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3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1)화(13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1)
“혹시 제 발언이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냥 사람을 앞에 두고 근본이 없니 궁핍이니 하는 소리를 너무 편하게들 하시길래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자리인 줄 알았죠.”
달칵.
자리에 앉은 이후 줄곧 입도 대지 않은 찻잔을 집어 들어 절반 정도를 비워 냈다.
찻잔이며 찻잎에도 온통 얼간이들의 허세가 배어 있던 탓에 맛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붉으락푸르락해진 바보들의 표정을 감상하며 마시자니 그럭저럭 목을 축일 정도는 되었다.
“너… 우리가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 정말 전쟁이라도….”
“선배님들께서 저를 어떻게 보는지 대충은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뭐, 그 자세한 내역까지 알고 싶지는 않고. 그리고 해글러 나이투의 꼬라지를 보고도 모르세요? 전 싸움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정도로 겁쟁이도 아닙니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결국, 참지 못한 고베나의 병풍 중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나선 순간.
피잉.
소매를 빠져나간 침이 녀석의 미간 사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히익!”
“여기서 선배님이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거나 제가 손가락을 아주 약간만 더 움직인다면 그때는 정말 큰일이 나 버리게 될 텐데. 어떤가요? 고베나 선배님. 원하신다면 그리해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아티지, 물러서.”
질끈 입술을 깨물며 병풍을 물리는 고베나.
참으로 바보 같다고나 할까?
이 머저리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내가 어떤 놈인지 아직도 파악이 안 된 걸까?
이 멍청이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광인’임이 분명한데 미친놈을 상대로 자신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방법을 들이미니까 이런 꼴을 겪는 것을.
이리도 발전이 없어서야.
“선배님들은 더 하실 말씀이 없는 듯하니 제가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고베나 선배님을 비롯한 각 학년 대표분들 제 쪽으로 자치회 공문을 하나 보내셨더군요. 공문에 담긴 의제는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징계 요청, 징계 사유는 ‘야외 수업 장소에서의 품위 유지 의무 위반’, ‘폭력 행위’, ‘교칙 위반’ 등등….”
내가 오고 싶지 않았던 이곳까지 행차해 주신 진짜 이유, 그건 이 공문의 처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머저리들은 쓸데없는 일에만 부지런하다.’라는 오래된 격언과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내가 아직 대표로 정식 임명되지 않았음에도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를 속히 징계하라는 자치회 공문은 그야말로 여러 곳에서 쇄도하고 있었다.
학년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징계 요청의 사유는 폭력 행위부터 교칙 위반까지 다양했지만 결국 그 사유를 한데 모으면 ‘감히 로덴토의 심기를 거스른 괘씸죄’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아스트라 페르디난드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를 굳이 하나 더 찾자면 출생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정도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페르디난드의 백룡기사를 이 정도로 압박할 수 있다니, 이런 돼먹지 못한 꼬라지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로덴토의 위세가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물론 난 이런 식의 천박한 힘자랑에 응해 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지만.
“현재 1학년 대표 회의는 구성되지 않았으니 그 의결 권한은 저학년 공통 학생 회의, 즉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대행하게 되겠네요. 그리고 선배님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제가 징계 안건을 발의하기만 하면 그 안건이 회의를 통과하는 건 일도 아닐 것으로 보이는군요.”
학생자치회가 징계를 결정하는 절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모든 학년 대표들로 구성되는 전체 학생 회의에서 징계가 결정되거나 아니면 각 학년 대표가 해당 학년 학생의 징계를 발의한 후 그 안건이 회의에서 통과되거나.
“사실 아스트라의 징계를 바라는 누군가께서 정말로 밟아 버리고 싶은 건 오히려 저일 텐데요. 그런데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워낙에 미친놈으로 소문이 나 있다 보니 당장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놈은 일단 뒤로 미루고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이는 놈부터 먼저 날려 버리겠다.’ 뭐 이런 거겠죠? 감히 자신의 가문에 대든 1학년을 담가 버리고 싶은 ‘누군가’의 속내는 알 것 같다만 그래도 이건 좀 많이 졸렬하네요.”
