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1)화(1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1)
영원의 숲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털 뭉치.
이걸로 영수들이 보인 이상한 행동과 털 뭉치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추측은 완벽하게 들어맞은 셈이었다.
―야! 이 꼬마 앞에서 대뜸 내 이름을 말하면 어떡해! 시험을 완전히 통과하기 전까지는 비밀 엄수해야 되는 것도 몰라! 맨날 잠만 자더니 이제 정신도 가물가물해진 거야!
여전히 소리를 바락바락 내지르는 털 뭉치. 난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한 녀석의 꼬리를 쿡 잡아당기며 말했다.
“너, 이름이 벨제키엘이었구나.”
―거봐! 너 때문에 이 꼬맹이가 내 이름을 알았잖아. 어떻게 할 거야!
6년 만에 알게 된 털 뭉치의 이름은 그 솜 인형 같은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멋을 머금고 있었다.
―흐음, 이건 내 생각인데, 벨제키엘 네가 그렇게 흥분하며 소리만 지르지 않았어도 페이건이 너의 이름을 대번에 알아차리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윽! 그, 그건….
―그리고 벨제키엘 네가 그 모습을 보여 줬다는 건 페이건을 믿기로 했다는 뜻 아니었어? 진짜 모습까지 보여 줘 놓고서 아직 이름도 말 안 해 줬다니. 아! 알겠다!
―야!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입 다물어!
―벨제키엘 너 부끄러운 거구나.
―부끄럽기는 누가 부끄러워. 이 바보 아줌씨가! 너 자꾸 헛소리 할래!
한 마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 사이에서 펼쳐지는 만담.
결국, 전 털 뭉치 현 벨제키엘이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며 소리를 질렀고 햇살 같은 기운을 머금은 목소리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알았어.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그럼 다른 질문 하나만 더. 벨제키엘, 왜 그렇게 심통이 난 거야?
―몰라서 물어? 내가 분명히 말했지! 아직은 무리라고! 시간이 더 필요하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데 뭐가 그리 급해서 영수들까지 동원해 가며 그런 일을 꾸민 거야?
―일을 꾸몄다니? 그런 말은 조금 상처야. 벨제키엘 네가 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나 역시 너만큼이나 페이건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어.
―생각한다면서 그런 짓을 해!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건데? 이 꼬마가 조금 영특한 건 사실이지만 이제 겨우 12살 이 된 어린애야.
―벨제키엘, 일단 내 말부터 좀 들어주지 않을래?
―그런데 그런 꼬마에게 벌써부터 부담을… 아우 됐다! 난 몰라! 아무튼 난 네가 원하는 대로 꼬마를 여기까지 데려왔으니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벨제키엘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두 쌍의 날개가 파닥이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벨제키엘, 항상 느끼는 건데 넌 걱정이 너무 지나쳐.
―걱정이 지나치다니?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건 너 아니었어?
―난 신중해야 한다고 했지 적절한 때가 왔음에도 우물쭈물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
벨제키엘, 아주 오래전부터 용기의 미덕을 줄곧 강조해 온 건 너였잖아.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한 말 기억해?
벨제키엘과 목소리는 중요한 의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듯했는데, 아무래도 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제는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했다.
―클라디우스의 잠재력을 고취시켜 주는 능력은 네가 더 낫지만 해당 시점의 잠재력을 판단하는 눈은 내가 더 정확하다고 오르페우스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 내가, 지금이라면 걸어 볼 만하다고 판단한 거야.
―쳇, 그 바보! 멍청한 소리는 괜히 해 가지고.
―벨제키엘, 부디 나를 믿어줘. 그리고 정 나를 믿는 게 정 힘들다면 나를 믿었던 오르페우스의 눈을 믿어.
―…너를 못 믿는다는 말은 안 했어.
―클라디우스의 아이를 아끼는 너의 마음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한 후견인의 자세일 거야. 부디 내가 오르페우스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해.
마침내 일단락된 둘의 언쟁.
