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73
박옥태 그리고 POT
강남 한복판에 사옥을 지은 POT 엔터는 명실상부한 아이돌 명가였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부터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POT 엔터의 대표인 박옥태의 자부심이 되었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POT 엔터를 최고의 엔터사로 우뚝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표 박옥태의 진정한 목표였다.
“안 될 수가 없지! 암, POT 엔터를 누가 만들었는데!”
박옥태는 POT 엔터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POT 엔터가 무시당하는 건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POT 엔터의 구미에 딱 맞는 연습생 후보를 만났다.
캐스팅 담당자가 찾아온 ‘함이원’이라는 녀석의 얼굴을 눈에 담은 그 순간, 저절로 ‘찾았다!’라고 외칠 뻔했다.
오디션을 보러 들어오는 그 녀석은 POT의 차세대 얼굴이 될 보물이 틀림없었다.
노래와 춤까지 확인했을 땐, 하늘이 이 박옥태의 노력을 갸륵하게 여겨서 선물이라도 줬다고 생각했다.
감탄부터 터지는 비주얼이며 당장 무대에 세워도 될 노래 실력, 끝이 보이지 않는 잠재력까지. 아이돌을 하려고 태어난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었다.
외모부터 오디션을 볼 필요도 없이 합격이었지만, 터져 나오려는 함성을 참아낸 보람이 있었다. 함이원이라는 녀석에게 오디션 합격을 알렸을 때만 해도 박옥태의 머릿속은 장밋빛 미래로 가득했다.
그런데.
계약을 언제 하러 오면 좋겠냐는 내용일 줄 알았던 전화는 단호한 거절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 외모와 능력을 가지고도 아이돌을 하지 않겠다는 소린 아니겠지? 아이돌을 할 거라면 POT 엔터 말고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설마, 3대 엔터에 드는 다른 두 회사에?’
박옥태는 부리나케 연락망을 가동했다.
키씨와 QU는 POT 엔터의 뒤꽁무니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대형 기획사. 두 회사에서 수작을 부린다면 어린 애가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어떻게 버티겠나.
한순간의 실수로 POT을 거절했더라도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용서해줄 용의도 있었다. 물론 반성은 시키고 나서 기강을 잡아야겠지만.
예상과 달리, 두 대형 기획사에선 ‘함이원’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키씨 쪽에서는 새로 연습생을 뽑지도 않았다.
“재미로 아이돌 오디션을 보러 왔던 거라고 해도 POT 엔터 명성이면 혹할 텐데….”
단순히 아이돌이 되겠다는 마음이 없는 거라면 어린 학생 설득하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차라리 그쪽이 다루기 쉬웠다.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해봤자 성공한 아이돌이 버는 돈에 비하면 어림도 없으니까. POT 엔터와 전폭적인 지원이라면 성공은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숨었나?”
함이원을 찾은 곳은 의외의 회사였다.
“POT를 걷어차고 여길 들어가?”
하눌 엔터는 탄탄한 재정을 자랑하지만, 아이돌 기획사로서 대형에 비비기엔 아직 어림도 없었다.
배우 전문 기획사였던 하눌 엔터가 1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아이돌 그룹 둘을 키워냈다는 건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신인 아이돌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SEED도 운빨로 띄워놓고 무슨 배짱으로 그놈을 가로채?”
안 그래도 POT에서 나간 연습생들이 꾸준히 하눌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거슬렸다.
배우나 다른 분야로 돌리려고 점찍어뒀던 애들까지 빠져나가서 심기가 불편하던 참이다.
엔터 대표 모임에서 됨됨이가 실력보다 우선이라고 귀가 아프도록 강조하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하눌 대표 손중기도 실력 검증이 끝난 POT 엔터 출신 연습생이 탐났던 게 분명하다.
“배우 기획사였다고 콧대 높은 척은 다 하더니.”
여기저기서 하눌 소속 직원들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 같이 대표를 닮아서 고지식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돈 벌어오는 애가 착한 애지, 인성이 무슨 문제라고. 들키지만 않으면 장땡이지.”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미지 관리는 필수. 전부 착한 척 꾸미고 있는데 인성이 좋거나 나쁘거나 차이는 없었다.
