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3
떡밥이 부족해
며칠 사이에 여러 사건이 쏟아졌지만, 테오라 멤버들은 꿋꿋하게 연습에 매진했다. 평소에도 멤버들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주변의 상황이 멤버들을 괴롭혀도 할 일은 하면서 고민하자는 주의였다.
다만 간간이 집중력이 흔들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망하길 바라는 놈들 뜻대로는 절대 안 되지.”
“고럼고럼! 근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데뷔 전부터 미리 잡혔던 스케줄은 이미 모두 끝난 상태.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지방 축제나 박람회 같은 행사나 소규모 이벤트는 잡을 수 있겠다.”
유명하지 않은 신생 아이돌에겐 스케줄 하나도 감지덕지였다.
매니저 형의 말에 따르면 이런 일정이나마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인지도를 차근차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카메오 출연은 어때?”
“카메오? 완전 좋지!”
방송가에 인맥을 넓게 퍼뜨려 놓은 초록 형이 카메오 출연에 대해 언급한다면, 그건 스케줄을 가져올 자신이 있다는 뜻. 박하는 반색하며 드라마인지 영화인지부터 물었다.
“아마 영화? 전부 출연할 순 없고 두 명 정도라면 어떻게 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 중에 연기 멤버인 서혼 형하고…. 으음. 누가 가야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올 수 있을까? 테오라를 알릴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박하는 자신의 이름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가 테오라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므로.
신인 아이돌은 개인 인지도를 높이기보단 그룹의 인지도 상승에 중점을 둬야 한다.
개인 멤버 하나의 인지도가 월등히 높아지게 되면 그룹의 균형이 깨질 위험도 같이 가져가야 했다.
한 명만 주목받으면 질투의 대상이 되거나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 물론 우리 멤버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예능이면 오란을 추천하겠는데, 연기라면 좀 고민되네.”
연기력은 서혼 형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하게 괜찮았다. 카메오라 화면상에 짧게 등장하게 될 텐데 거기서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멤버를 선택해야 했다.
“박하나 이원이 둘 중 하나가 좋겠는데.”
무슨 기준인진 모르지만, 초록 형은 나와 박하를 추천했다.
“둘이 느낌이 다르니까 어떤 장르에 어떤 역할인지 보고 결정할까?”
“하긴. 서혼 형 말처럼 배역이랑 얼마나 싱크로율이 높은지도 중요하니까.”
아무런 불만 없이 초록 형과 서혼 형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 * *
회사에 다녀온 후, 오란과 초록 형은 내게 잘 해결됐다는 얘기만을 남겼었다.
멤버들이 모인 자리에서 POT 엔터와 관련된 주제를 꺼내긴 했다. 아주 간략한 요약본으로.
POT 엔터의 대표가 테오라를 못마땅해하고 있고, 압력의 수준은 강하지 않을 거란 추측성 정보가 전부였다.
회사에서 조사했는데도 겉핥기로 끝났다고? 그럴 리가.
둘이 관계자에게 들은 정보가 더 있는데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초록 형과 오란이 정보를 감춘다면 그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나머지 멤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회사 차원의 문제였다면 말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추잡한 이야기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이 문제에 내가 얽혀있는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중에 POT 엔터와 잠시라도 엮인 사람은 나뿐이니까.
만약 내가 빌미를 제공했다면. 그래서 테오라에게 피해를 준 거라면.
과거로 다시 돌아간대도 POT 엔터 연습생으로 들어가진 않겠지. 하지만 멤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선을 다해 이 고비를 넘기는 게 전부. 불평 따위를 늘어놓을 시간도 부족했다.
“누가 카메오로 가게 되든 반드시 씬스틸러가 돼서 돌아와야 해.”
씬스틸러. 오래 연기해온 배우에게도 쉽지 않았다. 연기력이나 존재감으로 주·조연을 잡아먹으려면 보통의 연기 내공 가지고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씬스틸러로 언급된 배우분들 연기 장면이라도 참고 자료로 모아볼게.”
