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7
갓 아이돌 프로젝트
변호사가 내 앞으로 형의 유언장을 내밀었다. 유언장 봉투 안엔 자필로 된 형의 유언장 외에 한 장의 짧은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나의 친구 이원아. 시간이 없으니 짧게 쓸게. 내 죽음을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 재산은 너에게 넘길게. 어차피 사회에 환원할 돈이었어.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위해 써줬으면 해. 연습실에 있는 물건들은 알아서 처분해 줘. 그리고 이원아. 네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의 기억이 아프게 남지 않기를 바라. 내 마지막 부탁이야.]이것 때문에 급하게 변호사를 불렀나. 작별 인사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법적인 절차는 부모님께 맡겨두었다. 연습실 정리는 내가 맡았는데 형의 손길이 닿은 물건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집으로 가져왔다.
방은 악기와 상자로 가득 차버렸건만 마음은 텅 비었다. 노도 같은 허무가 나를 휩쓸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낸 지 일주일.
현오 형의 죽음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나를 괴롭혔다.
수업을 듣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현오 형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충격이 컸구나 싶어 가만히 지켜보던 부모님은 내 이상 반응을 더 두고 보지 않으셨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지 걱정스러워 전전긍긍하셨다
“나 괜찮아요.”
아니, 괜찮지 않을지도 몰라요.
“…이원아! 목소리가!”
엄마와 아빠는 내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닫고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다. 부모님은 노파심에 매번 가던 병원으로 향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의사는 건강하고 생생한 성대라고 진단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우리가 왜 병원에 왔는지 의아해하는 듯했다.
다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믿을 수 없지만, 가는 병원마다 성대가 멀쩡하다고 하자 부모님은 현실이라는 걸 서서히 인정하셨다.
기적. 부모님 그 두 글자를 믿게 되셨다. 시시때때로 눈가를 적시며 부모님은 기쁘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시큰둥한 내 반응에도 그저 실감이 나지 않아 그러는 줄만 아셨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괜찮아지리라 생각하셨다.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가리라고, 나에게 일어난 기적을 즐기게 되리라고.
하지만, 나에게만은 목소리의 변화가 ‘기적’이 아니었다. 형의 죽음을 실감케 하는 장치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말 수가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자 부모님은 걱정에 잠겼다.
“엄마는 너무 예쁜 목소리 같은데. 낯설어서 그러니?”
누가 들어도 예쁠 현오 형의 목소리.
“너무 예뻐서, 그래서 슬퍼요. 말할 때마다 현오 형을 떠올리게 되니까.”
“현오?”
“이 목소리는 현오 형의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저는.”
두 분은 얼떨떨하게 나를 보셨다.
당연하다. 누가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바로 믿을까.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나도 안다.
“이원아. 현오 목소리랑 비슷하긴 하지만, 그건 억측이 아닐까?”
“왜 그렇게 생각하니. 단순히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일일 뿐이야.”
부모님은 착각일 뿐이라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하지만 내 노랫소리와 현오 형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비교해 본 후에도 우연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핸드폰에서 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형과 내가 음악 여행을 갔을 때 찍었던 영상이었다.
영상 속의 형은 나에게서 선물 받은 곡 ‘어떤 이름으로도’를 불렀다. 영상이 끝나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같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마쳤을 때, 나는 말했다.
“형의 나무 앞에서 이 노래를 불렀을 때부터 목소리가 달라졌어요.”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엔, 정말 비슷하게 들리는구나.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어.”
“그리고 아시잖아요. 저 예전엔 노래 부른 적 없다는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저는 너무 간단하게, 익숙하게 하고 있어요. 마치 현오 형처럼.”
음치여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음정, 박자, 음량 전부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심지어는 애드립도 능숙하게 해냈다.
“…엄마도 그저 비현실적인 현상으로 단정 짓지는 못하겠어. 치료할 수 없다던 성대가 하루아침에 멀쩡해지는 기적도 일어나는 세상이잖아. 그 기적이 현오에게서 온 거라면….”
이미 한차례 기적을 겪어본 엄마는 과학적 사고와 경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믿어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니까.
그때, 아빠가 무언가 떠올린 듯 감탄사를 흘렸다.
“현오의 소원이 이뤄졌구나….”
