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3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7)화(13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7)
나는 깃털이 없고 북슬이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녀석은 애초에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이것만 봐도 찻잔의 주인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르페우스 님의 마음이 찻잔의 주인에게 최대한 분명하게 전달되는 걸 바랐기에 굳이 다음 전언을 소리까지 내어 읽어 내렸다.
넌 내가 끓여 주는 차를 참 좋아했었지?
부디 내 솜씨가 녹슬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리고 라무테 선물이 먼저 나왔다고 우리 오동통이는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지? 와하하!
‘와하하.’라는 웃음소리까지 굳이 전언에 남겨 놓는 섬세함 혹은 호쾌함.
또옥.
그 호쾌함에 감격했는지 결국 라무테 님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얼마 전 오르페우스의 기억을 본 터라 그리움의 갈증이 조금은 잦아들지 않았을까 했는데 다정한 전언 한마디에 눈물을 쏟는 걸 보면 오르페우스를 향한 라무테 님의 그리움은 여전한 듯했다.
“라무테 님.”
―응!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르페우스가 나를 위해 준비했다면 당연히 마셔야지.
긴말은 필요치 않았고 라무테 님은 그대로 찻잔에 부리를 가져다 대었다.
조로로롱.
찻잔에 가득 차 있던 빛무리가 라무테 님의 부리 안쪽으로 사라지자 녹색 찻잔 또한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오르페우스 님의 선물 섭취를 마친 라무테 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벨제키엘, 너도 참 대단하다. 이런 데를 오는데도 간식을 챙겨 온 거야? 그것도 그 북슬북슬한 배털 속에다가?
―어! 어떻게 알았어? 엄청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보일 리가 없는’ 털 뭉치의 북슬북슬 배털 안쪽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검 말이야. 다 쓴 줄 알았더니 아직도 외투 안쪽에 새 걸로 두 개나 숨겨 두고 있었네. 역시 우리 페이건, 준비성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라무테 님, 코트 안쪽에 있는 단검이 보이는 건가요?”
―응, 녹색 손잡이를 가진 단검이 갈색 가죽 덮개 안쪽에 들어 있잖아.
“위치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을까요?”
―오른쪽에 있는 건 사선으로 틀어져서 허리 근처에 매어져 있고 왼쪽에 있는 건 소매 안쪽에 있네.
단검의 개수며 형태 그리고 숨겨둔 위치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야말로 완벽하게 정확했다.
“혹시 마나를 사용하거나 별도의 투시 주문을 사용한 건가요?”
―아니, 주문 같은 거 안 썼는데 그냥 보여. 그것도 아주 훤하게. 어머나, 안 보이는 게 당연한 것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했네.
“…고대왕국의 드루이드 중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자들은 사물의 내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기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 생각이 짧았던 모양이군요. 라무테 님, 투시안(透視眼)의 능력을 얻게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어머나! 투시안? 내가?
―우와! 라무테, 너 이상한 거 하나 마시더니 요상한 능력을 손에 넣었구나. 좋겠다!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언제나처럼 과업 달성에 따른 보상을 안배해 두셨지만, 이번에는 그 보상의 직접적인 대상이 내가 아니었다.
드루이드로서의 권능을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그걸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존재에게 나눠서 분배할 수 있다니.
‘오르페우스 클라디우스’라는 현인이 이룩한 경지를 떠올리자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오르페우스도 참, 물론 난 페이건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지만. 그래도 이런 신기한 능력은 나보다는 페이건에게 직접 주는 편이 더 좋잖아. 그편이 페이건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훨씬 더 도움이 될 텐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짓궂은 결정을 내린 걸까?
“아마 이 능력을 저에게 직접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을 하신 거 아닐까요?”
―페이건이 위험하다고? 에이 말도 안 돼! 난 페이건을 믿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도 이 능력은 저보다는 라무테 님이 갖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에 대한 라무테 님의 믿음과는 별개로 ‘투시안’은 평범한 인간이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능력이니까요.”
―페이건은 평범하지 않아! 이건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어… 그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단 제 의견부터 끝까지 들어주시겠어요?”
평소에는 진중하고 사려 깊으신 분이 왜 내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팔불출 부모 같은 표정이 되시는지.
“어떤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나 그릇과는 별개로 인간에게는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영역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들 많이 있잖아요?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고, 들을 수 없는 걸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결국, 그 누구도 믿지 못한 채 몰락해 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전설들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오르페우스 님께서 저를 이끌어 준 과정으로 추측건대 그분께서는 자신이 가졌던 모든 걸 한꺼번에 후손들 품에 안겨 주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제가 일정한 단계를 밟아 가며 온전히 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을 내리기를 바라고 계실 겁니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조목조목 라무테 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르페우스 님은 생각하셨을 거예요. 투시안이라는 이 무척이나 탁월한,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능력을 지금 단계의 저에게 직접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그래서 너 대신으로 선택한 게 라무테라고? 왜 내가 아니라 라무테야!
