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
어떤 이름으로도
현오 형에게 줄 수 있는 보답. 고뇌 끝에 내가 내놓은 해결책은 ‘곡 선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으로 평온을 찾은 나는 자연스레 작곡에도 손을 댔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마음속에 담아둔 속내를 그렇게라도 표출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기회는 없었지만, 작곡은 꾸준히 했다.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아선지 형에게 헌정하는 곡은 뚝딱 나왔다.
문제는 가사. 곡 자체는 적당히 들을만한데, 가사는 쓰고서도 마음에 안 차서 전부 폐기할까 말까 고민했다.
현오 형이라면 어떤 반응일까?
답이 바로 나왔다. 곡을 엉터리로 만들어서 줘도 좋다고 하겠지. 뻔했다.
나는 이대로 수정 없이 형에게 곡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다음 날. 초조한 마음으로 현오 형을 찾았다. 쑥스러움을 참고 악보가 든 파일을 내밀었다.
“선물. 내가 쓴 곡이야.”
현오 형은 파일을 펼쳐 악보를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나 주는 거야? 직접 작곡한 곡을? 정말? 와….”
얼마나 감격했는지 형의 목소리가 잔뜩 떨려서 나왔다.
선물을 이렇게 좋아해 주니 보람이 있었다.
“불러봐도 괜찮을까?”
“맘대로 해.”
소유권은 형에게 넘어갔다. 형을 위해 작곡, 작사한 곡이니 맘껏 불러주길 바랐다.
현오 형은 악보와 가사 전체를 보고서도 부르지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안 되겠어. 내가 연습해서 소화한 다음에 부를게. 이원이 네가 처음 들을 때 완벽했으면 좋겠어.”
내가 쓴 곡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태도였다.
우리가 격식 차릴 사이도 아닌데 완벽한 무대를 보이고 싶다니.
그야말로 진심 가득한 가수의 마음가짐이었다.
“이원아! 우리 여행 가자! 음악 여행을 떠나는 거야.”
이렇게 갑자기? 뜬금없이?
“당장은 안 되겠고 며칠 후면 너 겨울방학 하잖아. 그때 가자. 거기서 부를게. 우리 노래.”
우리 노래라니. 간지럽게.
“그리고 나는 이걸 꼭 남기고 싶어. 남겨야겠어. 여행은 형이 다 준비할 테니까 너는 허락만 받아와.”
남긴다는 건 곡 녹음하겠다는 뜻인가?
…도대체 얼마나 진심인 거야?
* * *
현오 형은 폭주 기관차였다.
아이돌로 활동할 때 만난 지인에게 촬영 장비와 음향 장비를 추천받은 다음 어떻게 다루는지도 전부 배우겠다고 했다.
그 다짐을 전부 지키느라 해가 바뀌어버렸다.
예상외로 본격적이라 어리둥절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미성년자인 나는 의욕 넘치는 형만 믿기로 했다.
형은 직접 구매도 하고 빌리기도 하면서 장비를 모아왔다. 캠핑카도 빌리고 일정도 짜뒀다. 나는 악기랑 옷, 몸만 챙겨왔다.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겨울 여행.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낭만적인 여행이라 오랜만에 기분이 들떴다.
가족 여행은 해외로 갔고 수학여행이나 소풍은 강제로 끌려가서 기억이 삭제됐다. 그러니까 형과의 여행은 제대로 된 첫 국내 여행인 셈이다.
풍경이 멋있고 인적 없는 곳에서 캠핑카를 멈출 거라던 형의 첫 여행지는 강원도 인제.
형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눈 만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여기 구도 어때? 배경은 멋있는데.”
눈 덮인 하얀 자작나무 숲은 너무 멋있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영상 찍기엔 딱 맞았다. 그렇지만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추워.”
환상 속 동화 같은 배경이 한파가 몰아치는 시기에 추운 강원도에 올 만큼 대단한가?
