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67
입학식 퀘스트
입학식이라고 하면, 학생들 모아두고 연설하는 행사 아닌가? 거기에 아이돌 공연? 괜찮을까.
“대학교 입학식에서 하는 축하 공연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 대학교 입학식은 축하 공연도 해주는구나.
대학 측에서 축하 무대를 꾸며줄 가수를 찾고 있는데,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고 지인이 하소연했다는 모양이다. 유명한 가수들은 부를 수가 없고, 가수를 불렀다고 생색은 내고 싶은 마음?
“테오라 멤버들이 방송국에 직접 가서 홍보까지 했다면서요? 그 이야기 들은 하눌 직원들은 하나 같이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그 열정이면 뭐라도 하겠다고. 그래선지, 테오라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유난 떠는 건 아닌가 염려했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우리를 지지해주신다니 힘이 났다. 테오라의 홍보 효과가 이런 방향으로도 영향을 미칠지는 몰랐는데.
“행사비는 많이 못 받겠지만, 이것도 경험이니까 해보면 어때요? 입학식이라 관객 수가 어느 정도 이상은 될 테고요.”
“멤버들이랑 매니저 형이랑 상의하고 말씀드릴게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신인 아이돌인 우리는 행사비조차 측정되지 않았을 거다. 행사라고 해봤자 고작 한 번이었으니까. 그것도 눈보라 속의 망한 행사였고.
어차피 테오라의 최우선 목표는 어떻게든 얼굴을 비춰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 행사비는 우리의 성장에 따라 점점 올라갈 수 있었다.
“나우혁 배우님이 맡을 OST는 조만간 녹음 일정 알려드리겠습니다. 추가 OST는 다음 달 안까지만 주면 됩니다. 작곡이 빨리 끝나면 더 좋겠지만요.”
갑자기 일거리가 몰려온다. 작업실에서 틈틈이 만들다 보면 이번 달 안에도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다.
“결정되면 말해줘요. 지인한테 공치사나 해보려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요.”
“권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홀로 남은 카페에서 빨대로 얼음이 녹은 아이스티를 휘젓고 있는데 매니저 형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숙소랑 회사의 가까운 거리를 고려해도 이른 도착이었다. 나를 혼자 두기가 그렇게 조마조마했나?
손을 번쩍 들어서 매니저 형을 불렀다.
* * *
대학교 입학식 행사에 대해 멤버들과 매니저 형에게 말하자 만장일치로 하자는 결론이 났다.
스케줄 조율은 매니저의 몫이라 그 후로는 매니저 형이 진행했다. 일정이 촉박한 관계로 출연은 바로 결정됐다.
테오라 멤버들은 두 곡을 무대에서 하기로 되었다. 한 곡은 타이틀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한 곡 때문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결국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댄스곡이 선택됐다.
“호응이 별로일 수도 있어. 그래도 당황하지 말고 꿋꿋하게 무대 진행하자.”
대학생인 서혼 형의 증언에 따르면 한예대 입학식에서도 매해 축하 공연을 하곤 하는데, 꽤 엄숙한 분위기란다. 환호를 바랄 수는 없단다. 박수 정도는 쳐주지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혼자 열광하려면 보통 철판 가지고는 어려우니까.
몇 명만 열정적으로 반응해주면 금세 주위로 번져서 분위기가 형성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테오라가 인지도 높은 A급 아이돌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오늘은 야외무대라 자유로운 분위기일 수도 있긴 한데….”
“기억할게.”
“응! 난 기죽을 일 없어!”
“입학식이라 자제한다고 생각할래.”
자기암시라도 걸어보기로 했다. 무거운 공기 때문에 엉덩이를 들썩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다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 내적 댄스를 추고 있다고.
실제로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마음은 편해질 테니까.
“헬 난이도 퀘스트를 한다고 치자. 가만히 앉아있는 학생분들을 자리에서 일으키는 퀘스트를 받은 거지.”
성공 못 해도 괜찮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장소와 상황을 따질 겨를도 없이 흥에 겨워한다면? 그것만큼 아이돌로서 얻을 수 있는 큰 보람이 또 있을까?
“좋아! 우리가 무대에서 얼마나 잘 노는지 보여드리자고!”
“손 모아봐.”
야외무대 옆 대기실 안에서 팔을 내밀어 멤버들과 손을 겹쳤다.
