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91
함현은 천재
전에 초록 형이 제안했던 개인 컨텐츠를 찍는 연습을 해보기 위해서 회사에 방문했다. 일종의 리허설이랄까.
“회사에서 테오라 개인 컨텐츠를 찍는 데 도움을 줄 분들을 섭외했다.”
테오라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매니저 형의 공지사항을 들었다.
멤버들 각자 자신이 어떤 주제로 채널을 운영할지 잠정적으로 결정해둔 상태. 그에 맞춰 도우미를 불러주신 듯했다.
초록 형은 뷰티 쪽, 정확히는 메이크업을 다뤄보고 싶다고 했고, 지온은 요리하는 모습을 찍겠다고 했다. 지온은 취미를 겸해서 스트레스를 풀 작정인가 보다.
서혼 형은 헬린이인 코티지에게 운동 노하우를 알려주겠다고 했고, 오란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새롭게 무언가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나.
그러고 보면 오란은 자기 발전에 힘을 쏟는 것 같다. 아이돌로 성공하지 못해도 무엇으로든 큰 인물이 될 상이었다.
나는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채널로 컨셉을 잡았는데, 박하에게 고양이와 같이 곡 작업을 하는 브이로그를 추천받았다.
그리고 박하는….
“정말 그걸로 하려고? 코티지들 전부 잠들면 어떡하려고?”
“내 얼굴을 보고 잠이 올 리가 없어! 원래 잘생긴 선생님이 있으면 성적이 올라간댔어!”
박하는 검정고시 공부를 할 겸 공부하는 모습을 찍겠다고 선언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이번 연도 안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겠다는 다짐을 못 지키겠다고 울상을 하더니 이런 해결책을 들고나왔다.
“Respect. 개인 컨텐츠 촬영 때도 공부하겠다는 그 의지.”
학교에서 아이돌 활동을 양해해준 덕에 가까스로 졸업할 수 있었던 지온은 건성으로 박하를 응원했다. 제 일 아닌데도 대꾸라도 해준 게 어딘가 싶다.
박하는 주로 공부를 같이하는 오란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공부는 혼자 해야 한다면서 박하를 떼어내던 오란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결국 박하에게 패배하고 될 대로 되라고 놔뒀지만.
“앞으론 우리 대신 코티지들 괴롭히는 거냐? 그럼 난 찬성.”
“나 버리려는 거야? 안 돼!”
오란의 매몰찬 동의에 마음 여린 서혼 형의 목소리에 지진이 났다.
“코티지를 괴롭히겠다고…? 어떻게 그런 못된 말을 할 수 있어. 오란아….”
오란을 나무라는 말인데 어쩐지 박하를 혼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서혼 형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동의한 관계로 박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게 되었다.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된다? 알았지, 박하야?”
“내가 얼마나 무서운 선생님이 될지 아는구나? 역시 서혼 형이야!”
박하는 한술 더 떠서 안경과 교편을 준비해달라고 매니저 형에게 졸랐다. 빨간 모자도 필요하다고 했다가 우리가 말리는 바람에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단념했다.
어디서 보고 들은 정보가 뒤섞인 것 같은데?
호랑이 선생님이 되겠다는 박하와 함께 회사에 들어와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회의실로 들어왔다. 회의실에는 회사에서 마주친 적 있는 직원 두 분과 처음 보는 여성분 둘이 있었다.
“홍보팀 쪽에서 섭외해주신 분들이다. 이분은 뷰티 쪽으로 활동하시는 SNS 인플루언서 미령 씨고, 이쪽 분은 박하에게 조언해주실 검정고시 전문 강사이신 우주현 씨다.”
인플루언서 미령 님은 갈색의 긴 웨이브 머리에 키가 큰 분이셨고, 우주현 강사님은 숏컷에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분이셨다.
박하도 같이 공부해나가는 학생이다 보니 잘못된 지식을 코티지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조언과 영상 검수를 해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무한한 가능성, 테오라…입니다.”
아이돌 인사법이 입에 붙어버렸나? 힘차게 인사하다가 나 혼자만 한다는 걸 깨닫고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충분했는데.
