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82
벌칙 수행 (1)
리얼 예능 형태의 자컨을 올려두고 초가삼간의 반응이 어떨지 숨죽여 지켜봤다. 오란과 가까워선지 객관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직원분들게 여쭤봤다. 자컨에서 나온 오란의 성격이 진짜라는 사실을 팬들이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고.
“눈치채신 분이 있어도 많이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이대로 자컨 회차가 더 진행되면, 점점 늘어나게 되겠죠.”
“처음부터 너무 강도가 셌을까요?”
“나중에 가봐야 알겠지만, 오히려 좋아하시는 분도 있으니까 미리 걱정하지 마요.”
“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원 씨도 참 오란 씨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
기겁하고 쳐다보자 홍보팀 직원분이 후후하고 웃으면서 나를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하눌 엔터에 무슨 유행이라도 도나? 왜 회사에 있는 분들이 다들 나를 흐뭇하게 보는 거지?
“으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진저리를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회사에 들른 김에 가볍게 질문했을 뿐인데. 휴.
오늘 회사에 방문한 이유는 나우혁 배우와 녹음 일정이 있어서였다. 전에 부탁받았던 추가 OST도 작곡, 편곡이 끝나서 녹음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우혁 배우님 캐릭터를 테마로 한 OST 먼저 녹음한 뒤에 시간이 남으면 다른 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나우혁 배우님이 연기 연습과 동시에 보컬 선생님께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니 단번에 녹음을 끝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회사 로비에서 나우혁 배우님을 기다렸다. 다른 멤버들은 라디오 스케줄이 있어서 매니저 형은 거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이원 씨 맞죠?”
경쾌한 인사와 동시에 등장한 분은 오늘의 주인공, 나우혁 배우님.
“안녕하세요. 테오라 함이원입니다.”
“이원 씨 얘기는 종종 들었어요. 천재 작곡가라고요.”
“…칭찬 감사합니다. 나우혁 배우님도 멋있으세요.”
천재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겉치레에 하나하나 과민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피곤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그럼 녹음실로 가볼까요?”
매니저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와 함께 회사 안에 있는 녹음실로 향했다. 녹음 준비를 시작하자 우리 앨범 녹음할 때 오셨던 프로듀서님도 뒤따라오셨다.
아무래도 내가 어려서 프로듀서로서 나우혁 배우님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을까? 살짝 자존심이 상하지만, 회사의 노파심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프로듀서님이 자기는 그냥 구경꾼이라고 우기기도 했고.
“형은 가서 마실 것 좀 사다 줄래?”
매니저 아저씨에게 마실 것을 부탁한 나우혁 배우님은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옆에 있던 프로듀서님이 슬그머니 나와서 나우혁 배우님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내 이름이 잠시 스쳐 가듯 들렸지만, 표정을 보니 부정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모르는 척했다.
“이원 씨, 살살해주세요.”
“네?”
“저 본업 배웁니다. 눈을 저 아래로 낮춰주세요.”
도대체 프로듀서님이 뭐라고 하셨길래 저렇게 겁을 먹으셨는지 의아했다. 특별히 부탁까지 하셨으니 너그러운 녹음을 해보기로 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네.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날의 녹음은 만족스럽게 마칠 수 있었다. 다만 나우혁 배우님의 녹음이 끝난 후, 의뢰받은 추가 OST를 녹음하지는 못했다.
* * *
자체 제작 콘텐츠 보물찾기 게임에서 꼴찌를 한 나와 오란이 여장 벌칙을 수행하는 과정은 다음 편에서 등장하게 됐다. 예고만으로도 코티지들은 한껏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뉴튜브 댓글 창이 여장 얘기로 가득하단다.
혹시나 오란이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자컨 마지막 즈음에서 여장 벌칙을 받은 나와 오란은 한껏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실 우리는 여장 벌칙을 받고도 무덤덤했다. 다른 멤버들이 신기해할 정도로.
오란이야 뻔뻔함 MAX에 시키는 건 뭐든지 한다는 주의라 그랬고, 나는….
