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02)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2)화(102/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2)
사륵사륵.
마른 나뭇잎 위를 어지럽게 누비는 발걸음.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자가 자아내는 특유의 충격.
그리고 서로 간에 끊임없이 위치를 바꿔 가며 대형을 유지하는 민첩한 몸놀림까지.
‘착각 같은 게 아니야. 행렬을 미행하는 무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셋, 아니… 넷. 움직이는 패턴이나 간격을 보면 저놈들이 전부는 아닌 것 같네. 본대는 따로 있고 저놈들이 선발대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거리를 좁힌 채 따라붙기 시작한 거지? 출발할 때는 저런 놈들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손에는 여전히 말고삐를 쥔 채로, 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출발 과정을 되짚었다.
당초 예정된 출발 시각은 오전 6시.
“이래서야 도저히 출발할 수 없겠는걸.”
“우리가 준비한 말들이야 워낙에 훈련이 잘 되어 있고 감각도 상대적으로 둔감한 터라 어찌저찌 이동할 수 있겠다만… ‘피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수들은 이 상태로 도무지 방법이 없어.”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탓에 실제 출발은 예정됐던 시간보다 삼십 분 정도 지연되고 말았다.
히이이이잉.
케르, 케르륵.
자리에 주저앉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페가수스와 머리통을 다리 사이에 파묻은 채 통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앰피티어까지.
폴리다고스의 귀염둥이들이 저마다 뽐낼 준비를 마친 채 대동한 마수들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움츠러들고만 있을 뿐 통 이동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클라디우스 학생, 우리가 사전에 배포해 준 ‘억제기’는 빠짐없이 부착한 게 맞지요?”
“네, 사전에 당부해 주신 그대로 정위치에 부착 완료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셔도 좋아요.”
“학생이 그렇게 말해 주는데, 굳이 확인까지는 할 필요 없을 것 같고.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로군요. 억제구로도 피어의 영향을 차단하는 데 실패하다니. 그 그리폰 이름이 아카이드라고 했던가요? 허허! 내 생애 이렇게까지 강력한 피어를 발산하는 그리폰을 보게 될 줄이야.”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마수들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든 장본인은 아카이드였다.
난 이번 이동수업에 아카이드를 데려갈 것을 학사 당국에 알린 바 있었고, 최초 등록 당시 아카이드가 발산하는 피어의 위력을 똑똑히 목격한 당국은 그에 따른 예방책을 준비했다.
오벨리언 마르커스의 페가수스가 아카이드의 피어에 짓눌려 꼼짝도 하지 못한 것과 같은 불상사가 또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테니까.
학사 당국이 준비한 예방책의 정체는 바로 피어의 영향력을 억누르는 주문이 새겨진 억제구였고, 난 아카이드의 육신 곳곳에 당국으로부터 받은 억제구를 부착하였다.
“교관님들께서 말씀하신 조치를 취했으니 아카이드를 데려가는 데 문제 될 건 없겠죠?”
“하하! 당연하지요. 그 억제구는 유물국의 교수님들께서 직접 제작한 마도구니 그것만 잘 장착했다면 다른 학생들의 마수가 피어의 영향을 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껄껄거리며 억제구의 성능을 확신하던 교관.
하지만 오늘 아침, 억제구를 주렁주렁 매단 아카이드가 허공을 가르며 나타나는 그 순간 그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움직여, 이 바보야! 움직이라고!”
끼에에엑.
도도한 표정으로 주인의 출발 명령을 기다리던 마수들은 아카이드가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겁먹은 쥐 같은 몰골이 되어 바들바들 떨기에 바빴으니까.
아카이드의 피어가 워낙에 압도적이다 보니 구속구의 억제력을 뚫고 마수들을 지배해 버리고 만 것이다.
“…피어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억제구까지 동원해 봤는데 효과가 없다니. 실례지만 클라디우스 학생, 이 아이 평범한 그리폰이 맞나요? 알고 보니 드래곤의 핏줄이 섞여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요?”
“글쎄요. 저도 이 녀석의 혈통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라서요. 다만 아카이드 이 녀석이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리폰 무리들 사이에서도 몸이 튼튼하고 발육이 빠른 걸로 유명했다고는 하더군요. 그리폰치고도 워낙에 몸이 단단하다 보니 피어 역시 보통의 그리폰보다 강한 거 아닐까요?”
“혹시 그리폰에게 말해서 피어를 약화해 볼 수는 없을까요?”
