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61
기대 이상의 결과
지긋지긋한 한주가 끝나는 날. 일주일의 피로가 몰려와서 등굣길의 학생들은 좀비가 되어 있었다. 비슷비슷한 좀비 떼 사이에서 친구를 간신히 발견하고 툭 쳤다.
“야. 깨어 있는 거야?”
“왔어? 새벽까지 웹드 정주행 달렸더니 졸려 죽겠다….”
봉두난발을 한 채 기계적으로 걷고 있던 친구는 잠이 안 깼는지 웅얼거렸다.
“그럼 어제 안 봤겠네?”
TV를 끄기 전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 색다른 게스트가 나와서 신규 예능으로 착각했지만, 아니었다.
예전에도 재방송으로 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백색 소음으로 켜 놓고 딴짓만 잔뜩했다.
감동적인 장면도 가끔 끼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밋밋한 다큐였다. 매 편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취준생이 나와서 나중 일인데도 괜히 대리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당연히 안 봤지. 그거 노잼이잖아.”
“어제 존잼이었음. 일반인 아니고 남돌 나왔는데, 신인이라 그런지 풋풋하더라~. 귀엽고.”
자기들도 아이돌 인사법이 부끄러우면서 안 그런 척 시치미 떼는 모습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게스트가 아이돌이었다고? 이름이 뭔데?”
“테우라? 테오라? 그런 이름이었는데 하나같이 재밌더라고. 특히 얼굴이.”
“뭐? 처음부터 그걸 강조했어야지.”
친구는 최애가 음주 운전하고 뺑소니를 치는 바람에 정이 뚝 떨어져서 탈덕한 상황.
‘내가 이런 반응 나올 줄 알았지.’
친구는 아이돌, 그중에서도 신인 아이돌에게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신인의 열정은 응원하는 사람한테까지 전파된다면서.
“내용 자체도 재밌긴 했어. 리액션 부자에 반응도 개성적이더라. 시청률 꽤 올랐을걸?”
휴대폰으로 시청률을 확인해보니 1~2% 사이를 오가던 시청률이 어제 하루만 4%까지 치솟아 있었다.
“예능이긴 한데 다큐에 가까워서 예고편으로 광고도 안 붙는 것 같던데 4%면 대박 난 거 아니야?”
“그러게? 갑자기 시청률이 2배가 됐네.”
“두 편으로 나눠서 다음 주에도 걔네 얘기 나오던데 시청률 오를 듯?”
“그래? 까다로운 니가 추천할 정도면 진짜 재밌다는 거네. 찾아 봐야겠다. 신인 아이돌도 나온다는 거지? 간이나 볼까?”
친구는 점심시간을 빌려 휴대폰으로 을 보기 시작했다. 친구는 영상에 푹 빠져서 입이 귀에 걸렸다.
그 모습은 눈길을 잡아끌었고, 점심을 먹고 돌아온 반 친구들이 하나둘씩 개미 떼처럼 모여들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을 땐, 친구를 중심으로 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귀여워 죽겠다~.”
“얘네 그룹 이름이 뭐야? 완전 개그맨들이잖아!”
“캐릭터 확실하네. 허세 미소년이랑 프로한테 스카우트 당하는 천재 일꾼에 과즙상 귀요미라니.”
휴대폰 작은 화면에 옹기종기 달라붙어서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테오라라는 신인 아이돌에 대한 호감은 수다를 통해 부풀어갔다.
* * *
좁은 연습실은 여섯 명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했다.
“잠깐 모여보자.”
한창 연습에 열중하던 테오라 멤버들은 매니저 형의 부름에 쪼르르 다가가 모여 앉았다.
“ PD님이 전화하셨다. 너희도 같이 통화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스피커폰으로 돌릴 테니까 통화해봐라.”
-우리 테오라분들 잘 지냈습니까?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PD님의 목소리는 기분 좋은 흥분이 묻어있었다. 테오라 멤버들도 아침 먹은 후에 의 시청률을 확인했다. PD님이 왜 기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저희는 잘 지냈어요. PD님 목소리 들으니까 좋은 소식 있는 거 같은데요?”
