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0
단 한 번도
마지막 일꾼 촬영분은 2회에 걸쳐 방영하기로 결정되었다. 테오라의 소식을 들은 직원분들이 함께 기뻐해 주셨다.
어쩌면 POT 엔터가 한 짓을 알아서 직원분들도 더 기뻐해 준 게 아닐까. 우리는 정석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낌새를 알아챘을 수도 있고. 연예계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니까 어딘가에서 듣게 됐을 수도 있고.
우리는 근심 걱정을 모르는 척 씩씩하게 축하는 받았다. 비록 느릴지라도 우리는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이원 씨, 어쩐 일이에요. 혼자 왔어요?”
“A&R팀에 볼일이 있어서요.”
“아, 맞다! 이원 씨 작곡가님이었죠. 각인 잘 듣고 있어요.”
감사 인사를 건넨 후에 직원분과 헤어져 A&R팀 사무실을 찾아 발을 옮겼다. 오늘은 특별한 스케줄이 잡히지 않은 토요일.
연습 후에 작업실에 가서 곡을 끄적거리다가 매니저 형에게 나를 찾는다는 얘기를 전달받고 혼자서 회사에 찾아왔다. 멤버들은 여전히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겠지.
A&R 팀 사무실을 금세 찾아내서 문을 열었다. 바쁘게 일하느라 누가 들어왔는지 보려고 눈동자조차 돌리지 않았다. 나는 팀장님 옆으로 가서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헤드폰을 끼고 있던 A&R 팀장님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발견했다.
“아이고. 이원 씨 불러놓고 맞이하지도 못했네요. 어서 와요.”
“안녕하셨어요.”
“그럼요. 이원 씨가 작곡한 타이틀도 그렇지만 수록곡도 평가가 좋아요. 다른 작곡가들도 이원 씨를 탐내는 눈치였어요.”
“저를 탐내요?”
“이원 씨가 단독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으니까 그치들 생각엔 어느 정도 회사에서 만졌다 쳐도 이원 씨가 기본적인 능력은 갖췄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제자처럼 두고 재능을 빼먹기 좋겠다고 탐내는 거고.”
미간을 찡그리며 A&R 팀장님이 말을 해석하려고 애썼다.
회사에서 만지다니. 내가 직접 작곡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는 건가….
게다가 제자로 삼아서 재능을 빼먹다니. 이게 진짜 연예계의 민낯일까?
“아 참! 내가 부른 이유도 말 안 했죠. 이런. 혹시 OST 만들어 볼 생각 없나 해서 불렀어요.”
“OST요?”
“나우혁 배우님 알죠?”
하눌 엔터의 기둥 중 하나인 배우였다. 30대 중반의 10살은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진 남자배우로,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이자 다작까지 하는 성실한 배우였다.
“압니다.”
“이번에 배우님이 새로 드라마 들어가는데 나우혁 배우님이 OST를 부르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나 배우님 노래도 잘하시는 편이거든요. 나 배우님도 흔쾌히 허락했는데 아직 부를 곡이 결정되진 않았어요. 우리는 정보를 일찍 얻어서 준비할 기간을 번 거죠.”
아무래도 여유롭게 곡을 준비할 수 있다면 유리해질 수밖에 없겠지.
“회사 소속 작곡가들한테 연락 돌렸는데 이원 씨도 생각나서 얘기해주려고 불렀어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내 목소리로, 우리 테오라의 목소리로 노래 부를 수는 없지만, 작곡가인 나에겐 좋은 기회였다. 내가 작곡한 곡이 드라마 OST로 채택될지는 미지수. 그래도 경험만으로도 도움이 될 터였다.
한층 나아진 실력으로 테오라의 다음 앨범을 위한 곡을 작곡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나 배우님이 들어갈 드라마 대본이랑 시놉시스예요. 대본이 초반까지만 나왔는데 어떤 분위긴지는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거예요. 남주인공의 테마곡을 만들면 돼요.”
