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1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14)화(11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14)
“위협을 하기 위해 그런 언사를 일삼는 거라면 그만두지 그러나? 명망 있는 가문에서 자란 학생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잖아? 더군다나 자네 부친께서 전 대륙에 날리고 있는 ‘혁혁한 명성’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야.”
“경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를 낳아 주고 길러 주신 아버지께서는 명성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추신 게 맞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저는 아버지의 고매하신 인품을 본받지 못해서 말이지요.”
“저런, 클라디우스 가주께서 자네의 발언을 들으신다면 무척이나 슬퍼하시겠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후계자가 아버님의 인품을 본받지 못했다니. 참 슬픈 일 아니겠나?”
“그 사실은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만 슬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개싸움에 능하다는 저만의 장점이 있으니 말이지요.”
“정말… 몹쓸 사람이로군, 자네.”
개싸움.
페이건의 도발적인 말투에도 줄곧 평정을 유지하는 척하던 애프먼의 입가가 결국 일그러지고 말았다.
자신들과 대치를 하는 형국에서 ‘개싸움’이라는 말을 하다니, 그럼 자신들이 개라도 된다는 말인가?
귀를 기울이면 애프먼의 평정심이 와장창하고 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저 또한 경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입 싸움을 즐기는 편이 아니니 담백하게 사실만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그러니까 저는 귀하들의 영역을 침범해 사냥을 하려 들었고 애프먼 경과 휘하 기사분들은 앤폴드 협약에 의해 포획이 금지된 카누카를 사냥하려 했습니다.”
“자네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카누카를 포획하려는 게 아니라 구조를 한 후….”
“두 가지의 죄를 나란히 양팔 저울에 올리면 어느 쪽으로 기우는 게 합당한 결과일지,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스트라에게 들려준 것과 똑같은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척이라도 했던 백룡기사와 달리 페이건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사실이 애프먼을 거북하게 만들었다.
“상황에 대한 증인은 아스트라가 해 주면 되겠군요. 백룡기사의 증언이라면 그 신뢰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 그리고 너희들도… 아니다 됐다.”
갑작스레 바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아스트라의 조원들.
페이건은 별 기대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고 그 광경을 주시하던 애프먼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클라디우스의 꼬마 놈, 정말로 일을 키울 셈인 건가?’
미친놈.
페이건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데 사용했던 단어가 순식간에 애프먼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로덴토 vs 아스트라’의 구도일 때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확연한 우위를 잡고 있었는데 그 상대가 페이건 클라디우스로 바뀌자마자 흐름이 완전히 상대방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까짓거 한번 해 봅시다. 물론 서로의 허물을 들추는 일이니만큼 먼지도 무성하게 피어오르겠고 뒷말도 많겠지요. 전 그런 지저분한 싸움을 참 좋아하는데 버크 공작께서도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발을 담그는 걸 좋아하실지 잘 모르겠군요.”
“감히 자네 따위가 공작 각하의 존함을….”
“아, 그러고 보니 에우리디케 교수님께서 이동수업을 마치는 대로 같이 차를 마시자고 하셨는데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서 참 다행입니다. 워낙에 따분한 걸 싫어하는 성품이신지라 어떤 방법으로 즐겁게 해 드려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있었던 일을 들려 드리면 국장님께서도 틀림없이 기뻐하시겠군요.”
“흐음….”
결국 애프먼의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실험국 국장 팩셰르 에우리디케가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 이상하리만치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은 그 역시 들은 바 있었다.
물론 소문의 진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아주 많이 달랐지만.
팩셰르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만으로 애프먼은 대화 중 느껴보지 못한 위압감을 받아야만 했다.
‘…설령 손자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가문 내 복잡한 사정에 얽혀 있는 페르디난드 가주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하지만… 팩셰르 에우리디케는 그 이야기가 다르다. 만에 하나라도 그 미치광이가 가세한다면 일의 여파가 어마어마하게 커질지도 몰라.’
비록 로덴토만은 못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배경이라면 아스트라 역시 어디 가서도 절대로 꿀리지 않은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상대하고 있자니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는 정말이지 수월한 상대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스트라가 ‘대의’라는 규칙에 억눌려 정공법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올곧은 도련님이라면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서는 이런 류의 진흙탕 싸움에 능한 전문가스러움이 있었다.
