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0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1)화(10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1)
‘역시 마고니아였던 걸까?’
오르페우스의 기억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간 해 왔던 추측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만남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마고니아로부터의 접근이 오르페우스의 기억을 발현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내 예상은 이번에도 적중한 듯했고, 난 폴리다고스의 하늘을 지키는 ‘공중 고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을 뿐, 마고니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그런데 저곳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니… 무슨 의미인 걸까?’
현재로서 마고니아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가장 유력한 가설은 5인의 영웅 중 한 명인 ‘대마법사 살가레스’가 그 외형을 만들고 그렇게 완성된 고성을 오펜하이머가 허공에 띄워 올렸다는 ‘공동 창조설’이다.
하지만 이 역시 명백한 기록이 아닌 정황증거를 토대로 한 가설에 불과한 터라 마고니아의 정확한 기원은 아직도 베일 속에 감춰진 상태였다.
‘물어본다고 덥석 가르쳐 주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고 표정을 보아하니 오르페우스 본인이 마고니아를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5인의 영웅이 마고니아를 제작했다는 공동 창조설을 기각한다면 그다음으로 유력한 가설이 마고니아는 폴리다고스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영웅들은 마고니아를 발견했을 뿐이라는 ‘최초 발견설’이다.
‘굳이 내 의견을 말하자면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더 가깝기는 한데….’
고개를 쳐드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억누른 채, 난 오펜하이머가 들려줄 다음 힌트를 기다렸고.
곧이어 오르페우스의 허연 수염 사이로 다음 계시가 들려왔다.
“할아비가 주는 힌트 두 번째. 페이건, 혹시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
“…혹시 대륙 남동부에 전해지는 전래 동화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왜 그, 마녀의 저주로 장미성에 갇힌 채 잠을 자는 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그래, 남동부에 전해져 내려오는 그 이야기가 맞단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아예 잊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오르페우스의 입에서 나온, 작금의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고작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려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 온 게 아닐 텐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실 그 이야기는 우리, 그러니까 현생인류의 것이 아니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아주아주 오래되고도 간절한 바람이거든.”
“지금 동화가 아닌 바람이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바람이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이어진, 고대로부터 이어진 바람.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이야기가 되어 기억되다니, 하하! 어떠냐? 페이건, 이렇게 생각하면 참 낭만적인 일이 아니더냐!”
스스스.
이것저것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할 것만 같았다.
오르페우스가 남기고자 했던 ‘단서’를 전해 준다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기억은 어느새 빛의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힌트는 여기까지. 이쯤에서 우리는 헤어져야 할 것 같지만 부디 기억해 주려무나. 이리도 훌륭하게 자라 준 너를 만난 덕분에 나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슬프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면 오래지 않아 할아버님을 다시금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그래, 그것 또한 온전히 네가 선택할 일이지. 그렇지? 라무테, 벨제키엘.”
―오, 오르페우스 진짜 가는 거야? 안 가면 안 돼?
―벨제키엘, 그만. 알잖아? 우리… 웃는 얼굴로 오르페우스를 보내 주자. 응?
“하하, 너희들은 정말이지 변한 게 없구나. 페이건, 혹여 다시는 나를 못 보게 된다 하여도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단다. 네 곁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도 충실한 친구가 둘이나 있어 줄 테니까. 그렇지? 두 사람!”
―당연하지. 그게 너랑 우리가 한 약속이니까! 훌쩍.
―그리고 설령 너와의 약속이 없었더라도 우리가 페이건의 곁을 떠나는 일은 없을 거야. 페이건은 나와 벨제키엘의 아들이기도 하니까.
꽈악.
“그래, 고마워. 정말 고마워. 부디 세 사람, 아니 한 사람과 두 마리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하하하!”
허리 아래로는 전부 빛이 되어 흩어지고 상반신밖에 남지 않았지만, 오르페우스의 기억은 세상 누구보다도 큰 사랑을 담아 둘을 끌어안았고.
스스스.
―오르페우스, 진짜 간 거야?