“아카이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완전한 통제는 어려울 것 같다만, 일단 지시를 내려 보겠습니다.”
학사 당국은 피어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리폰의 권능을 약화시키는 건 불가능할 뿐이었고 결국 그들은 나를 상대로 부탁을 해 올 수밖에 없었다.
“클라디우스 학생, 정말 미안합니다만 그리폰을 타고 이동하는 걸 포기해 줄 수는 없겠는지요? 지금 상태 같아서는 도무지 출발이 불가능하여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것이니 부디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
“어… 저 녀석을 타지 않는 건 괜찮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저는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요. 아카이드를 믿고 별도의 이동 수단을 준비하지 못했거든요.”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생이 결정만 내려 준다면 유물국 측에서 훈련이 아주 잘 된 파비누스산 준마를 준비하도록 할 테니까요.”
“혹시 한 필 더 가능할까요? 제 친구도 아카이드를 타고 이동하기로 예정이 되어있던 터라….”
“물론입니다. 그런 사정이 있다면 저희가 당연히 친구분의 말까지 준비해야지요. 그럼, 말을 대령하라 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꼬박 삼십여 분을 지체한 끝에 나와 제라르는 학사 당국이 준비해 준 최고급 준마의 등에 오르게 되었고.
―히잉, 페이건 님을 태우고 실컷 날 수 있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하지만 사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페이건 님, 저는 저 겁쟁이들이 떨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까지 부웅 떠서 페이건 님을 따라갈게요. 그럼 이따가 밥 먹을 때 봐요! 스승님!
아카이드는 행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고(高)고도 비행 모드로 우리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저렇게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이 떠 있는데도 앰피티어나 페가수스들이 아예 날개를 펴지도 못하는 걸 보면 아카이드의 피어가 강력하기는 정말 강력한가 봐.”
“사실은 나도 오늘 깜짝 놀랐어. 페이건 옆에 있을 때는 워낙에 얌전하기만 해서 아카이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깜빡했었거든. 그런데 역시 그리폰은 그리폰이야. 이 정도로 압도적인 피어라니, 정말 대단해.”
“그나저나 일이 이렇게 돼서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겠네. 사실 어제부터 나한테 조용히 와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카이드의 등에 탈 수 없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거든.”
“어! 사실은 나도 그랬는데. 그래서 카밀라는 그런 사람들한테 뭐라고 대답했어?”
“아카이드의 주인은 페이건이니까 정 그리폰에 탑승해 보고 싶으면 페이건한테 직접 말하라 그랬지 뭐. 그랬더니 그건 또 싫다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돌아가더라고.”
“헤헤, 그것도 나랑 똑같네. 그 사람들은 아카이드가 무서운 걸까, 아니면 페이건한테 뭔가를 부탁하는 게 무서운 걸까?”
“그야 둘 다 아니겠어?”
아카이드를 화제 삼아 깔깔거리기 바쁜 두 사람.
‘마법적인 감각이라면 이미 학생 수준이 아득하니 뛰어넘은 카밀라도 녀석들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어. 그렇다면 마법적인 능력을 배제한 채 오러와 육체적인 능력을 집중적으로 단련한 정예병이라는 뜻인데….’
두 사람과 보조를 맞춰 가며 나아가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미행자들에 대한 추측으로 가득했다.
‘스텝으로 판단컨대 암살자는 아니야. 국가에 소속된 정규 병력이라면 진즉에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겠지. 암살자도 아니고 정규 병력도 아니라면 특정 가문에 소속된 사병이거나 고용된 용병일 가능성이 커.’
다그닥다그닥.
놈들이 접근한 이후로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속도나 대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동 행렬.
상황을 보건대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관들 역시 미행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는 못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들의 둔감함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번 이동수업을 총괄하는 맥데브 교수는 마법사. 이동수업 장소가 고대 유적이다 보니 인솔 교관들 역시 대부분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어. 최고 수준의 검사나 격투가가 이동 행렬에 합류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저놈들의 존재를 감지하는 건 어렵겠는걸.’
만약 저놈들이 일정 거리 이하로 접근을 한다든가 학생들에게 공격을 취한다면 그 순간 보호 마법이 작동되고 교관들 또한 수상쩍은 놈들의 정체를 감지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정체 모를 놈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동 행렬의 뒤를 따르고만 있을 뿐.
나 정도로 이런 종류의 감지에 특화된 사람이 아닌 이상,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와중에 저토록 은밀하게 뒤따르는 놈들을 감지해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어때서?’
