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3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8)화(13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8)
“드, 드, 들었어? 그, 글쎄 불꽃 울음이 향후 3년간 모든 신입생의 장비를 무상으로….”
“들었어. 혹시나 해서 우리 학회 1학년을 시켜 확인해 봤는데 진짜 무상이 맞대.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불꽃 울음의 마스터랑 담판을 지어서 일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 인정하기는 싫은데 진짜 귀신같은 놈이네. 이런 상황에서 답을, 그것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정답을 찾아내다니.”
드워프는 1학년 학생들에게 소식을 전하라 하였지만, 그 소식이 불러온 파장은 1학년 선에서 그치지 않고 전 학년을 대상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엄청난 계약을 성사시킨 거야? 불꽃 울음이 4학년 학생회의 뜻을 거스른다는 건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포기한다는 뜻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냐고?”
“나도 자세한 건 아직 잘 모르지만, 상황으로 판단컨대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4학년들의 ‘기부금 이상 가는 무언가’를 제공했다고 봐야지 뭐. 그게 아니라면 불꽃 울음이 4학년 선배님들을 버리고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손을 잡았을 리 없으니까.”
“그게 가능해? 그래, 페이건 클라디우스 개인적인 자질이 탁월한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신의 재주일 뿐이고 이번 건은 돈과 관련된 거잖아. 클라디우스, 돈 없는 거 아니었어?”
“클라디우스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돈으로 해결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하여간 지독한 놈이야. 선배들이 엄포를 놓은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저 새끼를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상급생들은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페이건의 솜씨에 탄식을 터뜨렸고.
“어떡하지. 나…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조금씩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어. 지금까지는 그냥 눈에 띄는 걸 좋아하고 건방진 별종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쟤랑 얽히면 이래저래 피곤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본인이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가진 게 워낙에 많으니까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
“사실은 나도 그래. 그리고 어쨌거나 페이건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직접, 그것도 일이 터지자마자 엄청 발 빠르게 움직여 준 거잖아. 그에 비해 선배라는 양반들은 페이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졸렬한 짓이나 벌이고. 까놓고 말해서 화풀이하고 싶다고 우리를 인질로 잡은 거잖아? 무슨 선배라는 사람들이 그러냐.”
1학년, 개중에서도 평민 혹은 중소귀족 가문 출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페이건의 성과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4학년들이 벌인 개수작으로 인해 큰 곤란을 겪게 된 자신들을 위해 페이건이 발 빠르게 움직여 성과를 이뤄 냈다는 점이 1학년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쳇! 야, 사실 말이 좋아 선배지 그 사람들이 언제 우리 후배 대접은 해 줬냐? 선후배 간의 예의니 율법이니 만날 때마다 떠들지만 결국 속뜻은 잘나가는 놈들끼리 밀어주고 끌어 줄 테니까 너네는 그냥 지켜만 보라는 거잖아.”
“뭐… 그거야 한참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잖아? 그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아무튼, 이번 일로 인해 하나는 확실해졌어. 그래도 우리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주는 건 선배니 뭐니 하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거.”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가문에 따라서 사람을 달리 대하는 선배들에 비하면 페이건이 훨씬 낫지. 걔는 최소한 사람 차별은 안 하잖아?”
“그건 그렇지. 걔는 대귀족이건 평민 출신이건 사람 안 가리고 모두에게 까칠하니까. 듣자 하니 로덴토 선배님한테도 대들었다는데. 아무튼, 난 이제 다시는 걔 욕 안 할 거야.”
“나도. 물론 나 같은 게 이런 마음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마음속으로나마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지지하고 응원할 거야. 그리고 혹시라도 이번처럼 걔가 밉살스러운 선배들한테 한 방 먹이는 일이 벌어지면… 흐흐, 그때는 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크게 웃어야지.”
“야, 그런 일 생기면 나도 불러. 과자랑 음료는 내가 준비할 테니까 우리 같이 좀 웃자.”
해글러 나이투와의 결투 이래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페이건의 지지여론은 이제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었다.
페이건을 고립시키기 위해 부린 수작이 오히려 지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다니.
고베나 라도키아를 비롯한 4학년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이라 할 수 있었다.
페이건이 불러일으킨 파도로 인해 들썩거리는 강의실들.
정작 소문의 장본인은 이런 사실쯤이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격랑의 흐름은 폴리다고스 전역을 착실하게 덮어 나가고 있었다.
* * *
삐익.
뽀옹.
정교하게 제작된 컵 덮개 사이로 종이 빨대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빨려 들어갔다.
‘좋았어!’
