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69
행운의 파도
테오라가 나쁜 날씨를 몰고 다니는 걸까? 아니면 진짜 오란이 불운을 불러왔나?
버스킹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노래 한 소절을 부르자마자 바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머리에 빗방울을 맞았는지 손바닥을 내밀어 비가 오는지 확인하고 정수리를 가리는 사람이 점점 늘었다. 버스킹을 주최한 스태프들은 음향기기 위에 재빠르게 방수 천을 씌웠다.
“비 온다!”
“여러분 우비 받으세요!”
MC를 맡은 백만 뉴튜버 ‘흥얼흥어리’가 혹시 몰라서 준비했던 일회용 우비를 급하게 관객들에게 나눠줬다. 관객이 빠져나갈까 봐 비 오는 날의 버스킹도 낭만적인 추억이 되지 않겠냐고 은근한 설득에 나섰다.
원래 소나기 예보가 있긴 했던 터라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는 분도 있었다.
물들여줘 너의 손으로 너의 색으로
오란은 비즈니스용 미소를 걸고 흔들림 없이 자기 파트를 노래했다.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다들 사부작거리고 있어서 아쉬웠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제대로 들어주면 좋을 텐데….
진행자분이 노래를 멈추게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제대로 집중한 상태에서 공연할 수 있을 텐데. 노래가 상당히 진행되어서 그런지 노래를 중단시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후두둑?
소나기가 맞는지 빗발은 금세 굵어졌다.
무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터에는 허술한 가림막이 있긴 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비가 들이쳤다. 안무를 소화하다 보니 좁은 가림막이 막아주는 범위를 자꾸 벗어나기도 했다.
테오라 멤버들은 꿋꿋하게 최선을 다했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관객들은 뒤늦게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빗소리를 가르고 전해질 수 있도록 단단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내게 새겨줘
빗소리에 박수 소리가 섞여들었다. 소나기 맞으면서 고생했다고 쳐주는 박수 같기도 했다.
노래와 춤에 최선을 다했다고 장담할 수 있지만, 듣는 분들이 좋은 공연이라고 느끼기엔 힘든 상황이었던 건 분명하니까.
속상함은 저 깊이 숨겨둔 채, 겉에는 유쾌함만 남겼다.
“소나기가 갑자기 와서 놀라셨죠? 저희도 쫄딱 젖었네요.”
초록 형이 멘트를 하는 동안 몸에 달라붙은 의상을 떼어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협찬 의상이었으면 다 물어줄 뻔했다. 아직 협찬받을만한 수준이 되지 못해서 다행인 건가?
“한 곡 더 할 건데요. 이번 곡은 저희 멤버가 작곡한 잔잔한 발라드입니다. 제목은 ‘Your Birth’입니다. 가사도 예쁘니까 잘 들어주세요!”
가림막 아래 허술한 철제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각자 핸드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곡은 비를 맞으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젖은 머리에서 빗물이 자꾸만 흘러내려서 속눈썹에 매달렸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물처럼 뚝뚝 아래로 떨어졌다.
초록 형이 얼굴을 만지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말했지만, 이대로는 간질간질한 느낌 때문에 노래에 몰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손을 올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와 함께 뒤로 슥 넘겼다.
“와아아악!”
“……?”
옆을 두리번거려봐도 아무 일도 없었다. 멤버들은 마이크를 점검하다가 축축한 의상이 영 불편한지 쥐어짰다. 물이 주르륵 흘렀다.
“꺄아아악?!”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거지? 의아했지만 궁금증은 나중에 풀어도 충분했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당연한 하루에 너라는 기적이
잔잔하고 따뜻한 선율로 곡의 문을 열었다. 관객들은 입을 벌리고 홀린 듯이 우리를 응시했다.
이런 순간마다 나는 확신한다. 아이돌은 운명이었음을.
* * *
신인 아이돌 그룹이 이름을 알리는 작업은 지지부진한 일이었다.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을 인식시키려면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야 했다.
