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화(1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
날름.
내 질문을 들은 녀석이 보인 최초의 반응은 연분홍빛 혀를 뻗어 촉촉한 코를 핥아 내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멍멍이들은 당황하면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버릇이 있다는데….”
―멍멍이 아냐!
“그래. 넌 강아지가 아니지. 물론 날개 달린 롤빵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까 강아지도 빵도 아닌 너라면 오늘 일어난 일의 이유를 알고 있겠지?”
킁킁.
제법 귀여운 소리를 내며 벌름거리는 콧구멍.
코를 벌름거리는 것 역시 강아지가 당황함을 표출하는 방법이라는 말 또한 들은 바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
“그냥. 왠지 그럴 거라는 느낌이 드네.”
좌우로 또르르하며 굴러가는 눈망울.
강아지가 당황했을 때 목격할 수 있는 세 번째 증상.
녀석이 고민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빨리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적어도 이런 일에 관해서라면 대부분 내 직감이 잘 들어맞더라고.”
―….
“말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알고 있을 정답은 나 혼자 어떻게든 찾아내 볼 테니까. 하지만 알면서 모른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해.”
―누, 누가 거짓말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 그동안 우리가 나눠 먹은 초콜릿과 과자를 배신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말해줄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사정이 있다고 말을 해. 아니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던가.”
―으으….
“그렇게 해주면 나도 이 일로 더이상 너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당황한 게 분명해 보이는 녀석을 뒤로 한 채 예복의 단추를 풀고 녀석의 배 밑에 깔아 줄 수건을 준비했다.
이 녀석이 정말로 말해주는 걸 거부한다면 오늘 밤에 할 수 있는 일은 이대로 잠을 자는 일밖에 없었으니까.
―그 옷… 벗지 마.
그런데 녀석의 베개 대용으로 사용할 실크 뭉치 돌돌 말기를 마친 그때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은 예법이라든가 그런 면에 제법 까다로운 편이니까 지금 그 복장 그대로 가는 게 좋을 거야. 가능하다면 첫인상은 좋게 하고 가야지.
오전에 중차대한 행사가 있었던지라 난 평소와는 달리 제법 격식을 갖춘 예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녀석은 금사로 수놓아진 어깨 장식 위로 폴짝 날아오르며 말했다.
―오늘 밤… 너에게 소개시켜 줄 녀석이 있어.
* * *
클라디우스가 관리하는 영지의 총면적은 무척이나 넓은 편이다.
물론 영지의 대부분이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클라디우스의 영지는 광활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아마 영지의 순수 면적만을 놓고 보자면 대륙의 모든 귀족 가문을 통틀어서도 제일일 것이고, 웬만한 국가의 ‘국왕 직할령’보다도 더 넓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편의상 클라디우스의 땅 전체를 가리켜 ‘에스페타라’라 칭하고는 했지만 사실 에스페타라는 클라디우스의 본가 저택이 위치한 섬을 부르는 명칭.
사실 클라디우스의 영지는 수십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群島)였다.
중심이 되는 섬 에스페타라를 중심으로 넓게 흩어진 수십 개의 섬.
그중에서 에스페타라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섬은 전체의 5분의 1 정도였고 훈련장이나 농토, 혹은 약품 제작소 등 기타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는 섬이 5분의 2 정도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5분의 2는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천혜의 야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순찰단의 주기적인 순찰을 비롯한 최소한의 관리는 행해지고 있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주기적으로 닿는 유인도와 무인도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는 게 사실.
지금도 에스페타라의 노파들은 어린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힌 채 푸근한 목소리로 그들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옛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한다.
“저기 멀리 보이는 저 섬에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바다 요정님들이 찾아오신단다.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꼭대기에 모여 춤을 추며 밤을 지새우시지.”
설령 평소 요정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조숙한 어린아이일지라도 환상담을 믿어버릴 정도로 달빛과 밤바다가 자아내는 광경은 마력에 가까운 힘이 있었고.
끼루룩.
―응, 응. 괜찮아. 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가도 돼.
