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9
의외의 일격
어안이 벙벙했다. 그 상태로 가만히 화면을 응시했다.
과거에 아이돌을 TV로 광고한 적이 있던가?
광고는 테오라가 단체로 모여있는 모습부터 시작했다. 구도를 잡고 모여 앉은 모습으로 시작해 우리 하나하나의 얼굴에 포커스를 잡았다. 한 명의 얼굴이 화면에 꽉 차도록 나왔다.
눈을 감고 있다가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무표정에서 웃는 표정으로 바뀌는 과정이 빠르게 흘러갔다.
테오라의 타이틀곡이 편집되어 배경 음악이 되었고, 데뷔날짜와 ‘HOT DEBUT’라는 단어가 타이핑된 화면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 전에 찍었던 영상이구나. 어디에 쓰일지 몰랐는데, 설마 광고로 나올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매니저 형! 이거 진짜 KBC 맞아요? 저희 깜짝 카메라 하는 거 아니죠?”
멤버들 모두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박하가 대신해줬다.
“이젠 뉴튜브나 인터넷 방송에도 올라갔을 거야. 회사에서도 이 광고가 무사히 방송될 수 있을지 몰라서 말해줄 수가 없었다. 광고 영상을 만들긴 했어도 심의를 통과할지는 확신할 수 없어서.”
“우리처럼 광고한 아이돌 아무도 없었죠?”
아무도 없었단다. 팬들이 돈을 모아서 아이돌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한 적은 있었다. 그 생일 광고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라는데 파격적인 홍보 방법이긴 했다.
TV 광고가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쓰이고, 아이돌을 기획사가 만든 하나의 상품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걸 광고로 냅다 내보낼 수가?
“과감하셨네요.”
초록 형이 한마디로 감상을 내놓았다. 다른 멤버들의 감상도 다르지 않았는지 놀랐다는 기색이 여전했다.
“직원들도 시끄러워질 거라고 우려했다. 그렇지만 그런 대가를 치를 만한 성공적인 광고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매니저 형의 말대로였다. 멤버들의 얼굴을 매일 보며 지내는데도 광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새삼 멤버들이 잘생겼다고 무의식적으로 감탄하면서 넋 놓고 봤으니까.
외견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나에게도 그랬다면. 보통의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홀린 듯이 감상하게 되지 않을까?
먼저 외적인 요소를 먼저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만큼 강렬한 첫인상을 줄 수 있을까. 그 첫인상이 충격적으로 새겨졌다면 목적은 이뤘다고 볼 수 있었다.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생각해둬.”
일부러 노이즈마케팅을 하기도 한다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라 볼 수도 있었다. 이 광고의 목적은 단순하게 우리 테오라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겠지만 회사가 이용한 수단이 법적으로 어긋나지는 않았다.
“괜찮겠죠?”
서혼 형이 걱정부터 했다. 선두주자는 그만한 역경을 겪기 마련이었다.
“문제가 생겨도 대표님이 처리해주실 거다. 너희까지 휘말리지는 않게 우리도 최대한 노력할 테고.”
혹여나 여론이 부정적인 논조를 보이면, 비난받을 수도 있었다. 대중은 선동되기 쉬우니까. 칼날 위를 걷는 아슬아슬함이 이럴까.
KBC뿐만 아니라 다른 공중파에도 지속해서 광고가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데뷔 앨범을 내기 전까지는. 이러다 하눌 엔터의 기둥뿌리를 뽑아버리지 않을까 싶은 본격적인 투자였다.
테오라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아이돌의 성공엔 수많은 요소가 결합해 있어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데.
“이미 벌어진 일이야. 돌이킬 수 없어. 우리는 우리를 믿어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초록 형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겠지. 우려는 접어두기로 했다. 심란함을 넣어두고 멤버들과 회의실을 나서서 연습실로 향했다.
* * *
예상대로 다른 기획사에선 하눌 엔터의 행각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상도덕에 어긋난 몰염치한 짓 아니냐, 그렇게까지 띄우고 싶냐, 어떻게 그런 광고를 통과시켰냐, 심의위원회에 뇌물이라도 먹였냐…. 그런 원색적인 비난이 숨겨진 사교적인 대화가 오갔다.
