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1
어떻게 해줄까?
머리에 열이 올라 어떤 정신으로 연습실에 돌아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회사에서 그런 식으로 모욕을 퍼부을 수 있을까. 회사 소속 작곡가면, 이번 앨범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테오라와 엮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어리다고 아무런 항의도 못 하고 속으로만 곪아갈 거라 예상했나? 아니면 잡음이 생길 미래를 알고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내가 꼴 보기 싫었나?
이유가 뭐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준비는 해야 할 거다.
연습실에 들어와서도 아무런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멤버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원아. 회사에 가서 무슨 말 들었어? 표정이 왜 그래.”
“그러게. 안 좋은 소식이야? 우리한테 말해주기 힘들어? 같이 고민하면 안 될까.”
표 안 낸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다 들킨 모양이다. 초록 형과 서혼 형이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살폈다.
그렇지만 안 좋은 얘기를, 그것도 나 개인을 향한 모욕을 굳이 멤버들과 나누고 싶진 않았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전염력을 얕볼 수 없었다. 게다가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고.
“…A&R 팀장님이 OST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제안하셔서 그거 생각하고 있었어.”
“이원 형 잘됐다! OST라니! 우와아!”
“Original Sound Track? 이원, 영화 음악도 작곡해?”
“아니. 이번에 나우혁 배우님이 출연할 드라마 OST. 좋은 기회라 받아들였어. 내 곡이 뽑힐지 말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작곡가로서 커리어를 쌓을 귀중한 기회였다. 내 곡이 OST로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경험해본다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에이. 이원 형이 만든 곡이면 바로 OST 직행이지!”
“나도 동감.”
화기애애하게 축하를 건네는 박하와 지온과 달리, 나머지 세 명의 멤버는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초록 형과 서혼 형은 짧은 축하만 건넨 후 우리 셋, 그중에서도 나를 빤히 지켜봤다.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눈매가 접힌 정도, 입술의 각도까지 관찰하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오란은 아예 인상을 쓰고서 노려봤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의아함이 앞섰다. 그 의문은 오란이 짜증 난 표정으로 입을 열고 나서야 풀렸다.
“똑바로 말해. 함이원. 너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 마. 박하랑 제톤이 왜 받아주는지 알아? 네 의견을 존중해서야. 숨기는 게 없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넌 작곡 얘기를 그따위 표정으로 이를 갈면서 하냐?”
아차. 내가 이까지 갈았나? 말을 하지 않고 지내던 세월이 있어선지 언어 외적인 표현이 발달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의미였을까. 주의 깊게 들어뒀다가 표정 관리하는 연습 좀 할걸.
멤버들 그 누구도 오란의 말에 딴지를 걸지 않고 내게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다렸다.
진실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다섯 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추궁하기 시작하면 어차피 얼마 버티지도 못하겠지.
“이원이 너 우리 데뷔하기 전에 약속한 거 잊었어? 숙소 현관문에 떡하니 적혀있는데?”
“맞아! 문제가 생기면 재깍재깍 털어놓는다!”
오늘 회사 휴게실에서 있었던 사건은 나 혼자 감당할 계획이었는데. 저렇게 테오라의 규칙까지 들먹이면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비밀로 할 계획을 단념하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라마 OST 제안을 듣고 나서 대본을 읽으려고 휴게실에 갔었어. 다 읽고 나오려는데 어떤 남자 직원이 시비를 걸더라. 내 곡이 자격도 없는데 타이틀이 된 건 테오라를 ‘자체제작돌’로 띄우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별 볼일이 없는 곡이 타이틀이 됐으니 테오라가 SEED 선배님보다 못 뜬 거라고. 앞으로 테오라가 망하면 내 책임이라고….”
“뭐? 누가!”
멤버들이 일시에 똑같이 되물어서 울림이 생겨났다. 박하는 놀라서 일시 정지, 지온은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는 듯 귀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초록 형은 기가 막힌 지 뒷목을 잡았다.
“무슨 개소리를 듣고 온 거야. 그 새끼를 그냥 뒀어?”
필터 없이 거친 말투를 내뱉은 오란은 딱 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서혼 형은 혹시 상처 받지는 않았을까,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럼 어쩌겠어. 두들겨 패기라도 해? 데뷔하자마자 매장당하라고?”
“이 X발 새끼가. 우리가 아이돌이라 어쩌지 못할 줄 알고 이 지랄을 떤 거네? 이 새끼를 어떻게 조져야 하지?”
얌전하게 살려고 했는데 상황이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오란이 연신 머리를 쓸어올렸다. 여차하면 당장 대표실로 달려가기라도 할 태세였다.
서혼 형은 야생마처럼 날뛰는 오란을 진정시키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 설마 그 자식 말처럼 이원이 네 실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하는 건 아니지?”
“…아니야.”
“우리 테오라의 성공과 실패를 네 책임으로 여기는 건 오만이야. 우리 데뷔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갔는데. 안 그래?”
약간은 뜨끔했다. 잠깐이었지만 내가 부족해서 우리 그룹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았나 되돌아보긴 했으니까.
이젠 안다. 초록 형의 말처럼, 우리 테오라의 성패가 나 하나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문제가 내 탓이라는 생각은 자의식과잉이다.
“나도 절대 아니라고 했어. 근데 듣지도 않더라.”
“그 직원. 이름이. 뭐야.”