벨제키엘은 여전히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파닥거리는 날갯짓에 담겨있던 독기는 상당 부분 누그러진 듯 보였다.
―안녕, 클라디우스의 아이야. 난 라무테라고 해. 인사가 너무 늦었지?
“…페이건 클라디우스라고 합니다. 어찌 되었던 이리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괜찮다면 페이건이라고 불러도 될까?
“편하실 대로.”
―그럼 페이건. 먼저 사과부터 할게. 사정이 있어 얼굴을 보이지 못하고 이렇게 목소리만 전하는 무례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여쭙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응, 말해. 지금 시점에서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제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줄게.
나는 여전히 파닥거리고 있는 털 뭉치의 겨드랑이를 짚어 내 머리 위에 올려놓은 채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이 북슬이가 그러더군요.”
―북슬이…?
“네 북슬이. 털이 유달리 북슬북슬하니까 북슬이입니다.”
―푸, 풉 그래, 벨제키엘이 북슬북슬하기는 하지. 벨제키엘은 좋겠네♫ 페이건 군에게 이렇게나 사랑받고. 어휴, 부러워.
―너희 둘 다 시끄러! 야 꼬맹이, 허튼소리 하지 말고 질문이나 해.
벨제키엘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난 북슬이의 말랑말랑한 정수리를 만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있으면 기분이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 편히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라무테 님께서 클라디우스와 영수들 간에 맺은 맹약에 지분이 있다고 하던데, 그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어머! 벨제키엘이 거기까지 얘기를 했니? 축하해! 아무래도 벨제키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를 훨씬 더 신뢰하는 모양이야.
“그리고 오늘, 아니 이제는 어제군요. 어제 오후에 영원의 숲에 있었던 괴현상에 당신의 의중이 담겨 있다는 말 또한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해야만 했던 이유 또한 알고 싶습니다.”
―음… 잠깐만 시간을 주겠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맹약의 공동 주인’의 목소리에 즐거운 여운이 깃들 때마다 바위섬 전체에 빼곡하게 깔려 있던 보라색 이끼가 한층 더 선명한 빛을 뿜으며 일렁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섬을 보며 라무테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나와 아버님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이 섬 깊은 곳에는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강대한 권능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내가 누구인지부터 말해주는 게 먼저겠지. 이쯤 되면 너도 짐작을 했겠지만 나, 그리고 거기 있는 북슬이 풉, 아니 벨제키엘은 오르페우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클라디우스의 오래된 친구란다.
“오래된 친구….”
―지금, ‘오래된 친구라면서 왜 그 존재를 숨겨 왔던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하지만 우리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단다. 오르페우스가 처음으로 에스페타라에 터를 잡을 때 우리 둘은 그의 곁에 있었고 이 섬을 클라디우스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라무테가 무척이나 애잔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에스페타라가 클라디우스를 품을 수 있는 땅이 되었다고 판단한 그 순간, 나와 벨제키엘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뭔지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에스페타라와 클라디우스의 역사에 남은 우리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단다.
라무테와 벨제키엘.
클라디우스의 역사를 기록한 모든 고서를 읽은 바 있었으나 그 어떤 고서에서도 위의 이름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에스페타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영수를 자유롭게 부리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문의 역사서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다는 불합리.
라무테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이 지독한 불합리 또한 스스로의 의지로 받아들였다는 뜻.
라무테와 벨제키엘이 이 불합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가 과연 뭘까? 하는 호기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오르페우스가 그러기를 원했거든.
뭔가 복잡한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라무테가 들려주는 이유는 간단명료하기 그지없었다.
“가문의 시조께서 본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당신들을 가문의 역사에서 지우고자 했다는 건가요?”
―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됐지만 그렇다고 오르페우스를 마냥 비정한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 나와 벨제키엘을 지운다는 결정은 오르페우스 혼자만의 의견이 아닌 우리 셋이 모두 동의한 사실이었으니까.
“오르페우스 님의 처사가 가혹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을까요?
