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87
인연
고양이 이동장을 소중히 안고서 걷는 여섯 명, 아니 매니저 형까지 포함해서 일곱 명은 주목의 대상이었다.
키는 전봇대같이 큰 사람들이 고양이를 호위하듯 둘러싸서 이동하는 모습이었으니, 곁눈질이 아니라 대놓고 쳐다보며 감시해도 이해할 수 있다.
“얼른 돌아가자.”
“그래. 우리 너무 수상하다.”
두 형들은 마스크를 쓰고도 모자랐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충격이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다. 동물병원에서 숙소까지 거리가 가까워서 그나마 다행이다.
멤버들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숨을 고르고는 카메라와 고양이 용품을 들고 하나둘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부모님께 상황을 미리 전달해둬야 해서 밖에서 통화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아빠에게 고양이를 데려갈 수도 있다고 전하자 데려와도 된다는 허락이 즉시 떨어졌다.
[언제 데려오는 거니? 아빠가 뭘 준비해야 할까?]대놓고 기뻐하는 기색이셨다. 두 분 다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숙소 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은 내 빈자리를 크게 느끼시는 듯했다. 집이 텅 빈 것 같다는 이야기를 지나치듯 듣기도 했다.
간단하게 용건만 전한 후 통화를 마쳤다.
현이가 집에 가면 부모님께 얼마나 귀염을 받을지 다 보였다. 현이를 집으로 안 보내면 서운해하실지도?
어딘가 망설여지는 마음이 남아서 고민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원아,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이원아~.”
불을 끄고 현관 앞에 멤버들이 전부 모여서 나를 맞았다. 서혼 형은 초에 불을 붙인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아, 내 생일이었지…?
“고마워, 다들.”
“놀랐지! 서프라이즈~.”
“정신없어서 깜짝 파티는 포기했을 줄 알았는데.”
내 머리에 고깔모자를 씌우던 박하가 놀라서 손이 엇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고깔모자를 보며 허망하게 물었다.
“뭐야! 알고 있었어?”
“내 생일이 기억하기 쉬운 날짜긴 하잖아.”
4월 5일, 식목일이니까.
“그렇긴 하지마안~! 오늘 파티는 대실패야!”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쉬울까?
뭐, 그래도 숙소 들어올 땐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나갈 때까지만 해도 멤버들의 작전을 전부 눈치챈 상태였는데.
서프라이즈 계획은 어쨌든 성공인 셈이다. 이 성공의 일등 공신은 고양이 함현이고.
“소원 빌고 촛불부터 꺼.”
초록 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촛농이 뚝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소원을 빌었다.
생각나는 소원은 딱 하나였다. 테오라의 성공, 우리가 갓 아이돌이 되는 것.
후?
“소원 빌긴 했어? 너무 빨리 끄는데?”
“짧고 굵게 빌었어. 매일 생각하는 소원이라서.”
“이원이는 별똥별에 소원 빌 타입이구낭!”
?낭? 아, W 라이브 켜져 있구나. 오란의 말투로 라이브 방송이 켜져 있는지를 구분할 수 있다.
“떨어지기 전에 소원 세 번 빌어야 한다며? 돈돈돈, 하고 빌려고 했는데. 떠오르는 한 글자짜리 단어가 그것뿐이라.”
“과연.”
지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에 유성이 떨어지는 날 빌어보겠구나. 분명히.
한창 W 라이브가 진행 중인 휴대폰을 구경했다. 코티지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와 이모티콘을 끊임없이 보내왔다.
“생일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축하만으로도 남은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원래 생일에 뭐해?
“생일에 뭐하냐고요? 원래는 나무 심으러 갔어요.”
“진짜로?”
“제가 식목일에 태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하셔서요. 나무 심는 행사에 참여하고 그랬어요.”
팬들은 신기해했다. 주위에 식목일을 생일로 둔 사람이 있지만, 나무를 심으러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
“그럼 우리도 작은 화분이라도 살걸!”
“괜찮아. 우리끼리는 생일에 밥 한 끼 같이 먹기로 정했으니까.”
– 현이가 이원이한테 온 선물이지!
– 어떻게 생일날에 딱 만나지? 운명이다!
– 냥이 보여주세요~
“현이는?”