-들켰습니까! 새벽에 시청률 통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지 뭡니까~!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멤버들이 함께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에 PD님은 시원스러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 덕분 아니겠습니까. 시청률이 조금은 오를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지만,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예고편 내겠다고 했다가 윗선에 잘려서 내보내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으하하하!
광고 중간이나 드라마 시작 전이나 후에 예고편이 들어갔더라면 파급효과가 컸을 터다.
방송국 입장도 이해가 갔다. 폐지 직전의 프로그램이 예고편을 내보내봤자 시간 낭비라고 판단했을 테니까.
-다음 주 방영분 시청률은 이거보다 높아질 겁니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테오라 분들 너무 재밌고 귀엽다고 칭찬이 자자하네요!
방영분을 2회로 편성한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겠지. PD님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데 목소리만으로 들뜬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음 주 편집분도 잘 부탁드립니다.”
초록 형이 대표로 인사를 전하자 걱정은 접어두라고 호언장담하셨다. 다음 편은 더 대박 나는 거 아닐까? 더 신경 써서 편집해주신다고 했으니까.
통화를 마친 후, 멤버들을 보니 다들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음원 순위도 조금이지만 올라갔어. 뉴튜브 구독자랑 SNS 팔로워 수도 훌쩍 뛰었고.”
테오라에게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객관적인 지표. 숫자가 대단치는 않아도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우리, 희망찬 소식에 목말라 있었구나. 데뷔 이후로 실질적으로 체감한 ‘인기’는 음악방송에서 받았던 약간의 환호와 SNS 응원 댓글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서혼 형이 울먹거렸다. 박하는 즐거움을 주체 못 하고 연습실을 날 듯이 뛰었다.
“예쓰! 예에?쓰!”
랩 가사라도 떠올린 걸까? 지온은 자기 짐을 뒤적거리더니 노트를 꺼내 끄적거렸다.
오란은 배부른 미소를 짓고선 곧바로 지워냈다. 초록 형은 멤버들을 흐뭇하게 한 명씩 지켜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불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이원이 그렇게 뿌듯했어?”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뿌듯…?”
“너 웃고 있거든. 기쁘고 자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얼굴을 더듬어봤다. 한껏 솟은 광대와 길어진 입술 선이 만져졌다. 웃고 있었구나. 모르는 새.
“보기 좋아서 말한 거야. 이런 때라도 마음껏 즐겨야지. 갈 길은 멀어도 작은 성취를 기뻐하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
“…응.”
기쁘고 행복해지는 순간마다 문득문득 멤버들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이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POT 엔터가 횡포를 부리는 이유에 내 지분이 있다는 선명한 직감은 가슴에 묵직한 짐을 올려놨다. 내 탓에 무고한 멤버들이 고생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쪽으로 사고가 흘러가려는데 초록 형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왜 갑자기 입술을 깨물고 그래.”
입술을 놓아주면서 눈동자를 올렸다. 초록 형은 문신처럼 새겨진 웃음기를 지웠다.
기다란 눈매에 숨겨졌던 고동색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슨 고민 있어? 우리한테도 말 못 하겠어?”
“…….”
고민을 말한다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도 POT 엔터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멤버들한테서 나올 대답이라곤 ‘너 때문이 아니다.’라는 부정뿐이겠지.
“비밀이야? 그럼 이원아. 한 가지만 약속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을 땐 꼭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한다고. 응?”
“…응. 그럴게.”
초록 형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가 한 팀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이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내 노력으로 테오라를 POT 엔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테오라가 떠야 했다. 대중의 관심을 등에 업어야 했다. 건드리기 힘든 스타가 돼야 했다.
“나 뭐든 할래. 창피해하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팬을 끌어모아야 한다. 관심받기 위해서라면 수치스러움도 마다하지 않을 테다.
“왜 갑자기 급발진을…?”
“이제까지 내가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 같아.”
“그, 그랬던가?”
“연예계가 낯설어서 움츠러들었나 봐.”
“그래? 엉뚱함은 살짝 줄어들긴 했는데….”