차이는 그 사실을 들키느냐 마느냐에서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POT 엔터는 그깟 티끌은 얼마든지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회사고.”
회사 선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연예인은 계약을 끊고 우리도 몰랐다는 식으로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그전까지 충분히 단물을 빨았다면 아쉬워할 것도 없었다.
스타가 되고 싶은 지망생은 넘쳐난다. 그중에서 하나를 적당히 골라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면,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들 수 있었다.
“아깝긴 한데, 건드리기가 애매하구만.”
하눌 엔터의 그늘에 들어간 연습생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랬다간 하눌 엔터 쪽에 들켜서 복잡해질 수도 있었다.
“쯧, 딱 우리 쪽 페이스였는데. 굴러들어온 복도 모르고 걷어차는 놈일 줄이야.”
아쉬움은 계속 남았지만, 특별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잊히는 듯했다.
하눌 엔터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다는 녀석이 떠드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 * *
“…함이원이라는 녀석이 그랬단 말이지?”
“네. POT 엔터도 별거 아니라고…. 제가 똑바로 들었습니다. 실력이 나쁘지 않아서 직원분들도 오냐오냐하시니까 점점 기가 살아서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오는 거 같았습니다.”
그 나이 또래가 할만한 행동이다. POT 엔터 오디션에 단번에 합격했으니 얼마나 기고만장했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POT 엔터를 얕보는 발언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POT은 박옥태의 땀과 눈물이 담긴 인생 최고의 걸작. 그 누구에게도 폄하 당해서는 안 되는 자존심이었다.
“데뷔조에 들어갔었다고?”
구, 어쩌구라는 이 연습생 말은, 이번에 하눌 엔터에서 데뷔시킨 아이돌 그룹에 함이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네. 회사 들어온 지 세 달 만에요. 게다가 하눌이 원래대로 인성을 봤으면, 떨어져야 마땅한 애였습니다. 배경이 든든하던지, 회사랑 무슨 커넥션이 있다고밖엔….”
“그런 상황이어야 이해가 가지. 암.”
“네?”
“아니. 넌 몰라도 되고.”
애초에 하눌 엔터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면, 그쪽을 선택할만했다.
배경이 탄탄한 야심 넘치는 녀석이라면 자기 멋대로 휘두를 수 없는 POT보다는 하눌을 고르는 게 영리한 선택이다.
“…야심만만하다?”
괘씸하지만 가면 갈수록 탐나는 새끼였다. 이런 녀석 하나만 있으면 아이돌 그룹 하나 데뷔시켜서 글로벌하게 노는 건 일도 아니리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 다이아몬드 알을 낳는 백조였다.
“이걸 어떡한다…?”
알면 알수록 탐나는 인재인데 애먼 사람 품으로 도망가버렸으니. 입맛만 다시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구, 뭐시기라는 연습생은 아래 직원들에게 듣기로는 꽤 유망한 연습생이라고 들었다.
외모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고, 노래나 춤도 상위권 수준이라고 했다. 작곡을 한창 배우는 중인데 재능이 있는지 배우는 속도가 남다르다고.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 했던가? 워낙 대단한 뒷배를 둔 애들이 자주 보이다 보니 국회의원 아버지가 놀랍지는 않다.
다만 POT 엔터가 확고한 1등 아이돌 기획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도움은 얻을 수 있을 듯싶었다.
머릿속으로 득실을 따지며 앞에 있는 연습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애새끼는 대표인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제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함이원이 POT 엔터에서 오디션 봤었다고 얘기하면서, 대표님 얘기도….”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네…. 이제 대표님 안목도 한물갔다면서 최근 투자 얘기를….”
정곡을 찔린 듯 가슴이 뜨끔했다. 순식간에 기분을 잡쳤다.
회사를 상장하면서부터 아이돌에만 의지해서 회사를 운영해나가기 어렵게 되었다.
아이돌을 키워내는 게 POT 엔터의 정체성이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자자의 눈에 걸핏하면 문제를 터뜨리는 아이돌은 리스크 덩어리. 그들은 안전한 투자처를 원했고, 박옥태 대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문어발식 경영을 하게 되었다.