난 에스페타라의 바다를 누비는 범고래 영수 ‘지아니’의 등에 올라탄 채 마법의 파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수의 등에 올라탄 소감은?
“재미있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안락해. 왜 아버님이 평소 다른 섬으로 여정을 떠나실 때 가문의 선박이 아닌 벨도루시의 등에 타서 이동을 하시는 지 알 것 같아.”
―흐흥, 그렇지. 물론 너희들의 선박이 제법 쓸만한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우리 영수를 당할 수는 없지. 겪어온 시간이 다른 법이니까. 에헴!
“고생은 지아니가 다 하고 있는데 왜 잘난 척은 네가 하는 건데.”
끼룩끼룩.
나와 털 뭉치를 태운 채 나선 밤 나들이가 썩 유쾌했는지 지아니는 파도를 가르는 와중에도 연신 목소리를 높여 기쁨을 표했다.
범고래 영수의 등에 올라탄 느낌은 ‘신속 쾌속, 그리고 안락’ 이 세 마디로 표현이 가능했다.
지아니는 정말로 솜씨 좋은 항해사였고,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지아니의 매끈한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도, 포말을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파도의 잔해를 바라보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클라디우스의 일원으로서 야간 경비를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아무리 내가 지리에 익숙한 장점이 있다고 해도 오밤중에 저택을 빠져나와 선착장까지 도착했는데 그걸 알아차리는 인원이 아무도 없을 줄이야.”
―그건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야. 혹시 모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주민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제법 중요한 일이라고.”
모든 영지에는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경비 체계가 있기 마련이었고 에스페타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려 현직 가주의 맏아들인 내가 자정이 넘은 시각에 밖으로 나와 바다 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그 어떤 경비 인원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섬의 경비 체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셈이었다.
“물론 내가 빠져나오는 거에는 문제가 없어. 하지만 만약 악의를 품은 섬 밖의 누군가가 오늘 밤 내가 밟은 것과 똑같은 경로를 밟아 잠입을 시도했는데 그때도 오늘처럼 감지를 해내지 못한다면… 그건 심각한 일이잖아?”
―체, 난 또 무슨 소리를 한다고. 야! 너는 특별 대우를 받는 중이니까 괜히 나중에 생사람 잡지 마. 가문의 경비병들이랑 섬을 지키는 영수들은 지금도 빈틈없이 경계 업무 중이라고. 만약 어떤 놈이 네가 밟은 길을 따라 섬에 들어오려 했다가는 바로 발각이 날걸.
“특별 대우?”
―그래. 경비병들이 저택을 빠져나오는 너를 발견하지 못한 건 경호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가항력 같은 거야. 설령 가문의 모든 경비 인원이 뜬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경비를 섰다 해도 너를 알아차리지는 못 해.
“왜?”
―왜긴 왜야. 야간 경비를 맡은 영수들이 너의 탈출에 협조를 했으니까 그렇지. 흐흐 우리가 힘을 모으면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설마 이 섬의 수호신들이 한마음으로 전개한 탈출 작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경비병들을 책망할 생각은 아니겠지?
털 뭉치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경비병들과 밤눈이 밝은 영수.
에스페타라의 야간 경계는 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개의 축이 나의 탈출을 방조했다니?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그럼 설마 야간 경비를 맡은 ‘타포마’가 정말로 너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데 뒷일도 걱정할 것 없어. 우리 똑똑한 부엉이 친구가 네 침대 위에 환영을 만들어 뒀으니까 설령 사용인들이 네 방에 온다 해도 네가 사라진 걸 눈치채거나 하지는 못할 거야.
타포마, 털 뭉치의 입에서 ‘에스페타라의 밤하늘을 관장하는 부엉이’의 이름이 나온 순간 내 표정은 한층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타포마는 성실한 성품과 빈틈없는 일 처리로 경비병들의 신임이 두터운 베테랑 영수였다.
그런데 그 녀석이 경비병들을 현혹시켰다니,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을 꾸민 뒷배경에 대한 의문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네 말은 영수들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야?
―응. 하지만 명령을 받는다기보다는 뜻을 따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은데.
