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3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5)화(13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5)
유서라, 다른 사람이 말한다면 질 낮은 농담 정도로 들리겠지만 말을 내뱉은 상대가 상대다 보니 도무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작성하지 않았지만, 출입 허가를 얻기 위해 유서가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장소도 아닌 아스라의 숲에 단독 출입 허가라… 그것도 녹사슴좌가 떠 있는 밤에… 만약 내가 허가증을 내준다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아마 미친놈이라 그러겠지. 그리고 말이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봐도 네놈은 나와 같은 부류야.”
“저와 국장님이 같다고 하셨습니까?”
“성깔대로 행동하는 나와는 달리 나름 점잖은 척, 고상한 척 가면을 쓰고 있지만. 세간의 이해를 받을 수 없는 미치광이라는 점에서 결국 네놈의 본질은 나와 같아.”
아니, 착각하지마.
당신이랑 내가 닮은 점이 있다면 눈이 두 개 달려 있고 심장이 뛰고 있다는 점이 전부니까.
“좋아, 허가해 주도록 하지. 네놈의 꿍꿍이속은 잘 모르겠지만, 너 같은 미친놈을 이해해 주는 것도 나 같은 광인의 책무일 테니.”
팩셰르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앙상한 손가락을 까닥였고 난 일전에 발급받은 바 있는 출입증용 단검을 내밀었다.
치이이익.
팩셰르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단검의 색이 변하며 표면에 기하학적인 룬문자가 아로새겨졌다.
폴리다고스의 실험국장은 저 간단한 손동작 하나로 기존의 출입증 위에 아스라의 숲 출입증을 덧씌워 버린 것이다.
팩셰르 따위한테 이해 같은 걸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건 다행이었다.
만약 팩셰르한테 허가를 얻지 못했다면 다른 장소를 알아봤어야 했을 텐데 그랬다가는 적어도 사나흘의 시간은 더 소요되었을 테니까.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녹사슴좌가 떴으니 숲이 머금고 있는 독기의 기운도 한층 더 거세졌겠지. 살갗은 하루 정도면 녹아 없어지겠지만 네놈은 제법 강골(强骨)인 것 같으니 뼈까지 완전히 녹으려면 사나흘 정도는 걸릴 테고.”
간결한 작별 인사 후 뒤를 돌아서려니 까랑까랑한 팩셰르의 목소리가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독기인지, 조롱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대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목소리로 팩셰르는 작별 인사를 건넸다.
“혹시 네놈이 아스라의 숲에서 횡액을 겪는다면 그 시체는 내가 너무 늦기 전에 건져 에스페타라로 보내 줄 테니 부디 안심하고 다녀오거라.”
* * *
“페이건!”
“아스트라, 네가 이 시간에 여기에는 웬일이야?”
어느덧 오후 열 시를 넘긴 시각, 방에 비치해 놓은 장비를 챙겨 곧바로 출발을 하려 했더니 기숙사 방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있었다.
“너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그런데 어떡하지. 내가 급하게 어디를 가봐야 해서 오래 이야기는 못 할 것 같은데.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일단 들어와.”
삐걱.
복도 건너편에서도 눈에 확 띄는 외모의 소유자, 백발의 백룡기사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는 굳은 표정을 한 채 나를 따라 들어왔다.
“아무 데나 편한 데 앉고 목마르면 저기 주전자 안에 종류별로 차 있으니까 따라 마셔.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사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니, 내 응대 방식이 무례하다 탓하지 말아 줬으면 해.”
엉거주춤한 자세의 아스트라를 대충 앉혀 놓은 후 난 최종 장비 점검에 들어갔다.
염(炎)속성 마감처리가 된 특제 단검 세 자루, 순수 제련강으로 제작된 단검 두 자루, 압축 마법이 각인된 밧줄, 밧줄 끝에 매달 갈고리 모양 별로 일곱 개, 난쟁이 풀로 적셔 소음 발생 방지 처리가 된 가죽 장갑 다섯 켤레.
그 외에 잡다하게 필요한 것 이것저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사냥의 히든카드인 특제 제작 사탕.’
비단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자 주머니를 가득 메운 녹색 빛의 청포도 같은 알사탕이 보였다.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었고 사탕 주머니를 품속에 갈무리한 그때.
드디어 아스트라가 입을 열었다.
“페이건, 내가 징계를 받을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뭐?”
“선배님들이 학우들을 상대로 억지를 부리는 거, 나 때문이잖아. 선배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냥 징계를 받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하면 일단 지금 사태는 수습할 수 있을 거야.”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도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나 했더니 이거였어?
“여기서 일단 숙이고 들어가는 걸로 마무리하자? 좋아,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못할 것도 없지. 그런데 말이야, 넌 네가 이번 한 번 순순히 오랏줄을 받아들이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나 봐?”
