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95
물들어 올 때는?
나를 놀리는 게 재밌냐는 질문에 코티지들은 하나가 되었다. 느낌표가 잔뜩 붙은 ‘네’와 키읔의 향연을 볼 수 있었다.
“코티지들은 짓궂음 속성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고 받아들여. 받아들이면 편해. 이원아.”
채팅창을 흘끗 봤는데 정곡을 찔렸다는 분위기였다.
– 헉!
– 어떻게 알았찌?
– ㅋㅋㅋㅋㅋㅋ
– 코티지 이미지 어떡함ㅋㅋㅋ
– 맞말ㅋㅋ
– 하나같이 놀림에 진심임
“…서혼 형까지 그러면, 믿어버린다?”
서혼 형은 목 울림으로 내는 웃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멤버들이 어린 애들 재롱을 보는 학부모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얘기를 더 해봤자 나만 불리하니까!
“흠! 본론으로 돌아와서! 늦은 시간이라 곡만 들려드리고 가려고 해요. 오늘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영상 편집해서 뉴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그럼.”
하얀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았다. 알아서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곳을 섭외해주신다더니 하얀색 피아노가 등장했다.
점검차 리허설을 했는데 촬영해주는 직원분이 그림이 된다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멤버들도 테스트 촬영 영상을 보더니 장소를 섭외해준 분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얀 그랜드피아노를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라서 신기하기는 하지만, 음색이나 음질은 차이가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어쩐지 테오라 코디님이 하얀 턱시도를 강력하게 추천하시더라니.
게다가 제비 꼬리 같은 옷자락을 피아노 의자 뒤로 넘기며 앉아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하기까지 했다.
결국 흰 티에 회색이 한 방울 첨가된 올화이트 정장을 입는 것으로 극적 타협을 했다.
발목이 보이는 흰 운동화에 머리색까지 청은색. 내 눈에는 사람이 희멀건해서 영 매가리가 없어 보이는데, 전문가의 의견이니 토 달지 않고 따르기로 했다.
“함현 테마 3곡을 준비했어요. 앞의 두 곡은 짧아서 15분 길이의 연주예요. 쉬지 않고 쳐볼게요. 즐겁게 들어주세요.”
손가락을 건반에 올리고 숨을 들이쉬고 멈췄다가 내쉼과 동시에 도입부로 들어갔다.
♪♬♩~
* * *
연주를 마치고 멤버들과 예정에 없던 수다를 떨다가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오랜만에 의상을 갖춰서 각 잡고 피아노를 쳤더니 힘이 쭉 빠졌다. 콩쿠르 나갔을 때보다 더 긴장했던 것 같다.
“맞지? OST 누가 작곡했는지 팬들은 알 거라고 했잖아.”
채팅에 그런 내용이 올라오긴 했다. 드라마 보다가 내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서 검색해봤다는. 내가 작곡한 나우혁 배우의 곡도 드라마랑 너무 잘 어울린다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은 테오라의 앨범에 실린 3곡, 그것도 파트가 나뉘어서 곡당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목소리만 듣고도 목소리 주인을 구별해내는 팬들의 존재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한두 명이었다면 예민한 청각으로 구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 목소리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오 형에게서 물려받은 내 목소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이돌이 된 의미가 있었다.
오히려 아이돌이 되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것이다.
현오 형도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음악천재 함이원 씨, 다음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실 겁니까?”
“음악천….”
내 이름 앞에 달리기엔 차마 입에도 담기 부담스러운 수식어였다. 초록 형은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다.
매번 반응을 보여주고 나서야 아차 싶다. 타격감을 느낄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여태 이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본능적인 반사작용을 참기가 어려웠다.
멤버들은 이대로가 좋다고 입을 모아 주장하는 통에 정색하고 고치기도 어렵다.
“멤버 개인 곡 고민해보면서 다음 앨범 곡 쓰기 시작해보려고.”
“아. 그렇겠네.”
‘신인’ 딱지를 떼면 어떨지 모르지만, 현재 테오라는 활동기, 비활동기의 구분이 없었다. 스케줄이 있으면 활동하고, 아니면 학업과 연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데뷔 앨범을 내고 4개월이 넘게 흘렀다. 계속 하나의 앨범만으로 활동할 수는 없었다.