”표현은 뭐가 됐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오래된 맹약에 따라 우리와의 약속을 존중해 왔던 영수들이 다른 누군가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지. 솔직히 말해서 충격적이야.
―충격적일 것 하나도 없어. 우리들이 맹약을 존중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 친구들은 ‘맹약의 공동 주인’의 뜻을 따르고 있을 뿐이니 클라디우스와의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니잖아?
“공동 주인?”
털 뭉치의 앙증맞은 입술이 옴지락거릴 때마다 그 어떤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던 비사(祕史)가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래. 클라디우스가 이 섬의 주인인 건 맞지만 에스페타라가 온전히 클라디우스의 것만인 건 아니야. 우리가 향하는 곳에는 클라디우스와 공동으로 섬을 소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인이 있거든. 물론 너희들은 그 공동 주인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만.
문득 바람이 불어와 좌우로 길게 뻗은 털 뭉치의 수염을 흩날렸다.
―너희들이 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럼, 오늘 영수들이 이상한 태도를 취한 것도 그 공동 주인이라는 자의 의도?”
―응. 그 녀석은 그렇게 하는 편이 너와 이야기를 나누기 더 쉽다고 판단했나 봐.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클라디우스의 땅 어딘가에 영수들을 뜻대로 다룰 수 있는 오래된 주인의 존재가 있었다니.
‘뭔가 비밀이 많은 섬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된단 말이야?’
역사책이 아닌, 밤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취한 탓에 나는 찰나 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잠시 후 내가 정신을 다듬은 것을 확인한 털 뭉치는 알밤송이 같은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말했다.
―기대해. 그 녀석이 너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니까.
* * *
―수고했어. 그럼 이따가 돌아갈 때 다시 연락을 할 테니까 늦지 않게 나와 줘야 돼?
끼룩끼룩.
영지 최외곽에 위치한 바위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으로는 수위권에 드는 섬에 나와 털 뭉치를 내려놓은 채 지아니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후웁!”
고생한 지아니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 후 나는 크게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곳을 향하는 도중 시야에 들어오는 바위섬을 보고 귀인과의 첫 만남을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황량한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섬에 도착한 직후 내 생각은 바뀌어 있었다.
병풍처럼 늘어선 푸른빛 바위들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라색 이끼.
정말로 요정들이 뛰어놀 것 같은 정취를 머금은 이 섬이라면 오랜 주인과의 첫 만남을 가지기에 괜찮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긴장 돼?
매무새를 가다듬던 나를 빤히 바라보던 털 뭉치가 질문을 던졌다.
“아예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어쨌거나 나는 모르는 우리 가문의 비사를 잔뜩 알고 있는 존재를 만나는 날이잖아.”
―긴장할 것 없어. 오늘은 옷도 예쁘게 차려입었고 무엇보다 그 녀석은 벌써부터 너를 꽤 맘에 들어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파닥파닥.
고요하기만 한 바위섬 위로 털 뭉치의 날갯짓 소리가 내려앉았고.
―야! 나 왔다!
털 뭉치는 이끼가 유독 선명한 빛을 발하는 동굴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 야! 나 왔다고! 빨랑 안 튀어나오고 뭐 해! 자꾸 늑장 부리면 그냥 간다!
‘저 녀석 나한테만 입이 험한 게 아니었군.’
약속의 주인을 향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경박한 말투.
―야! 난 네가 원하는 대로 데려왔다. 그러니까 내 역할은 꼬맹이를 여기로 데려오는 걸로 끝.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야! 자꾸 짜증나게 할래! 1분 내로 안 나오면 진짜 가버리는 수가 있어! 내가 한마디만 하면 지아니가 바로 여기로 올 거라고. 그럼 넌 오늘 허탕 치는 거야.
점점 더 경박해지는 털 뭉치의 말투.
아무래도 녀석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그때.
―부탁을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데 우리 벨제키엘이 왜 그렇게 심통이 났을까?
바위섬의 깊은 바닥에서, 영원의 숲에 입장할 때 들었던 꿈결처럼 달콤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