형은 내 불만 섞인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는지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네가 준 곡 부를 거야. 진짜 최고로 찍고 싶어.”
형은 소리를 점검하며 목을 풀었다. 바깥에 나오느라 챙겨입은 롱패딩을 냅다 벗더니 멋있는 카멜색 롱코트로 갈아입었다.
영상에 목숨이라도 걸었나 보다. 저게 바로 프로 정신인가?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에 압도된 나는 잠자코 형의 계획에 협조하기로 했다.
“반주는?”
“반주는 피아노나 기타가 좋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너무 추워서.”
형도 춥긴 춥구나. 어차피 한 곡. 잠깐은 추위를 참을 수 있다. 아, 이러려고 깔끔한 옷 챙겨오라고 했구나?
나는 캠핑카에 실린 디지털 피아노를 꺼내서 배터리를 연결했다.
“촬영 바로 해?”
“연습해보지 않아도 되냐는 뜻이지? 우린 괜찮을 거야. 이원이 넌 천재니까 내 노래에 완벽하게 맞춰줄 거잖아.”
천재 타령 또 시작이네.
나는 대꾸 없이 흰 니트에 검정 롱코트로 갈아입고 준비를 마쳤다. 현오 형은 어떻게 찍히는지 확인 후에 녹화 버튼을 누르고 화면의 가운데로 돌아왔다.
“시작할게. 크흠. 안녕하세요. 저희는 신인 보이그룹 함정입니다. 저는 현5, 키보드를 맡은 멤버는 에이치투원(H21)입니다. 첫 곡은 이 친구가 저한테 선물해준 곡입니다. 제목은 ‘어떤 이름으로도’.”
내 예명도 지었어? 컨셉 한번 지독하다. 무슨 아이돌 데뷔 무대 같잖아.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숨기다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나까지 행복해지는 웃음이었다.
건반이 부드럽게 전주를 열었다. 잔잔하고 담백한 멜로디로 문을 연 곡은 이윽고 형의 목소리를 맞이했다.
어떤 우연 아니면 어떤 운명처럼
당신이 전하는 대가 없는 선의는
세상에 무지개 하나를 그리죠
일부러 의도하지 않기에 더욱
순수한 마음을 누구나 알아채겠죠
어두운 산길을 걸어왔기에 더욱
다가오는 새벽이 감동적인 거예요
곡을 다른 사람에게 준 것도, 가사를 끝까지 적어본 것도 처음이라 어떨지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형은 완벽하게 내가 말하고픈 바를 소화했다. 가사 속에 담긴 의미와 감정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깊이 몰입한 형의 목소리는 진심이 담겨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마음이 발가벗겨져서 멋쩍기도 하지만 그 가사에 거짓은 없었다.
외로움도 당신을 멈출 수 없죠
그마저도 당신을 완성시키는 과정
언제나 기억해줘요 그 어떤 이름으로도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누군가 있음을 yeye
애드립도 적절하게 들어가 노래가 풍부해졌다. 능숙한 애드립 덕분에 간주가 살았다.
당신이 심어놓은 위로보다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 선물할게요
당신과 함께 만들어낸 노래를 더욱
즐겁게 부르겠다고 다시 약속할게요
새로운 시작을 무서워 말아요
그마저도 당신을 위해 준비된 안배
언제나 기억해줘요 그 어떤 이름으로도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누군가 있음을 yeye
노래를 마친 현오 형은 고개를 숙이고 멈춰있었다.
노래에 실었던 감정을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듯싶다.
배역의 감정에서 바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메소드 연기를 한 배우처럼.
형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촉촉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내 곡을 부르는 가수를 보면.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가만히 서서 카메라를 만지는 형을 구경했다.
“이원아. 이리 와서 촬영본 같이 확인하자. 노래는 만족스러운데 촬영이 무사히 됐는지는 다른 문제잖아. 혹시 제대로 안 찍혔으면 다시 찍어야 할 수도 있고.”
