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06)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6)화(106/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6)
“그래서 포코바가 광분 상태가 아니라는 건 그렇게 알아냈다 치고 그다음은?”
“포코바의 상태에 대한 판단을 끝냈으니 그다음에는 주변 상황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데 시야에 정면으로 들어오는 바위산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고, 포코바의 목적도 바위산 자체라기보다는 절벽을 오르는 데 있는 걸로 보였거든. 그래서 절벽 위를 살폈지.”
“응응,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마냥 황량한 바위산처럼 보였지만,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니 구석 한 귀퉁이에 뿌리를 내린 채 자라고 있는 마셀라 나무가 보였어. 마셀라 나무가 강력한 화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제라르가 말해 줬을 것 같은데.”
“응. 깍쟁이같이 딱 그것만 말해줬어.”
카밀라의 대답을 통해 역시 제라르는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악이 끝났으면 그냥 자기가 말해 주지 굳이 그걸 마다해서 나를 귀찮게 하다니,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마셀라 나무를 보고 절벽 인근의 토양이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이유도 알 수 있었어. 원래 이 정도 규모의 호수를 근처에 둔 지역의 땅에는 습기가 맺혀 있기 마련인데 절벽 근방은 사막처럼 건조했잖아?”
“아하! 마셀라 나무의 뿌리가 발하는 열기에 인근의 땅이 바짝 익어 버린 거구나.”
“절벽에는 포코바, 정상에는 마셀라 나무. 포코바가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고통일 바위 절벽의 방해를 뚫고 어떻게 해서든 마셀라 나무를 얻으려 애쓴다면 그 비장함에 걸맞은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더라고.”
“그 사연이라는 거, 나중에 모습을 드러낸 아기 포코바와 관련이 있는 거 맞지?”
“그 암컷 포코바, 꼬리는 유독 부풀어 오르고 복부에 털은 무성한데 얼굴은 상대적으로 홀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 그런 식의 비대칭적인 신체 발달은 출산 직후의 대형 마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야.”
“육아에 적합한 형태로 암컷 마수의 몸이 변화를 일으킨 거구나?”
“응, 어미 포코바는 생후 3개월 정도 시점까지 아기 포코바를 품 안에 품은 상태로 수중 육아를 수행하거든. 그동안은 어미가 아직 체온 조절 기능이 미흡한 유체(幼體)의 체온을 유지시켜 줘야 해서 아기를 감쌀 복부의 털과 꼬리가 푹신해져야만 했던 거야.”
“그럼 얼굴이 홀쭉해진 건?”
“아기를 품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 없겠지. 먹이 섭취를 못 하고 출산 전에 체내에 비축해 둔 양분으로만 3개월을 버텨야 하니 얼굴이 홀쭉해질 수밖에.”
“어머! 아기를 위해 그런 고통까지 감내하다니. 그 아이 아주 훌륭한 엄마였구나. 저기 페이건, 이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 아이를 엄마라고 판단한 이유 이게 전부는 아니지?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감이 좋다고나 해야 할까?
딱히 마수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 같지 않음에도 카밀라는 좋은 타이밍에 좋은 질문을 연이어 던졌고, 덕분에 난 별도의 고민 없이 사건의 얼개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발톱, 포코바는 평생 동안 발톱이 자라는 마수거든. 자라난 발톱이 사냥을 하는 과정에서 닳고, 다시 닳은 발톱이 자라나고. 이 과정을 통해 포코바는 사냥을 하기에 적절한 길이의 발톱을 자연스레 유지할 수 있어. 그런데 아까 그 녀석, 발톱이 굉장히 길었거든. 제대로 된 사냥을 한동안 전혀 못 했다는 뜻이지.”
“잠깐만, 여기까지 정리 좀 하고. 음, 좋아 그래서 그 아이가 갓 출산을 한 엄마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어. 그래서 그다음은?”
“정상적인 포코바라면 바위 절벽 근처에는 가지 않고 마셀라 나무를 욕심내는 일은 더더욱 없어. 그런 포코바가 마셀라 나무를 탐낸다는 건 뭔가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어미 포코바의 정신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고 다소 야위기는 했지만 육체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 같지도 않았거든. 본인의 몸과 마음에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님에도 어미 포코바를 그토록 절박하게 만들 수 있는 문제가 과연 뭐가 있을까?”
“정답, 아기!”
“그래 정답이야. 즉 상황을 보건대 어미가 아닌 아기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데, 엄마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아기 포코바에게 그런 요인은 많지 않거든.”
“아아! 알겠다. 그래서 제라르가 호수에 얼굴을 담그고 물이 차갑다고 한 거구나. 아기 포코바가 감기에 걸린 거였어!”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답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상황의 맥을 짚어 내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었다.