대중에게 계속 노출되면서도 질리지 않도록 꾸준히 신곡을 선보여야 했다.
그리고 레퍼토리가 늘어야 행사를 뛰면서도 테오라의 곡만으로도 무대를 채울 수 있다.
회사에서는 테오라가 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차기 앨범을 빠르게 준비하자는 견해였다.
새 앨범을 가지고 음악방송에 나가면 그땐 관계자들이 얼굴색을 싹 바꿔서 환영할 거라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POT 엔터가 가벼운 압력을 넣어서 출연을 저지하기엔 테오라가 가진 화제성이 너무 먹음직스럽다고.
“신인상 타려면 강행군은 견뎌야지.”
오란다운 발언이었다.
한 달 새에도 수많은 아이돌이 쏟아져나오는데, 방송사별로 단 한 그룹만이 신인상의 영예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신인상을 목표로 한 이상, 고생은 각오한 바였다.
오란과 박하는 예능 게스트로 섭외됐다. 두 명만 출연할 수 있다고 해서 매니저 형이 둘에게 먼저 권했다.
나에게는 곡 작업에 전념하라고 개인적인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곡 작업이 아니더라도 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고등학생으로 재학 중인 상태라 출석할 수 있을 때 해둬야 했다.
“코티지들은 우리가 컴백 앨범 내면 놀라겠지?”
내가 건네준 랩 연습용 비트를 들어보던 서혼 형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마도. 여기저기 출연해서 얼굴을 한창 비추던 애들이 새 앨범 낸다고 하면 그렇겠지.”
“코티지들을 생각하면 힘낼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혼 형이 힘을 낸다니 어마어마하다.
“방송 관계자들이 우리를 찾을 때 노를 저어야지.”
초록 형 말처럼 요즘 알짜배기 스케줄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앨범을 준비하다 보면 방송 출연을 고르고 고를 수밖에 없겠지.
스케줄이 없어서 걱정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섭외나 제안을 가려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다.
테오라는 새로운 앨범과 방송 출연,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우리라면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참. 아까 라이브 방송 준비할 때 매니저 형한테 전달받았는데, 우리 응원봉을 비롯한 굿즈 아이디어 있으면 내달라고 하시더라.”
“응원봉…?”
“굿즈?”
우리가 부산해서 매니저 형이 리더인 초록 형에게 전달해둔 모양이다.
“다음 앨범 나오기 전에 제작하려고 한대. 근데 다음 앨범 일정이 급박하기도 하고 제작 시간이 필요하니까 미리 상의해서 결정해달래.”
“응원봉! 와! 콘서트 열면 코티지들이 그거 들고 응원 와주겠네!”
콘서트는 아직 아득한 일이지만, 응원봉을 제작한다니 감회가 달랐다.
“각자 아이디어 정리해둬.”
“초록 형! 우리가 응원봉 아이디어 내서 코티지들한테 투표해달라고 하자, 투표!”
“그럴까?”
투표…? 투표라고 하니까 팬덤명을 투표했던 일이 떠올라버렸다. 이번에도 장난기를 섞어 투표하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코티지들이 직접 손에 들고 있어야 하니까 이번에는 다르려나? 팬들의 전적이 있어서 쉽게 믿기가 힘들었다.
“아이디어 주인을 익명으로 했으면 좋겠어. 초록 형.”
이번에도 저번 투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장치가 ‘익명’ 제도였다.
익명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더니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코티지들한테 당할까 봐 그러지!”
“그것밖에 없지?”
나만 빼고 다 웃느라 바빴다. 웬만하면 피식 웃는 정도에서 그치는 홍오란까지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그래. 이원이 의견대로 누구 아이디언지 숨기고 하자. 공정하게.”
“내 응원봉 이겨랏! 내 거 뽑히면 코티지한테 자랑해야지!”
응원봉 얘기가 이제 막 나왔는데 박하는 벌써 결과를 궁금해했다. 자기가 선정될 미래를 그리면서.
“디자인이나 기능을 그림으로 그려주면 더 좋아. 그래야 코티지들한테 어필이 되겠지?”
갑자기 응원봉 서바이벌이라도 벌어지는 분위기가 됐다.
느낌이 왔다면서 노트에 가사를 쓰던 지온마저도 과감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길쭉한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걸 보니 응원봉인 듯했다. 미래적인 디자인인가?
