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0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0)화(10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0)
“이 나쁜 놈, 내 삶의 보람인 자기의 관심을 뺏어 갔으면 미안해서라도 자기가 나한테 관심도 좀 가져 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냐. 뭐 그리 잘났다고 매번 그리 시큰둥한 표정인 건데.”
차가운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낸 덕분에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던 유리안의 뺨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돌팔매질을 해 봐도 자갈을 꿀꺽 삼키기만 할 뿐, 답이라고는 돌아오지 않는 우물 같은 표정의 꼬마를 떠올리자니 또다시 울컥하는 덩어리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나한테 말 한번 붙여 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가 뭐 그리 잘났다고 퉁퉁거려! 아니, 뭐 따지고 보면 제법 잘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올 필요는 없잖아.”
당장 최근 보름간 있었던 일만 해도 그랬다.
자신이 훈련을 도와주겠다고 하면 감격의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올 사람들이 수련장 한 바퀴 반은 족히 될 텐데.
그런 내가 훈련용 복장까지 갖춰 입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수련장까지 왕림해 주셨는데 지어 보이는 표정이.
‘응 댁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왜? 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도와주겠다는 당신의 마음은 고맙기는 한데 내가 혼자가 더 편한 사람이라서 말이지.’
라니 더군다나 아직 일학년인 주제에.
“대체 뭐가 ‘혹시 제가 선배님께 잘못한 점이 있다면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야! 진짜 바보도 아니고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나!”
자신을 상대할 때 시큰둥한 것, 이상으로 아일리 바스티아를 막 대하는 꼬마의 태도를 보고 기분이 풀린 것도 잠시.
한번 꽁해진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던 유리안은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은 채 한밤의 성토 대회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싸움하는 머리는 그렇게 빙글빙글 잘만 돌아가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나 하고 있고! 감히 하늘 같은 선배님을 이렇게 분통 터지게 만든 주제에 지는 지금쯤 별 생각 없는 얼굴로 쿨쿨 자고 있겠지. 아우, 열 받아!”
만약 끝내 이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자신이 꼬마를 찾아가 어깨를 부여잡은 채로 ‘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이 나쁜 놈아!’라고 외친다면 꼬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 제가 나쁜 놈이었나요? 제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선배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니 지금부터라도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주신 점, 참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되도 않는 답변을 들려줄 꼬마를 떠올리고 있자니 이마가 한층 더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나쁜 놈! 씨익씨익.”
그 후, 유리안은 차가운 냉수가 가득 담긴 컵을 두 잔이나 비우며 생각을 이어 나갔지만 무심하기 짝이 없는 후배에 대한 서운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그래, 역시 누가 뭐래도 우리 자기가 최고야. 우리 자기는 내가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만들어 준, 하나밖에 없는 달링이니까.”
결국 사랑하는 자기의 얼굴을 떠올리고 나서야 그녀의 분노는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기, 미안! 내가 요 며칠간 자기 생각이 소홀해서 서운했지. 걱정 마! 지금부터는 하루 종일 자기만 사랑할 거니까.”
자기의 넘치는 사랑이 없었다면 ‘이번 회차의 꿈’을 이토록 안정적으로 이어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
사정이 있어 지금은 잠시 자신의 곁을 떠나 있지만 머지않아 다시금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 줄,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자기.
유리안은 자신과 자기를 연결해 주는, 소중하기 짝이 없는 수정구를 품에 안은 채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기야, 사랑해. 그러니까 자기도 앞으로도 나 좀 많이, 많이 사랑해 줘. 응?”
* * *
“혼돈의 기둥들과 싸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놈들을 상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얻어 내시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지, 가늠이 안 되는군요.”
“네가… 어떻게 혼돈의 기둥을….”
내가 혼돈의 기둥을 인지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걸까?
어깨 위에 올려진 기억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혼돈의 기둥에 대한 정보는 대륙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특급 기밀이니만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만약 전생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이 타이밍에 혼돈의 기둥을 유추해 내지는 못했을 거야.’
늑대인간, 마녀, 에지세크 교단, 뱀파이어 등등.
