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2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27)화(12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27)
후우우.
“이제는 연초가 제법 잘 어울리는걸? 천하의 모범생 알크페인 무라노어가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대고 있다니,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늘 이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인 가봐?”
예식 준비를 절반쯤 마친 회랑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나나? 우리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이곳에 머물던 시절, 언제나 자네에게 담배를 권유하던 건 나였는데 말이야.”
“…잊었을 리가 없지. 물론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아직 어렸던 요아힘 벤제르센은 도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항시 키득거리는 얼굴로 담배쌈지와 부싯돌을 내밀곤 했지. ‘이리 좋은 걸 왜 안 하겠다는지 모르겠네.’가 자네 말버릇이었어, 아마.”
“그때마다 자네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잖나. ‘무라노어의 명예를 걸고 교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라고, 그 순수했던 자네가 신성하기 그지없는 예식장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니. 이런 걸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거겠지?”
“자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많아. 이런 점을 보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르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
언제나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옛 친구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다음 달부터였던가? 자네가 생전 안 피던 연초를 입에 대기 시작한 게.”
“그래, 자네가 스승님이 돌아가신 그날을 기해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처음으로 이 녀석을 입에 물었지.”
“그래서 만족하나? 그리고 혹시 자네를 끽연의 길로 이끈 채 그쪽 세계에서 몸을 내뺀 나를 원망하지는 않고?”
“만족도라면 그럭저럭. 그리고 자네를 원망한 적은 없어. 다만 궁금할 뿐이야. 하루에 꼬박 여덟 시간씩 담배를 물고 있던 골초가 어떻게 그리 칼같이 담배를 끊어 낼 수 있었는지.”
주위에 사람이 없는 탓일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양상은 폴리다고스 절대자들 간의 의견 교환보다 아련한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 간의 사담을 닮아 있었다.
“스승님께서 남기신 뜻을 잇기 위해서라면 담배 연기로 멍해져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거든.”
“생각의 방향은 다르지만, 결심의 계기는 나와 닮아 있네그려. 난 스승님이 ‘살해’당한 그날, 내가 느껴야 했던 절망감을 잊지 않기 위해 이걸 피우기 시작했거든.”
“….”
“왜 그런 눈으로 보나? 스승님 살해 사건과 흡연은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나 많이 닮아 있는데 말이야.”
“자네는 아직도 스승님께서 살해당하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럼, 아니라고 할 셈인가?”
대화가 시작된 이래로 온건한 듯했던 두 사람 사이에 태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을 위해 평생을 사셨고, 결국 스승님의 뜻과 믿음을 배신한 평민들의 탐욕에 의해 돌아가셨어. 이게 살인이 아니면 뭐라는 말이지?”
“그래. 스승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던 자들이 최후의 순간에 스승님을 배신하였고, 그 바람에 스승님께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향해야 했다는 건 인정하겠네. 하지만 자네, 스승님이 돌아가시게 된 경위는 그리도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왜 그분이 남기신 뜻은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한 스승의 밑에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같은 길을 걷던 두 명의 천재가 갈라지게 된 계기.
두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비극.
하지만 그 비극이 남긴 상처를 오래전에 극복한 바 있던 요아힘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구나.’라고.”
“스승님께서 평생에 걸쳐 내리신 수많은 결정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잘못된 판단이셨지. 저 어리석은 평민들을 향한 신뢰를 아주 조금만 더 일찍 거두어들였다면 스승님께서 그리되실 일도 없었을 것이네.”
“…그만하지. 어차피 오늘은 자네를 설득하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
상처를 극복한 자신과 달리 아직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
그 가련한 친구를 고통의 굴레에서 건져 주는 건 이번에도 무리인 듯싶었고 결국 요아힘은 알크페인을 찾아온 진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조금 전 마고니아에서 내려온 결정문을 확인하고 오는 길일세.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이번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다면 그 즉시 학년 대표 임명식을 진행할 예정일세. 자네를 제외한 다른 국장들 전원이 결정에 동의했다네.”
“…즐거워 보이는군.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1학년 대표로 선발된 게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야?”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이대로 페이건 군이 무럭무럭 성장해서 훗날 총학생회장까지 맡아 준다면 그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텐데.”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작위를 수여받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끝내 클라디우스가 작위 수여를 거부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대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네만?”
“그럼 아니라고 생각했나?”