“둘셋, 하면 테오라 파이팅이야. 둘셋!”
“테오라 파이팅!”
손을 위로 뻗으면서 각오를 다졌다. 어느 때보다도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 * *
신입생 A는 한 번뿐인 대학교 입학식이라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 노천극장 앞 돌계단에 신입생들을 잔뜩 모아두고 지루한 환영사나 지껄일 걸 생각하면 벌써 좀이 다 쑤셨다.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아씨, 오지 말걸. 영양가도 없는데.’
앉고 보니 앞자리 좌석이라 중간에 뛰쳐나가면 학교 관계자의 주목을 살 수도 있다. 게다가 다닥다닥 붙어 앉은 탓에 나가려면 여러 명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외곽 자리에 신입생이 아닌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는 거였다.
신입생 가족인가 했는데 입은 옷이나 구성원을 보니 대학교 주변에서 놀러 온 분들 같았다.
‘입학식이 뭐가 볼 게 있다고? 다 거기서 거기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다른 대학교에 간 친구와 톡으로 수다나 떨기로 했다.
– 걍 짧게 해주는 게 최곤데! 우리는 벌써 끝남!
– 입학식 다 겉치렌데 괜히 왔어
– 좀만 참다가 나와ㅋㅋ 같이 점심 먹을래? 내가 근처로 갈게
– 끝나면 바로 튀어간다! 맛집 검색ㄱㄱ~
고개를 푹 숙이고 주변 맛집을 검색했다. 한창 점심 메뉴를 고르는데 사회를 맡은 아저씨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입학식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 아이돌 그룹, 테오라입니다! 신입생 여러분들도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 휙휙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들이었다.
‘테오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기시감을 느낀 사람이 혼자가 아니었던 걸까. 여기저기서 신입생들이 테오라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아는 친구와 붙어서 앉은 이들은 옆의 친구와 ‘테오라’라는 아이돌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다.
“자기들 광고하는 CF 내보냈던, 그 SEED 후배….”
“최근에 마지막 노동잔가 뭐 그 예능에 나왔던!”
“엄마랑 오늘의 생생정보에서 봤는데?”
“너 그거 봤냐? 눈보라 막 치는데 성량이 그걸 뚫고 나오던 실력파 이이돌 영상. 거기 나오는 애들이 얘네잖아.”
기막힌 우연일까? 주변 학생들이 언급한 자료들을 대학생 A가 전부 본 것들이었다.
‘그게 전부 한 그룹 영상이었다고? 왜 눈치 못 챘지?’
CF를 볼 땐 하눌 엔터에서 대형 신인을 내보냈구나 싶었다. 에서는 신인 아이돌답게 의욕 넘친다고, 나까지 텐션이 높아져서 호감이 생겼다.
알고리즘을 타고 봤던 ‘눈보라 속의 아이돌’ 영상은 편집된 뒷부분만 봤다. 거세게 치는 눈발 때문에 얼굴을 미처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몇 번이나 반복 재생했는데 못 알아보다니.’
눈썰미가 다 녹슨 모양이다.
‘우연히 세 번 만나면 운명이라는데 네 번째잖아? 이건 입덕하라는 계시 아니야?’
대학생 A는 휴대폰을 들어 촬영 모드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집에 있는 카메라라도 들고 왔을 터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늦은 후회였다.
“안녕하세요! 무한한 가능성, 테오라입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렸다.
야외무대는 여섯 명이 춤추고 노래하기엔 충분한 크기. 대신 조명이 열악했다.
대학생 A는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선견지명을 자찬했다. 10분 전의 자신은 완전히 잊고 촬영에 몰두했다. 친구에게서 오는 톡 알림이 귀찮았다.
“신입생 여러분!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대학에 첫발을 내디딘 여러분처럼 저희도 신인 아이돌이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노래하기 전에 저희 소개 먼저 할게요!”
“네에?!”
덩달아 힘찬 함성을 지르면서 리더로 보이는 멤버를 지그시 쳐다봤다. 진짜 앞자리에 앉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야외무대 양쪽으로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지만, 화질이 구렸다. 그 탓에 테오라 멤버들의 미모를 1/10 정도로 다운그레이드시키고 있었다.
