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3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9)화(13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39)
카슈마트.
산세가 높고 험준한 것으로 이름 높은 대륙 남서부의 거대 산맥.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 년 전, 이 삭막하고 황량한 불모의 땅에 놈들의 본거지가 있었다.
‘에지세크 교단, 카슈마트의 험한 품속에 몸을 숨긴 채 음험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신탁의 도래를 기원하던 광신도들. 아스트라의 입에서 이 지저분한 놈들의 고향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에지세크 교단 놈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그 바퀴벌레와도 같은 집요함이었다.
물론 다른 혼돈의 기둥들 역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놈들이기는 했지만, 그 기괴함과 음산함만을 놓고 따지면 단연코 에지세크 놈들이 최고였다.
복부는 갈라져 내장이 쏟아지고 목에는 바람구멍이 뚫려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신의 이름으로!’를 외치며 달려오는 에지세크 팔라딘을 보고 있노라면 그 기괴함에 소름이 돋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뭐랄까, 전생의 내가 공포를 완전히 극복한 상태였다면 에지세크 교단 놈들은 애초에 공포라는 감정이 아예 거세되어 버린 광신의 망령을 보는 듯했다고나 할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에지세크 교단이 가진 힘보다는 놈들이 품은 독기 쪽이 훨씬 더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그리고 이 덕분에 전생의 난 에지세크 교단을 상대할 때만큼은 정말 최소한의 자비도 내려놓고 살인 기계가 되었다는 각오를 한 채 칼을 휘두르고는 했다.
놈들의 총 본산을 기습해 에지세크의 성지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똑똑히 생각이 난다.
그런데 130여 년 전의 내가 핏물로 흥건하게 만들었던 그 땅.
‘몰락한 달의 고향’이 아스트라의 입에서 나오다니.
아직 뚜렷한 연결고리가 발견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에지세크 놈들과 나의 악연이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몰락한 달의 고향은 대륙 남서쪽 극단에 위치해 있고 페르디난드의 영지는 대륙 북동쪽에 치우쳐 있지 않아?”
“응, 위치만 놓고 보면 그렇지.”
“소피아 씨와 같은 날 상처를 입었다면 너의 상처 또한 제법 오래되었다는 건데 지금보다 훨씬 어린 네가 ‘몰락한 달의 고향’이라는 분지에서 상처를 입었다… 솔직히 말하면 납득이 힘든 이야기이기는 해.”
“그래, 납득이 힘들다는 건 나도 알아… 나와 누나가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아주 복잡한 사연이 있었으니까.”
“그 사연이라는 거. 나한테 말해 주는 건 힘드려나?”
“미안.”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아스트라.
딱히 큰 기대를 하고 던진 질문도 아니었거니와 침울해진 녀석의 표정을 계속 보고 있는 것도 별로 재미없었기에 난 곧바로 녀석의 짐을 덜어 주기로 했다.
“털어놓기 곤란한 일이라면 무리할 필요는 없어. 사연과 치료 사이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니까.”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아! 페이건, 네가 누나를 치료하기 전에 꼭 하나 알아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나와 누나를 태운 건… 평범한 불꽃이 아니야.”
“그 점이라면 초기 진찰을 통해 어느 정도는 파악했어. 흉터에서 마법적인 성질이 느껴졌거든.”
“아니야,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불꽃은 일반적인 마법적 불꽃과도 완전히 다르다는 거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아스트라.
로덴토의 기사단장 앞에서도 당당했던 녀석을 저토록 위축되게 만든 불꽃이라니.
이상하고 야릇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래저래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누나 잠깐만 귀를 막고 있어 줄래요? 아니다, 이리 가까이 와요. 내가 막아 줄게요.”
“도련님, 저는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그렇지만….”
“정말 괜찮아요.”
“고마워요, 누나.”
혹시라도 소피아 씨의 심적 상처가 염려되었는지 아스트라는 배려를 발휘했으나 소피아 씨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이내 아스트라는 결심을 굳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라색… 나와 누나를 덮친 불꽃의 색은 선명한 보라색이었어.”