―전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라무테와 벨제키엘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페이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다만 오르페우스는 네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어. 그러니까 행여라도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내 머리 위에 몸을 누인 벨제키엘이 고개를 격하게 내젓자 실처럼 가는 수염이 이마를 간질여 왔다.
털 뭉치가 이토록 격하게 반응을 하는 걸 보면 ‘자신의 안정적인 가내 통치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르페우스가 둘을 배척하려 들었다’라는 내 추측은 아무래도 빗나간 듯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기뻤어. 우리가 정면에서 사라져야 했던 이유는 오르페우스와의 약속 때문이었고 그토록 소중한 약속을 우리에게 맡겼다는 건 그만큼 우리 둘을 믿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약속이요?”
―그래. 약속. 오르페우스는 클라디우스, 그리고 자신의 꿈에 관한 몇 가지 약속을 우리에게 맡겼고 나와 벨제키엘은 그 약속을 품은 채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 왔단다.
라무테의 입에서 약속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벨제키엘이 오늘 밤 나를 이곳에 데려와야만 했던 이유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걸.
―페이건, 넌 오르페우스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치료술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클라디우스를 세우고 숭고한 뜻을 대륙 전역에 떨친, 존경받아 마땅한 가문의 선조시지요.”
―으음, 70점? 좋은 대답이지만 많이 부족해. 물론 오르페우스가 죽는 그날까지도 스스로를 치료술사라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야. 실제로 그 녀석은 병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구해 내는 데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게 오르페우스의 전부는 아니란다.
오르페우스를 말할 때마다 그 목소리는 유독 동글동글해지고는 했는데 이 사실 만으로도 라무테에게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진짜 오르페우스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나마 알던 모습 또한 빠르게 잊어 나갔어.
그것 또한 오르페우스가 원한 일이었거든.
“시조께서 그렇게 하셔야만 했던 이유가 뭘까요?”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르페우스는 후손들이 감당 못 할 힘에 욕심을 내는 대신, 자신의 뒤를 따라 훌륭한 치료술사가 되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주기를 바랐거든.
감당할 수 없는 힘?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한 마디에 나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라무테는 여전히 아련하기만 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참으로 오르페우스다운, 현명한 생각이지?
―클라디우스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 중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녀석이 나온다고 한들 애초에 오르페우스 정도의 그릇이 아닌 이상 그 녀석의 모든 걸 물려받는 건 불가능해. 한계가 분명한 수준의 재능으로는 오르페우스가 남긴 의술을 공부하고 익히는 데만도 평생을 바쳐야 할 테니까.
톡톡.
축 늘어져 살랑거리던 벨제키엘의 통통 꼬리가 내 귓불을 두드렸다.
라무테를 지원하기 위함인지,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벨제키엘이 한마디를 덧붙인 것이다.
―치료술 하나를 제대로 배우는 것도 버거운 이들에게 쓸데없이 많은 유산을 줬다가는 분란만 생길 거라는 걸 오르페우스는 잘 알고 있었던 거지. 만약 얼간이 같은 후손이 오르페우스의 힘을 이용해 섣부른 행동이라도 했다가는 클라디우스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을 테니.
기분 탓일까?
털 뭉치의 솜방망이 같은 앞발이 내 머리를 꽉 누르는 게 꼭.
‘야! 너 잘 들어! 지금부터 너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니까 새겨들으라고!’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르페우스는 결심했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의료술은 후손들에게 전해 주는 대신 가지고 있던 다른 것들은 나와 벨제키엘에게 맡기기로.
라무테가 먼저 말했고.
―그리고 우리에게 부탁했지. 자신의 모든 유산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고 올곧은 후손이 태어난다면 그때는 그 아이에게 자신이 남긴 것들을 전해 달라고.
벨제키엘이 마무리를 했다.
휘이잉.
때마침 거센 바람이 불어와 오색으로 물든 야광 이끼가 흩날렸다. 그리고 야광 이끼의 한바탕 춤사위가 끝날 무렵, 라무테는 그 오랜 기다림이 묻어나는 절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가 바로 너란다. 페이건. 우리는 너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