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2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25)화(12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25)
“…뭐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공작 각하께서 하명하신 일입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관해 두 분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 오라 하셨사옵니다.”
짜악.
“건방진 것, 허접한 일 처리로 원의 재산을 탕진하고 대계에 지장을 가져온 멍청한 년이 감히 뭐가 어쩌고 어째!”
짝.
짜악.
짜아악.
숫제 엘리제의 뺨을 찢어 놓을 듯한 기세로 휘저어지는 손바닥.
이토록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아일리 바스티아라니.
‘이 미친년,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무스카로서는 작금의 상황에 심각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스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눈앞의 미친년을 지켜봐 왔지만 이토록 감정적인 모습의 아일리 바스티아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언제나 화를 내는 건 자신이었고 미친년의 역할은 그런 자신을 말리는 데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아일리 바스티아를 말리는 날이 올 줄이야.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저 뱀같이 교활한 계집을 저렇게 만든 걸까?’
짜악.
무스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상황을 살피는 와중에도 아일리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무스카는 다시 한 번 팔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루드비히가 왜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정보를 원하는 거지?”
“두 분께서 아시다시피 이번 팬텀 하운드 이송 작전을 망친 장본인이 페이건 클라디우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전 실패는 영빙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너희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것이라 들었다만.”
“물론 말씀하신 그 부분은 저희의 잘못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뛰쳐나간 팬텀 하운드가 조금만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줬더라면 그토록 황망하게 광산을 정리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손해 또한 지금처럼 막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말 똑바로 해. 우리의 손해가 아니라 너희의 손해야. 제멋대로 일을 꾸민 주제에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너희 뱀파이어의 손해란 말이다.”
“…시정하겠사옵니다. 드리던 말씀을 잇자면 팬텀 하운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게 상황을 정리한 건 페이건 클라디우스. 이런 연유로 공작 각하께서는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이번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신 바 있습니다.”
‘각하께서 왜 질문을 하시는지 그 이유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라는 반문을 할 법도 한데 엘리제는 발갛게 부은 뺨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주인의 뜻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가 고프니 그 녀석을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있는 우리에게 손을 벌리고 싶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루드비히에게 전해. 정보를 원하거든 분에 넘치는 시건방은 그만두고 본인이 직접 와서 머리를 조아리라고. 그럼 그 노력을 가상히 여겨 일말의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엘리제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건 차가운 조롱뿐.
무스카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껴 버렸다.
물론 자신이 정보제공을 거부한다 해도 아일리가 루드비히의 청을 들어준다면 자신의 엄포는 공염불로 돌아가고 말 터.
하지만 무스카는 걱정하지 않았다.
“웬일이야? 우리 멍멍이 군이 모처럼 옳은 말을 다 하고.”
자신이 공유하는 걸 거절한 정보를 저 탐욕스러운 계집이 뱀파이어들에게 털어놓을 리 없으니까.
“엘리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들은 그대로 네 주인에게 전해. 네년이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똑똑히 말해 줄 테니.”
신장만을 비교하면 암살자 쪽이 마녀보다 한 뼘 이상 컸지만, 엘리제의 단발을 낚아채는 아일리의 손놀림에는 키 차이를 너끈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표독스러움이 맺혀 있었다.
“게오르그 로덴토가 삼일 연속으로 규율국에 불려가 심문을 당하고 있어. 네년이 범한 실수의 여파로 게오르그 그 멍청이는 알크페인의 시야에 잡혀 버렸고 그 덕분에 당분간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게오르그 로덴토를 이용해 폴리다고스에 균열을 내려던 내 계획이 잠정 중단되었다는 뜻이야.”
투둑투두둑.
아일리의 표독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한 엘리제의 머리카락이 두피와 작별을 고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아일리는 개의치 않고 힘을 더할 뿐이었다.
“네년처럼 무능한 부하를 둔 네 주인이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소토 촌구석에 처박혀 눈치를 보는 게 전부야. 그러니 루드비히에게 전해. 쓸데없는 생각 관두고 지금부터 내가 말해 주는 방안대로 사태를 수습하라고.”
아일리는 루드비히와 로덴토가 취해야 할 대처 방안을 상세히 일러 주고 나서야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손을 놓자마자 출입문을 향하며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주인에게 전해.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주제넘는 짓을 벌일 생각일랑 그만두고 자신이 맡은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아일리가 방을 벗어나자 무스카 역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방을 떠났고.
“각하, 하명하신 대로 두 사람의 반응을 살폈사옵니다.”
두 사람의 기척이 사라지자마자 엘리제는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단정하던 단발은 산발이 되었고 뺨에는 짙은 홍조가 가득했으나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한 채 상관을 호출했다.
―그 뺨… 그리고 머리, 누구 짓이지?
“아일리 바스티아입니다.”
―이 개 같은 년이….
엘리제가 스스로 챙기지 않는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이번에도 상관의 몫.