“이원 씨는 정말 위화감이 없네요.”
메이크업을 담당해주신 분도, 스타일링을 해주신 코디님도 골격을 가리니까 여자로밖에 안 보인다고 하셨다.
키 때문에 약간 멈칫거리게 되지만, 요즘은 키 큰 여자분도 많았다. 자세히 뜯어봐도 감쪽같이 속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두 분, 자신의 실력을 자화자찬하시는…?
“너 여장에 왜 이렇게 익숙해? 치마 안 어색해? 진짜 이상하네.”
나와 함께 메이크업을 받고 가발을 쓰고 원피스로 갈아입은 오란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다리를 쩍 벌리고, 소파에 두 팔을 걸친 매우 대담한 자세로.
지금 자컨 촬영 중이라는 거 잊진 않았겠지?
하늘하늘한 프릴이 달린 연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오란은 자신의 차림새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만 보면 완벽하게 여자앤데 말이다.
“그래? 어릴 때 나한테는 여자 옷, 남자 옷이라는 구분이 없었거든. 우리 부모님이 막 섞어서 입히셔서. 아무도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어색하진 않아.”
게다가 머리까지 남자애치고는 긴 편이어서 우리 집 주변에 사는 이웃분들은 내가 남녀 쌍둥이라고 생각하셨다.
왜 쌍둥이 둘이 같이 다니지 않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 분명히 여자애처럼 입었을 때도, 남자애처럼 입었을 때도 ‘함이원’이라는 이름을 밝혔는데도.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이웃분들이 ‘나도 이원 엄마 마음을 이해해. 나라도 예쁜 옷 입히고 싶을 거 같아.’라고 하는 바람에 그만둘 계기가 없었다.
“아주 어릴 때 치마 입히기도 한다던데. 그게 기억이 나냐?”
오란이 내 과거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두세 살의 기억은 안 날 수도 있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종종 치마를 입곤 했었다.
같은 반 친구가 여자애의 옷차림을 한 내게 ‘나랑 사귀자!’라고 외쳐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서 헷갈리는 옷차림은 그만두게 되었다.
피해자를 더 만들 수 없다면서 부모님께서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셨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그런 관계로 내 어릴 적 앨범은 여자 옷을 입은 사진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이거 보면 알겠지.”
아빠가 전에 가족 앨범을 정리하면서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서 클라우드에 저장해두셨다. 사진 양이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다 디지털화하셨는지.
아빠가 그림 작업하실 때 사용하려고 그러셨다는데, 그냥 언제 어디서든 보고 싶어서 그러신 것 같다.
가족 클라우드에 들어가 어릴 때 앨범을 찾아서 폰을 오란에게 넘겼다.
“…뭘 보라고…. 뭐야! 이게 진짜 너야? 쌍둥이 아니고?”
매크로처럼 이웃분들에게서 들었던 말이 똑같이 나왔다.
펄쩍 뛰는 반응에 같이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스타일리스트, 코디네이터님도 궁금했는지 오란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곤 입을 틀어막으셨다. 입은 왜…?
“나 맞아. 초등학교 2학년 이후부턴 치마는 안 입어서 오랜만이긴 한데, 별로 안 어색하네?”
내가 입은 옷은 가죽 치마에 어깨를 드러내는 오프숄더 형태의 실크 셔츠였다. 시스루뱅 앞머리에 포니테일로 길게 묶은 흑단 같은 가발이 한 세트였다.
키도 큰데 왜 통굽 부츠까지 신으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시키는 대로 야무지게 챙겨 신었다.
“굽 높은 신발은 처음이라 불편하긴 하다.”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여자 옷이 익숙한 남고딩이라니?”
“그럴 수도 있지.”
“와? 이거 나만 알아선 안 돼. 아, 어차피 내가 어릴 때 사진 코티지들한테 보여준다고 한 적 있지? 멤버들이랑 같이 보여주면 되겠네. 그러면 함이원, 네 어릴 적 사진 보여주는 게 뜬금없진 않겠지.”
오란 옆에 앉아있던 분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음. 그러던지.”
