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43
아직 애기다, 애기
초록 형은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다가 눈동자만 굴려 우리를 힐끔거렸다.
“후….”
“실망하긴 일러. 우리 음악방송 한 번도 못 해봤잖아.”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알았던 오란은 착잡한 얼굴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서혼 형은 침울해진 얼굴을 애써 숨기며 우리를 격려했다. 박하는 얼굴을 바닥에 묻고 있었다.
“이해 안 돼. 한번 들으면 이 곡이다 싶을 텐데?”
지온은 음원 플랫폼의 순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제대로 순위를 매긴 게 맞냐고.
음원 차트가 완벽하게 음악의 질로 평가받는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이런저런 논란이 있어서 순위 집계방식을 몇 번이고 바꿔왔고, 팬덤의 영향력을 많이 받기도 하니까.
“음원 차트는 인지도의 영향을 받으니까. 테오라는 쌩 신인이고.”
“그렇지만 공평하지 않아. 이원….”
적극적인 홍보의 힘을 빌린 우리도 수혜자에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불평할 입장은 아니었다.
“서혼 형 말대로 우리는 음악 방송 아직 한 번 못 나갔어. 광고도 내보냈고 쇼케이스도 했지만, 우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아직 테오라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극소수야.”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속이 쓰렸다. 이번 앨범에 들어간 3곡 가운데 2곡을 내가 작곡했으니까. 이 결과는 당연히 내 책임이기도 했다.
솔직히, 저조한 성적은 거의 내 책임이라고 봐도 되겠지. 다른 부분은 어느 아이돌 그룹이랑 비교해봤을 때 떨어지지 않으니까. 멤버의 실력이나 비주얼이나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나 홍보에 들어간 비용과 노력만 봐도….
멤버들과 함께 숙소를 쓰지 않았더라면 혼자 방에 들어가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성적이 떨어져도, 콩쿠르에 나가서 수상하지 못했어도 시큰둥했는데. 왜 이번엔 다르지?
모르겠다…. 눈가가 자꾸만 뜨거워졌다. 이런 못난 마음 들키지 않고 싶은데. 코끝이 찡하게 울리는 게 기어이 눈물이 나려는 모양이다. 얼른 고개를 돌려 소파에 얼굴을 감췄다.
“얘들아. 나 한마디도 안 했거든?”
“형 얼굴에 결과 다 쓰여 있는데 뭐….”
팔로 눈을 감추고 있던 박하가 칭얼댔다. 목소리에 속상함이 묻어있었다.
“장난이 심했나 보다. 미안.”
“…?!”
“…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멤버들이 잠시 렉이 걸려 굳었다가 풀려났다. 패잔병처럼 늘어져 있던 멤버들은 모두 벌떡 일어났다.
지금까지 장난이었다고? 일부러 연기한 거라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바로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장난? 미쳤어? 남초록!”
“씁. 미안한데 그래도 형이라곤 불러야지. 박하준.”
제일 격렬하게 반응한 멤버는 박하였다. 나도 얼굴을 숨기느라 박하를 볼 틈이 없었는데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르고 속눈썹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걸 보니 그새 소리 없이 울고 있었나 보다.
속았다는 억울함에 더 발끈해서 초록 형에게 달려들었다. 오란과 지온은 옆에서 박하가 초록 형을 응징하는 것을 도왔다.
다시 생각해보면 심각한 척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전부 과대 해석해서 그렇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록 형에게 따지기보단 장난이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초록 형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낸 나는 직접 내 눈으로 순위를 확인했다. 초록 형은 맨 아래까지 스크롤을 내렸던 게 아니었다. 우리 테오라의 타이틀 곡이 보이자 손을 더 움직일 수 없었던 거다.
【new 79. 각인 (Imprinting) – TEORRA(테오라)】
“…79위? 우리가?”
내 중얼거림에 오란과 지온이 머리를 들이밀어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국내에선 가장 영향력 있는 음원 플랫폼에서 79위.