자신의 충실한 부하가 감당해 내야만 했던 굴욕의 증거를 목격한 루드비히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삐죽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네, 못난 상관을 둔 덕분에 자네가 못 볼 꼴을 보는군.
“아닙니다, 그날의 일은 전적으로 제 능력이 부족한 탓에 발생한 사고. 각하께서 그럴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사옵니다.”
―그 정체불명의 사고야 그렇다 쳐도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 건 나고, 내 멍청한 발언 덕분에 우리는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했지. 이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야. 미안해, 다시는 이런 실수를 벌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겠네.
루드비히 안피노가 진정한 부하들에게만 보여 주는 미소.
그 미소를 목격한 엘리제의 뺨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조를 머금은 채 물들어 갔다.
―그래서, 영빙석이 갑작스러운 폭발을 일으킨 이유는 찾아봤나? 그리고 지상으로 튕겨 나간 후의 행방은?
“송구하오나 각하, 아직 폭발이 발생한 구체적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사옵니다. 그리고 영빙석의 행방 또한….”
―그래,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리고 영빙석도 너무 무리해서 찾을 필요 없어.
“하오나 각하, 영빙석은 그 가치 또한 대단할뿐더러 만약 그 물건이 근방에서 발견될 시….”
―괜찮다니까 그러네. 따지고 보면 갑자기 짐승들을 옮겨야겠다며 염병을 떤 것도 로덴토 놈들이잖아? 제 놈들도 꿍꿍이가 있으니 그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습 정도야 알아서 하겠지. 이쯤이면 됐으니 자네와 자네 단원들은 그 사건에서 손을 떼. 그리고 특별 휴가를 줄 테니 조용한 곳에 가서 마음을 추스르고 오게.
“감사합니다, 각하.”
―하하! 자네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그럼 휴가를 가기 전 마지막 질문을 해 볼까? 자네가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이름을 꺼냈을 때 그놈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지?
엘리제는 자신이 보고 겪은 바를 상세히 전달했고 루드비히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목격담을 새겨들었다.
한데 재미있는 건 루드비히의 반응이었다.
정보를 공유해 달라는 자신의 요구사항이 철저하게 묵살 당했음에도 공작의 얼굴에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그 옹졸한 놈들이 자네 말 한마디에 자기들이 쥐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을 리 없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어.
“송구하옵니다, 각하. 제가 부족한 탓에….”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놈들이 확보한 정보 따위가 아닌 두 사람의 반응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부분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사항이 있어 보인다는 말이지. 아일리 바스티아가 화를 냈다, 그랬나?
“그렇사옵니다, 각하.”
―자네도 알다시피 그 천박한 년은 워낙에 성격이 음흉해서 좀처럼 본성을 드러내는 일이 없어. 차라리 웃는 얼굴로 심장을 도려냈으면 도려냈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을 것 같은 년이 불같이 화를 냈다라…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그 탐욕스러운 계집이 대놓고 욕심을 부리는 걸 보면 그 꼬맹이한테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루드비히의 영민한 눈동자가 뱀파이어 특유의 색으로 번득거렸고, 드러난 송곳니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루드비히는 말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예사로이 볼 놈이 아닌 듯하니 우리도 놈의 행방을 쫓을 방안을 강구해야겠지?
* * *
저저저적.
돌로 만든 층계와 벽이 서로 간에 몸을 부딪치며 토해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랗게 물든 달빛.
허물어져 버린 성터.
폐허 아래로 괴물의 아가리 마냥 입을 쩍 하니 벌린 지하 계단.
“라 메스타 포베라니움….”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로 지하 계단을 인도하는 마법사까지.
―호옹! 이렇게 보니까 제법 멋있네, 저 여자아이. 이 정도로 안정적인 주문 영창이라니. 마냥 까칠한 고슴도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실력은 있는 고슴도치였어.
내 머리 위에서 수다스러운 목소리로 감상평을 늘어놓는 털 뭉치만 없다면 동화 속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제법 낭만적인 광경이었다.
“어제랑 오늘 이틀간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여기까지 굳이 올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
“역시 에이미 씨, 날카로우시네요.”
“조금만 기다려. 여기 아래로 내려가면 규율국장님께서 왜 너를 이곳으로 보냈는지 알게 될 테니까.”
계단을 꼼꼼히 살피고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작동장치에 마나를 불어넣은 후 주변 상황의 확인까지.
이런 류의 작업을 여러 번 해 보기라도 한 걸까?
에이미 씨는 정교하면서도 신속한 손놀림으로 계단 진입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해내고 있었다.
“등 돌리고 고개 좀 숙여 봐. 내가 직접 걸어 줄 테니까.”
“저한테 주시면 제가 직접 착용하겠습니다.”
“내가 3분 전에 말했지. 계단이 열리는 순간부터 넌 철저하게 내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같은 말을 또 반복하게 할 셈이야?”
“죄송….”
“할 것까지는 없으니까 가까이 와서 고개나 숙여.”