“형의 소원이요?”
“이원아. 현오가 유언장을 쓸 때 넌 병실 밖에 나가 있어서 듣지 못했을 거야. 현오는 사실 네게 돈이 아니라 목소리를 주고 싶다고 하더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최후의 순간까지 그런 거나 바라고. 형은 자기를 위한 소원은 안 빌고….
“그러니까 이원아. 슬퍼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떻겠니. 현오가 우리 아들에게 선물을 줬다고.”
“현오 목소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목소리로 노래하면 어떨까? 그러면 현오도 같이 노래하는 셈이잖아.”
내가 노래를 부르면, 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된다.
현오 형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모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듣고 기억해줄 수 있다. 형의 음악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이 되겠다던 현오 형. 형이 원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꿈을 이뤄주고 싶다.
형의 목소리를 가지고 최고의 아이돌이 되면 형이 기뻐하지 않을까. 그러면 형과 함께하는 게 아닐까.
“아빠, 엄마. 나 아이돌이 되어야겠어요.”
갑자기 아이돌이 되겠다는 선언에 부모님은 별로 당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반기는듯한 태도로 나를 응원해주셨다.
“난 우리 아들이 아이돌이어도 어울릴 것 같아. 춤은 잘 모르겠지만 박자 감각도 좋고 운동신경도 좋으니까 잘하겠지. 비주얼이나 노래는 어디 내놔도 안 빠지고. 엄마가 현장에서 가끔 아이돌도 만나는데 솔직히 그때마다 이원이가 더 낫다 싶었어.”
고슴도치 엄마의 의견은 이랬고.
“우리 이원이한테 꿈이 생긴 것만으로도 아빠는 좋아. 어쩌다 예고에 가긴 했어도 직업적으로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 하진 않는 것 같았고, 다른 데도 흥미 없어 보여서 걱정했어. 한 번도 장래희망 진지하게 말한 적 없잖아. 귀찮아서 연주자라고만 적어뒀지? 아빠 다 눈치챘어.”
아빠는 그저 꿈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셨다.
“아이돌이 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 연습생이 되어야 하니? 오디션 보고?”
“보통은 오디션에 참가해서 합격하면 연습생이 되는데, 캐스팅돼서 오디션 보는 경우도 있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이원이는 캐스팅 당한 적 없니? 이 외모를 가지고?”
“수상한 사람들한테 명함을 받은 적은 있는데 캐스팅이었을까요?”
뭘 보고 날 낚으려고 하나 싶어 명함을 찢어버리고 도망쳤다.
수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해명하는 말이 더 수상했다. 꼭 연락 달라고 애걸복걸해서 더 수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명함은 보관할 걸 그랬나.
“그럼 그렇지. 캐스팅 디렉터들도 눈이 달렸으면 알아보겠지. 우리 남편도 한창때 명함 꽤나 받고 다녔잖아요?”
“다 젊었을 때 얘기죠. 부끄러우니까 그건 덮어둬요.”
“알았어요. 이원아, 그럼 뭘 먼저 해야 하니? 겉핥기로 아는 분야라 엄마도 공부를 따로 해야겠다.”
“아빠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거라.”
나보다 적극적인 엄마, 아빠 때문에라도 반드시 아이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오 형한테 도움 될만한 정보 많이 들었어요. 이럴 줄 알고 그렇게 강의하듯 얘기했나 봐요. 전 춤이 제일 부족하니까 연습해보면서 체력 기를게요. 오디션에 한 번에 붙을 순 없을 테니까 일정 맞춰서 닥치는 대로 보려고요.”
“그럼 한동안은 아빠가 임시 매니저 해야겠다. 운동하고 춤추고 오디션까지 챙기려면 힘들 테니까.”
나는 곧바로 헬스장부터 등록했다.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새벽엔 가볍게 러닝만 하고 오후엔 PT를 받았다.
날 고문시키나 의심하게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PT 선생님은 힘들어하면서도 악착같이 따라오는 나 때문에 초심을 찾았단다.
좋은 걸까…? 나중엔 즐길 수 있게 된다면서 날 격려했는데, 거짓말 같았다.
바이올린을 오래 하다 보니 자세가 약간 틀어졌다면서 필라테스도 추천받았다. 난 유연한 편이라 오히려 필라테스가 더 수월했다.