“그 답을 알고 싶다면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과거, 오르페우스 님께 함께 있던 시절의 네 행실을 돌아보도록 해.”
돌연 본인이 그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북슬이를 가볍게 제압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오르페우스 님께서는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저보다 라무테 님이 더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셨던 게 아닐까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미숙한 자가 주어지는 축복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패망하는 경우는 여러 번 있었으니까요.”
―페이건은 미숙하지 않은데….
“그리고 제 생각에도 오르페우스 님의 판단이 옳아요. 제가 직접 사람들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라무테 님이 선별하신 정보를 알려 주시는 편이 저도 속이 편합니다.”
오르페우스 님이 자신의 친구를 굳게 믿은 것처럼 나 역시 엄마처럼 나를 챙겨 주는 이 붉은 색 미조(美鳥)를 신뢰하고 있기에 투시안이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인데 투시안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의 정도는 저의 경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물리적 장막 안쪽을 꿰뚫어 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또 모르죠. 저의 앙겔루스나 드루이드 오러가 강해지면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걸 볼 수도 있을지.”
이를테면 나를 막아서는 놈들이 이룩한 경지라든가 혹은 가면을 쓰고 접근하는 놈들의 정체라든가, 기타 등등.
내가 원체 다사다난한 삶을 살고 있는 터라 라무테 님이 들여다봐야 할 건 차고 넘쳤다.
―있잖아. 라무테야, 혹시라도 그런 게 가능해지면 나한테도 그 투시안이라는 것 좀 빌려줘. 나 보고 싶은 게 많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설령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된다 해도 이 능력은 오직 페이건만을 위해서 쓸 거니까 허튼 생각 하지도 마. 내가 네 철없는 생각을 모를 줄 알고?
―치, 뭐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쩨쩨하게 굴기는. 넌 왜 점점 페이건을 닮아 가냐?
라무테 님만 능력을 부여받은 게 부러웠는지 심통이 난 표정을 짓는 북슬이.
난 녀석의 앵돌아진 엉덩이를 받쳐 들어 정수리 위로 올리며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그렇게 좀스러운 표정 짓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일단은 돌아가자. 돌아가서 씻고 늦잠 좀 잔 다음에 불꽃 울음에 갈 거야. 오늘 밤의 수확을 보여 주면 부카만 씨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지 궁금하네.”
* * *
“그럼 들어갈까?”
“응, 일단 가보자. 다음 주 수업을 들으려면 일단 수리를 맡겨야 하니까.”
아침 해가 온전히 떠오르지 않아 아직은 어둑어둑한 상업지구 골목.
꿍꽝꿍꽝.
하루를 깨우는 망치 소리와 풀무질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오는 그곳.
‘불꽃 울음’의 간판 앞에서는 두 명의 소녀가 나란히 선 채 마른 침을 삼켰다.
갈색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의 손에는 시위가 끊어진 활이 들려 있었고 앞머리를 짤막하게 잘라 낸 단발머리 소녀의 품에는 잔금이 가기 시작한 방패가 들려 있었다.
불꽃 울음은 최저가에 가까운 대금으로 고성능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기에 전속 대장장이를 고용할 여건이 안 되는 영세한 가문 출신 학생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은 장소였다.
일주일 전 있었던 고베나 라도키아의 엄포 덕분에 불꽃 울음의 문을 두드리는 게 겁이 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다음 주로 다가온 실습수업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장비를 손봐 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삐이걱.
“계세요?”
“뉘쇼? 아,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나 했더니 폴리다고스의 학생들이네그려. 그러고 보니 당신네들 항상 이맘때를 기해서 실습을 나가고는 했지. 제기랄, 이거 한동안 또 바빠지겠구만.”
큰맘 먹고 문을 열자 키는 자신들의 가슴팍까지 밖에 오지 않는 주제에 허벅지 굵기는 서너 배에 달하는, 건장하기 짝이 없는 드워프가 그녀들을 맞이해 줬다.
“그거 이리들 줘 봐. 활이랑 방패, 어이쿠 이거 어린 아가씨가 활을 아주 험하게도 다뤘구만. 이봐요 학생, 시위를 당길 때는 요령을 쓸 줄 알아야지 이렇게 마구잡이 힘으로 당기려 들어서는 안 돼. 활시위랑 친해질 생각은 안 하고 힘으로 이기려만 드니까 결국 요 녀석이 부서져 버렸잖아.”
솜씨가 탁월하기로 소문난 불꽃 울음의 대장장이답게 드워프는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온 목적을 대번에 알아맞혔다.
“그, 그렇군요.”
“저기, 저는 방패를….”
