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92
드라마 OST
오늘은 내 목소리로 부른 ‘첫사랑은 없다’ OST가 공개되는 날이었다. 잠든 현이를 무릎에 올려두고 멤버들과 같이 드라마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앞부분을 못 본 멤버를 위해서 드라마를 시청하기 전에 서혼 형이 짧게 줄거리를 요약해줬다.
재회 씬에서 회상으로 넘어가 남주와 여주의 과거 학창 시절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한창 둘이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고 있다고.
내가 부른 곡은 슬픈 장면에 들어가는 애절한 느낌의 OST였다. 그래서 그 곡이 나온다는 건, 둘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오! 여주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아!”
불같은 첫사랑에 빠져 상대밖에 보지 못하던 여주인공은 학교에 나오지 않은 남주인공을 이상하게 여기고 전화를 걸어보는데.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헉! 뭐야! 실종이야?”
옆에서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여주는 박하 덕에 드라마가 더 박진감 넘쳤다. 다른 멤버들도 푹 빠져서 앞에 놓인 아이스티가 줄어들 겨를이 없어 보였다.
지온이 직접 블랜딩한 홍차 아이스티는 새콤달콤해서 다들 좋아하는데도 깜빡 잊을 만큼 드라마가 재밌긴 했다.
‘첫사랑은 없다’는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하더니 회차가 진행될수록 푹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드라마가 잘 되면 OST 저작권료도 꽤 들어오지 않을까? 그러면 멤버들이랑 회사 직원분들한테 줄 선물을 골라봐야겠다.
솔직히,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테오라가 잘 되기를 더 원한다. 하지만 데뷔 때부터 혜성처럼 스타가 되기를 바라면 욕심이겠지.
그래도 앨범 발매 후 수개월이 지난 현재, 서서히 상승하는 음원 차트 순위는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팬카페에 가입한 회원수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 들어와 주는 코티지의 숫자도 나날이 폭증하고 있었다.
코티지들과 직접 만날 공식적인 기회가 오면, 테오라의 위치가 확 실감 될까?
“이원 형! 형 노래 나온다!”
여주인공은 한낮의 이슬처럼 사라진 남주인공을 찾아 헤맸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남주를 떠올리며 처연하게 눈물을 흘리는 여주인공을 배경으로 내가 부른 OST, ‘너는 당연하지 않아’가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숨죽이고 노래에 집중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너를 사랑하게 한 기적을 원망해
몰랐어 너는 신기루라는 걸
너는 당연하지 않아서?
하이라이트를 주로 들려주는 OST치고는 꽤 긴 분량이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남녀’로 압축되는 주제를 던져주고 작곡해달라는 요구를 받고는 골치가 아팠었던 기억이 났다.
곡은 금방 나왔는데 가사를 쓰기가 어려웠다. 살짝 풍기는 신파 분위기를 고려하되 촌스럽지 않은 가사를 적어보려고 끙끙거린 결과가 이것이었다.
내가 가사 문제로 힘들어하자 A&R 팀장님은 전문 작사가님에게 의뢰할지 의향을 물어보기도 했다.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한 뒤, 고심 끝에 가져간 가사를 보고 팀장은 칭찬 일색이셨다.
‘잘 쓸 거면서 괜히 엄살은~’이라면서.
어느 정도는 괜찮았으니 받아들여졌겠지만, 내가 무안하거나 자신감을 잃을까 칭찬을 듬뿍 얹어주셨다.
OST 가사를 곱씹으며 듣는 분들이 드물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메인 OST는 아니라는 점일까.
“곡은 괜찮게 나왔지?”
전체적인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다. 현오 형에게서 받은 목소리가 딥한 감정표현에 잘 어울리는 음색이기도 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 특히 이원이 네 목소리 나오는 장면에서 울컥했어.”
서혼 형은 스토리에 딱 맞아떨어지는 감정선과 목소리라면서 폭풍 칭찬을 남겼다.