체력, 근력이 제일 문젠데 그래도 나이가 어려선지 발전이 빠르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운동은 장기전을 각오했다.
춤은 혼자 무대 영상을 보며 따라 해보는 정도였다.
바이올린 연습실에 커다란 거울을 가져다 놓고 동작을 확인하면서 춰보긴 했는데 만족스럽진 않았다.
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야 제일 좋겠지만 그보단 빨리 오디션 합격해서 연습생 신분으로 전문적인 레슨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노래는.
이때를 위해 발성 치료를 했나 싶었다.
그 수업엔 어떻게 편안하게 목소리를 내는지, 어떤 발성이 내게 맞는지, 강약 조절은 어떻게 하는지, 끝음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보컬 레슨을 압축시켜 미리 해준 것 같았다.
형한테 고마워할 일만 생긴다.
아직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보니 자세나 태도가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었다. 노래방 한 번 가보지 않았으니 어색할 수밖에.
그래서 겸사겸사 부모님께 노래방에 가자고 말을 꺼냈더니 두 분은 소풍 가기 전의 아이처럼 들떠서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난 그날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잘 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연예인은 타고난 끼가 있어야 한다던데, 두 분은 왜 연예인을 하지 않으셨을까?
* * *
내 꿈은 아이돌. 정확히는 아이돌 데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돌로서 디딜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스타가 되는 게 목표다.
[갓 아이돌 프로젝트]나는 이 목표를 이렇게 명명하기로 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난 누구보다 완벽한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돌의 성공은 혼자만 노력한다고 달성할 순 없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딱 맞물려야 이룰 수 있었다.
우선은 괜찮은 소속사를 골라야 한다.
현오 형은 여러 연예기획사의 얘기를 해주면서 자기가 있었던 기획사를 간접적으로 깠다.
그럴만한 회사였다. 형이 비난할 정도면 뭐.
연습생에게 좋은 기획사와 안 좋은 기획사를 비교해주기도 했다.
어디에 가면 개고생을 하게 되는지, 다시 연습생 때로 돌아간다면 어느 소속사를 고를지, 주변의 생생한 경험담을 섞어 얘기해줬다.
그에 따르면 노예 계약서를 내미는 기획사는 바로 거르란다. 사기당하거나 착취당하고 싶지 않으면.
또 너무 작은 기획사는 위험하다고 했다.
규모가 작다는 건 재정적으로 불안하단 뜻이고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할뿐더러 금방 망할 수도 있다고.
데뷔 전도 문제지만 데뷔 후에도 위험하다고 했다.
중형 이상이어도 처음 아이돌을 만드는 회사는 노하우가 없어 시행착오를 그대로 겪을 거라 성공이 쉽지 않다고 했다. 괜히 경력을 따지겠냐면서.
여러 가지를 따져야 하는데 그것도 성향에 따라서 다르다고 한다.
언론 대응에 능한 회사, 프로듀싱에 특화된 회사, 적극적인 투자를 해주는 회사, 소속된 선생님들의 실력이 뛰어난 회사….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특성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고 했었다.
아이돌을 만들어본 곳에 간다면 그 아이돌의 데뷔 후 얼마나 지났는지도 따져봐야 했다.
데뷔는 회사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벤트. 새로운 아이돌을 만들려면 그만큼 힘을 비축할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러니까 갓 데뷔한 그룹이 있는 회사에 들어가면 연습생 생활을 길어진다는 뜻.
물론 예외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랬다.
아이돌, 그것도 갓 아이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무작정 모험을 할 순 없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내가 가야 할 기획사는
적어도 중형 이상의,
아이돌을 배출해본 경험이 있는,
재정이 탄탄하고,
갓 데뷔한 그룹이 없는,
적극적으로 투자해주고,
언론 플레이 잘하고,
프로듀싱도 척척 해내고,
기획력이 뛰어나고 등등….
이 조건을 전부 충족하는 회사가 있긴 할까. 다수의 조건을 만족하는 기획사엔 들어가기조차 힘들 터다.
그러니 우선 사항을 정해야 했다.
규모, 재정, 경험, 투자. 이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해 보였다. 사실 규모가 크면 나머지 요소들은 따라오는 편이었다.
