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2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21)화(12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21)
“….”
예상치 못한 게오르그 로덴토와의 만남.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게오르그를 주시했고, 침묵이 길어질수록 게오르그의 눈동자에 맺힌 적의 또한 짙어져만 갔다.
‘…고작 인사나 받자고 불러 세운 건 아닐 테고 어젯밤의 일이 벌써 보고된 건가? 아니면 그간에 있었던 다른 일들 때문에?’
전해져 들려오는 추문과 별개로 게오르그는 제법 봐줄 만한 외모를 하고 있었고, 난 무척이나 빤들빤들한 생김새의 망나니를 마주한 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설령 어젯밤 사건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해도 게오르그가 나를 싫어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이델타에서 있었던 몬디 하굴 사건부터 유적에서 있었던 카누카 포획 미수 건까지.
산적한 이유들 중 과연 어떤 게 게오르그의 기폭 장치를 직접적으로 건드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이 나를 싫어한다는 건 분명해 보였고 그 때문에라도 난 더욱더 선명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웃어?”
“한 번쯤은 꼭 뵙고 싶었던 선배님을 드디어 만나 뵙게 되었는데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미소란 이미 나를 싫어하고 있는 자가 더욱더 나를 싫어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였으니까.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아주 떠들썩하게 활약을 하고 있다지? 특히 우리 로덴토의 가사(家事)와 관련해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며.”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뿐. 딱히 발군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눈치가 없는 거냐? 아니면 없는 척을 하는 거냐?”
한층 더 가늘어지는 게오르그의 눈매.
생각해 보니 나와 이 녀석 두 사람 다 자기소개가 아직이었다.
나의 경우 어차피 게오르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굳이 소개를 할 필요 없다고 쳐도, 녀석의 경우 자신의 이름 정도는 먼저 밝힐 법도 한데 게오르그는 그러지 않았다.
‘저 까마귀 문양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이상 구태여 스스로를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스무 살은 더 된 것 같은데 이렇게 철이 없어서 어쩌겠다는 거야?’
게오르그의 오만한 사고 체계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덕분에 난, 보다 선명한 미소를 입가에 내건 채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선배님, 혹시 감사 인사를 표하기 위해 저를 불러 세운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 내가? 너에게?”
“네. 어젯밤의 일에 관해 고맙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 저를 불러세운 것 아닌가요? 로덴토의 일부 어리석은 가솔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하여 유적에 큰 참사가 발생할 뻔했으나 다행히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별문제 없이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뿌드득.
게오르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둔탁한 소리 덕분에 난 어젯밤의 사건이 이미 보고가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폴리다고스의 학생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구태여 저에게 감사의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동문 간에 상부상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거늘 일이 마무리된 마당에 굳이 잘못과 공적을 따지는 번거로운 작업에 시간과 기력을 소진하고 싶지 않습니다.”
으득.
“더군다나 선배님께서는 어젯밤 발생한 일에 관한 소명(疏明) 의무를 다하시기 위한 절차를 밟으셔야 할 텐데 안 그래도 분주하신 선배님께서 굳이 저에게까지 심력을 소모하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네놈이 어쭙잖은 재주로 손에 쥔 아주 사소한 성과들 때문에 착각을 한 모양인데 똑똑히 기억해 둬라. 네놈과 나 사이에는….”
“게오르그 공자! 와 주셨군요.”
결국 도발을 참지 못한 게오르그가 눈에서 불을 뿜을 듯한 기세로 한 걸음 더 다가서려는 찰나, 규율국 제복을 착용한 교직원이 그를 불러 세웠다.
“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말씀 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알크페인 직속 관할하에 있는 교직원은 두 번에 걸쳐 재촉을 했고 제아무리 로덴토의 후계자라 해도 규율국장의 호출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게오르그는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교직원의 단호한 태도와 게오르그의 구겨진 표정으로 판단건대 알크페인이 게오르그를 호출한 이유는 광산에서 있었던 수상쩍은 일들을 추궁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로덴토가 가진 힘이 있고 뒷정리 또한 제법 말끔하게 되어 있을 터이니 어제 일로 인해 게오르그가 궁지에 몰리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상당한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터.
