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47
화제성을 만들자
테오라 멤버들의 고개가 전부 초록 형을 향했다. 입김을 넣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우리가 스케줄을 잡지 못하도록 압력이라도 가했다는 뜻이었다.
“진짜야…?”
“일단은 그럴 가능성이 보이네.”
박하는 거짓이라고 말해주길 바랐겠지만, 초록 형의 대답은 냉혹했다.
“아는 삼촌들한테 연락해봤는데, 참고로 그분들은 실무 쪽은 아니셔서 자세히는 못 알아냈어. 고려해서 들어.”
아는 삼촌, 아마도 방송국의 높은 분들이려나. 거미줄 같은 인맥을 가진 초록 형이라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래 직원한테 테오라라는 애들이 괜찮더라고 떠보니까 은근히 대답을 피하더래. 그 태도가 부자연스러웠다고 하네. 찔리는 데가 있는 사람처럼. 한 군데에서만 생긴 패턴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누군가 인위적으로 이런 흐름을 만들었다고 봐야겠지.”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방송 관계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힘이 있어야 했다. 또한, 우리 쪽보다 그쪽에 붙었을 때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해야 했다.
넌지시 압력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우리가 망하면 이득을 얻을 사람. 후보가 그리 많지는 않겠지.
“대표님께 앙심을 품었다거나 혹은 우리가 방해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너희 생각은 어때?”
어떤 연유로 테오라를 노리든 그 결과는 회사와 우리 개인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었다. 초록 형이 내놓은 예시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둘 다 해당할 수도.”
“그러네. 이원이 말대로 두 가지를 완전히 떼어놓고 보긴 어렵지. 예상외의 인물일 확률은 희박하고.”
“Are you kidding? 우리 뒤에 검은 손이 있다고?”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이라니. 돌았네.”
믿고 싶지 않은지 지온과 오란은 다시 확인하려 들었다. 마이페이스인 지온에게도,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진실을 체득한 오란에게도 예상 범위 밖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초록이 형…. 그냥 오해, 일리는 없겠지?”
“관련자한테서 직접적인 증거를 구할 순 없을 거라 심증뿐이지만, 정황상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초록 형은 대화하는 도중에도 계속 휴대폰을 확인했다. 진동으로 보아 톡이 계속 들어오는 듯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혼 형이 중얼거렸다.
“타겟이 되기엔 우리가 별로 대단하지 않은데. 왜 하필 우리를….”
“힘이 미약한 만큼 짓밟기도 쉽지. 싹이 보일 때 미리 잘라두기 위해서일지도.”
“업계 관계자이면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아이돌인 우리를 곱게 보기 힘든….”
아예 뜬금없는 인물의 소행일 수도 있지만, 확률상의 문제였다. 내가 아는 한 이 조건들을 충족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만나본 적이 있었다.
POT 엔터의 대표.
“내 촉은 미래에 우리 경쟁자가 될 아이돌이 속해있는 회사를 가리키는데.”
오란도 나와 비슷한 결론을 도출했다. 다른 멤버들도 놀라진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든, 회사든 악의를 갖고 있긴 할 텐데 어느 한 곳으로 줄이긴 어렵네. 우리보다 힘 있고 남돌이 소속되어있는 회사는 떠오르는 곳만 해도 다섯 군덴데.”
“키씨 엔터는 어때?”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인 테오라와 얽혔던 회사는 뮤비 감독을 빼앗아 갔던 키씨 엔터밖에 없었다. 박하가 키씨 엔터를 떠올린 건 지당했다.
“우리가 엿 먹기는커녕 기회로 삼아서? 그게 번거로움을 감수할 이유가 될까 싶은데.”
오란 말대로 그런 하찮은 이유로 우리 섭외가 막혔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암중에서 더러운 짓거리 하는 사람 속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까.
“단정할 순 없지만, 키씨 엔터 대표가 음흉하진 않아. 좋게 말하면 이해관계가 확실한 편이지.”
연예계 사정에 밝은 초록 형은 키씨 엔터 대표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대강 알고 있었다. 그간 키씨 엔터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안다면 어렵지 않았다.
“한 마디로 속물이라고?”
오란이 한 직선적인 표현에 모두 키씨 엔터와 엮인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도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뭐 그렇지.”
“그럼 키씨 엔터가 한 일이 깔끔하게 이해 가네. 실력 좋은 뮤비 감독이 탐났을 뿐이라는 소리니까.”
그래서 초록 형은 키씨 엔터의 만행에도 화를 내지 않았구나. 경황이 없긴 했어도 하루아침에 뮤직비디오를 찍어주실 감독님이 사라지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날 법도 한데.
“방송국마다 손을 쓰려면 3대 기획사 수준은 되어야 할 거야.”
3대 기획사의 이름은 무거웠다. 이 기획사들은 우리나라의 아이돌 산업을 일궈낸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강력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우리가 맞서서 이기는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하눌 엔터가 3대 엔터의 입김 한 번으로 쓰러질 정돈 아니지만, 적어도 갓 데뷔한 신인 그룹 하나는 얼마든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
3대 기획사는 누군가를 긴 세월 동안 방송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들 힘이 있다. 그런 일을 당한 피해자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키씨 엔터를 뺀다고 치면 두 군데가 남는데, POT 엔터랑 QU 엔터는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라 느낌이 안 오네.”
“우리가 가진 정보로는 더 캐낼 순 없겠고.”
우리 멤버들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 상황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매니저 형 오면 얘기해봐야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매니저 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통화를 하러 나가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돌아온 매니저 형의 안색이 나빴다.