세상을 좀먹고 어둠을 숭상하는 무리들이 존재한다는 걸 편린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범주가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혼돈의 기둥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게 사포나 신전의 주교 놈을 처치했을 때였지 아마.’
전생의 내가 쉰 살을 조금 넘었을 무렵, 그 당시의 나는 사포나 평야 인근에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악덕 주교 놈을 처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놈을 처단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처음 예상과 달리 악랄한 주교 놈의 목을 따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전생의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허깨비 같은 놈들이 주교를 밀착 경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놈들은?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니 암살자는 아닌데… 이 허상 같은 움직임은 뭐지. 내가 움직임의 방향을 감지할 수 없는 놈들이 있었다니.’
음침하기 짝이 없는 생김새와 달리 주교를 보호하는 비밀 경호원들의 솜씨는 더없이 출중했고,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놈들의 몸에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야릇한 향이 묻어나왔다.
‘아무래도 예사롭게 볼 놈들이 아닌 것 같군.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겠어.’
당초 계획을 변경한 나는 한동안 사포나 인근에 머물며 주교를 관찰했고.
“끄륵… 네… 놈은….”
“목걸이? 이놈들 저마다 은밀한 장소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게 뭘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고를 기울인 끝에 주교 놈과 놈을 경호하던 허깨비들을 전원 처리할 수 있었다.
허깨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장신구’를 가지고 있었고, 난 내가 가진 암호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놈들의 문양이 어떤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나는 곧바로 그 장소를 향해 달려갔고, 마침내 내가 어느 쇠락한 옛 성터 지하에 숨겨진 놈들의 지하 기지에 도착한 그 순간.
“…미친 새끼들.”
인간의 시체와 피로 가득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연구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 커걱… 살려….”
“말해. 네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야?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연구시설에 남겨진 자료를 이 잡듯 뒤지고, 그곳에 기거하던 ‘신도’ 놈들을 협박한 끝에 난 허깨비들의 이름이 ‘에지세크 교단’이며 놈들의 목적이 이 세상에 혼돈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네놈들이 믿는 신이라는 놈이 ‘고대의 재앙’을 재현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건가?”
“이…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거룩한 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한… 숭고한 사명… 컥!”
“지옥에 가서 네가 믿는다는 그 신을 만나거든 전해. 그 미친 새끼는 너희들을 용서할지 몰라도 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놈들의 연구시설을 깨끗이 불살라 버리고 나온 그 날 새벽.
난 암살의 신으로서 내가 맡아야 할 과업의 서(書)에 한 페이지가 추가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난 악독한 귀족 놈들을 처치함과 동시에 에지세크 교단에 관한 정보 수집에 매진했고, 10년이 넘는 추적 끝에 놈들과 ‘광기를 공유’하는 또 다른 미친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혼돈의 기둥.
대륙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전쟁과 대규모 살인, 분쟁, 약탈을 뒤에서 조종하는 수수께끼의 비밀결사.
워낙 은밀하고 집요하게 활동하는 터라 전 대륙을 통틀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이 채 100명도 되지 않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은 전 대륙급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악(惡)의 집단.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어. 전생의 내가 고대왕국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놈들의 꼬리를 잡는 게 훨씬 더 어려웠을 거야.’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혼돈의 기둥은 ‘고대왕국’에 대해 기이하리만치 강력한 ‘증오와 관심’을 동시에 보였고, 그 사실은 놈들의 꼬리를 쫓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전생의 나는 아르카를 연마한 덕분에 고대왕국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이 놈들을 추적하는 실마리가 되었던 것이다.
‘타샤드의 갈브레이드 3세, 그 미친놈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확실하게 혼돈의 기둥을 추적할 수 있었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쓰레기들을 내 손으로 박멸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미친 황제의 야망을 막는 게 급선무.
결국 난 혼돈의 기둥을 뿌리까지 파헤치지 못한 상태로 최후의 결전에 임했고, 그로부터 약 1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혼돈의 기둥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폴리다고스에서 수학(修學)을 마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면 놈들의 행방을 살피려 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혼돈의 기둥을 쫓아 놈들이 120년간 저지른 악행을 파헤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놈들의 타깃이 되어 해를 입을 수 있으니, 10년 정도는 놈들을 못 본 척하려 했는데 여기서 오르페우스의 기억이 날 놈들에게 들이민단 말이지.’