휘발성 넘치는 기억력을 붙잡으려면 외모가 뛰어나던지, 실력이 출중하던지, 특출난 개인기라도 있어야 했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팀이 바로 테오라였다. 비록 POT 엔터의 횡포에 애를 먹긴 했지만, 그건 간단한 장애물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밀어보려고 노력하고, 하나하나에 절실하게 달려들기까지 하니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열정이 전해졌다.
당연히 ‘운’ 또한 필수 요소다. 커다란 사건, 사고가 터진다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눈길을 다른 쪽으로 돌리게 하기가 어려우니까.
눈보라 속에서 행사를 뛴다거나, 갑자기 강아지가 달려든다거나, 비를 맞으면서 하는 버스킹은 그에 비하면 악운도 아니었다. 사소하고 가벼운 불운에 불과했다.
그 불운은 단순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불운으로 끝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행운의 파도를 일으켰다.
뉴튜브에 올라온 하나의 영상으로부터 시작된 파도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거대한 해일이 되었다.
“얘들아. 최근에 뉴튜브에 너희 영상이 하나 올라왔는데….”
연습으로 바쁜 우리보다는 매니저 형이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속도가 빨랐다. 동료 매니저에게 테오라에 관한 인기 동영상이 떴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확인한 뒤에 곧바로 멤버들에게 달려왔다.
“조회 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어서 너희한테 알려주려고 왔다.”
공동 휴대폰 한 개로 모든 연락을 하는 데다 연습하느라 뉴튜브를 찾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매니저 형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한참 후에야 발견했을 것이다.
지금도 늦은 편인가?
“뉴튜브 채널 주인이 너희가 인제 빙어 축제 행사 갔을 때 참가했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관련 영상을 처음 올렸던 분이라.”
“거기 있던 분이요? 우왕! 거기서 우리 팬 되신 거 아닐까!”
눈보라 때문에 무대도 안 보였을 텐데 그걸 보고 팬이 될 수가 있나? 당시 영상을 찍으셨어도 엉망진창일 게 분명할 텐데? 얼마나 고수이시길래?
“매니저 형, 저희 태블릿 주세요.”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보려면 찰싹 달라붙어야 했다. 우리 중에 키가 제일 작은 오란은 멤버들에게 치이기 싫은지 태블릿을 요구했다.
“바로 재생시키면 된다.”
매니저 형은 흔쾌히 손에 든 태블릿을 내밀었다.
제목은 였다. 이 채널의 다른 영상들은 V-log에 가까웠는데, 우리 영상만은 제목에 어그로를 끌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다른 분 조언이라도 받으셨나?
영상에는 테오라의 흔적이 담겨있었다. 여러 날의 영상들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영상미까지 더해져서 마치 테오라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같았다.
“홍보영상 같은데? 애정이 은은하게 담긴.”
음질도 좋아서 노래도 잘 들리고, 안무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자막과 자료를 알차게 욱여넣으면서도 테오라에 대한 팬심이 노골적이지 않았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재밌게 볼 수 있는, 코믹하게까지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영상 편집하신 분, 실력이 보통이 아니시다. 전문가 냄새도 나고. 연출하시는 분인가?”
영화와 드라마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연극영화과 서혼 형의 평이라면 신뢰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보이는구나.”
관객의 관점에서 보는 테오라는 생각보다 훨씬 멋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기는커녕 유쾌하게 최선을 다하는 프로였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걱정이나 고민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한한 자신감에 차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 뮤비, 데뷔 쇼케이스, 음악 방송이랑 예능 자료, 생활 정보 프로그램, 눈 오던 빙어 축제, 입학식 행사 그리고 버스킹…. 성장 스토리가 뒤에 깔려 있어. 곳곳에 유머 코드를 넣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초록 형은 이 영상 조회 수가 이쯤에서 멈출 리가 없다고 했다. 영상 자체의 질이 좋은데다 기세까지 탔으니까.
