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0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7)화(10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07)
장난기도,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
표정을 보아하니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근거와 의도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생각을 해 봤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해 주기로 했다.
“그 또한 과분한 발언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리안 선배님과 나를 비교한다고? 부탁인데 똑같은 말을 이 이상 하는 일이 없게 해 줘.”
“너를 유리안 오라버니랑 비교하는 게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왜?”
“차라리 나랑 유리안 선배의 비슷한 점을 억지로라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뭐라도 해 줄 말이 있었을 텐데. 나랑 선배가 비교될 수 없는 이유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하자니 입이 아플 것 같은데.”
“친한 친구만 아니었다면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하고 따져 물었을 거야. 한두 번은 겸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자꾸 이러니까 진짜 화가 나네.”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어. 아닌 건 아닌 거니까. 혹시 내가 유리안 선배의 추종자들 손에 암살당하는 게 보고 싶어 그런 말을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음부터는 삼가 줘. 내가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목숨이 간당간당해지는 건 너무 하잖아?”
“웃겨, 정말. 간당간당? 폴리다고스 재학생 절반 정도가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너를 노린다고 해도 네가 간당간당해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나와 유리안의 비교.
아주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가진 밑천을 다 꺼내 놓고 진심으로 결투에 임한다면 전력을 다하는 유리안을 상대로도 딱히 밀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내가 가진 카드를 전부 드러낼 일이 절대로 없을 테니 폴리다고스 내에서 나와 유리안이 비교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이 녹색 눈동자의 아가씨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유, 알았어. 네가 이런 말이 부담스럽다면 지금은 더 이상 말 안 할게. 그럼 됐지? 쳇, 재미없어. 나 그만 갈 거야.”
“방금 했던 말, 앞으로는 들을 일 없다고 믿어도 되는 거지?”
“싫은데용. 이건 앞으로도 계속 할건데용?”
다시금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간 카밀라는 베에 하며 한차례 혀를 내밀어 보인 후 굳이 입으로 ‘흥흥흥!’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화의 당사자께서 ‘쓸데없는 소리를 계속할 거라면 이만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라는 표정을 하고 계시니 어쩌겠어? 재미라고는 없는 연회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대신에 그 음식들은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 제일 맛있는 걸로만 골라온 거니까.”
카밀라가 빙글 하며 몸을 돌리자 오늘따라 유독 짙푸르게 보이는 머리카락이 춤을 췄고.
“오늘 밤은 별이 참 예쁘네.”
향긋한 내음만큼이나 싱그러운 한마디를 남긴 채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대기 중, 미동조차 없어. 우리가 안 움직이면 너네도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겠다 이거지?’
카밀라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한 번 미행인들을 향해 감각을 세워 봤지만, 놈들은 아직까지도 요지부동이었다.
바사삭.
사각사각.
혹시 모를 녀석들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마셀라 나무를 손질했지만, 놈들은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바사삭.
그 사이에 카밀라가 가져온 음식은 바닥을 보였고(물론 과자의 3분의 2 정도는 북슬이가 처리했지만) 만족한 표정으로 머리 위에 드러누운 북슬이의 입에서는 하품이 터져 나왔다.
―아앙, 배부르니까 졸리다.
‘졸리면 자. 기온이 떨어지거든 담요든 이불이든 뭐든 찾아서 덮어 줄 테니까. 라무테 님도 쉬셔도 됩니다.’
―페이건, 너는 안 자게? 내일 일찍 일어나서 먼길을 가려면 잠을 충분히 자 둬야 할 텐데.
‘저는 작업할 게 조금 남아서요. 마무리되는 대로 정리하고 자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손질을 대충 마무리하고 잠을 자려면 얼마든지 잘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카밀라의 예상치 못한 방문으로 잠시 덮어 뒀던 생각이 다시금 뇌리를 쿡쿡 찔러 왔던 것이다.
‘루드비히 공작,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곳까지 온 걸까?’
라무테 님과 털 뭉치의 말은 농담처럼 흘려 넘겼지만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갑자기 우리의 여정에 툭 하니 뛰어든 아소토 왕국의 젊은 실권자.
쾌활하고 예의 바르며 상냥하기까지 한, 초상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미남 공작.
그야말로 완벽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래서 더욱더 생각이 깊어지게 만드는 사람.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본 건 아닌 터라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쿠우쿠우.
―하아암! 나도 슬슬 졸리네. 페이건, 정말 혼자 깨어 있어도 괜찮겠어?
“네,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어서 그런지 잠이 잘 안 오네요. 오늘은 꽤 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나도 이만 잘게. 내일 아침에 봐!