“물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리고 나 때문에 너와 다른 학우들이….”
“애초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고 세 번째부터는 더 수월해지는 법이야. 그리고 네 번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겠지.”
“….”
“그리고 선배라는 작자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겠다니, 그게 긍지 높은 백룡기사가 할 말이야? 조금,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실망인데.”
고개를 숙인 아스트라의 이마 위로 눈처럼 하얀 백발이 드리워졌다.
이 녀석을 만난 이래로 처음 보는 무기력한 표정.
“그리고 하나 더.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네가 숙이고 들어간다 해도 이런 일은 안 끝나. 왜냐하면 저놈들은 너보다 나를 훨씬 더 싫어하거든. 너의 기를 꺾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하면 바로 나를 목표로 한 협잡질을 준비하겠지. 그런데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저놈들의 개수작을 들어주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아스트라가 이 말을 들으면 자존심 상하겠지만 저놈들이 나보다 백룡기사를 우선해서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단 하나.
아스트라가 나보다 더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에게 갈 피해가 염려돼 자존심을 꺾겠다는 판단은 존중할게. 그리고 네가 선배들을 찾아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내가 참견할 바는 아냐.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거든.”
“페이건!”
“정말 미안한데 그만 나가봐야 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
필요한 도구를 이것저것 꼼꼼히 챙겨 넣은 덕분인지 경량화 처리가 된 장비만을 선별했음에도 어깨에 느껴지는 가방의 무게는 제법 묵직했다.
달칵.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고난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퇴실하는 내내 아스트라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난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이만. 그리고 소피아 씨 일 말인데 가급적이면 빨리 데려와. 어쨌거나 하루라도 빨리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해야 차도가 보일 가능성도 높으니까.”
“페이건, 너 정말 괜찮겠어? 나 때문에 네가 비난을 듣는 건….”
“장담하는 데 네가 없었어도 어차피 이런 일은 일어났을 거야. 저 새끼들은 내가 싫고 난 저놈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변수일 뿐 원인도 결과도 아니니까 쓸데없는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그렇지만….”
“분명히 말해서 난 꽤나 제멋대로인 사람이야. 그렇지만 내 성질머리 때문에 애먼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걸 마냥 지켜볼 정도로 막장은 아니거든. 두고 봐, 내가 어떻게 원상태로 돌려놓는지. 그리고 소피아 씨 데려오는 거 잊지 말고.”
아스트라의 이런 표정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고 녀석의 입에서 나올 말도 딱히 궁금하지 않기에 그대로 등을 돌려 버렸다.
* * *
바스락바스락.
아스라의 숲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기숙사를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숲길로 접어들어야만 했고 숲의 습기로 인해 신고 나온 산악화가 축축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도독.
숲에 도착한 뒤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미리 사탕을 하나 빼먹었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드루이드 오러의 맛.
그 쌉싸래한 맛을 음미하며 올려다본 남쪽 하늘에는 세상의 모든 독충(毒蟲)과 맹독 식물을 수호하는 ‘녹색 사슴’이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 * *
꼬박 세 시간 넘게 내달려 도착한 아스라의 숲.
좌륵.
줄줄줄.
시험 삼아 초입부에 위치한 나무줄기를 잘라 봤더니 옅은 보랏빛으로 물든 독액이 철철 흘러넘쳤다.
폴리다고스에 존재하는 모든 미궁과 던전, 숲은 그 위험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아스라의 숲 같은 경우에는 최고 등급의 바로 아래인 6등급에 해당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페이건, 그러니까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금 이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독을 가진 나무와 독충들이 득시글하다는 거지?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아스라의 숲이 괜히 독충과 독 나무의 성지라 불리는 게 아니거든요.’
―어휴, 독하기도 해라. 이 정도면 이건 나무가 아니라 차라리 흉기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어.
‘얘들도 평상시에는 이 정도까지 염병을 떨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녹사슴자리가 하늘에 떠 있는 날이다 보니 더욱더 난리를 치는 것 같기도 해요.’
―내 눈으로 이곳을 보고 나니 그 성격 이상한 실험국장이 유서가 어쩌고저쩌고했던 것도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아. 아! 물론 우리 페이건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만.
‘사실 학생 혼자서 아스라의 숲에 오는 게 드문 일이기는 합니다. 6등급 이상의 위험지역에 출입하는 경우 최소 2인 이상의 교직원이 동행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싸륵싸륵.
라무테 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독충이 뱉어내는 울음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으으, 이상한 냄새. 야, 그러면 그 녹사슴인지 뭔지 없을 때 왔으면 됐잖아? 왜 하필 오늘 와 가지고 사서 고생을 하는 건데?