그 포옹을 끝으로 그토록 오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기다려 온 광휘의 기사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읏차! 페이건 님, 스승님! 저기 있는 나무 보이시죠? 나, 저 나무까지 삼백 번 왔다 갔다 했어요. 이렇게 깜깜한 밤에 이렇게 빨리 날아다닐 수 있다니. 나 대단하죠? 음, 그런데 스승님 왜 울고 있어요?
―울기는 누가 울어 바보야!
―응? 스승님, 왜 화를 내요? 난 스승님이 슬퍼 보여서 위로를 해 주려던 것뿐인데. 스승님은 참 쪼잔해♪.
오르페우스를 구성했던 빛무리는 완전히 잦아들었고 우리의 일이 끝났음을 직감한 아카이드가 수정 섬에 내려앉았다.
―너, 이 자식! 하늘 같은 스승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난 너를 위해 이렇게 선물까지 잔뜩 챙겨왔는데!
―우헹헹! 그만 때려요. 스승님 발은 솜뭉치처럼 통통해서 그 발에 맞으면 너무 간지럽단 말이에요오.
투닥투닥 몸의 대화를 나누는 북슬북슬 사제지간.
아무래도 아카이드 녀석은 침울해진 북슬이를 위로해 주기 위해 일부러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 같았고, 그 마음이 효과가 있었는지 북슬이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듯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갈까? 우리.”
상황을 보건대 북슬이가 준비한 선물을 전달해 주는 건 무리인 듯싶어 난 털 뭉치가 준비한 선물 상자를 챙겨 아카이드의 등에 올라탔다.
―페이건, 너도 생각이 많지. 미안, 우리가 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했는데 너무 경황이 없어서.
“아니에요. 라무테 님과 북슬이가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다면 전 그걸로 만족합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 각오를 다잡을 필요는 있어 보이는군요.”
고대왕국, 희생자, 혼돈의 기둥, 마고니아 그리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까지.
미궁 속을 헤매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 확실히 새겨 놓아야 할 단어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킨 후 라무테 님은 어깨 위에 태우고, 북슬이를 정수리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는 더없이 익숙해진 그 무게감을 한껏 느끼며 최대한 솔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많은 걸 알지는 못하지만 재밌네요. 정말 재미있어. 이렇게 재미있어 버리면 여기서 물러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겠는데요.”
* * *
다그닥다그닥.
길게 뻗은 대로를 따라 이어지는 말과 마수의 행렬.
마법적 도구를 주렁주렁 매단 군마(軍馬)부터 페가수스, 앰피티어, 켈피 등등.
마법과 거리가 먼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본다면 절로 입이 떡하니 벌어질 만큼 행렬에 등장하는 탑승용 마수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콜록! 콜록!”
으리으리하기 짝이 없는 화려한 행렬.
하지만 마수들의 등에 올라탄 기수(騎手)들의 모습은 웅장하기까지 한 행렬의 전경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어어, 야! 진정해, 진정! 응? 내 말 들어야지! 오늘부터는 내가 네 주인이란 말이야!”
“쿨룩, 아우… 씨! 진짜 무슨 놈의 먼지가 이렇게 많아! 도착하기도 전에 목이 다 맛이 가겠네. 에이 씨, 물도 벌써 거의 다 먹어가잖아!”
탑승하고 있는 마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진땀을 뻘뻘 흘리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동 중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마련인 흙먼지 가지고 질색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놈들까지.
‘개판이군.’
사방에서 펼쳐지는, 참으로 얼간이스러운 꼬라지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오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이동 중 자기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모질이들을, 그것도 무더기로 데리고 고대유적까지 가야 한다니. 인솔 교관들도 고민이 크겠어.’
오늘 새벽 폴리다고스를 출발할 때만 해도 꼬맹이들의 표정은 득의양양했다.
마침내 도래한 이동수업의 그 날.
교내가 아닌 외부 장소에서 이동수업을 한다는 우쭐함과 입교 이래 처음으로 폴리다고스의 담장을 벗어난다는 기대가 꼬맹이들의 간을 한껏 부풀게 만든 것이다.