실시간 차트의 순위가 1시간 단위로 집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잠깐 반짝하고 스트리밍 수가 늘어났을 수도 있다. 쇼케이스가 끝난 지 두 시간도 안 됐으니까. 그래도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우리 노래가 듣기에 나쁘진 않았다는 뜻이니까.
“79위…?”
서혼 형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안도가 앞서는 듯했다.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기도 했다. 실시간 차트 순위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대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
“내일도 지켜봐야 알겠지만, 나쁘지 않아. 이 추세라면….”
박하의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초록 형이 분석을 내놓았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섣불리 꺼낼 수 없어서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뒤에 이어질 말을 알 수 있었다.
“수록곡도 들어주면 좋겠다!”
금방 기분이 나아졌는지 박하는 입술을 길게 늘어뜨리며 웃었다. 오란은 그런 박하에게 차트에 들어갔다고 바라는 게 많다며 타박했다. 타이틀뿐이지만, 우리 곡을 많은 분이 들어주셨다는 게 중요했다. 물론 수록곡도 들어준다면 더 좋겠지만.
“서혼, 목 아프겠….”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자세 그대로 멈춰버린 서혼 형에게 말을 걸던 지온이 말끝을 흐렸다. 멤버들의 시선이 서혼 형에게 돌아갔다.
고개를 푹 숙인 서혼 형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는 건 휴대폰 화면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었다.
“어휴! 이렇게 맘이 약해서 어떡할래? 이 울보 형.”
박하가 못 말리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서혼 형의 등을 꼬옥 끌어안았다.
“덩치는 제일 크면서 맘은 제일 여리고. 음악 방송 1위라도 하면 아주 통곡하겠네.”
오란 말대로 너무 상상이 잘 됐다. 1위 트로피를 받은 서혼 형이 우느라 아무 말도 못 하는 장면이. 거기엔 박하도 끼어있지 않을까. 말투가 까칠한 오란도 서혼 형을 보는 눈길은 따듯했다. 입술이 삐죽 올라간 걸 알고는 있으려나.
“지온. 이제 순위가 이해가?”
투덜대던 지온도 화면을 들여다보며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공평하다! fair! equitable! Gerechtigkeit!”
대강 공평하다는 뜻이겠지. 쇼미더골드3에서 경연했던 곡으로 차트 상위권에 올라갔다고 들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일희일비했으려나?
“그렇게 기뻐? 쇼미더골드 시절엔 음원 순위 더 높았잖아.”
쇼골3 준우승자보다도 차트 상단에 오래 붙어있었다. 나만 가진 의문이 아니었는지 다른 멤버들이 이쪽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눈물을 흘리던 서혼 형도 이젠 진정이 됐는지 눈가가 붉은 것 외엔 멀쩡했다.
“그땐, 무작정 신청해서 나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기대도 안 했지. 떨어져도 좋으니까 경험만 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너무 잘 됐고…. 내 노력이 아니라 어, 뽀록? 그런 거였지.”
뽀록이라니. 어디서 배워온 거야. 저런 단어를…. 이마를 짚자 옆에서 듣던 초록 형이 끼어들어서 고쳐줬다.
“뽀록이 아니라 요행. 차라리 fluke라고 하던가. 일본식 발음이라 되도록 쓰지 마.”
“fluke? 아! 그거였어?”
의미는 이해했다. 실력 없이 어쩌다 얻은 행운이라는 의미라면. 그러고 보니 유명한 가수가 피처링 했었던가?
지온이 왜 말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는지 알겠다. 운이 좋아서 피처링 해준 가수의 유명세에 업혀 갔다고 여기는구나.
경연곡은 지온의 랩과 잘 어울려서 더 평가가 좋았는데. 물론 그 가수가 앨범을 냈다 하면 차트 꼭대기에 올라가니까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랑할 만한 성과였다. 그런데도 자기가 이뤄낸 성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구나.
“이번이 진짜 데뷔야. 그래서 더 떨리고.”