결코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답답한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 거리가 멀다 하여 밀어내기에 알크페인 무라노어는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였기에 요아힘은 치안국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페이건 군이 예정대로 돌아온다면 그달 내로 임명식을 진행할 거야. 부디 자네가 참석해 그 자리를 빛내 줬으면 하네.”
* * *
살가레스의 연구실에서 페노모산(酸) 원액을 추출한 지 오늘로 사흘째.
그 후로 딱히 특기할 만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대륙 곳곳에 숨은 비밀 장소로 나를 인도한 에이미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한 채 기관의 문을 열었고 연구실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작업을 수행했다.
불상사가 발생해도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주문을 걸고, 길목을 막고 있는 난관을 통과하고, 혹시 내가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나 살피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비밀 기관의 심층부에 도달하고.
‘그리고 도달한 목적지에는 진귀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대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 약재들이 에이미 씨를 기다리고.’
볼거리도 많고,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 여행의 목적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꽤나 만족스러운 여정이었다.
물론 그사이에 우리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에이미 씨는 여전히 정중하지만 차가웠고, 나 역시 그녀에게 딱히 다가갈 이유가 없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데면데면한 거리를 유지한 채 여정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에이미 씨, 오늘 오후에 다중 마법진으로 구성된 마법을 여러 차례 구사하셨지요. 괜찮다면 몸 상태를 확인했으면 하는데요.”
“지금 날 검진하겠다는 거야? 갑자기 왜?”
“검진이라고 할 일까지는 아니고, 그냥 마나를 과하게 운용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있지는 않는지 잠깐 확인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중 마법진은 신체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요.”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에이미 씨에게 건넨 나의 제안 역시 치료술사로서 기본적인 의무감의 발현일 뿐, 이 작업을 통해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혀 보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오후에 게이트를 돌파하면서 사용한 마법이 다중마법진의 발현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 그건 마법학을 전공한 고학년들도 잘 모르는 건데.”
“과거에 다중 마법진을 몇 번 접한 적이 있어서요. 그 덕분에 다중 마법진을 해석하는 능력을 조금 키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전생이기는 하지만 에이미 씨 당신이 사용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영창을 하는 마법사 놈들도 수도 없이 해치워 왔는데 설마 그걸 모를까?
“치료술사들은 환자의 몸 상태를 확인할 때 맥박을 주로 활용한다고 들었는데… 너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야?”
“네, 맥박을 활용하기는 할 건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례가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나는 미리 준비한 실을 꺼내 한차례 팽팽하게 당긴 후 엉거주춤하게 내뻗어진 에이미 씨의 손목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두 번 매듭을 묶고 에이미 씨의 팔목에 두어 번 감아 준 후, 그 반대쪽 끝을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이걸로도 맥박을 확인할 수 있어요.”
“….”
“아! 혹시 두 번이 번거롭다면 한 번만 감아도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확인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손가락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이 실을 사용하겠다고?”
“네.”
응? 방금 전에 에이미 씨의 미간이 꿈틀거린 것 같은데… 뭐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
“좋아, 확인을 해 두는 편이 더 편하다면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그 매듭은 네가 직접 묶은 후 내 손목에 걸어.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괜찮아요, 어려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잠깐만 집중하시면 제가 상세히 가르쳐 드릴 테니….”
“그런 거 할 줄 모른다니까! 매듭이건 뭐건 하려면 네가 직접 묶어서 걸고 그게 싫으면 관둬.”
아니 매듭 묶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려운 일은 잘만 해내면서 왜 이걸 못 한다는 거야?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투정이었지만 에이미 씨는 팔목을 내민 채 아무런 말이 없었고 결국 난 내 손으로 매듭을 묶은 후, 그녀의 하얀 팔목에 실을 거는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에이미 씨, 지금 혹시 순간적으로 어디 불편하거나 통증을 느끼는 곳이 있나요?”
“아니, 없어.”
“그래요, 이상하군요? 조금 전 제 손등이 에이미 씨의 팔목에 스치는 순간 실을 통해 엄청난 맥박이 느껴졌거든요. 치료술사에게 상처를 말하는 건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니 혹시 불편한 곳이 있다면 개의치 말고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잠깐만 기다려.”
여정이 시작된 이래로 에이미 씨가 화를 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토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건 처음.
“후우….”