이미 잠이 든 롤빵이와 내 뺨에 부리를 두어 번 비빈 후 숙면에 잠길 준비에 접어든 라무테 님.
사각사각.
여전히 미행인들은 미동도 없었고, 달빛이 드리운 숲속 공터는 나무 깎는 소리가 가득해졌다.
* * *
“후우.”
보람차고도 고된 하루를 마무리 한 자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으리으리한 대저택의 꼭대기 층.
왕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창가 앞에 서서, 루드비히 안피노는 오늘 하루를 다시금 되새겼다.
‘역시 착한 ‘사람’ 노릇이 제일 힘들어. 이놈의 연극은 도무지 적응되지를 않으니.’
쪼로록.
오늘 하루 감내해야만 했던 역겨움의 흔적을 털어 내기 위한 도리질을 마친 후 루드비히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잔을 채웠다.
‘뭐, 그래도 역겨운 꼬맹이들을 상대로 연기를 한 덕분에 괜찮은 수확을 얻었으니까. 페이건 클라디우스, 소문이 자자한 이델타의 영웅이 어떻게 생기셨나 했더니 큭… 그리도 수려한 외모를 하고 계실 줄은 꿈에도 몰랐소이다.’
오늘 하루 일당으로 얻은 수확물을 떠올리며 한 차례 미소를 지어 보인 루드비히는 교신용 수정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안목을 믿고 있었지만, 목표가 목표다 보니 신중을 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엘리제가 오늘 하루 종일 폴리다고스를 쫓아다니며 알아낸 것들과 자신이 얻은 정보를 더하면 더욱더 정확한 결과를 수확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루드비히는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각하를 뵙사옵니다.
“자네는 그곳에서도 나를 각하라 부르는군.”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평소의 습관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크큭, 그래그래. 역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엘리제 양다워. 아주 믿음직스럽다고.”
수정구 너머 야행복으로 몸을 감싼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엘리제의 모습이 보였고 그 믿음직스러운 얼굴에 루드비히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루드비히의 생애였지만 엘리제를 믿는다는 지금의 말만큼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애초에 엘리제를 믿지 못했다면 폴리다고스 일행을 미행하라는 중차대한 업무를 그녀에게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가? 오늘 하루 애송이들을 미행한 소감은?”
―각하께서 특별히 주의 깊게 살피라 하신 페이건 클라디우스 같은 경우 포코바 사건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공터로 이동해서 마셀라 나무를 다듬고 있을 뿐, 중간에 카밀라 엘리시온과 잠깐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만 특기할 만한 사항은 없어 보였습니다.
“카밀라 엘리시온이? 두 사람 간 대화의 내용은?”
―대화 내용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각하께서 내리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명을 따르다 보니….
“아, 맞다. 내가 그런 당부를 했지. 쩝, 우리 ‘천공의 눈’ 공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을지 궁금하기는 하다만 일이 그리되었다면 어쩔 수 없지. 잘했어, 잘한 거야. 앞으로도 그 정도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도록.”
―허락하신다면 조금 더 거리를 좁혀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세밀하게….
“아니, 그러지 마. 페이건 클라디우스처럼 눈빛이 더러운 꼬맹이들은 감이 좋기 마련이거든. 약간의 정보를 더 얻자고 자네들을 노출하는 우를 저지를 수는 없지. 아주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도록.”
찰랑.
루드비히가 경쾌한 동작으로 테이블을 두드리자 글라스 안에 담겨 있던 ‘피’처럼 붉은 와인이 물결치며 거품을 만들어 냈다.
“바깥에서 찬 바람을 맞고 있는 자네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가 부러워 죽을 지경이야. 모처럼 핑계를 만들어서 관저를 벗어나나 했더니 구역질 나는 꼬맹이들을 하루 종일 상대해야 했고. 개 같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국왕이라는 놈은 왜 자신과 밥을 먹어 주지 않느냐며 툴툴거리고. 아아, 아주 미쳐 버릴 것 같다는 말이지.”
―각하….
“내가 얼마나 깊은 권태로움에 사로잡혀 있는지 자네는 모를 거야. 뭐랄까, 작금의 내 심정을 말하자면….”
꿀꺽.
와인보다는 피에 더 가까운 색채를 머금은 액체가 루드비히의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어찌나 지루하고 따분한지 지금 상태 같아서는 더러운 마녀나 냄새나는 늑대인간의 피라도 냉큼 빨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하하, 우습지?”
