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54
셀카 강의
“그 각도가 아니얏!”
박하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외쳤다. 지온은 큰 소리에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팔을 쭉 내밀어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비췄다.
아기자기한 정원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하얀 눈으로 덮인 덕인지 적당한 햇빛 덕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화사한 사진이 나온다고 박하가 환호했다. 셀카 찍으라고 하늘이 정해준 날이라면서.
“그렇게 절실함이 없어서 어떡해? 모태 미남인 나도 노력하는데 그걸로 괜찮겠어? 지온 형!”
“괜찮은데.”
“아니! 괜찮지 않아! 팬들은 단순히 우리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서 셀카를 원하는 게 아니야! 우리의 미모에 감탄하고 싶어서 원한다고! 한가지 표정만 짓지 말고~.”
한껏 흥분한 박하가 열변을 토해냈다. 지온은 의식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며 주춤거렸다.
박하에게 셀카란 어떤 의미일까….
열정적인 코칭에도 지온의 셀카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은 박하가 백기를 들고 사진을 대신 찍어주기로 합의를 봤다.
초록 형은 숨은 셀카 고수였다. 친구들과 셀카 찍을 기회가 자주 있어서 저절로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그보단 초록 형이 센스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만.
오란은 노력형 셀카 능력자라고 박하가 증언했다. 철저한 분석과 연습을 통해 셀카의 질을 높였다나.
왜 다른 멤버들이 오란을 노력가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스타일이었다.
지온은 사진을 잘 안 찍어서 적응을 못 했고, 서혼 형은 초점이 흔들리든 말든, 각도가 이상하든 말든 그냥 찍고 봤다. 결과물은 당연히 괴상했다.
“서혼 형…. 아무리 그래도 얼굴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하잖아.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아보겠다.”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아무리 팔을 이리저리 꼬아봐도 결과물은 처참했다. 심령사진이 절반, 신체 일부가 잘린 사진이 절반이었다.
“그래. 서혼 형은 애썼지. 잘했어. 더 바라지 않을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셀카를 보면서 박하는 포기를 배웠다.
그리고 나는….
“난 이원 형이 이럴 줄 몰랐어. 실망이야.”
내가 찍은 사진은 한 마디로 밋밋했다. 증명사진 스타일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이게 실망까지 할 일인가?
누가 찍어주기만 했지 내가 셀카를 찍을 일이 없어서 서툰 건 어쩔 수 없었다.
“인정해. 이원 형이라면 절실함이 없어도 이 험난한 미디어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니라 이목구비 하나하나 뜯어봐도 전부 잘생긴 셀카 초고수 박하에게서 들은 말이라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박하 같은 비주얼을 갖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셀카를 찍는다는데 나는….
“미안. 내가 너무 건방졌어. 차근차근 다시 알려줄래?”
가르침을 청하자 박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순간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며 피부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브라운 톤으로 한 듯 안 한 듯 살짝 메이크업이 된 상태라 차마 눈을 비비진 못했지만, 착각이라고 보기엔 분명한 변화였다.
“역시 이원 형은 달라. 이런 적극적인 자세 얼마나 좋아? 처음엔 부족하겠지만 차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팬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워하겠어?”
감격스러워하기까지 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박하의 적극적인 기세에 밀려 엉겁결에 동의하고 말았다.
우리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많은 분이 기뻐해 준다면 해볼 만했다.
“사실 기본 바탕이 갖춰져 있으면 어느 각도든 평균 이상의 결과물은 얻을 수 있어. 나우혁 배우님 봐. 대표적인 셀카 하수지만 그렇게 찍어도 잘생기셨잖아. 그래도 잘 찍은 사진과 못 찍은 사진은 확연하게 구분돼.”
어떤 각도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어도 이목구비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빛과 조명, 비율에 따라서도 사진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달라졌다.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진 사진이 올라온다면, 팬들은 저장해 놓고 두고두고 감상하고 싶을걸? 잘 들어봐.”
박하는 찬찬히 셀카 잘 찍는 비결을 풀었다. 보통 셀카를 찍을 때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각도가 좋다고 했다. 그래야 눈이 커 보일 뿐만 아니라 콧대의 높이라던가 갸름한 턱선을 강조할 수 있다고.
살짝 움직여가면서 최상의 각도를 찾아야 하는데 기준은 내가 가진 강점이 잘 드러나냐 마느냐였다.
“어디가 형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높은 콧대를 자랑하고 싶다면 정면보단 코의 라인이 잘 보이는 비스듬한 각도가 유리한 것처럼 적합한 각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셀카의 세계는 심오했다.
“따로 강좌 열어야겠어. 1강으로는 모자라.”
거들먹거리며 고개를 저은 박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투덜댔다. 그러면서 일단 이번엔 자기가 셀카처럼 찍어주겠다며 나섰다.
그렇게 장소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내내 박하는 은근히 신경질을 냈다.
“이러니 절실함이 부족하지. 아무렇게나 찍어도 인생샷이면 어떡해? 어휴! 못난 구석이 없잖아! 테오라 비주얼 멤버로서 위기감 느껴져!”
위기감이라니….
제 외모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박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칭찬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 칭찬으로 받아들여지는 법이었다. 저런 과장된 표현은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한편으론 박하가 얼마나 사진을 잘 찍었으면 이런 소리를 할까 싶어 궁금증도 생겼다.
“그렇게 잘 나왔어?”
“이 몸은 셀카 초고수야! 셀카 천재가 노력까지 하는데 어떻겠어! 훗!”
쇼핑몰 모델로 활동하면서 피팅했던 의상이나 신발, 액세서리 대부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옷을 살 일이 없었단다.
그 대가로 착용한 상품이 잘 보이게 셀카를 잔뜩 찍었다고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활동했으니 셀카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볼래?”