손중기도 한 엔터의 대표로 있는 만큼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 속에 감춰진 뜻은 ‘치사하게 왜 그런 방법을 먼저 쓰냐. 우리가 먼저 썼어야 했는데.’라는 부러움 섞인 후회였다.
중소형 기획사에선 예산 문제로 시도할 수 없더라도, 대형 기획사에선 도전할 가치가 충분한 방법이었다.
시청자들의 눈에 각인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들이부을 수 있었으니까.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투자금 이상으로 뽑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부러워서 그럽니까? 그쪽에서 먼저 아이디어 내고 실행했으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막은 적 없습니다. 어떻게, 이제라도?”
하눌 엔터의 대표는 끊임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이렇게 반응했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벨소리가 울렸다. 휴대폰에 뜨는 이름에 입꼬리가 씰룩였다. 키씨 엔터 대표였다.
태연하게 전화를 받고 인사말을 이어갔다. 본론은 다른 엔터 대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웃음소리를 자제한다고 했건만 그것마저 거슬렸는지 상대방은 분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한 방 시원하게 날렸다는 생각에 통쾌함이 가시지 않았다. 하눌에서 천만 영화감독 주영원을 데려왔다는 소식도 귀에 들어갔을 테니 분통이 터지고 남을 터였다.
우리가 먼저 선점했던 뮤직비디오 감독을 빼돌린 키씨 엔터라서 그 꼴이 더 고소하게 다가왔다.
키씨 엔터 대표는 선입견으로 눈을 가렸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다른 아이돌을 데뷔시킬 때 써볼 수 있겠지만, 이만큼 선명한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선구자라는 타이틀은 빼앗아 올 수도 없었다.
“키씨 엔터에서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그쪽도 컴백 때문에 바쁘지 않습니까.”
하눌 엔터의 뮤비 감독을 빼앗아 간 이유는 키씨 엔터의 주력 아이돌 그룹의 컴백 일정이 잡혔기 때문. 그 그룹은 컴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바쁠 시기였다.
키씨 엔터의 대표는 이를 갈면서도 예의를 지켜 통화를 끝냈다. 손중기는 간신히 웃음을 참다가 통화가 종료되자 박장대소했다.
시원해도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키씨 엔터가 3대 엔터 중 하나라고 하눌 엔터를 얕잡아 봤다가 큰코다친 셈. 자기 체면을 살리려고 무슨 꿍꿍이를 품을지 모르지만, 우선 이 시원함을 즐기기로 했다. 언제 이런 사이다를 마실 수 있겠는가.
“애들이 이런 걸 보고 사이다라고 한다던가. 사이다나 하나 마셔야겠구먼.”
하눌 엔터 손중기는 겉옷을 챙기며 대표실을 나섰다. 휘파람을 불면서.
* * *
데뷔 직전인 아이돌의 TV 광고는 생각보다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물론 약삭빠르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보단 먼저 광고에 나온 아이돌에게 관심을 가졌다.
광고 자체도 잘 나와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고, 그 광고의 모델이 매력적이었던 만큼 누군지 호기심을 가졌다.
– 테오라? 그거 무슨 브랜드야? 데뷔라고 써 있던데 설마 아이돌?
└ㅇㅇ하눌 엔터에서 나오는 아이돌 그룹임
└답변 감사 근데 진짜 아이돌임? 아이돌 광고를 공중파에서?
└그래서 업계에서도 갑론을박 있다 들었음
– teorra가 무슨 광고야?
└위에 답변 읽어보길 요약하자면 아이돌 광고
– KBC 일일드라마 하기 전에 나온 광고 모델이 누구?
└하눌 엔터 소속 아이돌 테오라 곧 데뷔한다고 함
└와 오늘 이 질문 엄청 올라온다ㅋㅋㅋ 내가 봐도 매력있긴 하더라
여러 채널에서 광고를 반복적으로 시청한 사람 중의 대부분은 광고에 나온 ‘테오라’라는 그룹이 누군지 찾아보기도 했다.