벌써 이러면 학교에 가서도 아이돌 인사법을 시전해 버리는 건 아닐까.
놀릴 거리 하나 잡았다고 눈을 빛내는 멤버들과 달리 작은 웃음소리를 흘려서 무안함을 덜어주는 인플루언서 미령 님에게 감사의 인사가 담긴 눈짓을 보냈다.
마주한 눈동자가 흔들린 듯했지만, 그럴 이유가 없어서 웃음으로 눈짓을 마무리했다.
“흑….”
미령 님이 몸을 휘청거리셨다. 빈혈이 있으신가?
다행히 테이블을 짚고 스스로 균형을 찾았지만 걱정스러웠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미령 님은 원래 몸이 허약한 분이신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릴 도와주러 와주시다니.
“기본적인 촬영법만 배운 다음에 각자 이동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누기로 하죠.”
매니저 형의 진행에 따라 필수적인 카메라 사용법만 배우고 실습해 본 후에 끼리끼리 흩어졌다.
시간이 붕 떠서 지온이나 오란, 서혼 형은 숙소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남는 시간에 고양이 현이를 데려오기 위해 먼저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다시 숙소로 돌아올 때는 아빠가 데려다주신다고 해서 집에 갈 때는 택시를 타고 혼자 가기로 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테오라 멤버들과 매니저 형은 나를 사고뭉치 취급했다. 다섯 살짜리 애도 아닌데.
명심하겠다고 대답한 후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웬일인지 낮인데 두 분 다 집에 계셨다.
“저 왔어요. 그런데 엄마, 출근 안 하셨어요?”
“어서 오렴. 오늘 일요일이니까 안 나갔지.”
“아. 몰랐어요.”
아이돌에겐 요일 개념이 없다. 오늘 회사에 다녀오기도 했고. 그래서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도 깜빡 잊고 말았다.
“이원이 요즘에 정신없이 바쁜가 보구나. 건강은 잘 챙기고 있고?”
“네.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멤버들이랑 매니저 형이 저를 어린아이처럼 챙겨요.”
“고마운 일이네. 우리 아들을 챙겨준다니. 엄마는 너를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집을 떠나서 단체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아들을 보내놓고 이래도 되나 싶으셨단다. 가끔 통화하면 잘 있다고만 하니 믿음이 안 갔다고.
그나마 초록 형이 만든 단톡방이 있어서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어서 불안함을 덜었다고 하셨다.
“엄마가 멤버들한테 선물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선물? 형제 같은 멤버들이 우리 부모님에게 선물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
“과하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가족들이랑 쓰라고 호텔 예약권 돌릴까 했는데. 괜찮겠지? 이미 구매해뒀는데.”
물어보기도 전에 벌써 질러버리셨구나. 답은 정해져 있던 거 아닌가 싶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려드렸다.
“괜찮을 것 같아요.”
“면세점 광고 맡아서 진행한 후에 계열사 호텔 예약권 받아서 써봤는데 시설도, 서비스도 좋았거든.”
테오라 멤버들과의 친분을 따지면 충분히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2박 3일쯤 호텔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예약권이면 엄마의 능력 안에서 충분히 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하고.
“처음 생각했던 선물은 숙소긴 한데, 아직 괜찮은 매물이 안 나오기도 했고, 엄마가 참아볼게.”
“…숙소요?”
이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엄마가 숙소 구했는데 여기로 이사할래?’하고 물어보시는 건 아니겠지?
“숙소는 조금….”
진짜 덜컥 구하시는 건 아닐까? 멤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멤버들은 부담스러워하려나? 잘 이해시키면 될까? 부담을 가질 가능성이 커서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멤버들이 더 넓고 편안한 숙소에서 지냈으면 해서 생각해보신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는 간다.
“현이 데리러 왔지? 그동안에 함지수 씨가 아주 애지중지하고 있었으니까 안심하고.”
“아빠한테 화나셨어요?”
아빠를 ‘여보’가 아니라 성까지 붙인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거나 하는.
“고양이한테 홀딱 빠져서 나는 보이지도 않나 싶지 뭐니. 이원이 너 어릴 때도 그랬지만, 네 아빠가 귀여움에는 사족을 못 쓰잖아.”