어릴 때 사진을 공개하는 건 어렵지 않아서 흔쾌히 사진을 제공했다. 이게 매사에 시큰둥하던 오란이 흥분할 정도의 일인가 싶었다. 난 별 감흥이 없는데.
“네가 팬들의 마음을 알긴 하겠냐.”
“여기서 왜 팬들 마음이 나와?”
“쯧쯧.”
혀를 찬 오란은 자기 폰으로 사진을 보내더니 내 휴대폰을 돌려줬다.
“그럼 나가서 회사 한 바퀴 돌아보실까. 얼마나 놀랄지 기대되는데.”
오히려 구경꾼들의 반응을 즐기려고 하다니. 분명히 벌칙이라고 했는데 왜 오란은 벌칙 받는 사람 같지 않지? 인물은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각도 없이 문을 열고 당당하게 워킹을 시작했다.
* * *
바쁜 리더, 초록을 대신해 서혼은 SNS에 올라온 글은 일차적으로 확인하고, 테오라 팬카페에 올라온 글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코티지(Cottage)이라는 팬덤 이름이 얼떨결에 지어진 탓에, 뒤늦게 의미를 담아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아무리 이원이를 놀리는 재미가 있더라도 코티지라는 이름이 팬덤명으로 선택될 거라고는 멤버들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져서 작명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귀찮지는 않았다.
“작가님이신가? 글솜씨가….”
하나하나 읽어나가는데, 짧은 글인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톡톡 튀는 감성과 무시무시한 센스를 보여주는 분도 있었다.
코티지들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라 오히려 뿌듯하다고 할까.
초록이한테서 일을 넘겨받기를 잘한 것 같다.
“…좋아요가 많이 달린 이유가 있구나.”
인기글로 등록된 게시글은 팬들의 공감을 많이 받을만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팬들이 테오라가 지치고 힘들 때 언제든 쉬고 갈 수 있는 아늑한 집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뜻이었다.
의미가 직관적이면서도 따스했다. 아마도 이걸로 결정되지 않을까?
단편 소설을 써서 올린 분도 있었다. 대단한 정성이었다. 멤버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애들, 팬카페 가입은 했나?”
초록이는 팬카페 가입했고, 박하는 가입했을 듯하고, 나머지 셋은 아직 가입 전일 것 같았다.
데뷔 후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느라 팬카페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을 게 뻔히 보였다 가입만 해뒀을 가능성도 컸다.
“가입 안 했으면 하라고 해야겠네.”
팬들이 모인 팬카페이기도 하고, 테오라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 분위기는 훈훈했다.
드물게 베베 꼬인 글이나 가시 돋친 글이 올라오면 바로 삭제되니까, 애들이 자주 들러도 좋을 것 같았다. 팬들이 쓴 글을 보면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 이거….”
코티지로 삼행시를 지어서 올린 글이었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임팩트가 대단했다. 다른 팬들도 재밌었는지 글 아래에 댓글이 수십 개 달려 있었다.
[코 : 코티지,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티 : 티라노 사우르스보다 더 강한
지 : 지구 넘버원 아이돌의 팬이야!]
팬들은 다들 유쾌하게 받아들여서 농담을 이어갔다. 특히 ‘티’에 해당하는 더 강력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몸부림이 댓글에서 보였다.
티-익스*레스보다 무섭다거나, 티파*보다 비싸다던가, 티 본 스테이크보다 맛있다던가….
아이돌 팬덤 별로 분위기와 성격이 다르다던데, 우리 코티지는 장난기가 넘치는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
“이원이 놀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나.”
친구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가산점을 줄 수 있다. 그 장난기에 적응을 할 수 있다면.
다른 글을 읽으며 메모를 남기다가 시간을 봤더니 벌써 2시였다.
“앗, 애들 메이크업 끝났겠는데?”
메이크업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회사 휴게실 한편에서 팬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한다는 게 너무 집중했던 모양이다. 조금 늦었을지도.
서둘러서 노트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컥?
회의실 문은 열자, 근처를 지나가던 미녀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