‘여기서 내가 잡아야 하는 그놈이 워낙 조심성이 많은지라 녹사슴자리가 떠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거든. 평범한 날 와서 그놈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최소 3박 4일간 숲에서 죽치고 앉아 놈의 흔적을 쫓아야만 하는데, 북슬이 너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
싸르륵싸르르륵.
정수리 위의 북슬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걸음을 멈췄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코끝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향기.
발밑에 깔린 잡풀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진득한 액체.
싸르르륵.
그리고 좌측면에서 느껴지는 살기.
“찌르르륵!”
좌측을 향해 방향을 바꾼 그때.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사마귀다! 그런데 무슨 사마귀가 저렇게 커? 생긴 건 사마귀인데 크기는 불곰이네!
울창한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포이즌 맨티스’가 독액으로 번들번들한 앞발을 휘두르며 나를 덮쳐 왔다.
“찌릭!”
“찌륵!”
무리 사냥을 즐기는 포이즌 맨티스답게 놈들은 내 사방을 점거한 채 달려들었고 내가 유일하게 허락된 공간인 머리 위쪽의 나무로 뛰어오른 순간.
저저저적.
미리 금이 그어져 있던 나무는 그대로 반으로 쪼개져 버렸고 허공에서 방향을 잃은 나는 그대로 후방에 있던 독액 연못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첨벙.
“찌륵찌륵.”
“찌르르륵!”
모처럼 큰 건을 해낸 포이즌 맨티스 무리의 주둥이에서 승리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덮치는 방식이나 미리 나무를 잘라 놓은 솜씨를 보건대 놈들은 이런 식의 사냥에 무척이나 익숙한 듯했다.
“찌륵!”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대장 맨티스의 외침을 따라 맨티스 무리가 일렬로 늘어섰다.
포이즌 맨티스들의 머릿속에는 사냥을 끝냈으니 이제 독액 연못으로 들어가 먹이를 건지는 일만 남았다는 여유만 가득해 보였고.
먹이의 숨을 끊는 번거로운 작업을 할 생각 따위는 없을 것이다.
강철보다 단단한 외피를 가진 자신들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연못에 드나들 수 있겠지만 나약한 피부를 가진 인간이 저토록 지독한 독액을 견뎌 낼 수 있을 리 없을 테니.
“찌륵!”
너무 늦었다가는 먹이의 살점이 전부 녹아 버릴 수도 있기에 대장 맨티스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부하 사마귀들이 쫄랑거리며 호수로 다가선 그때.
“찌… 륵.”
대장 맨티스의 주둥이에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저저저적.
그리고 일렬로 늘어선 맨티스의 외피가 줄줄이 관통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쿵.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냥의 희열에 들떠 있던 맨티스 무리들은 배때기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품은 채 바닥에 쓰러졌고.
첨벙.
나는 내 키보다 깊은 독액 호수를 가르고 나와 맨티스 무리를 관통했던 티아매트를 주워 들었다.
―오우, 효과 좋아! 아주 쌩쌩해!
―그러게, 혹시 상황이 안 좋아지면 내가 페이건을 끌고 나오려고 집중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지독한 독액이 한 방울도 침투를 못 하다니. 이 방어막 효과 진짜 대단해! 페이건, 넌 또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한 거니! 어휴, 정말 기특해 죽겠다니까.
‘드루이드 오러가 나무에 깃드는 걸 보고 잠깐 생각을 해 봤어요. 나무나 곡식에 깃들 수 있다면 그 부산물인 식료품에도 잠시간 머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네요.’
오도독.
나와 라무테 님 그리고 북슬이의 입 안쪽에 하나씩 들어가 있는 녹색 알사탕.
이 알사탕이야말로 독액의 세례로부터 우리를 지켜 준 장본인이었다.
사탕 안쪽에 깃들어 있는 드루이드 오러가 독액을 밀어내는 방어막을 만들어 준 덕분에 난 독액 연못에 빠졌음에도 아주아주 말짱한 상태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난 이왕이면 딸기 맛이 좋은데.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어. 너도 봤잖아? 내가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봤는데 박하랑 흑설탕 배합이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거.’
비록 지속시간이 길지 않고 우리 셋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효과가 반감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드루이드 오러를 식료품에 녹여 낼 수 있다는 건 큰 수확임에 틀림없었다.
충분한 준비 시간만 주어진다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특제 포션이나 해독약을 내가 직접 준비할 수 있게 된 셈이니까.
이를테면 지금처럼.
오도독.
세 개째의 사탕을 입술 안쪽으로 밀어 넣은 후 티아매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드루이드 오러가 깃든 사탕을 오물거리기에 여념이 없는 북슬이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서둘러 이동할 거니까 잘 따라와. 숲의 대장께서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 깊숙이 이동해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