나를 밀쳐 내고 에이미 씨는 크게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다시 손목을 내밀었고.
“음… 이번에는 별문제 없네요. 맥박뿐만 아니라 전달되는 체온이나 마나의 흐름도 안정적이고. 네, 이상 없습니다. 조금 전의 그건 착오였나 봅니다. 방금 바람이 세게 불었잖아요. 모닥불의 재가 실에 닿는 바람에 그런 착오가 발생한 걸 수도 있구요.”
“그래, 별문제 없다면 다행이네. 아무튼 수고했어.”
딱히 몸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피곤했던 걸까?
에이미 씨는 검진을 마치자마자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침낭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넌… 안 자?”
“네, 바람이 좋아서 나뭇잎 구경을 조금 더 하고 자려고 합니다. 에이미 씨, 그럼 좋은 꿈 꾸시길.”
“…너도.”
* * *
다시 또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여정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한적한 항구 마을에서 시작된 여정은 루페 산맥 중턱을 지나 북쪽을 향했고, 오늘 노을이 질 무렵 공략을 끝낸 폐신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고했다.
이제 거쳐야 할 장소를 모두 들렀으니 남은 일정은 방향을 틀어 폴리다고스로 복귀하는 것뿐.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던 여행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 덕분일까?
저녁을 먹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학년 대표 임명식이 곧 있을 텐데, 내가 따로 준비하거나 해야 할 일은 없겠지? 너무 번거롭거나 화려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같은 생각이 가득할 뿐.
뭔가 더 추가적인 이벤트가 발생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날 말했지. 조용한 곳에 가거든 진짜 모습을 보여줄 테니 섣부른 억측은 삼가 달라고. 오래 기다렸지? 이게 진짜 나야.”
세면을 하고 오겠다며 호숫가를 향했던 에이미 씨가 일정 내내 사용하고 있던 위장 장치를 제거한 채 야영지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후우… 답답한 걸 벗었더니 이제 좀 살 것 같네.”
제법 긴 머리카락을 동여매고 있던 머리띠를 풀어헤치며 고개를 흔드는 에이미 씨, 아니 크리스틴 선배.
유달리 결이 고운 머리카락 또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는지, 녹색 폭포를 연상케 하는 머리카락은 요정의 몸짓과도 같은 자태를 뽐내며 한 올 한 올 춤을 췄다.
“어차피 폴리다고스로 복귀하게 되면 진짜 내 모습을 보게 될 테지만, 며칠 정도 더 일찍 보여 준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잖아?”
기대를 머금은 듯한 눈동자를 한 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기에 여념이 없는 선배.
딱히 내 생각을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만 그녀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된 소감을 굳이 밝히자면 ‘신기록 경신’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었다.
폴리다고스에 입교한 이래로 꽤나 많은 미인들을 만나 봤지만, 객관적인 미의 완성도로만 따지면 크리스틴 코델리아나가 그중에서 단연 최고가 아닐까?
‘카밀라 녀석, 자기보다 훨씬 더 예쁘다더니. 아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나 보네.’
카밀라 역시 눈을 씻고 보게 만들 정도의 미인이기는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 열 명을 세워 두고 크리스틴 선배와 카밀라 중 누가 더 미인이냐고 묻는다면 열 명 중에 일곱 명 정도는 크리스틴이라 대답을 할 것 같았다.
“….”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한 채 시선을 돌리는 크리스틴 선배.
내가 조금만 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면 이 타이밍에 입을 열어서 뭐라도 칭찬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런 번거로움까지 감수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뭐… 딱히 너를 위해서 한 건 아니니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답답해서 벗은 거야, 답답해서.”
나란 사람이 원체 이런 류의 묘사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고 선배는 어딘지 모르게 뚱한 표정을 한 채 착석했다.
“으흠! 뭐 어쨌거나 나도 위장 도구를 지우고 내 진짜 얼굴을 보여 주는 수고를 감수한 만큼, 나도 너한테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난 당신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한 적 없는데.
“딱히 어려운 질문은 아니니까 부디 최대한 솔직하게 답변해 줬으면 좋겠어.”
작달막한 나뭇등걸에 걸터앉아 있음에도 다리가 워낙에 길고 날씬한 탓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꼬아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폴리다고스로 복귀를 앞둔 밤, 매혹적인 준비 동작으로 말문을 열 준비를 마친 선배는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넌 왜 치료술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