지온의 마음이 어떤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해가 잘되는 만큼 심리적으로 가깝다고 느껴졌다.
나도 살가운 편이 아닌 데다 지온은 다른 멤버들보다 개인적인 거리를 존중해줬다. 그래서 8개월 정도를 같이 보내는 동안 물들어가듯 천천히 친해졌다. 지금처럼 내 선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내 마음을 관조하는 사이에 초록 형과 박하는 지온에게 달려들어 애정을 표현했다. 타인이 보면 괴롭힌다고 하겠지만, 친밀함의 표시였다. 나는 별로 당하고 싶지 않지만….
언제 울었냐는 듯, 서혼 형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오란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서 웃다가 내가 쳐다보자 시치미를 뗐다.
“솔직하게 웃으면 어때서.”
내가 지적하자 오란이 눈썹을 삐죽 올렸다.
“내가 뭐.”
“어차피 우리끼린데.”
“글쎄. 못난 울보들하고는 우리라고 묶이기엔 내가 아깝지 않나.”
“울 수도 있지. 못났다고?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더 못났으니까 서혼 형이랑 박하한테 사과해.”
울보? 오란도 반드시 질질 짜는 날이 올 거다. 울기만 해봐라. 내가 두고두고 놀려줄 테니까!
나는 턱에 호두를 만들고 씩씩거리느라 반달이 된 오란의 눈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과? 하지 뭐. 근데 둘한테만 사과하면 끝일까? 한 명이 더 있는 거 같은데.”
“…뭐?”
설마. 설마!
“함이원 오리발 내밀어도 소용없어. 아까 소파에 기대서 훌쩍거렸던 거 다 알아. 어디서 발뺌하려고.”
“이원이 형이 울었다고?”
“이원이가?”
아. 망했다. 들키더라도 오란한테 만큼은 들키면 안 됐는데.
“장난인 거 알기 전에 혼자 기죽어서는 눈물 찔끔 흘리던데.”
여러 개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왔다. 따가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좀 의외다. 나는 이원이가 성적에 연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도! ‘누구에게도 날 평가할 자격은 없다.’ 그럴 거 같지 않아?”
내가 그런 오만한 이미진가? 평소라면 담담하게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서혼 형과 박하에 다들 동의하는 듯했다. 박하는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연기를 했다. 내 성대모사 한 건가?
“이번엔 내가 작곡한 곡이 타이틀곡이기도 하니까 책임….”
“뭐야. 이원 형, 자기가 작곡했으니까 망하면 자기 책임이라는 거야? 진심?”
“Seriously?”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고?”
어지간히 이해가 안 갔는지 오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원아. 모든 결과를 네 탓이라고 여긴다는 건 이상해. 네 곡인지도 모르고 우린 그 곡을 선택했어. 단지 곡이 좋다는 이유로. 그리고 넌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최선을 다해 곡을 만들었어. 그렇다면 선택을 한 우리도 그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서혼 형 말이 맞아. 그리고 실패가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야.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우리가 발을 들인 이 연예계야. 모든 불행을 우리 탓으로, 네 탓으로 돌리진 마. 물론 성공은 우리 덕이지만.”
내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섬세하게 쓰다듬는 서혼 형과 눈을 가늘게 접어 웃는 초록 형을 보면서 생각했다. 진짜 형 같다고. 이래서 현오 형이 외롭지 않다고 했구나, 하고.
“우리 중에 넷짼데 막내 같네.”
“막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혼 형, 초록 형, 지온, 나, 오란, 박하 순의 나이라서 나는 태어난 순서로 따지면 넷째. 그렇지만 서혼 형이 하는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했다. 나는 학교에서조차도 또래들과 부딪치며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사회생활로만 따지면 내가 제일 서툴겠지.
“이원이 아직 애기다. 애기.”
애기… 까지는 아닌 거 같지만. 우선은 반박하기도 귀찮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반응이 시큰둥하면 이러다 말겠지 하고.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