그 행동거지며 표정 하나하나에서 닳고 닳은 싸움꾼의 기백이 느껴진 달까?
‘여기서는… 더 이상 일을 키우면 안 돼. 아스트라라면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입술을 깨물고 말겠지만, 저 미친놈은 참기는커녕 일을 키우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굴 거야. 그러다 만에 하나라도 팩셰르 에우리디케가 ‘우리’와 ‘이송’을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연이어 뇌리를 강타하는 아찔한 가정.
이 자리에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제압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적어도 애프먼과 수행 기사들은 이렇게 믿고 있었다.)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는 건 결코 안 되는 일.
광산 일대를 총괄하는 임무를 맡은 애프먼으로서는 ‘확전(擴戰) 의지’로 들이대는 페이건의 눈동자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돌아간다.”
“단장님!”
“…!”
“…알겠습니다.”
결국 애프먼은 카누카 탈출 사태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이번에는 이렇게 넘어가 준다만 잊지 말게. 내가 오늘 일을 기억한다는 것을. 곧 로덴토 가주께서도 언젠가 자네의 이름을 알게 될 걸세.”
“기쁜 일이군요. 타샤드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를 뒤흔드는 위명의 소유자인 공작께서 저 같은 사람을 알아주시다니. 혹시 그날이 오거든 서신 한 장만 보내 주시겠습니까?”
“…으득.”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애프먼은 돌아서는 와중에도 기어이 한마디를 남겼지만 페이건은 이번에도 코웃음 외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고, 로덴토 기사 4인은 어금니 갈리는 소리만을 남긴 채 멀어져 갔다.
“아! 재밌었다. 아스트라, 미안.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고생한 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실례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었어. 특히 그 콧수염 아저씨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돌아가는 뒷모습은 최고였어!”
애프먼이 사라지자마자 덤불을 빠져나온 카밀라는 아스트라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페이건에게 말했다.
“수고 많았어. 페이건 ‘더 미친놈’ 클라디우스.”
“내가 말한 게 있으니 부정은 못 하겠다만 그래도 친구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 좀 상처받는데.”
“방금 건 긍정의 의미, 그러니까 끝내준다의 의미를 담은 미친 머시기. 흠흠, 아무튼 정말 대단했어. 설마 로덴토의, 그것도 산하 기사 단장급 되는 인물을 상대로 말싸움을 압도하다니. 역시 내 친구라니까.”
“피차 지은 죄가 있는 나쁜 놈들 간의 싸움은 결국 기세야. 내가 더 나쁜 놈이 될 각오를 하고 몰아붙이면 길이 트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네. 팩셰르 교수님의 이름을 판 것도 효과가 있었고.”
“…어디 보자, 여기 있을까? 아님, 여기?”
카밀라는 돌연 페이건의 상의를 들추며 뭔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뭐 하는 거야?”
“아니, 페이건은 맨날 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하니까. 혹시 행운의 여신님을 몰래 숨겨 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혹시 찾아서 나오면 내가 뺏어 갈려고 그랬지. 그런데 별거 없네? 여신님, 일이 생길 때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곁에 있어 주시는 우리 행운의 여신님 어디 계시나요? 너무 쑥스러워하지만 마시고 저한테도 얼굴 좀 보여 주세요오.”
페이건은 ‘얘가 또 이러네.’ 하는 표정으로 카밀라의 손을 잡아떼려고 했지만, 녹안의 소녀는 끈질겼고 결국 흑발 소년은 손을 떼는 걸 포기한 채 아스트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안, 함부로 끼어드는 게 실례인 건 알지만 내가 또 동물 애호가라서. 이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리는 거 있지.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할게.”
“아니야! 실례는 무슨. 네 도움이 없었다면 결국 카누카를 그 사람들에게 내주고 말았을 거야. 그 아이가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갔으니 최선의 결과 아니겠어? 고마워, 페이건.”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야 고맙고. 어쨌거나 그 옥상에서 진 신세를 조금은 갚은 것 같아 다행이야.”
“하하!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어? 너도 보기와는 다른 데가 있구나. 그건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좋아서 한 일인 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튼 고마워. 페이건, 네 덕분에 어머니의 당부를 지킬 수 있게 되었어.”