“우리가 걷던 길옆으로 쭉 펼쳐진 호수의 이름이 ‘아세트’거든. 북쪽의 쿠타산맥 사이로 흐르는 한류와 남쪽의 에소칼 평야 너머에 흐르는 난류가 한 데 모여 만들어진 호수가 아세트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물줄기가 섞이는 덕분에 아세트 호수는 내부 순환이 잦고 어종 또한 풍부해. 포코바 입장에서는 최적의 환경인 셈이지.”
“그런데 아기 포코바는 왜 감기에 걸린 거야? 아세트 호수는 포코바들에게 최적의 환경이라면서?”
“호수를 구성하는 난류와 한류의 균형이 깨지는 바람에 수온이 급격하게 떨어졌거든.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인데 올봄 쿠타산 정상의 빙하가 급격하게 녹아 버린 게 아닐까 싶어. 빙하가 녹은 차가운 물이 원래 물줄기에 섞이다 보니 한류의 흐름이 거세졌고 그 바람에 호수의 온도가 평년보다 떨어지게 된 거지.”
“그래서 온도가 떨어지는 걸 견디지 못한 아기가 감기에 걸린 거구나. 성체라면 어느 정도의 수온 변화는 별문제 없이 견뎌 낼 수 있겠지만 아직 체온 조절이 미흡한 아기 포코바에게는 치명적인 일일 수도 있으니까.”
“포코바의 육아는 암컷이 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수컷은 짝짓기 이후에 그대로 가족을 떠나 버리거든. 만약 어미가 육아 경험이 풍부했다면 수온이 떨어진 걸 감지하자마자 한류의 흐름이 약한 지점으로 이동을 하든가 별도의 보온 조치를 취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은 육아 경험이 전무한 생초보 엄마인 바람에 아기는 꼼짝없이 한류에 노출되었고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만 거지.”
“어… 암컷 포코바가 육아 경험이 없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포코바의 얼굴에 그런 것까지 써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가슴, 정확하게 말하면 포유(哺乳) 기관인 유두 근방을 보고 알았지.”
“에엑! 유… 유, 뭐라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하며 가슴을 가리는 카밀라.
하지만 이 녀석의 눈동자에 맺혀 있는 장난기를 보건대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용어일 뿐이니까 그런 반응 보일 것 없어. 유체 포코바들은 젖 욕심이 많은 걸로 유명해. 그 암컷 포코바가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었다면 이전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빨 자국이 유두 근처에 가득했겠지. 하지만 그 녀석의 가슴은 더없이 깔끔했고 포코바가 아직 포유 경험이 없는 생초보 엄마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거야.”
“어머… 가엽기도 해라. 아기가 아프다고 칭얼거릴 때마다 엄마 포코바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아이가 아픈 것도, 우는 것도 전부 다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 죄책감과 가슴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녀석은 결국 바위산을 오르겠다는 결심을 내린 거겠지. 이 근방에서 오래 살았을 테니 절벽 위에 뜨거운 기운을 머금은 뭔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테니까. 그 열기의 근원으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미 포코바는 물 밖으로 나와 길을 막아선 채 몸부림쳤던 거야. 건조한 흙과 바위가 주는 고통까지도 전부 참아 내면서. 이런 걸 보면 엄마라는 건 참 위대해.”
“응, 역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해. 그리고 그 엄마 포코바에게도 아기 포코바에게도 참 다행이야. 페이건이 타이밍에 맞춰 그곳을 지나가는 바람에 모든 일이 좋게 풀릴 수 있었으니까.”
마침내 완전히 밝혀진 사건의 전말.
카밀라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정말이지 감격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페이건이 없었다면 그 어미는 쫓겨나거나 최악의 경우 사냥을 당했을 거고. 그럼 물속에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기도 꼼짝없이 숨을 거뒀을 거야. 페이건, 고마워! 넌 오늘 무려 두 개의 생명을 구한 거야.”
“운이 좋았지. 아기를 치료할 수 있는 마셀라 나무가 근방에 없었다면 나도 별수 없었을 거야. 그저 어미 포코바를 다치지 않게 쫓아내는 게 고작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카이드의 도움도 컸어. 녀석이 옆에서 보조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어미 포코바와 그렇게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을 거야.”
“아니야. 페이건이라면 그 상황에서도 틀림없이 답을 찾았을 거야.”
“난 아니라고 보는데.”
바스락.
카밀라가 꼼꼼하게도 종류별로 챙겨 온 과자가 보드라운 소리를 내며 입안에서 으깨졌다.