자신만만하게 내민 휴대폰을 받았다. 다른 멤버들도 궁금한지 슬슬 모여들었다. 박하가 원래 자신감은 넘치지만, 이렇게까지 콧대를 높이는 사항은 외모 외엔 없었던 탓에.
“왔. 이거 뭐냐.”
카메라를 든 매니저 형 때문에 비즈니스 모드에 들어갔던 오란은 잠깐 촬영 중이란 사실을 잊고 입술 사이로 새는 된 발음을 간신히 막아냈다.
“괜히 인생샷이라고 떠든 게 아니었어. 이원이 진짜 잘 나왔다.”
서혼 형은 순수하게 사진이 예쁘게 나온 것을 감탄해줬다.
“원래 이원이가 분위기 미인이긴 한데 우와. 장난 아니다. 눈 배경으로 찍어서 그런지 얼음 왕자님인데?”
또다시 나온 ‘왕자’ 발언에 진절머리가 났다.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꼬박꼬박 입 밖에 냈다. 이럴 때 보면 초록 형은 은근히 능글맞았다.
“같은 사람, 인데…. ah, 박하 셀피 강의 언제야?”
인생 사진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지온은 셀카 강의의 필요성을 깨달은 듯했다. 쏟아지는 감탄 세례에 박하의 태도가 거만해졌다.
“음하하핫!”
미묘하게 턱과 목의 각도가 커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턱을 치켜든 것 같았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만한 사진 촬영 실력이기도 했고.
“강의 계획서를 만들어야 하나~.”
박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매니저 형을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좋다고 해도 눈 내린 후라서 추웠던 터라 얼른 따라 들어갔다.
안에서 보니 다들 추위 때문에 코나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따듯한 모카 라떼가 든 유리잔을 두 손으로 잡고 있으니 손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느라 신경 못 썼지만, 손이 시렸던 모양이다.
오란과 지온, 서혼 형은 홀짝홀짝 각자 시킨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초록 형과 박하는 바짝 붙어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둘이 뭐해?”
“셀카를 찍었으면 올려야지.”
찍고 바로 올리는 거였구나. 원래 SNS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 올리는지도 몰랐다.
“사진 골라서 보정하고 올릴 거야. 셀카가 있으니까 글은 짧게 쓰려고.”
셀카는 박하 담당이고, 짧은 문구나 해시태그는 초록 형 담당이었다. 리더인 초록 형은 SNS 확인하는 역할도 맡았다.
우리가 그렇듯이 회사 측에서는 초록 형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말실수나 사고를 억제하는 파수꾼으로 여기는 듯했다.
“뭐라고 쓸까?”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멤버들 모두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 지온이 손가락 스냅을 했다. 딱 소리에 시선이 집중됐다.
“테오라의 셀피 고수 vs 셀피 하수 어때.”
박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김미소는 어릴 적부터 잘생긴 사람만 좋아한 모태 얼빠였다. 그래서 연예인들에게 항상 관심이 많았다.
잘난 얼굴들만 모인 세계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외모만으로도 금세 홀리곤 했는데 그건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고에 입학하고 1년 후, 김미소는 취향에 직격하는 얼굴을 발견했다. 한 학년 아래의 후배는 입학하자마자 전교생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미모 하나로.
애가 끓어서 어떻게든 친해져 보려고 주위를 얼쩡거리는 애들이 수두룩했다.
김미소는 그 무리에 끼지 않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그녀는 미남미녀의 얼굴에 순수하게 찬미할 뿐, 미모의 소유자와 반드시 가까워지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볼 때에 더욱 아름다운 예술품도 있으니까.
몇 달이 지나자 잔뜩 달라붙던 애들도 후배의 무심한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말을 걸고 싶어서 인사를 해봐도 고개만 꾸벅 숙일 뿐 어떤 목소리도 듣지 못했으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겠지.
김미소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 후배의 빛이 나는 얼굴뿐만 아니라 우아한 자세, 오묘한 분위기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으니까.
전공도 다르고 학년도 달라서 연습실이나 복도에서 가끔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잠깐의 마주침은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기력회복제였다.
몇 달은 행복할 수 있었다. 꼭 집어 말할 순 없어도 후배의 분위기가 밝아져서 덩달아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돌이라니….”
그 후배가 아이돌 연습생이었고, 데뷔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는 뒤늦게야 퍼졌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우리 반에 와서 남초록을 찾으며 처음 목소리를 냈을 때보단 덜 했지만.
어쩐지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 데엔 원인이 있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바이올린 연습에도 소홀했던 모양이다.
“아이돌이면 얼굴은 실컷 관찰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들을 수 있겠네.”
화면 속에 있는 연예인은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부담스러워하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
게다가 다양하고 예쁜 옷을 입고 메이크업까지 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미소는 기뻐했다.
데뷔 준비하는 기간만 참아내면, 모공까지 보이는 고화질 화면으로 인어왕자님, 아니 인어왕자의 얼굴을 찬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내의 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 삶의 낙이 사라지자 학교 다닐 재미가 나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심미안은 취향을 저격하는 얼굴을 본 후 더 까다로워졌다. 흔히 잘생겼다고 평가받는 외모로는 더 이상 만족이 되지 않았다.
시들시들하게 교내를 배회하던 김미소를 보다 못한 친구가 티켓을 내밀었다.
“걔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에서 여는 데뷔조 평가 무대 초대권이야. 남자 연습생들 나온다니까 걔도 나올걸?”
감격에 차 말을 잇지도 못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기겁하면서 떨어지려 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친구에게 달려들었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우리 평생 친구하자! 평친평친!”
친구는 진절머리를 쳤다. 그 모습에 더 치근덕대고 싶은 충동이 솟는 걸 보면, 적어도 절친이라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