서혼 형은 자신의 연기 실력을 치켜세우는 멤버들 때문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성심성의껏 카메오 출연 준비를 도우려 했다.
앞으로 나서는 타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서혼 형을 일견 존재감이 흐리다고도 했다. 하지만 테오라에게 서혼 형은 햇볕이었다. 무색무취하지만, 우리를 다정하게 감싸 안는.
“연기 선생님한테 개인 레슨 더 받아야겠다. 우리 전부.”
뮤직비디오를 찍고 나서는 연기 레슨을 쉬고 있었다. 아직 활동 초반이라서 무대에 집중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 브라운관이나 TV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연기 연습해두는 편이 나았다.
“인지도만 높일 목적으로 고정관념을 버리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돈만 안 따져도 우리 부르고 싶어 할 관계자들 있을걸.”
투자하는 셈 치고 출연료 없이 나가서 얼굴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다면 테오라에겐 이득이라는 게 초록 형의 관점이었다. 일종의 무료 체험이랄까.
“For example?”
“예를 들자면 ‘마지막 일꾼’처럼 아이돌이 나오지 않는 다큐에 가까운 장르라던가. 독립영화? 아니면 시청 연령층이 높은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유명 유튜버가 진행하는 개인 방송 정도?”
“오오오!”
실현 가능성 있는 대안이었다. 섭외가 될지 아닐지는 제쳐두고 도전 자체에도 의미가 있었다.
신선한 얼굴을 찾는 작가의 눈에 들 수도 있고, 우리의 절실함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문득 전에 봤던 관찰 예능에 나왔던 매니저의 행동이 떠올랐다.
“우리가 직접 홍보하러 나서면 어떨까?”
그 매니저는 자기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해 발로 뛰어서 프로필 책자를 나눠줬고, 섭외를 따냈다.
요즘엔 이런 식의 영업이 드물어선지 관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촬영 중이었다는 이점이 한몫했겠지만.
만약 우리 테오라가 나서서 출연하고 싶다고 들이대면 어떨까.
“부담스러워하실까?”
초록 형은 머릿속으로 진지하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듯했다. 엄지로 아랫입술을 건드리는 동안 얌전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급할 때라면 적어도 한번은 우리를 떠올리지 않을까? 우리처럼 적극적인 아이돌은 보기 힘들 테니까.”
“출연 구걸하면 불쌍해서라도 시선은 던져주겠네. 적선은 안 해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오란의 첨언도 거슬리지 않았다. 불쌍해서라도 우리의 출연을 검토해주기만 한다면 뭐라도 이용할 수 있었다.
“오란아….”
“뭐. 우리 그룹에서 내 말투에 상처받을 사람은 형뿐이야. 서혼 형.”
“…정말?”
“정말. 그렇게 섬세해서 어쩌려고 그러냐. 울보 형은 우리 그룹 멤버라 다행인 줄 알아.”
내 의견에 말을 얹은 오란은 바로 서혼 형과 둘만의 대화에 빠졌다. 멤버가 여럿이다 보니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얘기하다가도 화제가 이리저리 튀었다.
예측 불가로 바뀌는 화제를 정리하는 역할은 리더 초록 형이 맡았다.
“다들 주목. 혹시 반응이 별로면 그때 가서 그만둬도 되니까 우선 이원이 의견대로 시도는 해보자. 이의 있는 사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노래나 춤을 보여주기가 힘들다는 점이겠지. 잘못하면 예능인 이미지가 박힐 테니까. 아이돌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음악 관련 방송도 병행해서 나가는 편이 좋은데.”
“그쪽에도 함이원 의견대로 해보면?”
“음악 방송 PD님께도 우리가 가서 매달려보자고?”
“어. 못할 건 뭔데?”
우리가 찬밥 더운밥 따질 처지는 아니었다. 오란 말대로 테오라가 이대로 심해로 가라앉지 않으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봐야 했다.
“무조건 출연을 부탁하기보단 스케줄 펑크 나거나 해서 급히 땜빵이 필요하면 우리가 언제든 달려가겠다고 하면 어때. 다급한 순간의 선택지가 된다면?”
