
“놀랍긴 한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초록은 그린이지. 아니다. 경욱 남이 초록의 아빠.”
초록 형이 지온의 말을 듣더니 유쾌하다는 듯 후련하게 웃었다. 나도 남경욱 배우를 초록 형의 아빠로 기억하기로 했다.
“언제 지온이가 우리 아버지를 만나봐야 하는데. 보게 되면 꼭 말해줘. 남초록 아빠라고.”
그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했다.
“수고했어. 덕분에 속 시원하겠어.”
오란은 초록 형의 노력을 인정하면서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초록 형 덕분에 우리에게 엿을 먹인 키씨 엔터와 뮤비 감독에게 보란 듯이 자랑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천만 감독을 뮤비 감독으로 데려왔다고.
* * *
미리 언질이 있었을까. 초록 형과 주영원 감독님의 관계는 회사의 다른 관계자분들에겐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휴식기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회사에 접촉했다고만 알려졌다.
주영원 감독은 영화계에 오래 있었지만, 예전에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었다. 그래서 뮤비 촬영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유행에 맞추려면 옛날 방식으로는 찍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재능 기부에 가까운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거 아실 겁니다. 돈을 못 버는 대신, 뮤비 촬영을 차기작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까 합니다. 제가 잘 쓰지 않던 CG와 카메라 기법을 쓰게 될 테고, 실험적인 시도도 할 겁니다. 대신 한가지 약속드리죠. 최선을 다하겠다고.”
회사의 직원분들은 주영원 감독님의 발언에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뮤비 콘티가 나오고 촬영이 확정되면서 그런 걱정은 싹 사라져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주영원 감독이었다. 익숙지 않은 기술을 쓰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더라도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았다.
테오라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뮤직비디오를 위해서 세트장에 와 있었다. 의상을 바꿔가면서 칼군무를 선보였다. 배경이 초록색 스크린이라 낯설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 틈틈이 스토리가 있는 장면이 끼어들 거라고 했다. 감독님이 어떤 뮤비를 원하는지 명확해서 헤매는 일은 없었다. 원래 주영원 감독님이 촬영 전까지 소품 하나하나 세심하게 머리에 넣고 와서 지시하는 스타일이라나.
“나만 설레냐?”
“몸은 힘든데 어떻게 나올지 기대돼서 신나네.”
오란이 툭 한마디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 서혼 형이 받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앉아있던 박하도 일어나서 방방 뛰었다.
“다들 그랬구나! 나두!”
“예감 좋아. 대박 나올 것 같아. 대단해. 영원 주.”
“다들 알아? 초록 형이 우리를 엄청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이원아. 모르는 척해주는 중이었는데.”
능청스러운 서혼 형 때문에 와하하 웃음이 나왔다. 초록 형은 그래도 흐뭇한 미소를 지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춤을 추느라 힘들었지만, 설렘 때문에 기분은 들떴다. 촬영 기간이 짧아서 스케줄이 빠듯했지만, 멤버들 모두 지치지 않았다.
촬영 후반부에는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게 될 장면을 찍었다. 넘어지는 연기도 하고 물에 잠수했다가 나오기도 했다.
배경이 없다 보니 어색했지만, 멤버들 모두 진지해서 나까지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연기 수업을 받은 박하의 연기가 일취월장해서 뮤직비디오가 정말로 한 편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단 직감이 들었다.
이번 뮤비 촬영에선 스탭분들이 정말 고생하셨다.
테오라를 정식으로 맡아서 처음 받은 업무가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우리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뮤비 스토리 부분을 촬영할 땐 SF 분위기가 물씬 나야 하고, 퍼포먼스를 보여줄 땐 살짝 SF의 느낌만 묻어있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주문은 덤이었다.
버거운 요청에 잠깐 부담스러워하던 스탭분들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율해나갔다.
“독특한 미래적 감성이 있으면서도 절대 과해선 안 돼.”
“퍼포먼스 촬영엔 딱 한 발 앞으로 나가야 해. 그래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거든.”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네요.”
“스토리 촬영할 땐 메이크업에 힘을 줘야….”