―아까 전부터 쫌생이 표정이잖아. 넌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할 때면 표정이 쫌생이 같아진단 말이야.
쫌생이라니 이 자식이.
마음 같아서는 그 말랑말랑한 볼따구니를 한껏 당겨 주고 싶었지만, 녀석의 눈썰미가 놀라운 것도 사실이었기에 한 번 참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미행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그걸 감지하지 못한 모양이고.
―흐흐, 거봐! 쫌생이 맞잖아. 라무테, 내가 말했지? 페이건은 특급 쫌생이라서 다른 사람이 못 느끼는 걸 혼자서 잘 느낄 수 있다고.
―페이건, 혹시 짐작 가는 곳은 있니? 왜 수상한 놈들이 아직 어린 학생들의 뒤를….
북슬이는 ‘쫌생이’를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라무테 님은 북슬이의 되도 않는 소리를 단번에 잘라 낸 후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지금 당장은 짐작 가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허깨비 같은 놈들의 미행이 길어지다 보면 뭔가 꼬투리가 잡히겠지요.’
한데, 내 입에서 꼬투리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쿵쿵쿵.
“으악! 뭐야 저 괴물은?”
“몬스터인가? 첫날부터 사냥인 거야? 그것도 저렇게 큰 놈을?”
바위 절벽을 거대한 쇠망치로 후려갈기는 듯한 굉음이 울렸고, 최선두에서 ‘예고에 없던 변수’를 맞이한 학생들이 질러 대는 소리가 후미에까지 들려왔다.
“어머! 앞쪽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이상하네. 유적으로 가는 길은 교관님들께서 몇 번이나 사전 탐사를 마친 지역이라 문제가 발생할 일이 없을 텐데?”
느긋한 표정으로 여정을 이어 나가던 카밀라와 제라르 역시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걸음을 멈췄고, 첫 번째 소음이 감지된 그 순간 난 즉시 한걸음 물러서 둘의 후방을 확보한 후 행렬의 후미를 향해 감각을 집중시켰다.
‘…아니야. 특별한 조짐은 없어. 그렇다면 앞쪽에서 발생한 문제는 저놈들이랑 관련이 없는 일인 건가?’
하지만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미행인들의 움직임에서 별다른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제야 난 전방을 주시할 수 있었다.
“정지! 정지! 학생 전원은 이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대기합니다!”
“전원 대기하세요. 별도의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개인적인 이동이나 현 위치 이탈을 금합니다.”
행렬 곳곳에서 무리를 인솔하던 교관들이 학생들을 정지시켰고 중, 후열에서 선두를 따라가던 학생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얼굴을 마주했다.
‘정지 명령을 하달하고는 있다만 표정이며 행동에 여유가 있는 거 보면 미행인들을 감지하고 긴급 정지를 한 건 아닌 것 같고, 전방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미행인들을 향해 한껏 집중시켜 놓았던 감각을 앞쪽으로 돌리자 당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선두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세상에… 뭐가 저렇게 커? 8… 아니 10미터는 족히 되겠네. 그리고 무슨 털이 저렇게 많지?”
“몸은 꼭 수달 같은데 얼굴에는 오리의 부리가 달려 있다니. 세상에나 꼬리는 왜 저렇게 넓적해. 이렇게 생긴 동물, 아니 몬스터가 이 세상에 있었단 말이야?”
학생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는 정보를 통해 난 행렬을 막아선 ‘살아있는 불상사’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하나의 지류(支流)처럼 보이지만 호수 아래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흐름이 혼합되어 흐르고 있고, 그 바람에 호수 바닥 순환이 매우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어. 조건만을 놓고 보면 ‘포코바’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기는 한데.’
우리가 걷고 있는 길옆을 따라 흐르는 호수에 손을 뻗어 수온을 확인한 후, 난 곧바로 근처에 있는 거목의 가지를 향해 뛰어올랐다.
“어머! 페이건, 네가 은근히 개구쟁이인 건 나도 알고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장난치면 못써!”
농담인지 진담인지 판단이 어려운 카밀라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무에 오른 나는 전방을 주시했고 행렬이 멈춰 서야만 했던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뀨뀨뀨.”
나무에 오른 덕에 탁 트인 시야에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바위 절벽 위를 오르려 하는 짐승의 모습이 들어왔다.
“뀨뀨.”
수달의 몸통에 오리를 닮은 부리를 가진 거대 마수의 발버둥, 더없이 간절해 보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포코바, 하루 중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내는 녀석이 왜 기를 쓰고 바위산을 오르려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