언론 플레이나 레슨, 프로듀싱 쪽에 약하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되지 않나?
되도록 빨리 데뷔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초보인 나는 실력을 쌓고 보여줄 시간이 필요하니 데뷔 시기는 조금 밀려도 감안할 수 있었다.
기준을 통과한 기획사 중에 가장 가까운 오디션 일정은 2주 후였다.
나는 2주를 데드라인으로 두고 맹연습에 들어갔다.
학교를 마치고 PT를 받으러 가는 길.
아빠는 아직도 내 목소리로 하는 통화가 신기한지 자주 전화를 거셨다.
운동 끝나고 집에서 저녁 먹고 연습하러 가라는 당부였다.
평생 하지도 않던 운동 하느라 고생한다고 걱정하시는 건 알겠지만, 과보호였다.
전화를 마치고 헬스장에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 학생, 여기로 연락 좀 주실래요?”
젊은 여자분이 명함을 슬쩍 내밀면서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 수상함은….
기시감이 들었다. 이거 혹시 길거리 캐스팅인가?
“연예인 관심 없어요? 우리 회사에 딱 맞는 비주얼이라서 그래요.”
엉겁결에 받은 명함에는 딱 이름과 전화번호, 메일만 쓰여 있었다.
“…어느 기획산데요?”
“그건 연락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여전히 사기의 가능성은 남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부풀린 다음 연예인 지망생의 돈을 뜯어내는 양아치 회사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도 우선은 시도해봐야 하나?
“꼭 전화 주세요!”
부모님과 상의 끝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명함 속 연락처는 대형 기획사 중 하나인 POT 엔터로 연결됐다. 세 손가락에 꼽히는 기획사는 이런 식으로 캐스팅하나 싶었다.
형식상 간단한 오디션을 봐야 한다기에 일정을 잡아 POT 엔터 사옥에 방문했다.
비공개 오디션이라 참가자는 나 하나.
오디션장에 들어가 대표를 비롯한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시작하자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춤을 춘 다음 예고에 다니고 있으며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다고 하자 아예 대표가 합격을 외쳤다.
얼떨떨했다.
이게 맞나? 원래 오디션이 이렇게 쉬운가?
나를 캐스팅했던 여자분이 귀띔해주길 오디션 심사를 하기 전부터 합격은 거의 따놓은 상태였다고 했다.
아이돌로 역부족이면 연기를 가르쳐 배우로 데뷔시키면 되니까.
POT 엔터는 아이돌뿐만 아니라 배우도 다수 소속되어 있으니 전환이 까다롭지 않았다.
대형 기획사이고 재정은 상장할 정도로 탄탄하며, 여러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켰다. 데뷔하면 푸시도 강하게 해주는 걸로 유명했다.
계약서를 써야 하니 보호자를 모셔 오라는 말에 고민이 깊어졌다.
왜 찜찜하지.
남자 아이돌이 데뷔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서?
데뷔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어서 좀 걸리지만, 그 외 나머지 조건들이 너무 좋았다.
POT 엔터 오디션에 합격하려고 몇 번이고 재도전하는 지망생들도 있다는데. 내가 배가 부른 걸까?
어째서 불편함을 느꼈는지는, 회사와 꽤 멀리 떨어진 지하철역 근처의 편의점에서 알게 됐다.
“아 X발, 그놈들 개꿀 빠는 거 보니까 개열받네. 나이 어리다고 떨어뜨리는 게 이해가 되냐. 그놈들이 나보다 나은 게 뭔데. 데뷔는 실력순이지.”
“어차피 몇 년 대강 구르면 우리 차례다.”
“그러니까 치사해도 실실거리면서 POT에 박혀있는 거 아니냐.”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셋이 저질스러운 말투로 낄낄거리고 있었다.
“이번 오디션엔 어떤 X밥이 들어올라나.”
“누가 들어오든 뭔 상관? 어차피 경쟁자는 미리미리 작업하면 되지.”
“그치그치.”
그러니까 내가 POT 엔터에 들어가면, 저런 인성 쓰레기들과 한 그룹으로 활동해야 할 수도 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POT 엔터도 간단한 인적 사항과 실력만 확인했지, 인성에 대한 질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함께할 멤버들의 역할을 완벽히 망각하고 기획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만 따졌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