웹소설이나 웹툰을 바탕으로 웹드라마를 제작하는 제작사를 세우고 아이돌 멤버들을 출연시켰다. 10대, 20대를 겨냥한 코스메틱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하지만 하나같이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그뿐만 아니라 팬들로부터 ‘하던 일이나 잘해라.’라는 혹평까지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돌’ 분야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안목과 기획력을 지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안목 하나로 이 정글 같은 연예계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물갔다고? 내 안목이?”
“그보다 강한 표현이었지만…, 그런 의미였습니다.”
“강한 표현 뭐.”
“…아이돌 보는 안목이 후져져서 다른 사업도 건드는 거 아니겠냐고요.”
“이 건방진 새끼가…!”
최근 들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아이돌 기획사의 기세와 달라진 마케팅 기법에 위기감을 느꼈던 일이 떠올랐다. 정곡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곡 근처는 찔린 듯이 아팠다.
“넌 이만 나가봐. 하눌 엔터에 있던 애들이랑 연락되면 분위기라도 살펴보고.”
“네. 돌아가 보겠습니다.”
구, 어쩌구 연습생은 인사를 꾸벅하고는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한참 씩씩거리고 나서 상황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저 연습생이 함이원에게 좋은 감정이 없다는 것쯤은 빤히 보였다. 안 그랬다면 고자질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간질했을 가능성도 인지했다. 그렇지만 박옥태의 머릿속에서 함이원은 자신의 손아귀를 멋대로 빠져나간 괘씸한 놈으로 낙인찍혔다.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어주려고 했건만.
“이 괘씸한 놈을 어쩐다…?”
* * *
방송국에 압력을 넣는 건 부하 직원에게 말 한마디 넣으면 끝나는 간단한 일. 다만, 그 부하 직원이 까탈스러워서 성질대로 손봐줄 수는 없었다.
요즘 세대는 내부고발도 서슴지 않고 소문도 빨라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꼬리 잡히기 십상이라나?
방송국 직원들에게 함이원이 속한 그룹을 섭외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언급도 하지 않았다.
‘POT 엔터가 하눌 엔터의 신인 아이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뉘앙스만 풍겨도 알아서 경계하게 되어 있었다. 그 정도의 영향력이 POT 엔터에는 존재했다.
“쓴맛도 보고 그래야 세상을 보는 눈이 떠지는 거지. 세상 살아가는 법은 실전으로 배워야 하는 법이니.”
이건 심기를 거슬리게 한 애새끼에 대한 아주 가벼운 분풀이에 불과했다.
“나처럼 착한 어른이 어디 또 있다고.”
생각 없이 험담을 늘어놓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현실 파악도 제대로 하게 될 테고.
“쫄딱 망해서 POT 엔터로 빌면서 찾아오면 더 좋고.”
* * *
연달아 맞은 뒤통수가 얼얼했다.
“난 놈은 난 놈인가?”
아이돌 그룹에게 데뷔 초반의 노출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보다도 아이돌 기획사 대표인 박옥태가 잘 알고 있다.
하눌 엔터에서 홍보를 위해 신경 쓰긴 했다. 영화감독을 데려다가 뮤직비디오를 찍질 않나, 아이돌 광고라는 강수를 두질 않나.
하지만, 반복해서 대중의 눈과 귀에 들어가야 친근해지고, 각인되는 법.
음악방송은 한참 전부터 계획이 잡혀있어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 이후의 예능이나 음악 프로 중에 웬만한 쪽에는 손을 써둔 상태였다. 한동안 TV에서 보이지 않는 걸 보면 효과는 확실했다.
그런 줄만 알았다. TV 프로 여기저기에서 함이원의 얼굴을 보게 되기 전까지는.
“악! 제기랄!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손 봐줘야 한다고 했지!”
한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 그 후부터는 인기는 헤아릴 수 없이 커진다.
아무리 대형 기획사여도 섣불리 관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연습생 중에 구, 뭐시기라고 있지. 걔 데려와!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