SF 세계관을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어려운데 멋있게 보여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미리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의상, 헤어, 메이크업을 확정하긴 했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니 밋밋하거나 과한 부분이 있어서 수정이 필요했다. 거기에 격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중 촬영까지 있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산더미인데 촉박한 시간에 스태프분들이 거의 울기 직전이셨다. 우리를 위한 일이라서 멤버들이 죄송해하며 스태프분들을 챙겼다. 매니저 형은 우리 대신 달달한 간식과 커피를 계속 공급했다.
비주얼 디렉터님도 정신이 없으셨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많이 다녀보셨을 텐데도. 우리 뮤비 촬영 현장이 비주얼 디렉터님에게도 난이도 있는 현장인 듯했다.
“어리석었어…. 주영원 감독님이랑 함께 일하게 돼서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힘내세요! 박하가 있잖아요!”
박하가 옆에서 열심히 재롱을 떨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촬영 전부터 다 준비해오신다는 건 완벽주의자라는 의미였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그 말이 우리까지 쥐어짠다는 뜻일 줄이야….”
혼이 나가신 비주얼 디렉터님을 두고 초록 형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초록 형, 원래 주영원 감독님 저런 분이셔?”
“난 사적으로만 봬서…. 사적으로는 되게 다정다감한 분이시거든.”
“하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뮤비 촬영을 친분만으로 선뜻 허락하기는 어려우셨겠지. 감독님 커리어가 있으니까.”
우리가 대화하고 있자 서혼 형이 덧붙여 말했다.
“사용하는 장비가 엄청나게 비싸. 촬영 기간을 하루라도 줄이려고 더 그러시는 거야. 감독님이 재능 기부를 하신다고 해도 CG 작업 같은 뮤비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회사에서 내야 하니까.”
CG 작업은 투자하는 만큼 퀄리티가 올라간다나. 서혼 형은 연극영화과 연기 전공이 아니라 연출 전공이었다. 영화계에 깊은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선지 주영원 감독님의 속내도 읽어냈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네. 영원 삼촌한테 한동안 잘해야겠어. 이원이 말대로 거절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부탁이었어.”
“은인이나 다름없으시지. 나중에 같이 일해보고 싶다.”
주영원 감독님은 남다른 의미일 터였다. 배우였던 서혼 형에게도, 연출을 전공하는 서혼 형에게도.
“다시 일어나자. 오란이 헤어랑 메이크업 끝났어.”
“이원아. 지온이 좀 깨워줘.”
이번 촬영에서 지온이 언제 어디서나 잘 잔다는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게 됐다. 그만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온은 깨우면 잘 일어나기도 해서 잘 수 있을 때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촬영 시작이야. 지온.”
나는 초록 형의 부탁대로 지온의 팔을 흔들어 깨웠다. 의자에 기대서 불편한 자세로 잠들었던 지온이 눈을 끔뻑이면서 일어났다.
“…벌써?”
“조금만 참아. 촬영 곧 끝나니까 푹 잘 수 있을 거야.”
“자야 체력 회복이 되니까 일부러 자는 중인데.”
얕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던 지온은 이렇게 주장했다. 딱 보기엔 피곤해서 잠든 것 같았는데. 진실인지 아닌지는 지온만 알겠지.
“막바지니까 다들 힘냅시다!”
* * *
영화 촬영 같았던 뮤비 촬영을 마치고 뮤직비디오는 후 편집과 CG 작업에 들어갔다. CG 작업은 감독님이 추천하는 곳에서 맡았다. 배경이 전부 CG여서 중요한 작업이었다.
언제 또 천만 감독을 뮤비 감독으로 모셔보겠냐며 이왕 이런 기회가 왔으니 제대된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대표님이 CG에 거액을 투자했다고 들었다.
“우리가 망할 리는 없겠지만, 망하면 큰일 나겠다.”
초록 형이 눈을 찡그리면서 걱정했다. 영원 삼촌을 데려왔을 때부터 일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 같다면서.
“회사에서 투자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가 벌어주면 돼.”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한 오란은 멤버들에게도 목표 의식을 심었다. 나를 비롯한 멤버들도 재차 깨달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데뷔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