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8
하눌 엔터 오디션
대화 내용을 보면 빼도 박도 못하게 POT 엔터 소속 연습생이었다.
게다가 자칭 실력파라고 뻐기는 모양새가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3대 기획사인 POT에 들어갔으니 잠재력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회사에 상당한 힘을 가진 친척이 있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발언을 듣고 나니 결국은 낙하산이구나 싶었다.
사춘기 남자애들이 얼마나 반항적이고 센 척을 해대는지 나는 실시간으로 지켜봐 왔다.
별의별 희한하고 무모한 짓을 해대고 대화에도 욕설이 난무한다.
하지만 진짜 일진처럼 삐뚤어진 녀석들과 겉으로만 센 척 폼 잡는 녀석들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본능으로 감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차이가.
내 눈으로 봤을 때 편의점에서 만났던 POT 연습생은 전자에 가까웠다.
아이돌의 인성.
형이 강조했던 아이돌 그룹의 성공에 필수 요소로 들어있던 것 중 하나.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시대엔 과거가 쉽게 폭로되곤 했다.
학교폭력이나 미성년자 음주, 흡연 제보가 언제 어느 순간에 터질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과거보다 진짜 성품을 숨기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인성이 쉽게 바뀔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화면에 쉽게 노출되는 이상 언젠가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사회면에 나오는 음주운전이나 마약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끝장.
그 본인은 당연히 나락이고 같은 팀도 덩달아 피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인성이 나쁘면 팀 케미에도 악영향을 준다.
더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과 몇 년이고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지옥 같은 감옥에 갇힌 기분이겠지. 다 그만두고 나갈 수도 없고.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싶지만, 그런 불행을 겪고 싶진 않았다.
이 회사에선 ‘진짜’ 동료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POT 엔터는 실력과 외모를 가장 우선으로 둔다고 평가받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POT 엔터와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잘못 생각했어. 회사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속한 사람도 중요했던 거야.”
사회 경험이 부족한 내게는 뼈저린 깨달음이었다.
* * *
또라이 보존의 법칙처럼, 파탄 난 인성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POT 엔터처럼 거름망조차 없다면 함께 데뷔할 멤버에 인성 쓰레기가 하나쯤 포함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저번 같은 실수는 하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아티스트의 인성을 중요시하는 기획사를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먼저 오디션 일정이 잡혀있는 기획사부터 확인에 들어갔다.
일정상 가장 먼저 오디션을 보게 될 회사는 여돌 1팀, 남돌 1팀을 기획해 런칭한 적이 있는 하눌 엔터.
매니저 출신 대표가 담당했던 배우들을 데리고 나와 세운 회사로, 아티스트의 의사를 존중해준다는 평을 받는다고 했다.
현오 형의 첨언으론 언론 대응이 서툴지만, 재정은 탄탄한 편이고 연습생을 공들여 뽑으며. 자체적인 작곡, 프로듀싱 쪽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했다.
나는 하눌 엔터의 기조를 알아보기로 했다. 연습생 계약을 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생겨 해지하고 다른 곳을 찾아 떠돌고 싶진 않았다.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지.”
다짜고짜 찾아갈 수도 없고 주변에 연습생인 애들도 없다. 아니, 아예 친구가 없다.
답을 못 찾고 끙끙거리다가 인터넷을 이용하기로 했다. 연습생들도 커뮤니티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그렇게 뒤적거린 결과 연습생 커뮤니티는 못 찾았지만, 관련 게시글에서 댓글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소속사를 예의주시하는 하눌 엔터 소속 배우나 아이돌의 팬들이 달아놓은 댓글을.
– 하눌 아티스트만 존중하면 다냐 팬들 니즈 좀 파악해라 굿즈 개구려
└그래도 하눌은 혹사는 안 시키자나ㅠ
└ㅇㅇ내새끼 소속사는 어휴…
– 홍보팀은 어디 수납돼있냐? 기사 꼴 봐라 하눌 아니고 어눌이냐 시밝
└하눌 언론 대응 구리기로 유명하지 그래서 인성 보고 사고 안 칠 애들로 뽑는다든데…
└애초에 언플할 문제를 안 만들겠다고? 사고방식 신박하네
└가능하겠냐 연예인 인성 다 거기서 거기
└거의 확정이던데 씨드한테 크게 데여서
– 하눌 대표는 예전부터 인성 존내 봤다 내배우가 하눌소속이라 앎
└그럼 SEED는 왜 그ㅈㄹ
└그래도 사회면엔 안나왔잖아………..