1학년들은 사전에 편성된 조별로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떠들었고 개중에는 자신은 이런 식의 여행 경험이 아주 풍부하다며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놈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나절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우, 야! 속도를 올릴 거면 올린다고 말을 해야지! 그렇게 네 맘대로 뛰쳐나가면 어떡해!”
“어어! 야, 아니야! 오른쪽이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내가 너희들을 이끌어 주겠다.’라는 둥 허세를 부리던 놈들의 대부분은 사색이 되어 비명을 내지르기에 바빴다.
‘여행 경험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하나. 너희들이 해 온 여행이라 봤자 옆에서 고삐를 잡아 주는 하인이 있고 음료가 담긴 쟁반을 든 채 뒤따르는 시종이 가득한 종류의 여행이 전부일 텐데.’
자기 손으로 고삐를 죄고 마수를 통제해야 한다는 (내 입장에서는 과업 같지도 않은)과업 앞에 진땀을 쏟아 내고 있는 애송이들.
“쿨룩쿨룩, 야! 공중으로 뜨라고!”
날개 달린 마수에 탑승한 학생들 중에는 먼지라도 좀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삐를 잡아채는 이들이 있었지만, 마수들은 요지부동 지상에 다리를 딱 붙인 채 도무지 떠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조금만 뜨면 최소한, 이 먼지는 안 마실 수 있을 거 아냐! 높이 뜨라는 말까지는 안 할 테니까 내 키만큼이라도 좀 떠보라는 말이야!”
선두 근처에서 이동하고 있는 도련님 중에 한 분은 타고 있는 앰피티어의 머리까지 쥐어박아 가며 난리를 쳤지만 ‘날개 달린 도마뱀’은 날개를 펼 생각도 않은 채 몸통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킥! 아주 난리도 아니네. 어휴! 쟤네들도 다 사정이 있어서 저러는 건데 불쌍한 아이들을 왜 그렇게 못살게 구는지. 그나저나 페이건, 아카이드는 잘 따라오고 있을까? 너무 높은 곳에서 따라오는 바람에 우리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폴리다고스를 떠난 이래로 줄곧 내 오른쪽 옆에 붙어 재잘거리던 카밀라의 입에서 ‘마수들이 지상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원흉’의 근황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괜찮아. 눈이 워낙에 좋은 녀석이라서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높이 떠 있더라도 아카이드가 우리 행렬을 놓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으응… 그치만 그 커다란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걸. 잘 따라오고 있는 거겠지? 아카이드는 덩치만 크지 아직 어린아이라며. 혹시라도 길을 잃어 울고 있기라도 하면 어떡해?”
“저기 카밀라,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랜파에 교수님이 집필하신 〈마수의 신비학〉의 두 번째 챕터를 보면 그리폰의 경이로운 시력에 관한 내용이 나오거든. 거기에 따르면 그리폰은 주간에는 10km, 야간에는 15km 떨어진 지점까지 관측이 가능하대. 그러니까 아카이드도 잘 따라오고 있을 거야.”
카밀라의 걱정이 끝나기도 전에 내 왼쪽 옆을 지키고 있던 제라르가 또다시 자신의 진가를 뽐냈고, 지식의 보고로부터 답변을 얻어 낸 카밀라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진짜?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제라르 너도 참 대단해. 그 두꺼운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어떤 챕터에 나온 내용인지도 기억하다니. 역시 폴리다고스 최고의 우등생 제라르 마페이언이야. 박수! 박수!”
“아니야, 박수는 헤헤. 그냥 랜파에 교수님이 워낙에 재미있게 집필을 하셔서 여러 번 읽다 보니 어쩌다 기억이 났을 뿐인데 뭐.”
오늘도 박수를 쏟아 내며 제라르의 자존감을 고취시켜 주는 카밀라와 언제나처럼 쑥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제라르.
마음 같아서는 나 역시 제라르의 자존감을 북돋는 데 일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라르의 자존감보다 조금 더 중요한 문제가 포착되었던 것이다.
‘정식으로 행렬에 포함되지 않은 놈들이 은밀히 뒤를 따르고 있어. 다른 곳도 아니고 폴리다고스가 주관하는 행렬을 미행하다니. 뭐 하는 놈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