무슨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지 대강 짐작이 가서 더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준현 형. 말 꺼내기 힘든 거 알아요. 우리도 상황은 대충 아니까 하나만 말해주세요. 어디에서 그랬는지.”
테오라를 대표해서 리더 초록 형이 물었다.
매니저 형과 통화를 한 지인들은 실무자일 터. 본질에 더 깊이 접근할 수 있을 테니, 어느 정도 단서는 얻었을 게 분명하다.
“어떻게…. 너희한테 알려야 할지도 정하지 못했는데.”
“우리를 온실 속 화초로 두지 마세요. 우리와 관계된 일에 대해선 알 권리가 있어요. 알아야 뭐라도 도울 수 있잖아요.”
“…너희는 어릴 때의 나보다 더 낫구나. 감당할 각오는 됐고?”
나를 비롯한 멤버들 모두 단호하게 긍정했다.
“…POT 엔터 쪽 직원이 얘기를 흘렸다고 들었다.”
둘 중 하나일 거로 추측했는데도 POT 엔터의 이름을 듣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앞으로의 싸움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POT….”
“다행히 아직까진 압력의 강도가 세진 않았던 모양이라 스케줄 하나는 잡아 왔다.”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순간에도 스케줄을 잡을 생각을 한다니. 역시 매니저는 매니저인가 보다.
“오오! 매니저 형 능력자!”
박하가 매니저 형의 업적을 찬양했다.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칭찬 폭탄을 퍼부으니 매니저 형의 굳은 눈매가 조금은 풀어졌다.
“체험형 예능에 게스트로 갈 거야. 시청률은 낮지만,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니까 우선은 출연한다고 해뒀다.”
프로그램 제목만 밝히면 다 알게 될 텐데.
“예능 이름이 뭔데요?”
“으음…. 인데.”
“어? 마지막 일꾼? 어디서 들어봤는데?”
올라갔던 입꼬리를 서서히 내리며 박하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이름만 들어보고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이라서 누군가 설명해주기를 바라며 얌전히 기다렸다.
“나 본 적 있어. 일반인 데려다가 일 시킨 다음에 인터뷰도 하고 취업 상담도 해주는 프로그램이야.”
여섯 명 중에 무슨 프로그램인지 아는 사람이 서혼 형 하나. 인기 없는 예능인 것 같긴 하다. 서혼 형은 어쩌다 보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그게 예능이라고? 다큐 아니야? 재미가 있긴 해?”
나도 오란과 같은 의문을 가졌다. 프로그램의 내용만 들으면 예능 다큐처럼 느껴지는데. 이걸 예능에 넣을지 다큐멘터리에 넣을지는 직접 봐야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국가 시청률 나온다고 알고 있어. 곧 폐지되지 않을까.”
“폐지되면 어때! 그 전에 우리가 나가서 테오라를 알릴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폐지되면 어떠냐니. 박하야….”
“원래 폐지될 프로그램이라며. 우리는 관계없지. 냉정하지만 현실은 그래.”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의 현재 상황도 막막한데 아무런 연관도 없는 타인을 걱정할 시간까지는 없었다.
“스케줄 잡으면서 들었다. 확정되진 않았지만, 종영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진짜 재미없긴 한가 보다. 종영 얘기까지 오가는 마당이라 우리를 섭외하는 데에 부담이 없었겠구나. 일반인이 아니라 연예인을 섭외한 목적도 알 수 있었다.
아. 그럼….
“어차피 종영된다면,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어때?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시청률을 높이거나 화제가 된다면.”
연예인에게 인기는 곧 영향력이자 권력. 테오라가 큰 인기를 얻는다면? 섭외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만큼 유명해진다면? POT 엔터의 압력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이원 의견에 동의.”
“나도!”
“나쁘지 않은 방향이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와 제작진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지온과 박하가 찬성하고 현실적인 오란까지 긍정적인 걸 보면 내 의견이 꽤 괜찮게 들린 것 같다. 출연할 기회가 생기면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맞지만, 방향을 명확하게 잡으면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시청률은 전부터 이어져 온 관성이 있어서 한 회차 만에 높이긴 힘들 거야. 그렇다면 화제성이라도 잡아야 해.”
“화제성은 도대체 어떻게 잡는데?”
“우리는 ‘재미’를 잡아야 해. 재미를 주는 제일 쉬운 방법은 웃음을 주는 거겠지. 진지한 의도가 담긴 프로그램이니까 그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의외의 포인트에서 웃기면 돼.”
그게 제일 쉽다고? 진정성을 보여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거로 생각했는데.
“감동을 주기는 의외로 쉽지 않을걸.”
아. 열심히 하는 모습은 기특해 보일 수 있어도 일부러 연출하려 하면 들킬 게 분명했다. 우리가 능숙하게 연기하긴 힘드니까. 시청자의 눈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놀라게 만들어도 좋아. 신기하다고 생각하게 해도 좋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지거든. 파급력이 강해지는 거지.”
“그런 적 있어! 달인 영상 보고 친구한테 봤냐고 물어봤었어!”
“그런 방식이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더 강력해질 테고.”
“초록 형 무슨 방송학 박사야? 와!”
단순히 연예계에 익숙한 게 아니라 분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낱낱이 파헤치고 분류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어냈다.
“자세한 얘기는 숙소에 돌아가서….”
서혼 형답지 않게 초록 형의 말을 끊으면서까지 끼어들었다.
“얘들아.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마지막 일꾼에서 체험하고 나서 전부 몸살 나서 앓아눕는 후기가 나오더라….”
순간 고생길이 보이는 듯해서 아찔해졌다.
진짜 마지막이 될 일꾼이라 프로그램 이름이 ‘마지막 일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