보정이 들어갔다고 짐작하더라도 그 얼굴과 표정 변화는 대중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면이 있었다. 각자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 광고bgm 찾아줄 사람ㅠㅠㅠ KBC 주말드라마 하기 전에 나온 광곤데
– 테오라? 그 광고에서 나오는 음악 무슨 곡인지 아는 사람~
└테오라 타이틀곡 아직 데뷔앨범 발매 전이라 기다려야함
└티저 주소 https://www.newtube.com/watch?v=iEdXFdfeWbG
– 예쁜 남자애들 여러명 나오던 광고에서 나오던 노래 뭐임?
배경 음악을 찾는 질문이 종종 올라왔다. 짧게 편집된 버전이지만 타이틀곡이 듣기에 좋았다는 뜻이었다.
하눌 엔터 직원들은 광고로 얻은 반응에 고무되었다.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느냐는 칭찬과 잔머리를 잘 굴렸다는 비아냥을 동시에 듣고 있던 차였다.
뉴튜브나 인터넷에 올라간 광고 후반부에는 뮤비 티저 영상까지 붙어있었다. 댓글이 수없이 붙고 데뷔 앨범에 대한 기대는 한층 높아졌다.
데뷔하기 전부터 이만큼 이목을 끌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욕을 먹어도 괜찮았다. 욕을 먹는 만큼 커리어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테오라와 함께 일하게 되면서 얘네는 반드시 떠야 하는 애들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와, 벌써 1월이 열흘이나 지났다니.”
눈 깜짝할 새 연말이 지나가 버렸다. 한창 바쁜 시기라서 관계자들은 회사송년회는커녕 연말에 친구나 가족을 만나지도 못했다. 새로운 해가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를 업무의 연속이었다.
데뷔를 시키고 음악 방송을 통해 공식 무대를 치른 후에야 그나마 여유가 생길 터였다. 든든한 인센티브와 함께 휴가를 받게 될 예정이어서 참을 수 있었다.
물론 테오라와 같이 다녀야 하는 스태프는 제외하고. 그들은 데뷔 후에도 한동안은 휴가를 꿈꾸기 어려울 테니까.
“보름 정도만 어떻게 버텨봐요.”
“티저랑 정식 앨범 발매 간격이 다른 가수에 비해 긴 편이라 계속 홍보를 이어줘야 합니다.”
열기가 식지 않도록 능수능란하게 조절해야 했다. 홍보팀은 이번에 자신들이 가진 오명을 씻어내기로 했다.
홍보팀 직원들은 절대 자신들이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아티스트 의견’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기에 어떠한 대응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악플러들을 선처 없이 고소해서 본때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연애설에 공식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고 묵묵부답이었던 이유도 전부 소속 연예인을 우선했기 때문이었다.
논란을 미리 알아채고 협상해서 무마하지 못했다는 점은 능력 부족으로 볼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하눌 엔터는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한번 타협하게 되면 계속 끌려다니게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어차피 근본적인 문제는 해당 연예인에게 있어서 언젠간 드러나게 되어 있다면서.
연예인은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는 공. 홍보팀의 수완으로는 미래까지 예측할 순 없었다.
“힘들긴 한데 그만한 보람이 있네요.”
“그러게요. 맨날 뒤처리만 하다가 진짜 홍보를 해보는 기분이에요.”
회사 소속 배우가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을 확정 짓거나 솔로 가수가 신곡을 발매할 때는 기사를 열심히 내고 홍보해도 별로 티도 나지 않았다. 기본 업무이기도 하고 장점보단 부족한 점이 더 눈에 띄니까.
“저는 테오라가 뜰 것 같아요. 이전에 두 그룹을 데뷔시켜 봤지만, 이번엔 뭔가 달라요.”
“내기할까요? 이번 해에 테오라가 신인상을 탈 수 있을지.”
“그럼 저는 ‘탄다’에 걸게요.”
“저도요.”
“내기가 안 되겠는데요? 저도 그쪽에 걸고 싶어서.”
홍보팀 직원들은 미래를 낙관하면서 웃음 지었다. 아이돌의 성공은 복불복이라지만 은근히 희망찬 그림을 그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