“…기다리고 있어.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테니.”
헤어지기 직전의 발악을 하는 걸 잊지 않은 채 게오르그는 멀어져 갔으나 녀석의 한껏 부라린 눈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가 저지른 행위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 유쾌한 일이었고, 게오르그가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녀석의 엄포가 주는 위압감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야, 너 일부러 그랬지? 지금 일부러 배배 꼬면서 저 꼬맹이를 화나게 만든 거 맞지?
‘응. 그래야만 나에 대한 저놈의 적개심이 한층 더 뜨거워질 테니까.’
―왜 그런 거야? 페이건, 넌 싸움을 잘하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즐기는 싸움닭은 또 아니잖아?
‘뭐가 되었든 간에 어떤 식의 가정을 한다 해도 그 허깨비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로덴토 놈들은 충분히 수상해. 그런데 내 사정거리 안쪽에 로덴토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머저리가 있어. 이걸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헤에… 그러니까 넌 저 꼬마를 열 받게 해서 그걸로 비벼 볼 구석을 만들어 보겠다는 거구나. 음흉해! 아휴, 음흉하기도 하지! 쿡쿡쿡.
‘음흉하다면서 그렇게 웃는 건 또 뭐야?’
―난 네가 음흉해질 때가 제일 좋거든. 쿡쿡쿡, 그래서 저 꼬맹이를 살살 열 받게 만들면 뭔가 단서가 나올까?
‘글쎄, 성과가 어떨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지. 카밀라가 말한 것처럼 졸렬해 보이기는 하다만 아주 멍청하기만 한 놈은 또 아닌 것 같거든. 하지만 일단 가능성은 보이니까 열심히 들쑤셔 봐야지. 혹시 또 알아? 운이 좋으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
―우헤헹! 낚시다, 낚시.
음흉해, 음흉해를 연발하며 정수리 위에 배를 깔고 누워버린 북슬이.
―페이건, 그래도 조금은 조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마냥 즐거워 보이는 롤빵이와 달리 라무테 님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하신 채 내 뺨을 부리로 쓰다듬었다.
―로덴토, 정말로 어마어마한 가문이라며. 더군다나 어젯밤 일로 너를 지켜보는 시선이 또 늘었을 텐데. 물론 페이건 넌 잘 해내겠지만, 그래도 네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자꾸 늘어만 나는 거잖아.
어머니와 같은 상냥함이 느껴지는 라무테 님의 부리 짓.
―속도를 조금만 더 늦춰도 괜찮지 않을까? 오르페우스도 말했잖아, 시간은 넉넉하게 있으니 서두를 필요 없다고.
‘귀한 말씀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속도에 관해서라면 적정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북슬이의 갈망을 풀어 주기 위한 장소, ‘바람의 숨결’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라무테 님을 안심시키기 위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말씀드렸잖아요. 방금 그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간에 제가 게오르그 로덴토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 * *
“그래서 크리스틴 선배님은….”
“크리스틴을 지원할 인물로 페이건이 선발되다니. 하하 페이건, 하늘에 감사기도는 올렸니? 너 정말 큰 행운을 잡은 거야. 크리스틴과 말이라도 한번 하고 싶어서 가슴 졸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아, 그랬군요. 그런데 크리스틴 선배님은….”
“여학생들만 해도 백 명은 훌쩍 넘는데 남학생들까지 다 더하면 어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지도 못해. 그런데 그런 크리스틴 코델리아나랑 몇 날 며칠을 같이 보내는 행운을 네가 얻은 거라구. 아우, 아까워라. 사실은 내가 가야 하는 건데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는 바람에….”
“그러니까 그 크리스틴 선배를 잘 보좌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크리스틴 선배님께서 특별히 선호하는 식재료나 조리 방식을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선배님을 보좌하는 데 큰 도움이….”
