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90
우당탕탕 코티지 (2)
“이, 이게 무슨…?”
어이가 없어서 말까지 더듬게 됐다. 뉴튜브 광고를 찍었길래 축하해주려고 했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다. 광고 첫 장면부터 대뜸 각종 울음소리로 시청자를 반기다니?
“표정은 왜 또 이렇게 평온해? 흐?.”
평온함을 넘어 뻔뻔한 표정을 유지하며 무슨 내용인지 모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함이원은 고양이, 박하는 강아지, 초록이는 여우, 서혼은 반달곰, 지온은 호랑이, 오란은 토끼 머리띠를 끼고 있었다. 각자 맡은 동물의 울음소리를 낸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꺄륵! 꺄르륵!] [냐아아앙!] [캥캥!] [크엉!] [킁, 어흥!] [왈왈!]대충 ‘가자!’ 혹은 ‘출발!’이라고 해석되는 포즈와 함께 테오라 멤버들은 머리띠를 벗고 각자의 인형 탈을 주섬주섬 입더니 입기 시작했다.
“인형 탈? 게임 광고에 인형 탈?”
게임 속 캐릭터를 단순하게 표현한 인형 옷은 따로 주문 제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인형 탈. 모자가 되는 인형 탈 얼굴이 귀엽게 생긴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테오라 멤버들이 각자 머리에 인형 탈을 쓰자 배경이 힐링 모바일 게임에서 볼법한 따듯한 색감의 숲으로 바뀌었다. 나레이션과 함께 화면에 자막이 큼지막하게 떴다.
【소셜 캐주얼 힐링 모바일 게임! ☆★스마일 팜 빌리지★☆】
게임 속 캐릭터로 변한 멤버들의 움직임에 따라 보이는 배경의 CG가 어색한 부분 없이 자연스러웠다.
“아니, 이런 CG 기술이 있으면서 애들한테는 인형 탈을 입힌다고?”
노리고 찍은 광고가 분명했다. 고퀄 CG와 저퀄 인형 탈이 이루는 부조화 때문에 뭐라 평가하기도 애매했다.
게임 배경으로 움직이는 테오라 멤버들은 촬영하면서 터지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온 힘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특히 오란은 ‘꺄르륵’ 소리를 잘도 내고 있었다.
“알고 보면 소심해 보이는 오란이 제일 간이 크다던가?”
고양이 탈을 쓴 함이원이 손을 뻗었더니 쟁기 비슷한 농기구가 뿅 하고 나타났다. 고양이 함이원은 그것을 들더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반달곰 서혼은 나무를 흔들어 과일을 따고, 호랑이 제톤은 오두막에서 빈둥거렸다. 토끼 탈을 쓴 오란은 좌판을 깔고 장사를 벌였고, 강아지 박하는 건물을 짓는 듯한 장면이 지나갔다. 그리고 압권인 것은 여우인 초록이었다.
여우인 초록은 선거에 출마한 듯, 몸에 어깨띠를 두르고 여러 동물 캐릭터 앞에 나가 있었다.
“길드? 소규모 커뮤니티 그런 종류도 있나?”
짧은 장면으로도 어떤 게임인지 충실히 설명됐다. 대사다운 대사는 한 마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되네?”
【테오라의 목소리와 함께하는 사전 예약 중!】
짧은 중간 광고는 황당함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끝났다. 광고 건너뛰기를 하는 것도 잊고 완전히 빠져서 봤다.
테오라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넘기지 않고 집중해서 봤을 B급 감성의 광고였다. 아마도 일반 뉴튜브 이용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20초도 되지 않는 광고가 아쉽게 느껴졌다.
‘광고 버전이 아니라 무편집본으로 올리면 더 재밌을 텐데.’
광고 제작사에서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테오라 광고’라고 검색하자, ‘스마일 팜 빌리지! 테오라 ver. (무편집본)’이 떴다.
“이거지!”
팬들의 생각을 예지했는지, 광고와 함께 무편집을 올리는 패기를 보였다.
맨 앞 장면에서 경고문처럼 자막이 나왔다.
【본 영상은 테오라의 사후 허락을 받아 업로드되었습니다(?▽?)/】
“사후…? 사전이 아니라?”
사후 허락을 받았다면, 이 뒤에 나오는 내용들은 촬영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찍혔다는 의미가 된다.
무편집본을 누르니 광고는 순화된 버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광고 촬영 전에 테오라 멤버들이 연습하는 부분부터 찍혀 있었는데, 광고에서 보이던 평온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인형 탈을 보고 당황하는 표정이 생생했다.
매니저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과 얘기를 나누더니 촬영에 임했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처럼 결연한 자세로.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인형 탈이 익숙하지 않은지, 넘어지고 구르느라 NG가 났다.
특히 넘어지는 박하에게 밀린 서혼이 휘청거리다가 공중제비해서 착지하는 순간에는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벼야 했다.
“스턴트맨이야…?”
대본이 짜여 있어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액션이었다. 임기응변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촬영 관계자들에게서 나오는 박수 소리가 들리는데 정작 테오라의 다른 멤버들은 멀뚱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만큼 익숙한 광경이라는 뜻이었다.
‘알게 될수록 하나같이 엉뚱하네.’
의외로 각자 맡은 동물 울음소리는 칭찬의 연속이었다. 냐옹과 어흥 같은 소리뿐인데도 음의 높낮이나 톤, 강약이 달라서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표현력이 이렇게 좋다니. 가수 맞구나.’
리얼함보단 귀여움을 살린 울음소리는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었다.
“테오라 목소리 더빙 버전을 출시해주면 안 되나?”