새로운 도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만든 곡이 드라마에서 흘러나오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회사 안에서 읽은 다음 돌려주면 됩니다. 보안상의 문제니까 이해하죠?”
“네. 이해했습니다. 바로 읽고 돌려드릴게요.”
조용하게 앉아서 대본을 읽을만한 장소를 찾아 배회했다. 연습생 때 이용했던 곳을 제외하면 하눌 엔터 사옥을 잘 아는 편이 아니라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괜찮은 장소를 찾아냈다.
휴게실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찾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A&R팀 사무실 근처였다. 가까운 곳인데도 못 찾고 배회했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는 넓은 소파와 간단한 다과,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커피 머신이 있었다. 은은하게 나는 커피 향기를 맡으며 소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대본 맨 앞장에는 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팔락?
종이를 넘기며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장르를 간단히 말하자면 정통 로맨스. 어린 나이에 불같은 사랑을 한 고등학생 둘이 피치 못하게 헤어졌다가 10년 후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였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건조하게 살다가 첫사랑과 다시 마주치지만, 여자는 하루아침에 사라진 남자를 찾다가 일어난 사고로 인해 안면인식장애가 생겨 남자를 지나친다.
남자는 처절하게 매달리지만, 여자는 남자를 ‘첫사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매몰찬 반응에도 남자는 계속해서 여자 주위를 맴돌던 와중, 10년 전에는 없었던 그녀의 쌍둥이 동생들을 보게 되며 3화가 끝났다.
“이 쌍둥이한테 비밀이 있는 거겠지. 10년 전에는 없다가 생긴 동생들이면….”
드라마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쌍둥이의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막장의 냄새도 슬쩍 나는데 과하진 않았다. 배우의 연기력이 받쳐준다면 시청률은 잘 나올 것 같았다.
남자주인공의 테마곡이라면. 나를 돌아봐달라는 애원이 섞여야 할까? 절절한 후회를 담아야 할까?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섞어야 할 수도 있겠다.
시놉시스를 뒤늦게 보면서 노래에 담아야 할 이야기를 정리했다.
대략적인 드라마의 흐름은 머리에 넣었다. 작업은 더 고민해본 후에 시작하기로 했다.
연인 간의 사랑이 나에겐 동떨어진 이야기라 바로 감이 오진 않았다. 멤버들의 조언을 들으면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려나?
시계를 힐끔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대본을 챙겨서 휴게실을 나서려는 차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마주친 적 없는 직원 같았다.
비켜주려고 옆으로 물러섰는데 그 남자가 오히려 나에게 바짝 다가왔다. 나는 나가지 못한 채 닫히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게 누구야. 함이원?”
말투에서부터 시비 걸고 싶다는 욕망이 묻어났다. 그의 삼백안이 나를 못마땅하게 훑었다.
뻗었던 팔을 거두고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옷깃 사이로 스트랩이 보였으나 사원증은 보이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하! 나 누군지 몰라? 회사에서 밀어주니까 눈깔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
위협적으로 다가온 남자는 이를 드러내며 나를 쏘아봤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공격적인 시선을 받아야 했다.
“누구신진 모르지만, 반말은 삼가셨으면 합니다. 여긴 회사고 저도 엄연히 일하러 온 직원이니까요.”
“뭐? 이 맹랑한 것 보소. 아이돌 띄우겠다고 멤버 자작곡 밀어주는 것까진 이해하겠다, 이거야. 회사가 그동안 투자한 돈이 있는데 그만큼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어? 근데 회사를 등에 업고 타이틀곡을 꿰찬 놈이 양심도 없이 낯짝을 들고 다니면 안 되지.”
원색적인 비난.
이 직원은 내 곡이 불공정하게 앨범 타이틀 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심일까? 물을 것도 없었다. 이 남자의 눈엔 오로지 분노만이 가득했으니까.