오전 첫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40여 분 이상이 남아 있는 터라 텅 빈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고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기만 했다.
여름이 되면 폴리다고스로 여행을 올 라나가 ‘오라버니는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언제가 가장 즐거우셨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난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지금 같은 시간.’이라고 답해 줄 자신이 있었다.
텅 빈 강의실에 도착해서 마시는 차가운 커피 한 잔.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린 나만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입술 사이로 빨대를 끼워 넣으려는 찰나.
“야, 페이건 클라디우스!”
강의실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어딘지 모르게 심통이 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 일이야? 맨날 강의 시작하기 5분 전에 도착하던 사람이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
“너, 왜 우리한테 아무 말 안 했어!”
목소리의 주인공이 특유의 통통거리는 듯한 발걸음으로 다가오자 한 갈래로 땋아 내린 청색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렸다.
“불꽃 울음 일을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바로 나랑 제라르한테 말 해 줬어야지! 그런 기쁜 일을 왜 숨겼어! 연습할 게 있어서 어제 오후 내내 수련실에 있는 바람에 네 소식은 저녁 늦게서야 들었단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네 방으로 뛰어가 묻고 싶었는데 통금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고,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 그래서 오늘 일어나자마자 후다닥 달려온 거야. 넌 텅 빈 강의실에 일찍 와서 폼 잡는 습관이 있으니까.”
“…딱히 폼을 잡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말 돌리지 말고 솔직히 대답해. 왜 우리한테 바로 얘기 안 한 건데? 그런 좋은 일이 있었으면 이 누나한테 바로바로 말했어야지. 그럼 내가 선물이라도 준비했을 거 아냐!”
“선물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 안 한 거야. 그리고 너랑 제라르는 그날 현장에 있었으니까 내가 하는 말도 들었을 거 아냐?”
“네가 한 말이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건데?”
“그 고베나 라도키아 선배가 와서 개소리로 엄포를 늘어놓았을 때 내가 그랬잖아. 당신이 뭘 어떻게 하든 결국 이 일은 원상복구가 되는 걸로 결론 지어질 거라고.”
“그,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난 그날 모두 앞에서 약속을 했고 그 말을 그대로 지켰을 뿐이야. 이걸 가지고 내가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떠들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일이잖아?”
“…아, 그러니까 지금 페이건 클라디우스 공자께서는 본인께서 하신 약속을 그대로 지키셨을 뿐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카밀라, 네 말투랑 그 씰룩거리는 입술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다만 큰 틀에서 보면 의미 자체는 다르지 않아.”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안 그래도 격하게 씰룩거리던 카밀라의 입술 움직임이 한 층 더 분주해졌다.
큰일이네, 얼음이 더 녹기 전에 빨리 첫 모금을 빨고 싶은데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빨대를 쪽쪽거릴 수도 없고.
“그런 견지에서 보자면 3년 무상 장비 손질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도 저어언혀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네요? 호호호.”
“그건 뭐 내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 불꽃 울음의 마스터께서 인심을 쓰신 거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나서서 자랑할 일은 아니지. 산속에서 주인 없는 보석을 발견한 건 좋은 일이기는 해도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니까.”
“…아우, 진짜 내 동생이었으면 얄미워서라도 한 대 찰싹하고 때려 줬을 텐데. 학생들은 모였다 하면 네 이야기를 하기 바쁜데 당사자 반응이 이 모양이라니. 너 내가 진짜 열받는 게 뭔지 알아? 네 표정이나 반응이 완벽하게 진심이라는 거야. 차라리 잘난 척하고 싶은 걸 꾹 참는 거라면 귀엽기라도 할 텐데. 이게 뭐야! 잔뜩 신나서 잠도 못 자고 허겁지겁 달려온 나만 바보 같잖아.”
“네 마음을 이해 못 해 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다행이네. 내가 네 동생이 될 일은 없으니 너한테 맞을 일도 없을 거 아냐.”
기가 막힌 건지 아니면 김이 샌 건지, 카밀라는 잠시 말을 멈췄고 난 그 틈을 이용해 마침내 첫 모금의 커피를 넘길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시간 있지?”
“그건 왜?”
“오빠랑 언니가 너 수고했다고 맛있는 거 사 주고 싶대. 그리고 언니랑 제라르랑은 한 번도 못 봤으니까 겸사겸사 인사도 하고. 언니랑 오빠는 아무 때나 좋다니까 너랑 나랑 제라르만 시간 맞추면 되는데, 오늘 밤 괜찮아?”