초록 형의 음산한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한 글자씩 끊어서 발음하는 탓에 그 안에 담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분노의 대상이 내가 됐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초록 형을 진심으로 화나게 하진 말자고 다짐했다.
“…키바라는 작곡가라는데.”
“각이 딱 나오네. 지가 함이원한테 밀리고서 열등감이 폭발했나 보지? 찌질한 새끼.”
“오란아. 말조심.”
“뭐 어때. 여긴 우리밖에 없는데. 여기서도 말 가릴 필욘 없잖아.”
초록 형도 더는 오란을 말리지 않았다. 리더니까 한 번 말려봤을 뿐 시원하게 쏟아내는 오란의 모습에 내심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Kiba? 키위바나나가 우리 메인보컬한테 시비를 걸어? 디스 랩 각인데. 어이없어서 가사 잘 나오겠어.”
빈말이 아니었는지 지온은 연습실 구석에 있는 짐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왔다. 그리고 열 받은 표정을 내보인 채 디스 랩 가사를 끄적거렸다. 계속 화를 내면서도 영감을 받는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괴짜 취급을 받는 이유가 바로 저기 있다.
“어떻게 해줄까? 난 당장 일러버리고 싶지만! 이원 형이 당사자니까 형이 원하는 대로 따를게.”
박하가 진지하게 물었다. 평소에 명랑하고 활기찬 태도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하는 박하지만 이런 문제에까지 가볍지는 않았다.
나머지 멤버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뭐라 하든 그 사람은 멋대로 해석하겠지. 회사에 알리더라도 지레 정곡을 찔려서 회사 힘을 빌렸다고 생각할 게 뻔해. 난 보여주고 싶어. 그 사람 말이 전부 틀렸다고 증명해내고 싶어.”
내 음악이, 우리의 음악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테오라는 단지 도약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음을. 우리의 힘만으로도 최고의 아이돌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사람들이 아직 이원이가 작곡한 곡을 듣지 못했을 뿐이야. 한 번 듣는다면 이원이 곡이 얼마나 좋은지 다들 느낄 거야. 난 타이틀이나 수록곡 전부 과분할 정도로 좋은 곡이라고 생각해.”
“동의.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 곡이야.”
초록 형과 지온의 과분한 칭찬에 귀가 간지러웠다.
“그걸 증명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 꼭 뜨자.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빵 떠버리자.”
“그래. 결과로 보여주자는 거지?”
서혼 형은 누구보다 내 내심을 바르게 읽어냈다. 실체 없는 말은 자기만의 아집에 갇힌 그 작곡가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테니.
테오라 멤버들 모두 내 뜻을 이해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오란이 끼어들었다.
“그럼 그 새끼는 그대로 놔두고? 우리 행동과 별개로 그놈이 함이원한테 함부로 지껄인 대가는 치르게 하고 싶은데. 나는.”
회사에 이번 일을 알려야만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키바 작곡가가 막말했다는 물증이 없었다. 증거도, 증인도 아무것도 없었다. 간단히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오란의 사고방식은 합리성에 근거했다. 이득이 있다면 하고, 아니라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이익 없는, 아니 오히려 회사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니.
“오란. 난 괜찮아.”
테오라가 연관된 이야기에는 당연히 화날 만했다. 오란도 테오라의 멤버니까. 그렇지만 그 작곡가는 막말을 쏟아낸 대상은 나 개인. 그러니 나 하나만의 문제였다.
“괜찮기는. 안 괜찮은 게 뻔히 보여. 난 속아주기 싫은데. 그리고 네가 괜찮아도 내 자존심이 안 괜찮아.”
오란은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는 데도 기어코 그 작곡가를 응징하겠다고 주장했다.
어째서?
“내 사람이 어디 가서 당하고 오는 건 못 참아. 욕해도 내가 욕해.”
모르는 새에 나도 오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 모양이다.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 오랜 시간을 함께한 후에야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란의 입에서 나온 ‘내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어울리지 않았다.
“오올~! 오란 형! 내 사람이라니! 멋있다! 우리 멤버들 전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지?”
“닥쳐. 박하준.”
호들갑 떠는 박하에게 한마디 던지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깨달을 수 있었다. 대외적인 모습과 달리 우리에게 보이는 솔직한 태도 자체가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임을.
나는 언제든 넘어올 수도, 넘어갈 수도 있는 낮은 문턱을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었구나.
인간관계에 서툴러서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게 너무 소극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멤버들한테도 마찬가지였겠지.
“우리 애기를 울렸으면 당연히 형아들이 복수해야지.”
“하아? 안 울었어. 홍오란.”
한숨을 내쉬자 다른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애기 소리는 언제까지 하려나.
“찬성.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며.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지렁이보다 못하다는 거잖아.”
그 속담이 그런 의미로 해석이 되나?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지온은 속담도 특이한 방향으로 해석해냈다.
지렁이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라도 꿈틀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처벌까지 가진 못해도 경고성으로라도 알려두는 편이 좋다고 봐.”
“초록이 말이 맞아.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어.”
서혼 형은 말을 마치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동의를 얻으려는 것처럼.
“알았어. 대신 우리가 피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적당히? 좋지. 우리나라에서 ‘적당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 명심하고.”
오란의 ‘적당히’가 어디까지일지 겁나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지고도 남을 끈기의 소유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