“보라색 불꽃이라… 그런 색의 불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 보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네가 착각했을 리는 없고. 너의 증언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알아내려면 연구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다시 한 번 빌고 있었다.
보라색 불꽃이라는 증언을 들은 직후, 찰나간에 굳어 버린 나의 표정을 아스트라가 알아차리지 못했기를.
“페이건, 네가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보라색 불꽃에 관한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나도 그날의 진실이 알고 싶어서 지난 몇 년간 불에 관련된 기록이란 기록은 전부 다 샅샅이 뒤졌어. 하지만 적어도 내 선에서 접근이 가능한 그 어떤 서적이나 연구 문헌에서도 보라색 불꽃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어.”
그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에지세크 놈들이 기를 쓰고 막고 있는 정보를 네가 무슨 수로 얻을 수 있었겠어.
혹여 먼 훗날의 네가 페르디난드 가주 자리에 등극한다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무리야.
물론 난 보라색 불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었지만.
‘정화의 불꽃. 에지세크 놈들이 제물로 바쳐질 예정인 자들의 육신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피워대는 광기의 성화(聖火). 이 새끼들 충분히 조져 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몰락한 달의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가?’
여기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판단컨대 아스트라의 유년기는 에지세크 교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했고.
‘…그 말인즉슨 두고두고 이 녀석에게서 정보를 뽑아 먹을 필요가 있다는 뜻인데. 너무 서두르다가는 일을 망칠 수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 두는 게 좋겠어.’
난 보라색 불꽃이며 에지세크 교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가장한 채 오늘 있었던 의외의 수확을 차곡차곡 정리해 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보라색 불 어쩌고저쩌고하며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 보면 에지세크 교단과 주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아스트라가 이야기하지 않고 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 사이에 에지세크 놈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어.’
아스트라 스스로는 정보를 빼 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필요한 정보를 쏙쏙 빼먹을 수 있는 장치로 뭐가 좋을까를 고민하며 본격적인 치료 준비에 들어갔다.
“그럼 이야기는 이쯤 하고 슬슬 치료에 들어가 볼까? 소피아 씨, 괜찮다면 그 베일 벗어 줄 수 있을까요?”
“…!”
“네. 그리하겠습니다, 공자님.”
바짝 긴장한 아스트라와 상대적으로 평온한 표정의 소피아 씨.
사락.
검은색 실크 베일로 3분의 1 이상 가려져 있던 소피아 씨의 얼굴이 마침내 드러났고.
‘예상했던 그대로야. 손등과 상태가 크게 다르지 않아. 이쪽 역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생이 힘들어.’
난 곧바로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다.
지난번 만남에서 있었던 초기 진료를 토대로 대략적인 치료의 청사진은 구상을 마쳐 놓았던 터라 별다른 동요 없이 치료에 필요한 작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저기… 괜찮을까? 우리 누나…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환자랑 보호자를 앞에 두고 확언을 하는 법은 배우지 못해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뭐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미, 미안. 재촉하려고 그런 건 절대로 아닌데….”
“괜찮아, 보호자의 질문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일단 최선을 다해 볼게.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
“…고마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손놀림으로 소피아 씨의 상처를 돌봤다.
“…따끔하거나 시리지는 않나요?”
“아니요, 오히려 아주 시원하고 좋은 걸요. 후훗, 그동안 도련님을 따라 여러 치료사분들을 만나 봤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치료를 받아 본 건 처음이에요. 미천한 저에게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님.”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인 데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사람에게 흉터를 온전히 내보이는 게 수치스러울 법도 한데 소피아 씨는 담담한 태도로 치료를 받아들였고.
덕분에 첫날 예정된 치료를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힘드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이라니요. 고생은 공자께서 하셨지요. 귀한 분께 흉한 몰골을 보여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이에요.”
우아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베일을 묶는 소피아 씨.
“지금… 몰골이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혹시 제가 무슨 결례라도….”