즉, 아스트라에게 징계를 내리기 위해서는 전체 학생 회의를 개최하거나 내 손에서 발의를 이끌어 내거나, 둘 중 하나는 꼭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
‘카누카 밀렵을 방해한 일로 게오르그의 미움을 샀다고는 해도 아스트라는 명색이 페르디난드의 후계자. 제아무리 게오르그가 깡패 같은 놈이라 해도 페르디난드의 후계자 징계만을 위한 단발성 전체 학년 회의를 개최하는 건 눈치가 보이겠지. 그리고 그런 게오르그의 엉덩이를 핥아 주기 위해 저학년 대표라는 놈들이 한데 모여 나를 압박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건가?’
아주 맑은 호수의 바닥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일의 전모.
1학년 대표 사무실에 가득 쌓인 ‘징계 요청 의견서’를 봤을 때도 어느 정도 감이 오기는 했지만 실제로 마주하고 나니 놈들의 짓거리는 새삼 저열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대표라는 것들이 꼬라지가 이래 가지고 나한테 조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지 않겠어들?
“페이건 클라디우스! 네 멋대로 상황을 오판한 후 우리의 의견을 호도한다면….”
“혹시 게오르그 로덴토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든가요?”
“…!”
“표정을 보아하니 게오르그 로덴토 선배가 맞나 보네요. 하!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겨 가지고. 정식 인사도 나눈 사이고 하니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나를 직접 찾아오든가 하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모양 빠지게.”
“너… 너… 가, 감히 로덴토 공자, 아니 게오르그 선배님께 이 무슨 무례한….”
“사실 내심 그럴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확실한 뒷배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선배님들 주제에 감히 백룡기사를 징계하겠다는 배짱이 있을 리 없잖아요?”
입을 쩍 하니 벌린 채 몸을 떠는 병풍들과 고베나.
이 추한 몰골을 보고 있으려니 새삼 궁금해졌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너는 지금 우리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 게오르그 선배님의 명예 또한….”
“아무튼,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 아스트라 징계 건을 발의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어거지 같은 징계를 굳이 성사시키고 싶다면 전학생 회의를 개최하는 쪽으로 고민해 보세요.”
이 얼간이들은 게오르그 로덴토에게 가해진 조롱과 자신들에게 쏟아진 모욕, 둘 중에 어느 것에 더 분노하고 있는 걸까?
“아, 그런데 전체 회의를 소집하려면 전학생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3인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과연 유리안 선배님께서 이런 개 같은 징계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회의 소집에 동의해 주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얼간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개소리의 배설(排泄)을 참아주는 건 힘들었지만 바보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져 가는 걸 보는 광경은 꽤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게오, 아니 선배님들께서 죽어도 아니라 하시니까 그 이름은 빼죠. 뭐, 여러분들의 등을 떠민 그 자를 만나거든 말 좀 전해 주세요. 다음부터 원하는 게 있거든 괜히 빙빙 돌리면서 힘 빼지 말고 나를 직접 찾아와 내 얼굴 보고 말하라고.”
꿀꺽.
파랗게 질린 바보들의 얼굴처럼 완전히 식어버린 찻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 버린 후 최대한 우아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가장 정중한 동작으로 얼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차 잘 마시고 갑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있거든 종종 불러주세요.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똑똑.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그날 밤, 조금 출출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숙사 방 한편에 마련해 놓은 비상식량 창고를 뒤적거리고 있을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공자를 모시고 있는 ‘소피아 메글렛’이라고 합니다.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 시간에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뵙게 되어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 실례를 무릅썼으니 공자께서 너른 마음으로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후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방문을 두드린 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을 한 메이드였다.
단정하게 땋아서 정리한 머리카락과 목 끝까지 빈틈없이 채운 단추.
입고 있는 검은색 블라우스와 한 쌍이기라도 한 것처럼 잘 어울리는 두건과 실크 장갑.
여기에 발목을 살짝 덮은 스커트까지.
그야말로 시중 하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정갈한 옷차림을 한 채 나를 찾아온 페르디난드의 하녀는 다소곳한 자세를 한 채 내 반응을 기다렸다.
“무례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일단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편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일개 사용인에 불과한 저에게 공자님께서 존대를 하시는 건….”
“지난번에 보니까 아스트라가 소피아 씨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친구가 존칭을 붙이는 사람의 이름을, 더군다나 초면인 제가 마구 불러 댈 수는 없잖아요?”
“친구… 황송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님.”
내가 아스트라를 친구라 칭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곱게 미소를 지었고 그러자 그녀의 얼굴 3분의 1을 가린 실크 베일이 곱게 물결쳤다.