“반응이 굉장히 열렬하네요. 저희가 대학교 행사는 처음인데 여러분 덕분에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와아?!”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멤버들이 당황한 표정이 사실적이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애들이라 순수함이 돋보였다. 꾸며내지 않은 날것의 순수함이 스트라이크존에 꽂혔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직 무대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테오라한테 빠진 게 분명했다.
“저는 테오라의 리더이자 메인 댄서 초록입니다.”
“오오?”
다정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리더는 나지막하게 웃은 다음 차례를 넘겼다.
“리드 댄서이자 테오라의 비주얼인 박하입니다!”
“잘생겼다!”
“알아요! 저 잘생긴 거~.”
유쾌한 성격의 미남은 남녀노소에게 호감을 샀다. 얼굴은 배우상인데 말 한마디로도 왜 아이돌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리드 래퍼 서혼입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한 살 많아요.”
“서혼 오빠아아악!”
발악에 가까운 외침에 서혼이라는 멤버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신입생들도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하기까지는 한참이나 걸렸다.
“테오라 메인 래퍼, 제톤입니다. 나 아는 사람?”
“알아요! 쇼미더골드!”
“Cool. 오늘 신나게 놀아요. Turn up!”
“와아아악!”
래퍼다운 그루브가 몸에 배어 있는 제톤이라는 멤버에게는 남학생들도 호의적이었다. 굵직한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다.
“안녕하세요! 리드보컬 오란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아!”
오란이라는 멤버는 젖살이 빠지지 않아 동글동글 귀여웠다. 통통한 볼살과 청아한 음성에 본능적인 보호본능까지 발휘될 것 같았다.
“귀여워어….”
발을 동동 구르는 건 기본, 심장을 부여잡거나 머리를 짚고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하는 학생도 보였다.
“메인보컬 함이원이라고 합니다.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보답으로 최고의 무대 보여드릴게요!”
“신이시여….”
함이원이라는 멤버가 스크린에 잡혔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섬세한 이목구비가 황금비율을 이뤘다. 속눈썹이 얼마나 긴지 파르르 떨리는 움직임까지 보일 듯했다.
입학식에 참석한 신입생들은 말을 잊었다. 환호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감탄사만 흘릴 뿐이었다.
앞에 소개했던 박하라는 멤버도 다른 연예인과 비교했을 때 독보적으로 잘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은근히 친근한 태도 때문인지 거리감이 덜했다.
반면 함이원의 ‘아름다움’은 궤가 달랐다. 시대를 초월한 미가 이런 건가 싶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까지 두르고 있었다. 옆에 있더라도 말 걸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첫 번째 곡은 테오라의 데뷔 앨범 타이틀곡인 ‘각인’입니다.”
곡의 전주가 시작되고 테오라 멤버들은 무대 위를 뛰어다니며 학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함이원이라는 멤버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손에 들었던 휴대폰을 떨어뜨리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찾아줄래 너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노래 앞부분을 들으니 카페에서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누가 불렀는지, 제목이 뭔지도 모르고 좋다고 생각하다가 까먹었지만.
리더라는 멤버가 통통 튀는 비트 위에 목소리를 넣어 고개를 까닥거리게 하던 그때, 저 멀리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초코야! 안돼! 김초코!”
초코를 부르는 애타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다시 멀어졌다.
‘뭐지?’
궁금하긴 한데 무대를 보는 게 급해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곧바로 알게 되었다. 녹화 중인 휴대폰 화면으로.
“‘황폐한 이 대지에 여전히 희망이~’ …어?”
센터에서 랩을 하고 있던 서혼이라는 멤버가 한 소절을 끝내려다가 멈칫했다.
음 이탈? 하는 생각과 동시에 눈을 깜빡인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찰나에 래퍼의 팔 안에는 갈색 푸들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아주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
“뭐야? 강아지?”
안무 중에 팔을 앞으로 뻗는 동작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팔 안으로 강아지가 뛰어든 것 같았다.
“초코야….”
무대 근처에는 강아지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허망하게 강아지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차마 무대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난감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다시 무대로 시선을 올렸을 때, 무대는 아무런 돌발상황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몸 좋은 래퍼 팔에 안겨 있던 강아지가 리더 품으로 옮겨진 것만 빼면.
초코라는 강아지는 주인 품에 안긴 것처럼 평온하게 같이 춤추고 있었다.
“이 임기응변 뭔데…? 신인 아이돌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