현이가 놀랄까봐 폭죽도 못 터뜨리고, 축하할 때도 목소리 낮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담요를 덮어 어둡게 만들어둔 이동장을 나와 서혼 형이 쓰는 방에서 조심스레 들고 나왔다.
입구를 열어보자 안에 있던 현이가 나를 멀뚱하게 보다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낯선 곳에 와서 살짝 경계하는 듯한 현이의 모습에 다시 어미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려줬다.
“으르르냐?, 우르르냐아?.”
그제야 현이는 내 무릎에 머리를 비비더니 발톱을 세워서 옷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옷을 뚫고 피부를 긁었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테오라 멤버들과 코티지가 고양이의 등반 장면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현이는 기어이 어깨까지 기어 올라와서 안착했다.
갸르릉?
골골송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현이가 이원이를 알아보나 봐.”
“어미 고양이로 아는 거 아니야?”
초록 형은 닭고기 사진이 그려져 있던 고양이용 영양식을 그릇에 덜어서 내밀었다. 냄새를 맡으면 따라올까 싶어서 내민 것 같은데 현이는 홱 고개를 돌렸다.
“이원아 네가 해볼래?”
서혼 형의 권유대로 그릇을 현이 가까이에 대서 냄새를 맡게 해줬다가 바닥에 내려뒀다. 그랬더니 어깨에 올라타 있던 현이가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와서 영양식을 ?? 먹기 시작했다.
“이원이랑 안 떨어지려고 하겠는데?”
“내 생각도 그래.”
“현이가 이렇게 말하는데. ‘이미 이원을 집사로 정했다. 못 물러.’ 라고.”
초록 형이나 서혼 형이 은근하게 고양이를 키우라고 부추겼다. 지온은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도 된 양 말을 꾸며냈다.
“그냥 이원 형이 키우면? 우리도 도울게!”
“나도 찬성! 현이도 여기서 사는 게 더 좋을걸! 그치, 현아~?”
자신만만하게 물그릇을 내민 오란이 하악질을 하는 현이에게 퇴치당했다.
어쨌든, 멤버들 전원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안 그래도 동요하고 있던 마음이 흔들렸다.
냉정하게 보면 집에 보내는 게 현이에게 더 행복할지도 모르지만…. 현이랑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순 없었다.
“함현, 형이랑 같이 살래?”
냐아?
“진짜 대답한 거라면 좋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고양이를 두고 묻는 게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면서도 괜히 물어봤다.
“함현, Yes면 야옹 두 번, No면 한 번. 야옹야옹해.”
“지온아, 큭.”
점잖게 지온을 설득하려던 서혼 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른 멤버들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지온을 말리지 않았다.
웃음기를 싹 뺀 지온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너, 이원이랑 같이 살 거야? 대답해야 이원이랑 같이 여기서 살 수 있어. 알았으면 야옹 두 번.”
…냐아, 냐아-
“…!”
두 번의 야옹!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멤버들을 돌아보자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다들 들었지?”
“어! 들었어! 우리만이 아니라 코티지들도 들었을걸?”
깜빡 잊고 있던 라이브 창을 보자 팬들도 자기가 들은 두 번의 뚜렷한 울음에 놀라고 있었다. 절묘한 우연이겠지만,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이번에도 두 번 야옹하면, 현이는 천재 고양이인 거야!”
박하는 한 번 더 확인하기를 원했다. 오란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생글거리고 있었지만, 한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우연의 일치에 난리를 피우는 우리가 우스운 게 분명했다.
“믿음이 없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지온에게 믿음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타격이 크다. 누구보다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사람에게.
– 한번만 더 물어봐요 이원 오빠!
– 쟤 고양이 맞음?
– 인간의 영혼이 들어간 게 틀림없음ㅋㅋㅋㅋ
– 또 두 번 대답하면, 그땐 빼박이다…
– 현이는 천재고양이!
“여러분도 궁금할 테니까, 다시 한번만 물을게요. 현아, 형이랑 같이 살래?”
냐아? 냐앙!
“뭐야! 또 두 번 대답했잖아!”
내심 바라던 결과이기 때문인지 놀람보다는 감격이 앞섰다.