“히힛, 내 약혼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크리스틴이 정말 대단하기는 해. 착하지, 똑똑하지, 마법 잘 쓰지, 거기에 예쁘기까지 하니. 흐흐, 이런 사람 다시 또 없을걸. 아! 그런데 페이건,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유리안 선배가 사용하고 있는 독실에 입실한 지 10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난 하고자 했던 질문 하나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틴 선배님이 좋아하시는 요리 방식이나 식자재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저는 선배님을 보좌하는 역할이니만큼 크리스틴 선배님께서 선호하는 재료 중심으로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라는 질문 하나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유리안 선배는 내가 입을 열 틈도 주지 않은 채 ‘크리스틴 코델리아나’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를 설명하기에 바빴는데, 그 모습은 약혼녀를 자랑하는 남자라기보다 자랑스러운 여동생을 소개하는 오빠에 가까워 보였다.
‘아니, 잠깐. 그런데 이 사람, 좌우지간 외간 남자인 내가 자기 약혼녀랑 무려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데 그 사실에 대한 불안감은 없는 건가?’
위기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유리안의 표정.
내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걸까?
아니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걸까?
아마 둘 다 겠지?
“즉 우리 자기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그럴 자격이 아주 차고 넘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에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허리에 얹는 선배.
그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식재료 같은 걸 묻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고.
결국 난 식재료 대신에 여정에 임하는 나의 각오를 밝히기로 했다.
“그리 대단하신 분이라면 제가 더욱더 행동에 신경을 써야겠군요. 혹시라도 제 본의와는 상관없이 두 분께 실례가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심? 우리 둘한테 실례? 아, 난 또 무슨 얘기를 한다고.”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
화통하기 그지없는 웃음을 토해 낸 유리안 선배는 양손을 크게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건 난 전혀 신경 안 쓰니까 페이건 군도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워 할 필요 없어. 나나 우리 자기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들도 아닐뿐더러 페이건은 여자한테 관심도 없는 목석같은 사람이잖아?”
응?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하하! 생각해 보니까 웃긴다. 여자한테는 흥미도 없고 관심 가질 줄도 모르는 목석에 벽창호면서 왜 그런 걸 걱정하고 그럴까? 페이건 군 주제에 실례는 무슨, 말도 안 돼! 방금 그 말 지금껏 페이건이 한 농담들 중에서 제일 웃겼어!”
주제에… 라니?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페이건 군의 외모만 봐서는 자기와의 동행에 대해서 걱정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난 페이건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 깃털만큼도 걱정이 안 돼. 애초에 넌 여자한테 관심 같은 거라고는 가질 줄도 모르는 망부석이잖아. 자기가 망부석이랑 같이 다닌다고 내가 신경 쓸 일이 뭐가 있겠어. 하하하! 너도 말하고 나니 웃기지?”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우쭐한 표정을 한 채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는 선배.
그래, 유리안 알렉세예브라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유이지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하지만 선배가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는 걸 마냥 지켜보기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난 선배의 오해를 정정해 주고자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배님께서 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성(異性)에 관한 기본적인 관심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이성이 뭐 어쨌다고? 그래, 페이건 군이 확실히 이성(理性)적인 사람이기는 하지.”
“그 이성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성별을 가진 존재를 말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여자라는 성별을 가진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나 끌림을 말하는 거겠죠.”
“뭐?”
순식간에 싸늘해진 선배의 표정.
잠시간 말이 없던 선배는 내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를 잘근잘근 씹을 듯한 표정을 한 채 되물었다.
“그 말은 페이건, 네가 여자… 그러니까 여학생들한테 관심이 있다고?”
“네.”
“…왜?”
“제가 관심이 없어야만 할 이유도 딱히 없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내 발언을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안 그래도 커다랗고 투명한 눈동자를 더 커다랗게 한 채 큰 소리로 외쳤다.
“거짓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