“결례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방금 그 발언, 지나치게 모욕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소피아 씨의 입에서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 나왔기에 난 어쩔 수 없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을 지켜본 아스트라가 허겁지겁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페이건, 혹시 기분이 나빴다면 내가 대신 사과할게. 누나는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라….”
“너한테 사과를 받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니까 그럴 필요 없어. 소피아 씨, 제가 방금 말한 모욕적이라는 건 말입니다. 소피아 씨에게 한 말이지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네? 공자님 괜찮으시다면 말씀에 관한 설명을….”
“소피아 씨의 피부가 몰골이라는 부당한 언사를 감내해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요?”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내 어깨에 올라와 있던 아스트라의 팔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저는 소피아 씨가 상처를 입은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소피아 씨의 피부가 엄청난 고통을 견뎌 내 가며 불길을 버텨 주지 못했다면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내장이나 안구로 향했을 거라는 거죠. 그리고 만약 그런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면 소피아 씨가 지금처럼 아스트라의 손을 잡은 채 제 앞에 서 있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 그건….”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소피아 씨의 피부는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를 지켜 낸 대가로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소피아 씨가 잘못하지 않은 것처럼 피부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다음부터 최소한 내 앞에서만큼은 ‘몰골’ 같이 존중이 결여된 단어는 삼가 줬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뭐가 고맙다는 건지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소피아 씨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고.
또옥.
그와 동시에 카펫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한 소리를 들은 소피아 씨는 멀쩡한데 왜 아스트라 네가 울고 그래?“
“미, 미안. 그게 사실은 지금껏 어떤 치료술사들도 누나한테 이런 말을 해 준 적은 없었거든. 그래서… 그래서….”
“뭐, 사람마다 화를 내는 지점은 다른 법이니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대로 있다가는 아스트라와 소피아 씨, 두 사람 모두 밤새도록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을 것 같아 억지로 두 사람을 내보낸 후 대충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드러눕자마자.
“라무테 님, 조금 전의 커플 앞으로 주기적으로 제 방을 방문할 예정이니 그때마다 투시안으로 두 사람을 들여다 봐 주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특이 사항이 발견되거든 곧바로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곧바로 아스트라로부터 몰래몰래 정보를 빼낼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 진료가 있기 전까지 내가 아스트라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 정보들 중 가장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해 봤자 녀석이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출생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아스트라 페르디난드에게 세간에 알려진 출생의 비화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녀석과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음, 그야 하나도 어려울 게 없지만 솔직히 조금 의외이기는 하네. 페이건의 평소 성격상 친구들 상대로 이런 능력을 쓰는 건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라무테 님의 말씀처럼 여러모로 걸리는 게 있는 건 사실입니다. 분명히 말해서 저를 믿고 방문해 준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페이건을 비난하려고 한 말이 아닌데… 우우, 미안.
“라무테 님의 말씀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니니까 그런 말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하려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건 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선의로 포장해 봤자 결국 염탐이라는 행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바스락.
이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 집어 든 초콜릿을 통째로 입에 밀어 넣으며 나 스스로를 위한 다짐을 되뇌었다.
‘내버려 두면 턱없이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정황증거가 이렇게까지 넘쳐흐르는데. 어쩔 도리가 없잖아? 훗날을 위해서라도 들여다보는 수밖에.’
* * *
―조금 더 자세한 상황 설명을 원해.
“상황 설명이고 뭐고 할 게 없다고 몇 번을 말해? 아무런 변동 사항이 없다니까.”
―게오르그 로덴토의 현 상황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서술 부탁해. 아직도 알크페인의 집무실에 불려 가기를 반복하는 거야?
“그래,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되고 있어. 알크페인 그놈이 워낙에 집요한 구석이 있다 보니 좀처럼 놓아주지를 않네.”
―그래서는 곤란해. 아일리의 계획에서 게오르그 로덴토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 상황이 이래서야 아일리의 계획에 차질 발생. 그리고 아일리의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 교단의 신탁 또한 문제 발생. 신속한 상황의 개선을 요망.