사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가사를 쓰면서 현오 형과의 이별을 대입했다.
너와 만나게 해준 기적을 원망한다는 부분은 각색이 들어갔지만, 감정선을 참고했다. 그래선지 녹음하면서 유난히 감정의 동요가 심했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서혼 형은 그 차이를 잡아낸 것 같았다.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달려 있지만,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라 마음이 놓였다.
“솔로곡이라 이원 형 목소리 오래 들을 수 있어서 좋아!”
박하는 팬들한테도 의미 있는 선물이겠다고 말해줬다.
“그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OST 작업은, 테오라라는 한 그룹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다. 여러 분야의 곡을 만들면서 작곡 실력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그 과정에서 테오라의 인지도도 높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식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팬들에게는 내 목소리로 부르는 솔로곡이 선물이 될 수 있구나.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 곡 의뢰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
“잘 생각했어. 우리 앨범이 우선이 되어야겠지만, 네 작곡 실력이나 목소리를 가만히 썩히긴 아깝지.”
그런가? 초록 형의 의견에 다들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함이원, 너 요즘도 꾸준히 작곡하고 있던데, 알고 보면 곡이 잔뜩 쌓여있다든지? 너 곡 하나 작곡하는 데 평균적으로 얼마나 걸리냐?”
“하루나 이틀?”
한창 활동하는 아이돌은 1년에 앨범 한두 개, 많으면 세 개까지 내기도 하는데, 그 앨범의 수록곡까지 전부 채운다고 해도 넘치는 양이었다.
물론 내 기준에 한참 모자란 곡이 대부분이라 한두 곡을 제외하면 쓸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영감을 받으면 한 곡은 바로 뽑을 수 있었다.
“야, 씨. 그러면 말을 해야지!”
“뭘?”
“와, 답답해서 돌아가시겠다!”
내가 뭘 잘못했지?
오란은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두드렸다. 박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놀람을 숨기지 못하는 박하를 보니까 내가 뭔가 잘못한 기분이었다.
“반성해야겠다. 리더로서 멤버한테 소홀했나 봐. 이런 중대 사항을 모르고 지나치고 있었다니. 곡 선정 때도 하루 만에 작곡했다고 말한 적 있었는데….”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야.”
갑자기 자기반성을 하는 초록 형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서혼 형을 보니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뭔가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
“이원. 랩 비트도 있어?”
“이 와중에도 비트 챙길 생각이 나는구나. 지온아.”
“그럼? 작곡 머신이 여기 있다는데 비트부터 구해야지. 서혼은 랩 비트 준다고 하면 거절이야?”
“아니, 거절까진 아니지만….”
랩 비트를 찾는 지온을 나무라다가 되돌아온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서혼 형은 지온보다도 더 멜로딕한 랩을 하는 래퍼라서 지온보다 더 내가 작곡하는 곡의 성향과 적합했다.
짝짝!
박하가 손으로 박수 소리를 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나도 곤란했던 터라 박하의 행동이 반가웠다.
“앞으로 원하는 곡 있으면 뚝딱 작곡해줄 거야! 내 말이 맞지, 이원 형?”
“…응?”
“우리도 공짜로 형의 노동력을 착취하진 않아! 작곡비는 원하는 대로 불러도 좋아!”
내가 얼마를 부를 줄 알고 원하는 대로 부르래?
멤버들에게 돈을 받고 곡을 팔 생각은 없긴 하지만, 마음에 차는 곡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서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기가 어려웠다.
“여유를 충분히 주면 어떻게든….”
“무슨 생각하는지 훤히 보여! 완벽한 곡 안 나오면 무한 습작행 하고 그러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날이 박하의 눈치가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거 봐! 대답 못 하잖아! 이원 형은 곡에 대한 눈이 너무 높아. 그러니까 습작으로 처박아두기 전에 우리한테 한 번씩만 들려줘! 어렵지 않지?”