└사회면에‘만’ 안나옴ㅋㅋ큐ㅠㅠ
대강 이런 분위기의 내용. 완벽하게 걸러내진 못했어도 연습생부터 데뷔조까지 인성이 중요하게 고려될 듯싶다. 대표가 인성을 상당히 따진다는 뉘앙스를 보면 사실 같았다.
실제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봐야 똑바로 결론 내릴 수 있겠지.
정보수집은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현오 형에게 들은 이야기는 유용했지만, 아이돌의 입장에 한정되어 있었다. 연예계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 산업의 구조와 흐름에 대해 공부하면서 지내기를 일주일.
하눌 엔터의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POT 엔터 오디션은 나만 혼자 봤기 때문에 공개 오디션의 공기가 낯설었다.
영상 심사를 통과해 현장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그렇지만 어중이떠중이를 가리는 정도의 심사라고 들어서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을 때도 무덤덤했다.
중요한 건 현장 심사.
지원자들은 대부분 서로 안면이 있는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지막하게 떠들며 긴장을 풀었다.
다른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온 게 아닐까. 그들은 하나씩 오디션을 마치고 사라졌다.
오디션장에서 빠져나오는 지원자들은 후련해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눌 엔터의 오디션은 3일간 진행되는데 내가 첫날의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39번 들어오세요.”
드디어 내 차례다.
오디션도 두 번째라고 처음보단 덜 긴장됐다.
합격하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심사받는 곳엔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주르르 앉아있었다.
서류를 넘겨보던 그들은 힐끗 나를 곁눈질하다가 다시 똑바로 고개를 들어 나를 훑었다.
“안녕하세요. 39번 함이원입니다. 열여덟 살이고 특기는 노래입니다.”
“함이원 지원자, 진짜 연습생 생활한 적 없어요? 이 비주얼을 놓쳤으면 캐디들 전부 징계받아도 할 말 없는데.”
가운데 앉은 중년의 남자는 인상을 썼다. 명패에 ‘대표 손중기’라고 적혀 있었다.
“없습니다. 캐스팅 받아서 오디션만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어딘데요?”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POT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POT? 거기서 이 얼굴을 떨어뜨렸다고? 발연기를 한대도 말이 안 되는데요. 딱 POT에서 낳았다고 해도 되게 생겼는데?”
“합격했지만 회사 비전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계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POT 엔터를 걷어차고 하눌에 왔다는 이야기에 심사위원들이 술렁거렸다.
“으음. 그럼 우선 노래부터 보죠.”
“노래는 ‘눈물’ 부르겠습니다.”
곡 제목을 말하자 또 심사위원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극도의 가창력과 표현력을 요구해서 커버하기 어려운 곡이었다.
오디션에서 기피해야 할 노래로 손꼽히는 곡. 하지만 현오 형의 목소리라면 완벽하게 소화하고도 남을 것이다.
여성 심사위원은 선곡에 대한 지겨움을 애써 숨기며 내게 말했다.
“MR은 준비했으면 틀어도 돼요.”
“무반주로 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진심이냐고 묻고 싶은 것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시작했다.
막상 노래를 시작하니 심사위원들은 시선도 떼지 못한 채 숨죽여 노래를 감상했다.
그 상황은 노래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내 숨이 다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이 곡을, 게다가 어떻게 무반주로 소화하나 막막했는데 즐거운 오산이네요.”
“왜 무반주로 했는지 알겠어요. 똑똑한 전략이네요. 경력만 보면 초본데 10년은 이 바닥에서 구른 실력 같달까. 보이스도 매력적이고.”
현오 형과 나, 우리의 음악을 어떻게 보여줘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깊게 고심했다.
그리고 그 결론이 무반주 노래였다. 순수한 목소리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컬만으로 감동한 게 언제였나 싶네요.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댄스인데 준비됐나요?”
“문스톤의 춤춰 준비했습니다.”
이번엔 MR을 틀고 박자에 맞춰 춤을 선보였다. PT 받은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격정적으로.
“흐음.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어서 그런지 춤은 약간 어설픈 면이 있네요. 힘 조절이 부족한 건 본인도 알죠? 그렇지만 잠재력은 충분해요. 박자 감각도 좋고 유연해서 춤선도 예쁘고, 표정도 좋았어요.”
내가 표정 연기를 했던가…?
형과 함께 춤췄던 기억을 떠올려서 저절로 지어진 표정이 아니었을까.
“그 외에 따로 보여줄 특기 있어요?”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기타, 플루트, 드럼, 거문고 다룰 줄 압니다.”
“…그걸 전부요? 어느 수준까지 연주할 수 있어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제일 편하고 나머지는 몇 번 연습해야 실수 없이 완곡 연주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네…?”