솜씨 좋은 제빵사가 동원된 덕분인지 만들어진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자의 맛은 여전히 훌륭했다.
“난 페이건 너만큼 많은 걸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알고 있어. 넌 아까부터 계속 네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이건 내 목숨을 걸고 말할 수 있어.”
“저기 난 이래 봬도 치료술사거든. 그런 말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이니까 치료술사 앞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거네 마네 하는 건 제발 자제해 줘.”
“페이건, 너 있잖아. 꼭 동화 속에 나오는 ‘안락의자 위의 현자님’ 같아. 내가 어릴 때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책이 ‘현자님과 수수께끼들’이거든.”
“현자님이라… 구체적으로 뭘 하시는 분인지 잘 모르겠다만 아동용 도서와 어울리지 않는 직함인 것 같은데.”
“현자님은 탑 꼭대기에 혼자 살고 계셔. 그런데 탑이 있는 마을에서 자꾸자꾸 수수께끼 같은 일이 발생하는 거야. 마을 사람들은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한데 모아 보지만 도무지 답은 나오지 않고 결국 탑에 있는 현자님을 찾아가. 그런데 안락의자 위의 현자님은 사람들의 설명만 듣고 곧바로 답을 알아내는 거 있지? 꼭 마술처럼 말이야.”
“혹시 그 동화 속의 현자님과 나를 동일시하고자 하는 말이라면 난 안락의자 같은 건 가져본 적도 없고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아. 뭐 애늙은이 같다는 말은 제법 많이 들었다만.”
“문제를 다 해결한 후 현자님이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이 뭔지 알아? 바로 ‘어때 설명을 듣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 아무것도 아닌 게 맞아. 그저 난 당신들보다 조금 더 섬세하고 아주 약간 더 합리적일 뿐이야. 그러니 제발 호들갑 좀 그만 떨어.’거든. 음, 누구누구 씨가 오늘 밤 여러 번 한 말이랑 참 많이 닮았지?”
“…과자 맛있다. 잘 만들었네. 아소토 왕국 궁성의 제빵사 솜씨가 아주 좋은가 봐.”
“네네, 아무래도 쑥스러워하시는 것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부디 준비한 간식 맛있게 드세요. 폴리다고스의 현자님, 쿠쿡.”
거듭해서 나를 띄우는 카밀라의 발언을 듣고 있자니 막 치료술을 배워 갈 무렵 아버지께서 종종 해 주시던 말이 떠올랐다.
[페이건, 치료술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이 있다면 그건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눈’이란다. 만약 치료술사가 환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그릇된 처방을 내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무척이나 좋은 눈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 아비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하하하!]아버지는 무척이나 자상하신 분이셨지만 치료술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엄격하셨고 그만큼 칭찬을 해 주시는 일도 드물었다.
한데 그런 아버님께서도 내 눈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 눈이라면 제법 자신을 가져도 되는 걸까? 역시 인생 2회차라는 건, 이래서 좋아.’
그렇게 내가 아주 약간의 자신감에 고취되어 있을 무렵, 카밀라가 여전히 가슴 앞에 손을 모은 채로 말했다.
“페이건, 고마워.”
“뭐가? 혹시 돈 필요해?”
“너를 만나고 나서 내 세상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 탑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 같은 이야기, 절대로 듣지 못했을 거야. 많은 걸 알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과분하기 짝이 없는 말이야. 너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의 정점에 도달할 것이 보장된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미 그런 너에게 내가 뭘 보여 줄 게 있겠어?”
“그런 미운 말 하면 못써!”
찰싹.
내 손등을 후려치는 카밀라의 고운 손바닥.
카밀라가 보여 주는 것치고 무척이나 거친 감정 표현이었다.
“사실 폴리다고스에 오기 전, 나 제법 건방진 착각을 하고 있었어. 나는 내 나이 또래 중에 손꼽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천공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지혜로운 기관임에 틀림없다고. 참 교만했지?”
“네가 동나이대 학생들 중 손꼽히는 재능의 소유자인 것도 맞고 천공의 눈의 위치가 확고하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야. 어디가 착각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지만 정말로 대단한 건 그 두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유리안 오라버니와 크리스틴 언니. 이 두 사람만큼 똑똑하고 강한 사람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난 마음속으로 장담하고 있었거든.”
유리안 선배의 출중함이야 익히 알고 있던 바였지만 그 약혼녀라는 사람까지?
선배와 선배의 약혼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카밀라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크리스틴 코델리아나’라는 여인에 대한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있잖아.”
한층 더 꽉 양손을 잡는 카밀라.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맞대어진 양 손바닥만큼이나 견고한 목소리로 카밀라는 말했다.
“너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