우연이 겹친 결과이더라도 이제는 내 멋대로 믿어버리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누구 하나 피해 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함현, 네가 바란 거야. 이제 번복 못 해. 넌 형이랑 같이 살아야 해. 알았어?”
영양식과 물을 야무지게 챙겨 먹은 현이는 양반다리로 앉은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식빵 모양으로 웅크렸다. 어지간히도 편한지 다시 골골거리다가 하품을 하기도 했다.
작은 생명체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 이원아.. 입술 찢어지겠어ㅋㅋㅋㅋ
– 얼마나 좋으면.. 울 이원이 현이랑 천년만년 살아! 거기에 나두♡
– 훈훈~ 미소년과 고양이 넘 좋다~
– 똑똑! 여기가 천재 고양이 함현 사는 곳인가요?
“생일 선물로 현이가 와줬나 봐요. 제가 받아본 생일 선물 중에 제일 예뻐요. 팬 여러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행복한 생일이 됐어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카메라를 응시하자 채팅 창의 움직임이 멎었다.
뭐지? 오류가 났나 싶어서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그제야 채팅이 재개됐다.
– 와…
– 뭐였지…
– 한순간에 천국을 본 것 같은데..? 나만 그래..?
– 압도된다는 게 이런 건가…
– 채팅 멈춘 거 봤어요?ㅋㅋㅋㅋㅋㅋㅋ
– 다들 채팅 치는 것도 까먹은 듯ㅋㅋ
– 맨얼굴로도 이럴 수가 있구나
– 이원이 부모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신인류 아님?
“무슨 일 있었어요?”
“여러분, 아까 제가 말씀드렸죠?”
초록 형이 끼어들더니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동물병원에 오기 전에 나눴던 이야기가 따로 있나 보다.
“나도 알려주면 안 돼?”
“안 돼요. 함이원 씨. 그건 우리 멤버들과 코티지의 행복을 하나 빼앗아 가는 거거든요.”
일부러 조르지도 못하게 존대로 말하는 거구나, 초록 형은. 알았다고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 네!!
– 진짜네.. 이럴수가..
– 어디 산골짜기에서 살았다던가…?
– 이원이 XX예고 나왔다며?
– 천연! 천연이 나타났다!
– 이게 연기가 아니라니.. 세상에!!
“이원아. 부모님께 연락드려야 하지 않을까? 매니저 형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내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훤히 드러났지만, 순순히 따랐다.
“코티지들 오늘 라이브는 여기까지 할게요! 파란만장한 방송이었네요. 깜짝 생일파티만 보여드리려고 했던 건데 말이죠.”
“죄송해요. 조심하고 다닐 테니까 여러분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현이는 테오라 여섯이서 열심히 챙길게요. 라이브 시간이 길어진 것 같은데, 다들 좋은 밤 보내세요! 다음에 또 봐요~.”
“여기까지 테오라였습니다!”
“돌아올게요, 코티지에게로!”
맺음말을 마치고 나서 W 라이브를 종료시켰다. 무릎에 기대 잠든 현이를 조심히 들어서 서혼 형과 내가 쓰는 방에 옮겨뒀다.
서혼 형이 동물병원에서 사온 고양이 방석을 내 침대 위에 올려뒀길래 그 안에 넣어줬더니 깨지도 않았다.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구경도 못 했는데,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숙소는 파티룸으로 바뀌어 있었다.
‘IWON’이라는 글자와 함께 알록달록한 풍선이 달려 있고, 테이블과 추가로 펼쳐진 상에는 지온이 요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리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전부 내 까다로운 입맛에 맞춘 메뉴들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내가 망쳤네, 미안.”
“잘 먹기나 해. 제톤이 짧은 시간에 다 준비하느라고 수고 많았으니까.”
“고마워, 지온.”
“다 앉아. 그리고 맛있게 먹어. 그걸로 기쁘니까.”
“지온 혀엉! 너무 멋있어!”
달라붙는 박하와 귀찮다고 떼어내는 지온의 실랑이가 짧게 끝났다. 그 후 멤버들과 자리에 앉아서 다 같이 음식을 나눠 먹었다.
테오라의 멤버여서 행복한 하루다. 그리고 앞으로는 현이라는 행복이 하나 더 추가되겠지.
현오 형에게 새삼 고마웠다. 이 인연을 만나게 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