“그 당부라는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어머니께서 자주 말씀하시곤 했어. 너보다 약한 어린아이나 동물을 만나거든 그들을 위해 검을 뽑을 줄 아는 그런 기사가 되어 달라고.”
“아주 훌륭한 어머님이시네.”
“고마워. 그럼 난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카밀라 너도 반가웠어. 그리고 그때 그 친구, 아! 제라르, 그 친구에게도 안부 전해 줘. 그리고 나쁜 놈들 간의 싸움은 기세다, 정말 재미있는 말이었어.”
인사말을 끝으로 아스트라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한 조원들을 데리고 멀어져 갔다.
―야, 솔직히 말해. 평소의 너답지 않게 불쑥 끼어든 거 아스트라라는 꼬마한테 신세를 갚기 위한 것만은 아니지? 너처럼 음흉한 녀석이 이렇게 생각 없이 나설 리가 없잖아?
‘마음이 새까만 하면 만사가 비뚤어지게 보이는 법이야. 북슬아, 부디 오늘부터라도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을 들이도록 해.’
―항! 누가 속을 줄 알고. 말해, 얼른 말해! 솔직하게 말할 때까지 네 정수리에 박은 송곳니 안 뺄 거야!
‘뭐, 로덴토 놈들을 상대로 비벼볼 구석을 찾고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저놈들을 동요시킬 필요가 있었거든. 그리고 팩셰르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이라면 저놈들을 켕기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야.’
―흐흐,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우리 페이건은 공짜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니까. 참 욕심쟁이에요오. 그래서 대단해요오.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있는 주제에 몸을 사릴 줄도 모르고 깝치는 로덴토 놈들이야. 이왕 나쁜 놈들을 들쑤시기로 마음먹었으면 확실하게 해야지. 멍청한 놈들이 당황하거나 분노를 하면 호들갑을 떨면서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거든.’
몸수색을 마친 카밀라는 뒤늦게 현장에 복귀한 제라르에게 설명을 해 주는 데 여념이 없었고 덕분에 페이건은 클라디우스 사자들과 차분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음… 난 언제나 당당한 페이건을 참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걱정이 되네. 로덴토는 지금껏 페이건을 번거롭게 하던 아이들의 가문과는 격이 다른, 위세가 정말로 대단한 가문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미움을 사도 괜찮을까? 페이건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넌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데….
‘저를 생각해 주시는 라무테 님의 마음은 정말이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군요.’
손을 가슴 앞으로 뻗자 라무테 님이 손등으로 자리를 옮겨 고운 깃을 비벼 댔고 공단처럼 보드라운 느낌을 한껏 느끼며 페이건은 말했다.
‘제가 로덴토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 * *
“짐승과 우리를 숨긴 장소를 옮기겠다고? 로덴토 놈들이 이토록 사람을 번거롭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는걸.”
―광산을 책임지는 애프먼이라는 자의 설명을 듣자 하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변수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우리가 확보해 놓은 비밀 통로를 통해 짐승을 이송할 계획이라고 하옵니다.
“그래서 우리랑 짐승을 옮겨 놓으면 따로 보관해 둘 장소는 있고?”
―일단 임시 거처에 보관을 해 놓은 다음, 추후 장소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하옵니다.
“도대체 그 변수라는 게 뭐길래 이렇게 요란을 떠는 거야? 애프먼이라는 그놈 로덴토의 제3 기사 단장이라길래 그럭저럭 쓸 만한 놈일 줄 알았더니 이리도 멍청한 놈이었어?”
어둠이 내린 서재.
아소토 왕국의 외무대신인 루드비히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표정으로 엘리제의 보고를 경청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짐승의 존재가 노출된다면 피곤해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걸 잘 아는 놈들이 갑자기 요란을 떨겠다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오나 각하, 소신이 판단하기로는 애프먼의 생각 또한 나름 합리성이 있어 보였사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변수라는 게 바로….
한데 엘리제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신경질로 가득 차 있던 루드비히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팩셰르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을 들은 이상 로덴토의 과민 반응을 호들갑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으니까.
“잠깐 팩셰르와 연결된 게 누구라고? 비록 우리가 주관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이델타에서도 그놈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사옵니다, 각하.
비주죽.
팩셰르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루드비히의 송곳니가 튀어나왔고, 매끈한 혀로 상아 같은 송곳니를 핥으며 루드비히 안피노는 말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또 그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