아빠가 그리는 그림의 화풍도 아기자기했다. 귀여운 것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로 이름을 알리셨다.
그런 아빠가 세련된 아름다움을 가진 엄마랑 결혼하신 건, 취향을 뛰어넘는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시즌 그림엔 고양이가 잔뜩 등장하겠네요.”
“이미 시작했더라.”
작가로서 창작 욕구를 들끓게 만드는 존재를 내가 데려가고 나면 아빠가 서운해하실 텐데. 영감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된다.
“현이 네가 키울 거라며? 며칠 사이에 고양이한테 푹 빠졌는지 함지수 씨가 나한테 고양이 키우자고 하던데?”
엄마도 고양이 좋아하시고, 그림 작업실이 집 안에 있어서 고양이를 키워도 케어는 전부 아빠가 도맡아 하실 터였다.
“우선 유기묘 보호센터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다음에 집에 오면 현이의 새로운 고양이 친구가 입양 와있을 것 같다. 까탈스러운 고양이 함현은 새로운 고양이가 와도 눈길도 안 줄 느낌이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는지 작업실에서 아빠가 나왔다. 한쪽 팔로 현이를 안은 채로.
나를 발견한 현이는 아빠의 팔에서 바로 뛰어내려서 다가왔다.
와아옹?
서럽게 들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다리에 몸을 비비더니 바지에 발톱을 박고 기어올랐다.
기어오르는 현이를 떼어내서 안았는데도 계속해서 야옹댔다.
“미안. 너무 늦게 왔지. 이제 형이랑 집에 가자.”
“내가 얼마나 착실하게 보살펴줬는데 제 집사 왔다고 바로 내팽개치네. 현이 너무하다…,”
아빠는 가벼워진 팔의 무게가 허전한지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현이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며칠 새에 묵직해진 것 같아요.”
“그렇지? 내가 밤낮으로 챙겨 먹였으니 조금이라도 건강해졌겠지?”
동물 병원에 가서 경과를 봐야겠지만, 체중이 꽤 늘어난 것 같았다. 털도 한층 깨끗해져서 회색 턱시도의 경계선이 또렷해졌다.
“저 이제 가볼게요. 연습 시작하기 전에 잠깐 들른 거라 바로 가봐야 해요.”
“고양이 사료라도 좀 가져갈래?”
그 며칠 새에 집 곳곳을 고양이용품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뇨. 저도 현이 물건 주문해뒀어요. 현이가 좋아하던 사료 브랜드만 알려주세요.”
아빠에게 들은 사료 브랜드를 메모하고, 엄마에게서는 호텔 예약권을 받아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동물 병원에 들러 수의사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내가 보살폈어야 했는데, 아빠에게 전부 맡겨두고 듣는 칭찬이라 수의사 선생님 앞에서 내내 어색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현이가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두기로 했다.
* * *
숙소로 돌아오니 박하와 초록 형이 돌아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 이동장에서 현이를 꺼내주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현이는 거실에 준비된 캣타워나 숨숨집 대신에 내 무릎 위를 차지하고 골골거렸다.
“함현 왔구나!”
반가움에 달려드는 박하에게 하악질을 한번 해준 현이는 다시 그루밍을 시작했다.
“나도 안아보고 싶어!”
r!
싫다는 의사표시가 명확하다. 둥글게 나는 소리가 아니라 짧고 굵은 거절이었다.
“현, 한국어 알아들어? 처음 한국 왔을 때 헛소리 파티했던 나보다 나은데.”
지온의 경험이 담긴 물음에 현이의 남다른 똑똑함이 물씬 전해졌다.
“나중에 ‘세상에 이런 동물이!’에 출연하게 될지도?”
서혼 형의 상상을 오란이 받아쳤다.
“함현 덕분에 그 프로그램에 출연 가능? 앞으로 잘 모셔야겠는데?”
냐-옹.
야옹거리는 타이밍이 완벽했다. 오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러던지.’ 하는 느낌으로 대답을 딱 내놓다니.
내가 고양이 바보가 되어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함현은 특별한 고양이로 TV 프로그램에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아무래도 ‘내 고양이는 천재’ 콩깍지가 벗겨질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