다행히 재촬영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찍혔다.
형은 촬영본을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내가 그만 좀 보라고 잔소리할 때까지.
* * *
보이그룹 함정의 음악 여행은 순조롭게 끝났다.
형은 첫 번째 촬영을 제외하곤 편안하게 일기 쓰듯 영상을 찍었다.
즉석에서 같이 노래 부르거나 춤추거나 장난치는 모습을 찍었는데 엉망진창인 영상도 많았다.
카메라를 멋대로 흔들기도 하고 춤추다가 뷰파인더 밖으로 뛰쳐나가니 잘 찍힐 리가 있나.
그래도 비싼 장비라 그런지 화질만큼은 선명했다.
음악 여행 이후 형은 매우 바빴다.
형은 ‘어떤 이름으로도’를 정식으로 녹음해서 음원 플랫폼에 발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더니 나를 끌고 녹음실에 갔다.
녹음실은 처음 가봤는데 장난감 같은 기계들이 많았다.
나중에 날 잡아서 놀러 와볼까.
형에게 준 악보엔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 반주가 들어가 있었는데, 전부 내 손으로 연주했다. 직접 작곡해서일까. 애착이 생긴 탓이었다.
첼로는 오래 쉬었던 탓에 두 번에 걸쳐 녹음을 끝냈는데 녹음실 엔지니어가 입을 딱 벌리며 가끔 세션 아르바이트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직 학생인 내게 알바 제의를?
순간 엔지니어의 실력이 의심스러워지긴 했지만, 결과물이 괜찮아서 넘어갔다.
완성본은 내 까다로운 기준에도 통과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형은 내 반응을 확인하더니 인맥을 전부 끌어모아 곡을 발매했다.
아이돌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유통사 직원에게 부탁했다는데 자세히는 모른다.
참고로 형은 받아들일 때까지 날 설득해서 저작권등록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야말로 미친 행동력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랜만에 본 형은 해쓱했다.
우리의 곡을 남기겠다는 다짐을 지키느라 기력을 소모한 걸까.
세끼 꼬박꼬박 챙기고 잠도 규칙적으로 자라고 잔소리를 만날 때마다 해도 듣지 않았다. 목표가 있으면 본능을 잊는 타입인 것 같았다.
그나마 이젠 다 끝나서 다행이다. 음원 등록 두 번 하면 사람 잡겠다.
음원사이트를 확인해보니 곡 정보는 이렇게 등록됐다.
【어떤 이름으로도】
【아티스트 : 현5 (함정)】
【작곡 : H21】
【작사 : H21】
본명 쓰기 싫다고 했더니 기어이 H21로 적었다. 자기 이름까지 바꿔놓고.
진지하게 아이돌 역할에 몰입하는 형 때문에 한참을 혼자서 웃었다.
어차피 나는 형에게 곡을 선물함으로써 모든 권리를 넘겼다. 애초에 돈을 벌려는 목적은 추호도 없었다.
형의 부탁을 들어주는 셈 치고 녹음했을 뿐이라 재밌었다는 감각만 남았다.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형이 미국으로 떠나는 날짜가 점점 가까워졌다.
여기서 형을 잡으면 안 되겠지…. 미래를 위해 간다는데 응원해줘야지. 재차 다짐했지만, 서운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지난 다섯 달이 즐거웠던 만큼 이별을 떠올리기가 더 힘들었다. 물론 외국에 간다고 해도 연락이 아예 끊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방학 때 내가 미국으로 놀러 가는 걸 허락하셨으니 그걸 위안 삼기로 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형이랑 더 놀아둬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연습실로 향했다.
요즘은 현오 형과 두세 시간씩만 볼 수 있었다. 음원 발매 때문에 스케줄이 꼬였다나.