―각하!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니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농담 한번 해 본 것뿐이야, 농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하지만 이쯤에서 뭔가 짜릿한 이벤트가 필요한 건 사실이야. 아일리 바스티아, 그 교만한 계집이 섭정의 총애를 믿고 설치는 걸 봐주는 것도 슬슬 한계거든.”
펄럭.
돌풍이 창틈 사이를 파고들어 와 커튼을 뒤흔들었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그 길이를 달리할 때마다 루드비히 안피노의 인상 또한 달라졌다.
‘선의로 가득 찬 실력자’로 시작해 ‘간교한 권신(權臣)’을 거친 후 ‘자상한 상관’에 잠시 머물러 있던 루드비히의 표정은 ‘음흉한 계략가’에서 그 종착점을 맞이했다.
“우리의 준비가 원의 대계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의 크기 또한 높아지겠지.”
―물론이옵니다, 각하.
교신이 시작된 이래 줄곧 루드비히를 만류하는 쪽이었던 엘리제가 처음으로 공작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제아무리 섭정의 결정이 있었다 한들 자신들이 더러운 마녀 따위에게 밀려 작전의 주도권을 잃었다는 점을 그녀 또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각하, 한데 로덴토와 밀담 관련하여 올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사전 접견을 위해 광산지대로 먼저 출발한 인원들로부터 밀담 참석 인원에 변경이 있을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사옵니다.
“변동이라니? 로덴토 쪽에서 뭔가 추가 요청사항이라도 해 왔다는 건가? 그놈들이 지금 우리한테 뭘 추가로 요구하고 그럴 상황이 아닐 텐데?”
―요구사항에 변동이 발생한 것은 아니옵고 로덴토 쪽 사절 중에 추가된 인원이 있다고 합니다. 인원에 변동이 발생한 이유를 묻자 로덴토 쪽에서는 가문 후계자의 특별 지시 사항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합니다.
“알겠다고 그래. 그놈들이 변덕스러운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큰일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투정은 받아 줘야지.”
―그런데 말이옵니다. 각하,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로덴토의 후계자는 현재 폴리다고스에 재학 중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럴 거야. 아마, 지금쯤 거의 졸업할 때가 되었을걸?”
잠시 기억을 더듬던 루드비히는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인가 3년 전쯤에 폴리다고스를 방문했을 무렵, 로덴토의 애송이를 교내에서 목격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파악된 건 아니지만 인간에게 웃음을 파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아일리 바스티아의 성품을 고려했을 시, 어쩌면 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의 배후에는 그 계집이 있다고 보는 것이….
“아아, 그래.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봐줄 만하게 생긴 몸뚱이를 이용해 인간 얼간이들을 잡고 흔드는 건 그 요망한 계집의 주특기 중 하나이니까.”
―몇 번을 생각해도 한심할 따름입니다. 비록 태생이 천박하기는 하다만 어디까지나 원의 구성원이라는 자들이 하등하기 짝이 없는 인간 수컷에게 아양을 떨다니.
―하하! 자네의 의견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한 것들이 그나마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데 그거 가지고 뭐라 하지는 말자고 우리.
아끼는 부하의 머릿속에 각인된 마녀에 대한 경멸을 확인한 루드비히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기둥의 구성원들 중 늑대인간과 마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마녀와 ‘밤의 귀족’ 사이의 적개심 또한 이에 못지않았다.
다만 ‘밤의 귀족’과 마녀, 이 두 종족이 감정을 숨기는 데 워낙에 능한 족속들이었기에 대놓고 불꽃이 튀지 않을 뿐.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의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건’을 기점으로 두 종족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원래 마녀란 매춘부처럼 더러운 족속들이거든. 어쩌겠어? 천한 것들이 가지고 태어난 거라고는 그 천박한 재주가 전부인걸. 유능한 자네가 그렇게 신경 쓸 것 없어. 그 건방진 계집이 이제 와서 수작을 부린다 한들 로덴토를 구워삶은 공적은 전부 우리들의 것이 될 테니까.”
원죄.
두 종족이 공동으로 주관한 대계(大計)가 처참하게 실패한 저주받은 날.
그날 이후 마녀와 밤의 귀족은 ‘실패에 대한 원죄’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을 시작했고 백 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그 공방은 서로를 향한 증오의 칼날이 되어 있었다.
“후우….”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이 떨리는 그날을 떠올린 루드비히의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달이 참 좋군. 정말 좋아.”
시선을 돌린 루드비히의 시야에 휘영청 떠오른 달이 들어왔고, 자신도 모르게 삐죽한 송곳니를 드러내고만 뱀파이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주받아 마땅한 ‘암살의 신’이라는 놈이 갈브레이드 3세의 목을 베었던 그 날도 이토록 달이 좋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