“오해하시는 겁니다. 회사에서 제 곡을 밀어준 적도 없고, 익명으로 투표해서 정당하게 타이틀이 됐습니다.”
“그래? 그 결과가 이거야? 그 대단하신 작곡 실력으로 단번에 데뷔곡 타이틀을 따내셨으면 바로 차트 1위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지금….”
반박하려 했지만 그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아, 시간문제다 이거야? 글쎄. SEED는 너희보다 부족한 지원을 받고도 더 성적이 좋았는데 어쩌나. 테오라는 금방 나가리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누구 책임일까. 부족한 곡으로 덤빈 애송이 책임 아니겠냐.”
비난이 가슴에 비수같이 꽂혀 들었다. 내가 작곡한 곡이 모자라서 테오라에 피해를 준다는 비아냥. 날카로운 그 비아냥을 귀에 담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그렇지만 당하고만 있기는 싫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니고요? 전 제 곡 때문에 테오라가 망할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의견이 다르네요. 제 부족한 실력에 대해 꼬집고 싶은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희가 알아서 할 겁니다. 누군지 모를 그쪽이 이래라저래라할 일이 아니라요.”
누구보다 테오라의 성공을 바라는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뼈저리게 아픈 지적이다.
이 일방적인 비난이 사실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겉으론 타인이 왈가왈부할 문제 아님을 비꼬고 있지만 한 편으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곡이 아니라 다른 곡이 타이틀이 됐다면? 테오라의 인지도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가정이 머릿속에 한순간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혼자 걱정하지 말라는 멤버들의 격려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렸지만, 이미 한 적 있는 고민이었다.
남자의 지적은 아물고 있던 상처를 무자비하게 헤집어놓은 셈이었다.
“건방진 새끼. 본색이 슬슬 나오지? 어른들 앞에서 얌전한 척 내숭을 떨더니만.”
“건방 떤 적도, 내숭 떤 적도 없습니다. 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깨뜨린 건 휴게실로 들어온 새로운 사람이었다.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으로 보아 하눌 엔터의 직원 중 하나였다.
“문 앞에서 뭐 해요?”
휴게실 문으로 들어서던 여자 직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놀라면서 물었다. 날 선 대화를 나누던 나와 남자는 똑같이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나를 불쾌한 시선을 훑더니 한쪽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고는 휴게실을 나갔다. 내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리라 철석같이 믿는 듯했다.
“이원 씨. 무슨 일이에요? 안색이….”
“…아니에요.”
“아까 그 직원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없었어요. 아무 일도요.”
삼백안을 가진 그 남자의 추측은 일부 옳았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그분 누구신지 물어도 될까요.”
“누군지도 모르고 얘기하고 있었어요? A&R팀 소속 키바 작곡가님인데요. 아, 두 분 다 작곡하니까 이야기 나눌 거리가 있었겠네요. 테오라 멤버한테서 얻는 정보만큼 정확한 소스가 어디 있겠어요. 비록 이번엔 키바 작곡가님이 만든 곡이 테오라 앨범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다음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작곡가? 작곡가라고? 그제야 앞뒤 사정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됐다.
그 남자, 키바라는 작곡가는 테오라의 앨범에 자신이 만든 곡이 들어갈 것을 기대했고, 내 곡이 타이틀이 되고 수록곡의 한 자리를 차지하자 불만을 품었던 모양이다.
회사에서 내 곡을 밀어주지 않았다면 자기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거라 합리화했을까?
왜 다른 수록곡의 작곡가는 거론하지 않았지? 차마 거기까진 건드릴 수 없었을까. 다른 수록곡의 작곡가는 이름만으로도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분이라서?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했지? 어려서 만만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신인이라서?
불합리한 상황에 울분이 치솟아 주먹을 세게 쥐며 참았다. 그 남자의 망상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틀렸다는 증거를 머리에 똑똑히 새겨줄 테다.
나는 나 스스로가 물러터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