심사위원들 표정이 이상해졌다.
“바이올린 전공이니 거기까진 이해해도 플루트? 드럼? 거문고는 어쩌다 배웠어요?”
“그냥 소리가 좋아서 반년 정도 배웠습니다.”
학교 다니고 다른 악기와 병행해 배우느라 실제 연주 시간은 별로 투자하지 못했다.
“거짓말 아니죠?”
“악기가 준비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바이올린만 들고 왔는데….”
“하…. 됐어요. 안 봐도 알겠어요. 내가 어이가 없어서. 보석이 들어왔네. 이번만큼은 인성 테스트 건너뛰고 싶어질 정도야.”
“안 하시면 안 되는데요. 전 그것 때문에 여기 오디션 보러 왔습니다. 대표님.”
희한한 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 나를 찔렀다.
“인성 테스트를? 그거 때문에?”
“공정하게 테스트받고 싶습니다.”
특혜를 받고 싶지도 않고, 다른 지원자에게 특혜를 주지도 않기를 바랐다.
하눌 엔터에 호감 가진 이유가 바로 ‘인성’을 까다롭게 따진다는 점이니까.
“우리 연습생이 돼서 데뷔하게 되면 자체적으로 조사하게 됩니다. 만약 진술한 내용이 거짓이라면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이 오디션도 녹화하고 있기 때문에 증거 영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오. 생각보다 꼼꼼한데.
“그럼 몇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우선 범죄에 연루된 적 있나요?”
“아니요.”
“학교생활은 문제없나요? 학교폭력이나 왕따 관련된 일은?”
“학교생활은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은, 당연히 없고, 왕따는…. 제가 친구가 없는데 제가 왕따일까요?”
“…?”
질문했던 신인 개발 팀장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대표는 옆에서 허허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왕따시킨 적은 없는 거죠?”
“네.”
“음주나 흡연은요?”
“둘 다 해본 적 없습니다.”
그 뒤로도 질문이 꽤 많았다.
연습생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데뷔조를 뽑을 땐 거의 청문회 수준일지도?
왠지 하눌 엔터가 마음에 들었다. 인성이 바닥을 기는 그런 녀석들과 한 그룹이 될 리 없을 테니.
모든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신인 개발 팀장이 나를 붙잡았다.
“원래는 회의를 통해 일주일 후에 오디션 결과를 발표합니다만, 우리는 절대 함이원 지원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예외적으로 지금 합격 사실을 알려드리기로 했어요. 다른 지원자에게는 함구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고비를 넘겼다.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합격했겠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괜찮은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갓 아이돌에 가까워지는 한 걸음이었다.
환하게 웃음 짓자 담당자는 한결 긴장이 풀어진 표정으로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원 씨, 우리랑 연습생 계약할 거죠? POT 엔터에서처럼 걷어차지 않을 거죠?”
“아, 부모님과 상의는 해봐야겠지만 계약할 것 같아요.”
그걸 걱정했었나. 솔직히, 확답은 할 수 없다. 아직도 계약을 안 할 여지는 남아있으니까.
“팀장님, 혹시 한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기 견학해보고 싶은데요.”
“제 재량으로 가능하겠네요. 지금은 지원자들이 있어서 조금 곤란하고 30분 정도 기다릴 수 있어요? 그때는 괜찮을 것 같아요.”
1층 카페에서 기다리길 30분. 신인 개발 팀장이 나를 찾으러 왔다.
이 견학은 이미 하눌 엔터에 소속된 연습생들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데 있었다.
팀장님이 안내해주는 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연습실에 도착했다.
“여기는 남자 연습생들이 댄스 연습하는 장소예요. 이원 씨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 많은 시간을 보낼 곳이죠. 연습실은 몇 개 더 있는데 스케줄에 따라 사용하면 돼요.”
창문으로 연습실 안을 쳐다봤다. 자율연습 시간인지 트레이너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연습실엔 4명이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털썩 주저앉아서 서로의 실수를 고쳐주거나 웃음을 터뜨리고 장난치는 모습이 썩 괜찮았다.
한정된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다 보면 날카로워질 만도 한데 분위기가 꽤 밝았다.
다른 연습생은 못 봤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하눌 엔터는 내 시험을 통과했다.
“참, 우리 연습생 중에 이원 씨랑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 있는 거 알아요?”
“그런가요?”
“안면은 없나 보네요. 현대무용 전공인데 이원 씨보다 1살 많아요.”
미리 친해지면 좋을 것 같다. 학교 선배이기도 하니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도 편하고.
“이름이 뭔데요?”
“남초록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