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2
알아서 처리할게
사건에 직접적으로 얽힌 당사자는 나인데도, 정작 그 후의 일은 나를 제외하고 흘러갔다. 오란은 날 보고 물러터졌다면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라고 했다.
물러터졌다니?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이다. 난 테오라의 입장을 고려해서 참았을 뿐인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고 말았다.
“초록 형이랑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란이 ‘처리’한다고 하니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뒤끝도 길어 보이는데.
초록 형이 잘 중재해주려나? 내게 초록 형은 만능해결사 같은 존재라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초록 형이 흑막이라면 당해낼 사람이 없겠지. 함께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지켜보기나 해.”
* * *
남초록과 홍오란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하눌 엔터 건물 안을 걸었다. 직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나눴지만, 그 직원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이 새끼를 어떻게 손 봐줘야 하나.”
“현실적으로 회사에서 손대긴 애매할걸.”
“나도 알아.”
최준현 매니저는 테오라의 얘기를 듣더니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했고, 그 결과 남초록과 홍오란이 테오라 대표로 직접 얘기하러 나선 상태였다.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없어서 사측에서도 당황하고 있었다. 남초록과 홍오란은 어떤 담당자가 나오든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어서 와요.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마주하게 돼서 유감입니다.”
남초록과 홍오란이 작은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대표 손중기가 둘을 맞이했다. 그 뒤로 경영관리 팀장에 A&R 팀장까지.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의 면면만 봐도 이번 일에 대해 회사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넌지시 느끼게 했다.
“우리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대책을 세우느라 답변이 늦었습니다.”
연예기획사의 일 처리가 체계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야 주워들어서 아는 바였다. 게다가 전례가 없던 일이라 회사에서도 누가 맡아야 할까 고심하다가 대표가 알게 된 탓에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인선이 마련되었다.
“함이원 씨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습니까?”
경영관리 팀장이 물었다. 이 자리를 주도해 이끄는 사람은 그가 될 예정이었다. 경영관리팀에서 인사에도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원이가 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저희가 대표로 왔습니다. 대신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듣고 왔으니 빠뜨리는 부분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략적으로 전해 듣긴 했지만, 공식적인 자리니 다시 말해주시죠.”
리더 남초록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냈다.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였으나 언변이 좋아선지 몰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대표와 기획실장, 경영관리 팀장은 푹 빠져서 남초록의 상황 설명을 경청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대표는 물론 경영관리 팀장도 침음을 흘렸다. 함이원이 거짓을 꾸며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여기서 문제를 삼아봤자 함이원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다. 무엇보다 키바 작곡가에게는 확실한 동기가 존재했다.
“이게 모두 진실이라면 우리 회사도 모욕했다고 봐야겠군요. 아이돌 그룹 하나 띄워보겠다고 우리가 편파적으로 함이원 씨 곡을 밀어줬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키바 작곡가가 우리 회사 소속이라는데 전 딱히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만. 그 작곡가 무슨 곡 썼답니까? 어이가 없으려니.”
경영관리 팀장은 코웃음을 치면서 키바 작곡가를 비웃었다. 자기 팀에 소속된 작곡가가 저지른 짓을 들은 A&R 팀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원이가 충격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앞으로 테오라 활동도 해야 하고 작곡도 해야 할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적 없었다. 하지만 홍오란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자고로 감성적인 부분을 자극해야 마음을 기울게 할 수 있었다. 타고나기를 귀엽게 태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홍오란이었기에 할 수 있는 전략적인 행동이었다.
“아이고…. 내가 이원 씨 곡 듣자마자 이건 되는 곡이다 생각했는데, 그런 곡을 만들 수 있는 작곡가한테 우리 팀 소속 작곡가가…. 제정신인가?”
A&R 팀장은 한탄하다 못해 아예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얘기한 장소가 휴게실이라 CCTV도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방음이 잘 돼서 나중에 들어왔던 직원이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점도.
“냉정하게 판단하면, 물증도 없이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그쪽에서도 자기가 모함받는다고 주장하면 대처할 수가 없으니까요. 두 분도 그 점은 아시겠죠.”
“네. 압니다.”
“…네.”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직원 교육은 물론 그 작곡가의 동태도 자세히 살피도록 하죠. 다시 이런 짓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증거를 찾아서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티스트의 인성에는 그토록 까다로웠으면서 직원 인성에는 신경 쓰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매니저 시절만 생각해서 아티스트의 입장까지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대표에게서 직접 사과까지 받아냈으니 다음에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반복된다면 확실하게 처벌될 것이다. 대표의 사과는 절대 가벼울 수 없다.
“저도 팀 내에서 예의 주시하겠습니다. 이원 씨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대화가 끝나고 직원 관리를 잘못해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A&R 팀장은 인사를 남긴 후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대표와 경영관리 팀장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서로 눈짓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두 분이 모인 김에 다른 사안도 꺼내 볼까 합니다. 어쩌다 제가 이런 업무까지 맡게 됐나 싶은데, POT 엔터의 개입 문젭니다.”
테오라의 명운이 달린 일에 테오라의 두 멤버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서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표님도 같은 의견이셨고요. 후우?”