급박한 순간을 노리자는 게 오란의 아이디어였다.
“그런 상황이면 POT 엔터고 뭐고 따질 때가 아니지.”
POT 엔터가 방송국에 뻗은 음흉한 손길이 강하지 않아서 우리가 꼼수를 쓸 여지를 줬다. POT 엔터에서 본격적으로 테오라를 잘라내려고 했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했을 테니.
“좋아. 그럼 내일부터 달려보자. 매니저 형한테 미리 전달해둘게.”
“나! 나! 말하고 싶은 거 있어!”
조용히 회의 결과를 수긍하던 박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케줄도 스케줄인데 대중에게 노출 빈도를 높이려면 SNS야!”
최근엔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였다. 짧은 단문이나 사진, 동영상까지 빠르게 퍼지는 그 전파력은 어마어마했다. 현재 테오라는 공식적인 계정으로만 소통하고 있었다.
“공식 계정에 우리 사진이나 동영상 올라오긴 하는데 부족해! 내가 여기저기 살펴봤는데 테오라 떡밥 부족이래!”
떡밥. 원래는 붕어 같은 물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라는 뜻.
그러나 아이돌의 세계에서 떡밥이란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아이돌의 컨텐츠를 의미했다. 셀카나 뉴튜브 같은 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돌의 모든 기록을 망라했다.
“으음. 나도 그런 댓글 보긴 했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네. 우리 소속사 선배님들은 개인 SNS 활동에 소극적이기도 하고.”
박하가 초록 형에게 휴대폰을 빌려 가서 만지작거리더니 팬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팬들의 동향을 살피는 역할은 초록 형이 전담하겠다고 해서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초록 형은 우리가 악플에 상처받는 걸 경계해서 검열한 후에 보여주겠다고 했었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박하는 팬들의 반응을 살금살금 살폈나 보다. 참고로 비브라늄 멘탈의 소유자 오란은 자기한텐 검열이 필요 없다면서 걷어찼다.
“SNS나 뉴튜브 좋지.”
“아예 떡밥 폭탄 투척해버리면 어때? 우리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낄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한 상 푸짐하게 차려보는 거야!”
이게 바로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준비해봤어.’ 작전인가? 이런 이유로 다인원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지기도 하니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뉴튜브는 준비가 필요하니까 천천히 진행하고…. SNS는 매니저 형한테 잘 말하면 개인 계정 만들어서 우리가 관리할 수 있을지도?”
“셀카! 사진이라도 잔뜩 찍어서 올리자!”
멤버들은 셀카 촬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까지는 셀카야 잠깐 찍고 넘어갈 줄 알았다.
테오라 데뷔 후에는 누가 찍어주기만 했지, 셀카는 첫 촬영이었다. 감성 넘치는 배경을 찾아야 한다는 박하의 주장에 테오라 멤버들은 야외로 나가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매니저 형은 우리를 데리고 숙소로 이동했다.
액션캠은 왜 챙겼지…?
박하와 초록 형의 무한 지적을 들으며 옷을 갈아입은 후, 차를 타고 한참 달려 멈춘 곳은 한적한 카페.
외곽이라 연습실과 거리는 꽤 있지만, 정원이 예뻐서 고른 카페였다. 매니저 형이 전에 맡았던 가수 선배님이 오던 곳이란다.
이게 뭐라고 스태프까지 출동했다. 며칠 동안 스케줄이 없었던 탓인지 스타일리스트님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님도 혈색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응! 해야 해!”
지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싹둑 자르면서 박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자유분방한 래퍼 지온에겐 셀카 한 장 찍겠다고 오만 난리를 치는 건 ‘멋’ 없게 느껴질지도. 그래도 테오라인 이상 동참해야 했다.
“먼저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잘생긴 사람은 셀카에 간절함이 묻어나지 않는다던 말은 다 거짓말이었나 보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나올까. 박하의 외모에 간절함까지 더해지면?
그날, 테오라 멤버들은 엄하고 깐깐한 셀카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