현생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이자 폴리다고스의 다섯 영웅 중 하나인 살게라스의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착용하는 걸로 진입 준비는 모두 끝.
“내가 크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것도 아닌데 손을 뻗어야지 겨우 닿네. 너 키가 몇이니?”
“국가별 척도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80은 넘고 190은 안 될 겁니다.”
“이제 고작 열일곱 살인데 참 부지런히도 컸네.”
에이미 씨와의 접촉이 부담스러워 내가 직접 착용하겠다는 말은 했지만 역시 그녀의 말을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목걸이에 새겨진 각인 주문을 발동시키는 술식이 꽤나 복잡해 보였던 것이다.
내가 했더라면 제법 까다로웠을 과정을 너무나도 수월하게 해낸 에이미 씨는 손을 내 목 뒤를 향해 손을 뻗은 후 목걸이를 채웠다.
“확인이 필요하니까 잠깐만 그대로 숙이고 있어.”
목덜미에 와 닿는 손가락.
어른스럽다고나 할까?
나와 가까워지는 걸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각인 발동을 확인하는 에이미 씨의 손놀림은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다 됐으니까 허리 펴도 돼.”
“수고하셨습니다.”
고개를 드는 와중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한 채 내 목덜미에 닿았던 손가락을 바라보는 에이미 씨의 모습이 보였다.
거참, 싫은 건 알겠지만 그렇게 야릇한 표정까지는 지을 필요 없잖아.
누가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럼 들어가 볼까? 내가 앞장설 테니까 내 발길이 닿았던 곳 위주로 조심하며 따라오도록 해.”
어깨 위로 올라와 까닥이는 오른손과 허리 근처에 자리를 잡은 채 꽉 쥐어진 왼손.
성취의 기쁨이 느껴지는(뭘 성취했길래 저렇게 옹골차게 움켜쥐었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주먹 모양을 한 채 선배는 계단 위에 발을 올렸다.
저저적.
나와 에이미 씨가 계단에 발을 올리자마자 개방되어있던 입구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우우웅.
그 뒤를 이어 우리의 목에 걸린 목걸이와 각자가 보관하고 있는 폴리다고스 학생증을 확인하는 감지 작동음이 울려 퍼졌다.
“유리안이 기본적인 사항은 말 해 줬겠지만, 다시 한 번 설명할게. 너와 내가 있는 이곳은 살가레스 님께서 대륙 곳곳에 만들어 놓은 비밀 연구실 중 하나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에 깃든 영험한 기운이 여전한 덕분에 아직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솔직히 말하면 조금 놀랐습니다. 살가레스 님께서 생존하셨을 무렵 만들었던 연구실의 감지 시스템이 이토록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다른 사람도 아닌 살가레스 님께서 직접 만드신 연구실이니까. 폴리다고스의 학생이 아니라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해. 이제 알겠지? 왜 교직원이나 천공의 눈 소속 인원이 아닌 너를 이곳에 불렀는지.”
‘지금 하신 그 말씀은 폴리다고스 재학생이 이곳에 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는 적절하지만, 굳이 저를 호출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참기로 했다.
질문을 삼킨 첫 번째 이유, 지난 이틀간의 경험을 통해 에이미 씨는 내가 질문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스르르륵.
질문을 삼켜야만 했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역시 영험한 마력이 넘쳐 흐르는 장소답게 이런 놈들이 나오는군.’
‘살게라스의 연구실 겸 지하 미궁’ 천장을 타고 접근해 오는 슬라임을 봤기 때문이다.
“정말, 여기는 여전하네.”
나와 거의 동시에 슬라임의 접근을 확인한 에이미 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슬라임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지만.
서걱.
티아매트가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추는 게 먼저였다.
에이미 씨의 머리를 겨냥해 도약했던 슬라임은 그대로 허공에서 증발해 버렸고 자신의 출수보다 조금 더 빠른 검의 궤적을 목격한 에이미 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올려다봤다.
“조금 전에 저보고 쓸데없이 크기만 하다고 핀잔을 주셨지만, 이곳에 들어와 나란히 걷다 보니 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삼 놀랐을 뿐 핀잔을 주거나 한 적은 없어. 그런데 왜? 이틀간 늘 툭툭거리기만 하던 여자를 내려다보니까 기분이 좋아서?”
“아니요. 어쨌거나 제가 조금이나마 더 큰 덕분에 이렇게 에이미 씨의 머리 위를 지켜 줄 수 있었잖아요?”
“…!”
“역시 부지런히 크기를 잘했네요.”
왜 내 지시 없이 검을 휘둘렀냐는 질책이 떨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흥!”
에이미 씨는 카밀라가 종종 들려주는 소리를 남겨놓은 채 발걸음을 옮겼고 난 그림자처럼 은밀한 동작으로 그녀를 따랐다.
위이잉.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머금은 채 불어오는 바람은… 그 묵직한 세월과는 달리 더없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