“얼씨구? 이건 또 아주 금이 거세게 가 버렸구만. 학생, 방패가 참격을 방어하는 용도의 도구인 건 맞다만 아무리 그래도 사선으로 비껴 맞거나 측면으로 슬쩍 흘린다는 방법도 있잖아? 그런데 이거 꼴을 보아하니 아주 그냥 정면에서 정통으로 맞아 버렸구만. 학생, 군말 없이 버텨 준 이놈한테 고맙다고 인사부터 해. 이놈이 아니었다면 아가씨 머리통은 아주 큰일이 났을 거야.”
드워프의 명쾌한 설명을 듣는 와중에도 두 소녀의 머릿속에는 수리 대금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했다.
예전 같았으면 할인된 가격을 적용받을 수 있었겠지만 고베나의 발언이 있었던지라 영 조마조마한 것이다.
‘얼마나 올랐을까? 이번 달은 정말 간당간당해서 많이 올랐으면 안 되는데. 제발 이전번 가격의 세 배 이하로만 나왔으면….’
‘생활비를 더 보내 달라고 해야 하나? 어휴. 하지만 올해 흉작이라 집안 사정도 좋지 않다는데. 제발, 제발 싸게 좀 해 주세요.’
형편이 넉넉한 대귀족의 자제들이라면 절대 할 일이 없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거의 매일 같이 머릿속에 담고 사는 걱정이 쉬지않고 솟아올라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고베나의 발언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불꽃 울음의 가격변동은 없을 것이라 확언했지만, 그 사실을 귀담아들은 학생은 많지 않았다.
제아무리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그간 귀신같은 재주를 보여 줬다 해도 어디까지나 일개 신입생에 불과한 만큼 무려 4학년 학생 회의가 정한 사항을 원상 복귀시킬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활시위 교체에는 이틀, 방패를 때우는 데에는 사흘 정도 걸리니까 나흘 정도 후에 다시 와.”
드워프 입에서 필요한 수리 기한이 나와 버렸고 두 명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에 있을 말을 기다렸다.
수리 기일이 정해졌으니 이제 대금에 관한 언급이 있을 터.
“나흘 후에 다시 오라니까 왜 그러고들 서 있어? 왜, 장비가 걱정돼서 그래? 어떻게 고치나 끝까지 지켜보려고?”
“그, 그게 아니라… 수리 대금을….”
“혹시, 이번 달과 다음 달에 나눠서 지급을 해도 괜찮을까요?”
“뭐? 학생들 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야, 대금이라니?”
한데 드워프는 두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드워프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되물었다.
“아가씨들 1학년이잖아. 당신네들 학년 대표가 말 안 해 줬어?”
“말이라니, 그게 무슨….”
“이거, 이거 진짜 얘기를 안 했나 보네. 허허, 혼자서 이런 엄청난 일을 해냈으면 당장 동네방네 소문을 내도 모자랄 판국에…. 이걸 당사자들한테 얘기도 안 했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한차례 터뜨린 후 드워프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사흘 전, 클라디우스 공자가 우리 마스터를 만나러 왔어. 사무실에서 맥주 한잔을 얻어 마신 후 공자는 기숙사로 돌아갔고 마스터는 말했지. 앞으로 폴리다고스에 재학하는 1학년 전체 학생들에게는 향후 3년간 대금을 일절 받지 말고 무상으로 수리를 해 주라고.”
“네?”
“그, 그게 정말인가요? 3년간 완전 무상으로요?”
“그래, 무상. 조금 더 알아듣기 쉬운 말로 공짜.”
“왜요? 그런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가…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이번에도 뭔가를 한 건가요?”
“그건 말 못 해. 클라디우스 공자가 일이 필요 이상으로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마스터와 클라디우스 공자가 무슨 말을 나눴는지 궁금하거든 당신네들이 직접 물어봐.”
자신들을 상대로는 아가씨 혹은 학생이라는 편한 호칭을 사용하면서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는 꼬박꼬박 공자라는 존칭을 붙이는 드워프.
그 모습만으로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뭔가 엄청난 일을 성공해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허허, 거참! 인간, 특히 젊은 인간들은 뽐내는 걸 아주아주 좋아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안 그런 사람도 있었나 보네. 아니면 애초에 이 정도는 뽐낼 거리도 아니라는 건가? 도대체 젊은 사람이 얼마나 통이 큰 거야?”
활과 방패를 주섬주섬 챙긴 드워프는 큼지막한 수거함에 장비를 올려놨다.
그리고 방패를 때우기 위한 금속이 담긴 병을 집어 들며 말했다.
“설명 다 들었으면 가 보슈. 그리고 여러분들 학년 대표께서 입이 아주 무거운 것 같으니, 기숙사로 가거든 친구들에게 좀 전해. 아주아주 훌륭한 학생 대표를 둔 덕분에 당신들을 포함한 앞으로의 후배들은 향후 3년간 아주 그냥 땡잡은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