무심함으로 일관하던 예전 버릇이 무심결에 나왔을까. 자꾸만 멤버들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멤버들의 의견에 따르게 됐다. 일단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집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면서.
독특한 사람이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주목받으려면 보통의 담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데.
“더 솔직하고 발랄하게 행동해야겠어.”
“…말리진 않을게. 네 기분이 밝아진 것만으로도 안심이니까.”
초록 형은 내 기분을 우선해줬다. 다정한 배려와 지지를 건넸다. 단지 한 그룹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성격 맞는 멤버들과 한 그룹이 되는 것도, 멤버끼리 트러블 없이 화기애애한 것도, 뚜렷한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행복해. 테오라 멤버가 될 수 있어서.”
초록 형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자기야말로 영광이라고 했다. 그리곤 멤버들에게 내 발언을 큰 소리로 옮겼다.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멤버들의 눈이 먹잇감을 찾은 맹수처럼 번뜩였다.
“이원 형! 우리가 그렇게 좋아? 어디가 좋았는데? 언제부터 좋았는데?”
번개처럼 달려온 박하가 커다란 몸을 들이밀며 질문을 퍼부었다.
“이원, real sweety. 내가 이원 팬이라면 벌써 넘어갔다.”
스위티는 아가야, 혹은 자기야 정도의 표현 아닌가? 지온이 지금 나를 놀리는 걸까?
“기막히네. 이게 계산된 고도의 술수가 아니라는 게. 함이원 너 아이돌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
오란은 희대의 카사노바가 탄생할 뻔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돌 체질이라는 건 진짜 아이돌인 내게는 극찬이지만 과장이 심하다.
예비 팬들 앞에서 프로 아이돌로 변신하는 사람이 누군데?
“나도 너랑 같은 그룹이라 좋아. 이원아.”
빈말하지 않는 서혼 형이라 더 와닿았다. 혼자만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서 손끝부터 온기가 차올랐다.
앞으로도 우리는 잘 헤쳐 나갈 수 있다.
* * *
데뷔 이후로 바쁘게 지냈던 탓에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겨울방학이라서 학교에 안 나가고 있어서 졸업 시즌이라는 점을 깜빡할 뻔했다.
졸업이라는 이벤트를 신경 써야 했다. 왜냐면 테오라 멤버 중에서 두 명이나 졸업을 앞두고 있기에.
빠른 연생이라 나보다 한 학년 위인 지온과 초록 형의 졸업식이 바로 오늘이었다.
하필이면 둘의 졸업식 날짜가 겹치는 바람에 우리는 두 탕을 뛰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둘의 졸업식이 2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다는 점.
졸업 당사자들을 제외한 멤버들과 축하 계획을 세웠다.
1. 매니저 형과 함께 꽃을 준비한다.
2. 지온의 학교에 가서 축하해준 다음 재빨리 픽업해온다.
3. 다 같이 초록 형의 졸업식에 참석한다.
초록 형은 지온의 졸업식에 못 간다고 아쉬워했다. 정작 지온은 졸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라고 한껏 신난 상태였다. 졸업식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치른다고 연습 일정도 없고, 다이어트도 하루 건너뛸 수 있다고.
지온의 학교는 일반고등학교이기 때문일까? 연예인 축에도 못 드는 우리를 보자마자 가족의 졸업식을 보러온 방문객들이 들썩거렸다.
“…아이돌이래!”
“내가 우리 학교에 아이돌 데뷔한 애 있댔잖아!”
“박하야! 이원아! 여기 좀 봐줘!”
이름이 호명되자 무심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비명과 비슷한 하이톤의 환호성이 퍼졌다.
설마 나 때문인가?
얼굴도 다 가렸는데 어떻게 알아보셨지? 마스크와 안경으로 변장했는데. 눈썰미들이 대단했다.
아. 우리 머리 색이 화려해서 그런가? 모자 써서 가린다고 가린 건데.
“으악! 죄송한데 잠시만…! 저희 강당 가야 하는데…!”
이 험난함을 이겨내야만 했다. 졸업식장에 가기 위해서.
톱스타의 삶을 간접 체험해본다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