물론 오르페우스의 기억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놈들과의 투쟁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달았는데 마냥 꼬리를 뺄 수는 없는 일.
난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호승심을 애써 억누른 채,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과거의 할아버님과 싸운 놈들의 정체만 짐작하고 있을 뿐 그놈들과 할아버님 사이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할아버님께서 무슨 각오로 놈들과 사투를 벌였는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허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제아무리 이 오르페우스의 후손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총명할 수가 있나?”
전생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단서 그리고 약간의 추측을 통해 도출한 결론.
내가 이 결론에 도달한 과정을 모르는 오르페우스의 기억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는 노릇.
―있자나, 오르페우스. 페이건 얘는 원래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가끔 하고는 해. 그런데 신기한 건 페이건이 하는 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히히 신기하지?
―우리 페이건은 워낙에 감이 좋은 데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정도로 똑똑하니까. 에헴! 어때 깜짝 놀랐지?
다행히 그간 나와 줄곧 함께했던 친구들이 오르페우스를 납득시키는데 도움을 줬고 클라디우스 사자들의 증언에 설득되어 버린 오르페우스의 기억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래. 나 대신에 널 지켜 준 이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에 불과한 내가 우리 아이에게 이것저것 캐물을 필요는 없겠지. 클라디우스의 아이야, 아무래도 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믿음직스럽게 자라 준 모양이구나. 고맙다, 고마워.”
내 손을 맞잡은 오르페우스의 손에서는 그가 빛으로 이루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말이다. 아이야, 네가 이 사실만큼은 꼭 기억했으면 하는구나.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비밀이 많고, 그중에는 그 진실을 알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비밀도 있는 법이란다. 내가 이곳까지 너를 부르기는 했다만 여기서 더 나아갈지 아니면 여기서 멈출지는 전적으로 네 자유야. 부디 어떠한 의무감도 없이 너 스스로의 길을 정했으면 하는구나.”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나와의 약속을 지켜 준 친구들이 있는데 이토록 씩씩한 후손까지 있다니 난 정말이지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스스스.
함박하기 그지없는 웃음이 잦아들 무렵, 빛으로 이루어진 오르페우스의 육신은 모습을 드러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오르페우스!
―벌써… 가는 거야? 쿨쩍.
“하하, 나도 아쉽지만 어쩌겠어. 아직도 남겨진 미래가 한참은 더 있는 너희와 달리 나는 이미 과거의 기억에 불과한 것을. 그래도 너희 둘의 미래가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 걸 확인한 덕분에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하.”
오르페우스는 빛으로 가득한 팔을 뻗어 친구들을 끌어안았고, 친구와의 두 번째 작별을 앞둔 클라디우스의 사자들은 광휘의 기사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데 말이다. 조금 전에 내 입으로 아무런 부담도 가지지 말라고 떠들어 놓고 이런 말을 하기는 참 민망하다만. 흐흐! 아무래도 우리 후손의 눈동자를 보건대 도무지 이쯤에서 곱게 물러날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하하하!”
“글쎄요. 지금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리기에는 힘든 문제인지라.”
“그리고 어쨌거나 이 늙은이가 남긴 기억을 들어주기 위해 먼 길을 발걸음한 우리 후손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참 야박한 일. 페이건, 이 할아버지가 지금부터 너에게 약간의 단서를 주고자 하니 내 말 잘 듣거라.”
진지한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합죽한 미소.
이렇게 오르페우스의 기억을 마주하고 있자니 왜 라무테 님과 털 뭉치가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토록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르페우스는 라무테 님과 북슬이를 끌어안은 손에 한층 더 힘을 주며 말했다.
“힌트 그 첫 번째. 혹시라도 마고니아에 오를 기회가 생기거든 그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절대로 없었으면 하는구나. 마고니아는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장소. 네가 마고니아의 부름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너의 길을 밝히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