언제 들어도 도무지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멋대가리 없기 짝이 없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아일리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참자. 재미는 좀 없지만 대책 없이 멍청하기만 한 멍멍이들이나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욕심만 많은 모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나으니까.’
심장이 뛰고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는 생명체라기보다 차라리 ‘신앙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 인형’을 연상케 하는 친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일리는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지 이 우직하기만 한 벽창호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왜 멀쩡한 거야? 아일리 바스티아, 나를 비롯한 주교님들에게 분명히 약속했어.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를 폴리다고스로 보내 주기만 하면 뒤처리는 알아서 하겠다고. 아일리, 요즘 들어 자꾸 약속 안 지켜. 그래서는 곤란해. 옛날에는 약속 잘 지켰고 난 그걸 믿고 행동했어. 나는 아일리가 친구니까 괜찮지만 다른 주교님들 인내심 부족해. 그래서 자꾸 불안해해.
“얘 말하는 것 좀 봐? 그래, 내가 분명히 약속은 했지. 그런데 그 꼬마가 여기 온 지 이제 겨우 3개월 지났어. 그런데 벌써 재촉하기야? 설마 아스트라 페르디난드가 맘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까먹을 수 있는 알사탕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만 기다려. 오래지 않아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아스트라를 보내 버릴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알사탕 먹어 본 적 없어서 뭔지 몰라. 하지만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반드시 부셔야 해. 그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주교님들 곤란해. 그리고 우리 주교님들 곤란해지는 거 에지세크께서도 원치 않아.
“…너 오늘따라 유독 말을 잘한다. 혹시 먹으면 안 되는 거라도 먹었니?”
마냥 순박하기만 했던 인형이 가해 오는 예상외의 반격에 깜짝 놀란 아일리는 일부러 눈을 크게 뜨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었는지 아일리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에지세크의 인형은 따지고 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조로스터가 점점 더 조바심을 내고 있어. 요즘 들어 자꾸 사람을 보내서 재촉을 해 와. 아스트라 페르디난드가 멀쩡히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미칠 것만 같대.
“조로스터 그 얼간이는 자기 손으로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머저리 등신 주제에 왜 이렇게 재촉을 하는 거야? 혹시 너희 교단이 그 머저리한테 너무 오냐오냐해 주는 바람에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거 아니니?”
조로스터 페르디난드.
‘현 페르디난드 가주의 차남이자 아스트라의 숙부가 되며 이번 사업의 주요 파트너’이기도 한 중년 남자를 떠올린 아일리는 비죽 입술을 내밀며 볼멘 표정을 지어 보였다.
―페르디난드 가주의 몸 상태가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회복되고 있어. 지금은 후계자 결정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권한이 조로스터의 관할하에 있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몰라. 페르디난드 가주는 왕국의 영웅. 조로스터는 등신, 호부견자야. 페르디난드 공작이 기운을 완전히 회복하면 조로스터, 쥐뿔도 없어.
“호부견자! 어마나, 우리 귀여운 아가가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 오셨을까? 우리 아가의 어휘력이 일취월장하는 것 같아서 언니는 어찌나 기쁜지 몰라.”
―일치얼장, 무슨 말인지 몰라. 아무튼, 조로스터가 개털이 되면 우리도 곤란해. 개털된 조로스터, 영양가 없어. 개털된 조로스터 가지고는 혼돈, 파괴, 망각 초래하는 거 불가능해.
두 사람의 대화 속에 페르디난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투명했던 인형의 눈망울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처리해야 해. 그래야지 조로스터가 온전히 페르디난드를 삼킬 수 있어.
깜빡 하고 감았다 떠지는 수정 같은 눈동자.
어느새 표정이며 눈에는 그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표독스러움이 맺혀 있었고 광신의 광기가 절절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인형은 선언했다.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죽여야 해. 깔끔히, 아주 깔끔하게. 에지세크께서도 그걸 원하셔. 신탁 내려왔어. 아스트라 페르디난드의 목을 잘라 우리의 성화(聖火)를 밝힐 장작으로 써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