“그리고 등장인물이 다른 누구도 아닌 테오라니까. 우리 매력이 아직 손톱만큼도 알려지지 않았어. 한번 알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걸?”
“초록 말이 틀리지 않아.”
지온은 영상 아래로 스크롤해서 아래의 댓글을 확인했다. 채널 주인의 고정 댓글 아래로 2천 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려있었다.
“댓글 수가 어마어마해!”
댓글뿐만 아니라 조회 수도 200만에 달했다. 뮤직비디오만 빼면 테오라 공식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보다 훨씬 조회 수가 많았다.
“이 채널 운영하시는 분한테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다. 우리 팬이신 거 같으니까 사인 앨범이라도 보내드리면 어때?”
“그건 아니시라는데? 댓글 확인해봐, 이원아.”
서혼 형의 발언에 고개를 내려 고정 댓글을 읽었다.
[채널 어재의 주인입니다. 우연히 찍은 테오라의 영상이 아까워 업로드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영상 모음을 만들어봤습니다. 영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뉴튜버 XX와 XX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참고로 저는 테오라의 팬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 사는 또래 친구를 응원하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영화감독 지망생 어재-]
편집에 보통 공을 들인 게 아니신데. 정성이 듬뿍 들어간 레전드 영상을 만들었으면서 팬이 아니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전문 용어로 이런 행동을 이렇게 표현하지. 입덕 부정.”
입덕 부정. 맥락으로 유추해보면 이미 마음은 팬이면서 아니라고 부정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냥 마음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편할 텐데 왜…. 굳이?
자기 마음도 모르는 예도 있긴 하지만.
“입덕 부정 빨리 그만두고 우리 팬 돼주세요! 제발요, 어재 님!”
두 손을 모은 채 박하가 외쳤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 거야? 천장만 보이지만, 하늘 있는 쪽으로 비는 건가 보다.
“구독자분들 댓글도 하나 같이 센스 넘치시는데?”
“재밌는 걸로 골라서 읽어줘. 서혼 형.”
일상적인 순간에도 연기력을 쓰는 서혼 형이라면 댓글도 얼마든지 실감 나게 읽어줄 수 있을 터였다.
“크흠. 이원아, 그럼 내가 읽어볼게. 다들 괜찮아?”
멤버들이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이 똑같은 박자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혼 형의 ‘구연’ 댓글이라면 믿고 들을 수 있었다. 매니저인 준현 형까지 바닥에 정자세로 앉아서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좋아요 많이 달린 순서대로 읽을게.”
목을 가다듬은 서혼 형은 순식간에 몰입했다. 고작 한 줄의 댓글. 드라마 대본으로 따지면 인물이나 상황 설정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대사 한 줄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서혼 형이라면 뭔가 해주겠지.
“팬 아니라면서 입덕 포인트에 힘준 편집 뭔데?”
톤을 높게 올려서 중성적인 목소리로 새침하게 말했다. 어이없음까지 들어간 말투 때문에 더 리얼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까지 느껴졌다.
이런 느낌을 데자뷰라고 하던데.
“정곡을 찌르는 댓글이다, 진짜. 팬분들이 좋아할 부분에 공들였다는 표가 딱 나는데.”
“초록 형. 그게 어딘데?”
우리 멤버들과 나에 관한 영상이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서 도저히 냉정하게 분석할 수가 없었다.
힘들었겠다. 혹은 용케 실수 안 했네. 다음엔 나도 표정에 신경 써야겠다. 이런 종류의 감상뿐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직업병?
“비주얼도 뛰어난데 본업도 잘한다는 부분이나 당황할만한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부분?”
“아하.”
본업, 그러니까 춤과 노래, 퍼포먼스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거구나.
초록 형의 설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이원이 네가 눈보라 따위는 가뿐하게 이기고 무시무시한 성량을 보인다거나? 화면을 뚫고 나오는 미모라던가? 의도하지 않아서 더 애타는 죄 많은 포인트라던가.”
“죄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