게임사 측에서 한번 고려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전에 광고로 얻은 홍보 효과가 증명되어야겠지만.
광고 컨셉이 병맛이라 그런지, 출중한 연기력을 요구하지 않아서 OK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촬영은 금방 끝났다.
뉴튜브에 올라온 무삭제판 영상 길이를 확인하니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장소도 바꾸지 않고, 연기하는 족족 통과해야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짜 열심히 사는구나.”
이런 것들을 보면 아이돌을 시켜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싶었다. 별의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해봐야 하는 극한직업이었다.
‘나도 내일부터는 열심히 살아야지.’
반성하면서 손가락은 테오라의 다른 영상을 찾아 헤맸다.
데뷔 초인 지금은 독기가 절절하게 흐를 시기. 의욕 뿜뿜하는 테오라 애들을 보면서 덩달아 기운이 났다.
이런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느껴봐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자극받으면서도 홀린 듯이 떡밥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목마른 기분을.
테오라가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준다면 아이돌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돌아 세울 수 있을 터였다.
다른 사람들도 테오라가 얼마나 예쁜 애들인지 알아야 하는데, 아직도 몰라주는 이들이 야속했다.
다행히 뉴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 때문에 음원 차트 테오라의 타이틀 곡 순위가 상승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쉬움에 정신이 나갔던 걸까.
[테오라 외 않 파?(?????????)]SNS 계정에 글을 올리고 보니, 아이돌 노래 분석하는 공개 계정이었다!
“으악!”
좋아하는 아이돌이 자주 바뀌다 보니 ‘음악’만 다루는 계정을 열어서 오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정 아이돌을 선호하는 게시물을 올려 버렸다.
팔로워들 전부 알게 됐을 터였다. 이 계정 주인이 테오라 팬이라는 사실을.
계정 실수를 눈치채자마자 삭제했으나 이미 알림은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으아….”
SNS상에서는 단순히 아이돌 노래를 즐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건만, 역시 일코는 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미 벌어진 사고를 어쩌겠는가….
삭제된 게시물이 아닌 테오라 타이틀곡 관련 게시글에 댓글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키읔으로 도배된 그것을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뒤집어뒀다.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쫄 필요 없지!”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고 넘겼다.
하지만 곧 ‘아이돌 노래 전문가’로 통하는 내 계정의 영향력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러야 했다.
* * *
테오라 함이원에게 멱살을 잡혀서 입덕한 후에 이제는 멤버들 모두에게 빠지게 된 ‘21번verse’는 최근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SNS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그녀가 테오라를 처음 접한 경위 역시 SNS 게시글이었다.
최근 ‘테오라’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었다. 아이돌 노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계정에서는 테오라 팬을 인증하는 글을 올리는 실수를 했다가 유명해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 후에 여느 때와 같이 SNS를 돌아다니다가 엄청난 실력을 발휘한 일러스트를 발견했다.
‘우와! 어떤 금손이 그린 일러스트인지 대단한 실력이시다.’
감탄하며 넘기려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실사체 그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심정이란!
전설적인 인형사가 만든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인간이 저런 외모를 가질 수 있는 확률보다는 인위적으로 빚어졌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보니까.
‘그런데, 이게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그것도 이 좁은 대한민국에!’
인류가 인고의 세월을 견뎌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아이돌에게 빠져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초반에는 나이가 한참 어린 남자애에게 홀리지 않았다고 부정도 해봤다. 하지만 어느새 함이원의 사진을 찾아 돌아다니는 손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해보지 않은 덕질에 뒤늦게 발을 들였음을.
막상 아이돌을 좋아하게 됐다고 인정하고 나니, 신세계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짝사랑과 비슷하지 않나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행복했다.
실제로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그냥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만으로 하루를 살아갈 기운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일상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팔로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 좋은 일 있는 게 분명해
– 언니 햄보캅니까!♥♥기분 좋아보여요!
– 결혼해조요 언니…
–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신 것 같아서 좋네요(웃음이모티콘)히히
고작 사진 몇 장에 짧은 단어를 올렸을 뿐인데 이렇게 알아볼 줄은 몰랐다.
‘그렇게 티가 났던가?’
긍정적으로 바뀐 기분이 팔로워들에게까지 전달된다고 생각하자 테오라 애들이 더 기특해졌다. 이런 효과가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덕질할 걸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테오라 멤버들에게 너무 빠져들어서일까. 한껏 기분이 들떠서 긴장이 풀어져 버렸다.
감상용, 보관용, 소장용으로 구매한 테오라의 앨범과 포카를 방에 전시해두고선 깜빡하고 일상 사진을 찍어 올렸다.
– 언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테오라 팬이셨어요…?
– 귀엽ㅋ
– 언니처럼 멋있는 사람도 나랑 똑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다니!!!
댓글을 뒤늦게 확인하고 나서야 실수를 알아차렸다. 사진 귀퉁이에 테오라의 앨범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왜 보정하고 올릴 때까지 위화감을 못 느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삭제할까…?’
아이돌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가 다 있는 법인데. 이렇게 의도치 않은 덕밍아웃을 해버리다니….
인플루언서로서 올리는 사진도 고급라인의 코스메틱 관련이라서 고민이 깊어졌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주변에 상담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자신 같은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본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동아줄은 의외의 곳에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미령님. 하눌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으응…? 이거 잘하면 홍보였다고 둘러댈 수 있겠네?”
테오라를 파기로 했던 건 현명한 결정이었다. 연예기획사 홍보팀과 인연을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이득이다. 팔로워 수를 폭발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실제로 테오라를 만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지도?’
그 점이 특히 기뻤지만 덮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