미소가 워낙에 고풍스러운지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졌지만, 그 고운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림막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것도 사실.
“거기 앉아 계세요.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차라도 한잔 끓여 드릴 테니.”
“아닙니다. 공자님, 저같이 미천한 것을 위해 공자님께서….”
“어차피 군것질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물도 다 올려놨으니 가만히 앉아 계시면 됩니다.”
그녀의 베일에 시선이 머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역시 야심한 시간이니만큼 커피는 좀 그렇고 차는….
휘이잉.
순간 절반쯤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소피아 씨의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그 바람에 그녀의 몸에 묻어 있는 은은한 레몬 향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레몬? …그렇다면 재스민차가 좋겠네.’
선택이 마무리된 이상 준비를 마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라무테 님을 위한 차 상자에서 꺼낸 재스민차와 북슬이 전용 과자 창고에서 공수해 온 과자를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가볍게 목을 축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오후에 만난 머저리들처럼 실없는 소리를 하기 위해 날 찾아온 건 아닐 텐데 아스트라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하녀치고는 고상함이 넘쳐 흐르는 여인’의 용건이 뭘까?
“감사합니다. 꼭 공자님께 이 말을 직접 전해 드리고 싶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피아 씨에게 뭐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드린 게 있나요?”
“…오늘 오후. 자치회 건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 도련님을 징계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는 건 이미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일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오늘 공자님께서 용단을 내려 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님.”
“아아, 난 또 뭔가 있나 했는데 그 일을 말씀하시는 거였군요. 그 일이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나요? 하여간 입들은 싸다니까.”
파르르 떨리는 소피아 씨의 속눈썹을 통해 그간 그녀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충분한 교류를 보내지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억측이 될 수도 있겠지만 뭐랄까?
아스트라와 소피아 씨, 이 두 사람은 도무지 평범한 ‘사용인 – 피사용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애틋한 눈빛을 한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도련님과 하녀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차라리 모종의 사정이 있어 서로를 향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비운의 연인 비슷한 거라고 하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할 것 같은데.’
그 후, 내가 몇 번이나 만류를 했음에도 소피아 씨는 거듭 감사 인사를 올렸고 그 감사의 파도가 조금은 잦아들었을 무렵에야 난 절반쯤 농담을 섞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혹시 소피아 씨가 여기에 온 걸 아스트라는 알고 있나요?”
“아니요. 아직 도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은 터라 모르고 계실 거예요.”
“다행이네요. 그럼 끝까지 모르게 해 주세요. 여기서 있었던 일을 알면 아스트라가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으니.”
“공자님, 우리 도련님께서는 공자님에 대해 늘 말씀하시길….”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나쁘게 보지 않고 있는 건 알고 있는데요. 그거랑은 별개로 이번 일은 비밀로 해 두세요. 자신은 별로 고맙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일인데 굳이 소피아 씨가 저를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는 걸 알면 아스트라가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공자님?”
아스트라가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추측이 당황스러웠는지 소피아 씨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별 같잖은 놈들이 시답지도 않은 소리를 늘어놓길래 들어줄 생각이 없다고 했을 뿐이에요. 학년 대표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을 뿐 딱히 아스트라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그 녀석을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마 아스트라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공자님, 도련님께서는….”
“혹시라도 그 친구가 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전해 주세요. 얼토당토않은 사유에 근거한 징계를 거절했을 뿐이니 그런 생각할 필요 없다고. 애초에 고마워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일입니다.”
“…하오나 공자님!”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걸까?
소피아 씨는 조금 더 상체를 내밀었고 그 바람에 그녀의 곁을 맴돌던 재스민차 향이 내 쪽으로 밀려들었다.
‘…낙엽 냄새. 처음에는 레몬이었다가 재스민차 향과 섞이니까 낙엽 냄새로 변했다면. 정답은 하나야.’
굳이 재스민차를 준비해야만 했던 이유를 되새기며 난 소피아 씨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부디 내 말이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피아 씨, 초면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결례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맡은 바 소임이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있다 보니 도저히 못 본 체할 수 없어 말씀드립니다.”
“공자님?”
“착용하고 계시는 실크 장갑, 한쪽만 벗어서 손등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
잔잔한 호수 같던 소피아 씨의 눈망울이 순간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 표정을 통해 내 추측이 들어맞았음을 확인한 나는 조금 더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소피아 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