“어렵진 않은데. 그걸로 돼?”
“돼. 되고말고!”
“함이원은 앞으로 곡 하나 작곡할 때마다 우리한테 검사받을 것. 아무래도 규칙으로 정해둬야 할까 봐.”
그런 부끄러운 규칙을 정하겠다고?
내 기준에 차지 않는 곡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하다. 마치 개인적인 얘기를 적어둔 일기를 보이는 것처럼.
수?뮌?습작 중에서 고르고 고른 곡만 세상에 내놓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함이원 넌 평범한 인간의 눈높이를 배워.”
“……?”
평범한 눈높이? 그게 정확히 뭐지.
내가 만든 곡은 항상 나를 기준으로 판단해왔는데 그 기준 자체가 이상한가 싶어서 혼란스러웠다.
“관대한 기준을 세워줘! 우리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원 형처럼 취향도, 귀도 까다롭지 않거든.”
“아….”
이런 거였나. 내 예민한 귀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던 바였다. 게다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곡을 들어와서 남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그룹의 앨범에는 특별히 엄격한 기준을 세우되, 나머지 곡들에 대해선 조금 느슨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해했어. 그럼 앞으로 그럴듯하다 싶은 곡 있으면 들려줄게.”
“응! 그거면 돼! 히힛!”
자신의 설명이 먹혀들어서 기쁜지 박하가 뿌듯함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규칙으로 정해둘 거야.”
“초록 형….”
다음에 딴소리하면 안 된다고 초록 형은 기어이 현관문 안쪽에 붙은 테오라의 규칙 리스트에 한 가지 항목을 추가했다. 매번 숙소를 나설 때마다 되새기라면서.
규칙으로 못 박아 둘 필요까진 없잖아…?
“속이 다 시원하네.”
규칙을 지워달라고 매달려 봤지만 초록 형은 요지부동이었다. 멤버들은 웃으면서 방관만 했다.
“왜 나 놀릴 땐 한마음 한뜻이 되는데?”
서혼 형은 억울해하는 나에게 이게 바로 ‘진짜 테오라’라면서 적응하기를 권했다.
곡 안 준다고 해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그만뒀다. 그래도 멤버들은 내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 흐뭇하게만 볼 테니까.
왜 내가 이런 포지션이 됐는지 심각하게 되짚어보면서 연습실로 향했다.
늦은 밤이지만, 내일은 ‘첫사랑은 없다’ 촬영장에서 테오라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날이니까.
* * *
나우혁 배우님이 부른 남주 테마의 OST는 예상외의 흥행을 했다.
나우혁 배우님은 연기력은 기본이고 성격도 좋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최근에 힐링 예능에서 큰 활약을 해서 한창 인기가 올라간 상태.
거기다 이번에 맡은 배역은 실제 나우혁 배우님 같다는 감상까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온 남주 테마곡은 나우혁 테마곡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조건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드라마 제작사 측에서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줬다.
‘함 작곡가님, 혹시 카메오 출연해보지 않으실래요?’ 하고.
제안은 감사하지만, 단독으로 잠깐 출연해봤자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을 듯했다. 그래서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한번 질러봤다.
테오라 멤버들과 다 같이 출연하거나 우리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면 좋겠다고.
테오라의 단체 출연은 그룹 인지도를 올릴 수 있어서 좋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라면 우리 곡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둘 중 하나만 성사되어도 우리는 큰 기회를 얻는 셈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멤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는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답변이 돌아왔다.
테오라 멤버 전원이 타이틀곡을 부르는 장면이 들어가는 걸로.
그 소식을 듣고 바로 믿을 수가 없었다. 공중파 월화 드라마에서 우리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니!
멤버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한바탕 연습실이 들썩거렸다. 그 후에도 한동안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연습도 들뜬 채로 진행됐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최대한 침착하게 촬영하자고 다짐한 후에 ‘첫사랑은 없다’ 촬영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