빡빡한 일정 때문에 쉬지 못해선지 얼굴이 반쪽이 됐다.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특별히 보양식인 해신탕으로 골랐다.
부모님이랑 같이 방문했던 곳인데 비싼 가격엔 이유가 있었다.
형 기력보충 시켜줘야지.
띵동-
초인종을 눌렀지만 어쩐 일인지 반응이 없었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조용하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이라도 들었나? 길을 돌아오느라 알려준 시간보다 10분 늦긴 했는데 잠들긴 짧은 시간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는 가는데 음성사서함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전화도 안 받네…. 무슨 일 있나?
현관문을 시끄럽게 쾅쾅 두드려 본 후에 고민했다. 더 기다려볼까, 아니면 돌아가야 할까?
나는 형을 위해 준비한 해신탕을 물끄러미 보고 제3의 선택지를 골랐다. 안으로 쳐들어가 본다는.
머뭇거리다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맨날 옆에서 번호를 누르는 형을 보다가 외워버렸다. 형이 워낙 단순한 숫자로 등록해놔서 눈에 숫자가 콱 박혔다.
살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 있어?”
이거 무단침입인가? 혼나진 않겠지?
거실엔 없었다. 화장실에도 없었다.
부재중인가? 자리를 비웠다면 음식만 놓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연습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현오 형을.
너무 놀라서 한순간 몸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형!”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빨리 다가가 형을 흔들었다. 머리카락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형! 형! 정신 차려!”
아무리 흔들어도 형은 깨어나지 않았다. 단순한 기절이 아닌 것 같았다. 형을 업어보려 했지만, 의식을 잃은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냈다. 119에 전화가 연결되자 상담원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다.
“형이, 쓰러졌어요! 정신을 못 차려요.”
[바로 구급차 보내드리겠습니다.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여기, 여기가 어디냐면 그러니까 정확한 주소는 모르고 천, 천호2동 주민센터 쪽에 있는 세시영빌딩 1층이에요.”
[천호1동 어디 신지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아니요, 천호2동 주민센터 쪽 세시영빌딩 1층이요.”
당황해서 더듬거렸으니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나는 다시 또박또박 주소를 말했다.
그럼에도.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읏!”
지금만큼 내 성대가 원망스러운 순간이 없었다.
왜 못 알아들을 소리를 내는 거야! 형이 쓰러져서 119를 불러야 하는 급박한 상황인데!
터져 나오려는 울분이 삼키고 이를 악물었다. 한시라도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문자로 할게요.”
여러 번의 오타 끝에 무사히 주소를 119에 전달할 수 있었다. 형의 상태를 전달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문을 받았다.
구급대원이 금방 도착해서 형을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으로 이송했다.
손바닥에 가득한 땀을 바지에 문지르고 형의 손을 꼭 잡았다. 형의 손이 어쩐지 차갑게 느껴져서 가슴이 섬뜩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119 상담원의 조언대로 챙겨 온 형의 신분증을 내밀었다.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다 멈칫했다.
“이분은…. 바로 담당 선생님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미성년자시죠?”
“네.”
“미성년자는 보호자 자격이 안 돼서요. 혹시 환자분 가족에게 연락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럼 우선 처치부터 하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려볼게요.”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될 수도 없구나….
내가 형의 보호자가 되어줄 수 없는 거구나.
목 끝까지 차오른 울음을 삼키고 가족 톡방에 형이 쓰러졌으니 병원으로 와달라고 남겼다.
답장이 올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아빠는 바로 오신다고 했다. 엄마는 바쁘셔서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 듯했다.
형은 응급실에서 복잡한 기기가 있는 병실로 옮겨졌다.
침대 옆에 앉아 형 손을 잡고 있는데 의사가 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그는 몇 가지 수치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크게 뱉었다.
의사의 한숨 소리와 함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많이 안 좋아요?”
“유감스럽지만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탭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왜? 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형이 죽는다고 그렇게 말한 거야,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