“굿즈로 만들면 좋을 만한 아이템도 생각해둬.”
“굿즈…. 일반적으로 어떤 물건이 있는데?”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도, 아이돌로 데뷔한 기간도 짧았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부분에 대한 정보는 미흡했다.
“나 알아!”
박하는 아이돌 그룹의 팬으로 시작해서 동경을 가지고 아이돌이 된 케이스.
팬 문화에 대해선 우리 중에 가장 깊이 알고 있었다.
“응원봉은 알지? 포토카드나 슬로건, 머그컵 같은 것들도 있구! 뱃지, 텀블러, 키링, 스노우볼, 모자, 부채, 우산….”
줄줄이 나열되는 굿즈 종류들을 들으니 아무거나 다 되는 것 같았다.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사용하는 물건들과 공간 차지가 적은 수집용 물건으로 나눠볼 수 있었다.
“그치만 평소엔 아이돌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분들이 대부분이야! 직접 사용한다기보단 소장용이라고 봐야 해! 몇 가지 굿즈는 콘서트나 팬미팅 같은 이벤트에 사용하긴 해!”
“수집 목적인가? 예쁜 쓰레기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구나. 혼자 두고 감상한다고 치면 예뻐야 모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테니까.”
그럼 최대한 부피가 작으면서 예쁘고, 버전도 다양한 물건으로 골라봐야겠다.
라이브를 한 날부터 며칠을 응원봉을 디자인하고 굿즈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그러는 동안, 내가 ‘고양이 자장가 (부제:함현 테마곡)’을 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편집돼서 테오라 뉴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그 후 고양이 집사 커뮤니티에는 고양이에게 들려줬더니 진짜 잠들었다는 고양이 자장가에 대한 간증글이 올라왔다.
코티지의 소행이 분명한 그 게시글로 인해 고양이 집사 커뮤니티가 떠들썩해졌지만, 우리는 알지 못했다.
* * *
드디어 대망의 응원봉 투표일. 테오라 멤버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같은 크기의 스케치북 여섯 개가 올려와 있었다.
각각의 스케치북엔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진 응원봉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누구 것인지 모르도록 단서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다른 굿즈로 어떤 물건을 사용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전부 모아서 번호를 매겨 고를 수 있게 해뒀다.
“이제 시작해보자.”
라이브 방송을 켜는 마음가짐이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인사를 하고, 잡담을 조금 나눈 후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러분! 저희 응원봉 만들기로 했어요!”
이번 응원봉 투표를 진행하게 된 사람은 박하였다.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다면서 앞에 나섰다.
진행만 조금 맡을 뿐, 우리의 발언권이 사라지진 않아서 별로 다를 건 없을 테지만, 진행자라는 감투를 원하나 싶어서 다들 그러라고 했다.
– 응원봉?
– 우리도 공식 응원봉 생기는 거야?
– 회사에서 만들어주신대? 벌써?
– 우왕!
“저희가 각자 아이디어를 내서 그려봤어요! 누구 건지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요. 누구 그림인지 맞힐 수 있을까요? 먼저 첫 번째 후보입니다!”
박하가 맨 위에 놓여있던 스케치북을 코티지들이 보이도록 한쪽 팔으로 들어 올렸다.
– 칟빱빱빱?
– 저게 뭐야ㅋㅋㅋㅋ
– 아마 사람 그리면 졸라맨일 듯
– 마이크 모양이지? 알겠엌ㅋㅋㅋㅋㅋ
나도 처음 보는 거라서 유심히 살펴봤다. 동그라미와 네모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디자인에 이것저것 설명은 잔뜩 붙어있었다.
글씨는 어른스럽게 잘 썼는데 그림 실력은 왜…?
“1번 응원봉으로 말할 것 같으면!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최첨단 응원봉이 되겠습니다! 밝기 조절이나 무드등 기능은 기본! 무선 충전과 자동 블루투스 페어링으로 원격 제어기능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겨진 기능이 있는데요!”
– 의외로 알차네ㅋㅋㅋㅋ
– 기본 기능은 다 넣어뒀구나?
– 뭘 숨겨놨길Lㅋ
– 매진임박! 박하 홈쇼핑!
– 근데 디자인이ㅜ
“바로바로! 변신 합체 기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