“그 오빠랑 언니라는 건 역시 유리안 선배랑 코델리아나 선배님을 말하는 거지?”
“응.”
크리스틴 코델리아나가 나를 초대했다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솔직히 말하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맙다, 아스트라.
네 덕분에 상호 껄끄럽기만 한 약속을 피할 수 있겠어.
“미안,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선약이라니, 갑자기 왜? 너 어차피 나랑 제라르 말고는 친구도 없잖아?”
“…어제까지는 그랬는데, 그게 너무 서러워서 오늘부터는 교우 관계의 폭을 좀 넓혀 보려고.”
뼈를 때리는 카밀라의 공격이 준 충격을 덜어 내기 위해 다시금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쌉싸래하기만 한 커피를 한 모금 가득 넘긴 후 말했다.
“오늘 밤,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군께서 내 방에 방문하기로 하셨거든. 그래서 난 오늘은 좀 곤란하니까 제라르랑 둘이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그리고 선배님들한테는 걱정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 좀 전해 주고.”
* * *
치이익.
성냥을 당겨 양초 심지에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향긋한 향이 방안에 가득했다.
“향이 참 좋네요. 페르디난드의 영지에서 질 좋은 밀랍과 향료가 생산된다는 소문을 들었다만 이렇게나 탁월한 품질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부족한 솜씨를 발휘했을 뿐인데 그렇게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공자께서 이뤄 내신 성과를 축하하려면 어떤 게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마음에 드신다니 참 다행이에요.”
“아! 이 향초 소피아 씨께서 직접 만드신 건가요?”
“응, 그거 누님께서 직접 만든 거야. 우리 영지가 향초로 유명하다지만 이 정도로 향이 좋은 초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솜씨 좋은 사람은 많지 않아.”
“그랬어? 솜씨가 좋으신 분일 거라는 느낌은 들었는데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소피아 씨에게 던진 질문을 냉큼 채서 대답하는 아스트라.
아스트라와 소피아 씨가 내 방을 방문한 지 30분이 지난 시점에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마냥 과묵할 줄 알았던 아스트라가 소피아 씨와 관련해서는 제법 수다스러워진다는 사실이었다.
아스트라는 소피아 씨의 손을 잡은 채로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녀석의 오른쪽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왼쪽 눈동자에는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소피아 씨가 선물로 가져온 향초 덕분에 휑뎅그렁하기만 했던 내 방이 조금은 따스해졌을 무렵 난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치료의 시작을 알렸다.
“잠깐만 페이건, 누나의 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너에게 보여 줄 게 있어.”
“도련님, 그러실 필요까지는….”
“괜찮아요, 페이건이 말했잖아요. 환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있을수록 치료가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한데 돌연 아스트라가 시작을 가로막고 나섰다.
아스트라의 표정을 본 소피아 씨가 말리고 나섰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아스트라는 주저 없이 상의 단추를 푸르기 시작했다.
다소 뜬금없는 타이밍에 모습을 드러낸 아스트라의 상체.
그 순백의 머리 색만큼이나 매끄럽기만 할 것 같았던 녀석의 가슴팍에는 커다란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잠깐만, 그 상처… 소피아 씨의 손등에 있는 거랑 같은 거 아냐?”
“역시 바로 알아차리는구나. 맞아, 누나의 상처랑 똑같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와 누나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이 화상을 입었거든.”
대륙 최고 명문가의 후계자님(비록 출생의 약점은 가지고 있다지만)과 그를 보필하는 하녀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니.
치료술사로서의 의무를 배제하고서라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기에 나는 입을 여는 대신 아스트라의 설명에 주목했다.
“페이건, 카슈마트산맥에 분지(盆地)가 여러 곳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응, 그 정도는 알고 있지.”
“그럼 그 분지 중에는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야생지나 다름없는 장소가 많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말을 이어 나가는 걸 망설이던 아스트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그 분지 중에 ‘몰락한 달의 고향’이라 불리는 아주아주 험준한 장소가 있어. 누나와 난 바로 그 장소에서 이 상처를 입었어.”
“몰락한 달의 고향? 그런 장소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그런데 그곳에서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네. 고마워, 힘든 이야기일 텐데 나를 믿고 털어놔 줘서.”
부디 내가 지금 느낀 당혹스러움의 표정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몰락한 달의 고향.
두 사람 앞에서는 해당 지명을 처음 듣는 것처럼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도 나 이상으로 그곳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채 다섯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몰락한 달의 고향’은 전생의 내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바 있는 사교 집단이자 혼돈의 기둥 중 하나인 ‘에지세크 교단’의 본산이 있던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