경영관리 팀장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가볍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말씀해주세요. 저희 일이니까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POT 엔터 대표도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 정도였던 듯싶습니다. 우리 하눌 엔터가 그래도 아이돌을 두 팀이나 런칭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으니 경계할 만도 하죠. 아이돌도 파이를 누가 먹느냐 싸움이고 POT 엔터 대표는 3대 엔터의 선두가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살펴보니 우리 신인 아이돌 멤버에 함이원 씨가 있는 겁니다.”
“이원이요?”
“들은 적 없습니까? 함이원 씨가 하눌 엔터에 오기 전에 POT 엔터 오디션에 합격했었다는 이야기.”
“POT 엔터 오디션에요? 그런데 하눌 엔터에…?”
남초록과 홍오란은 눈을 크게 떴다. POT 엔터와 하눌 엔터를 비교하면, POT 엔터의 압승. POT 엔터 소속의 연습생이라는 지위만으로도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
둘이 봤을 때도 함이원의 얼굴은 POT에서 선호하는 얼굴상이었다. 세련되게 예쁜 미소년. 게다가 외모를 제외하고서도 노래 실력이며 작곡 실력까지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POT에서 원하는 완성형 아이돌이 곧 함이원. 코앞에서 아깝게 놓친 함이원이 다른 소속사에 들어가 아이돌로 데뷔했다면?
보통은 아쉬워하는 데에서 멈췄을 것이다. 문제는 POT 엔터 대표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대외적인 모습과 달리 POT 엔터 대표는 상당히 쪼잔한 인물입니다. 누군가에게 지는 것도 빼앗기는 것도 무척 싫어하죠. 자기가 당한 일은 두고두고 기억해둡니다. 앙심을 품었대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연예계엔 이상한 사람들 천지라서 능력만 뛰어난 또라이가 한 회사의 대표로 앉아있기도 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하눌 엔터는 모범 사례에 속했다.
“게다가….”
“게다가요? 그것 말고도 엮인 부분이 또 있나요?”
“거기 직원 말이, 테오라 멤버가 된 여러분이 POT 엔터를 우습게 봤다는 둥, 망할 거라고 악담을 했다는 둥 소문이 돌았다고 하네요.”
“네? 그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초록과 홍오란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연예계에선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너무 맥락 없는 소문이었다.
테오라 멤버들이 같은 업계에 있는, 게다가 대형 기획사이기까지 한 POT 엔터를 우습게 보거나 욕할 리가 없었다.
“정말로 믿는다고요? 그런 헛소문을요?”
다들 멍청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믿었다고 생각해보려 해도 홍오란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기였다면 대번 코웃음으로 넘겨버렸을 테니까.
“데뷔조 발표 후에 나간 연습생 중에 POT 엔터에 들어간 연습생이 있습니다. 실력이 받쳐줬으니 POT 엔터에 들어간 건 놀랍지 않더군요. 소문의 근거지까지 찾을 순 없었지만, 그 연습생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소문이 돌았다네요. 확실한 출처가 있다면, 실제 경험담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신빙성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연습생이 저희를 의도적으로 음해했다는 거네요.”
“…정황상 그렇게 보입니다.”
“그 얘기까지 대표 귀에 들어갔다 치면, 대표가 어떻게 나올지도 빤하고요.”
속이 좁다는 POT 엔터 대표가 자기 회사를 욕하는 테오라를 곱게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러 악의가 뒤섞인 결과가 현재 상황이었다.
“POT 대표의 표적은 하눌 엔터가 아니라 테오라겠네요.”
테오라가 하눌 엔터에 속해있으니 회사도 영향을 받기야 하겠지만, 어디에 집중적으로 공격이 들어오는지 알면 대처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 과한 압력까지는 행사하지 않을 거라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 예전에야 마구잡이로 영향력을 휘둘러도 아는 사람만 알고 쉬쉬할 뿐이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도 쉽게 연예계 소식을 접하니까요.”
“그 점은 그나마 다행이네요.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보여서.”
회의실에는 긴 정적이 흘렀다.
골치 아픈 문제를 맞닥뜨린 대표 손중기, 이번 사건을 조사하며 질척거리는 악의를 봐야 했던 경영관리 팀장, 어떻게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남초록과 홍오란. 모두 쉬이 입술을 떼지 못했다.
“알려주세요. 소문을 냈다고 추측되는 그 연습생. 이름이 뭔가요.”
“증거가 없어서 함부로 언급하긴….”
“실력 있다면서요? 그럼 언젠가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때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까요. 그런 음흉한 인간이라면.”
홍오란의 발언엔 일리가 있었다. 똑 부러지는 두 멤버라면, 정황에 불과할 뿐임을 고려해서 대응할 거라 믿었다. 경영관리 팀장은 대표의 의사를 눈으로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구대명입니다.”
“…구대명?”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홍오란은 놀람을 보이지 않았다. 주름이 지려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기만 했다.
남초록은 이름을 듣자마자 눈을 가늘게 접었다. 분명히 눈은 웃고 있는데도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제가 더 알아보는 건 상관없죠?”
경영관리 팀장은 남초록이 얽혔던 과거의 연습생 퇴출 사건을 떠올리며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남초록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어도, 다른 학생을 임신시켰던 그 연습생은 떠밀리듯 계약 해지를 했고 다신 이 업계로 돌아올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테오라에게 직접 피해를 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