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40)화(14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40)
“그래그래, 그 조로스터인지 뭔지 하는 등신 머저리가 우선 페르디난드를 통째로 삼키게 만든 다음 너희 교단이 조로스터를 아앙 꿀꺽해 버리겠다는 거잖아. 맞지?”
―아일리, 잘 알아. 알면서 안 움직이는 건 더 나빠. 에지세크께서 말씀하시길 게으르고 나태한 자에게는 신벌(神罰)이 찾아올 거라 하셨어. 아일리 바스티아, 에지세크께서 내리신 신의 업화에 불타서 죽고 싶지 않다면 빨리 움직여. 빨리.
“…어휴, 너 신의 업화니 신벌이니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떠드는 거 맞지? 우리 아가가 뭣 모르고 하는 소리니까 이 착한 언니가 이번 한 번만 참아 줄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못된 말 금지야. 알겠지?”
간절하고도 절박하게 제물의 죽음을 요구하는 인형과 대조적으로 아일리의 태도며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는 겉으로는 후계자니 뭐니 하며 떠받들어지지만, 실상은 가문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빛 좋은 개살구 신세에 불과한 명문가의 천덕꾸러기를 은밀하게 쓱싹해 버리는 것쯤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수월한 일이었기에 아일리로서는 딱히 서두를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하얀 머리카락의 꼬맹이를 재학 기간 중에 죽여 버리거나 후계자 자리를 지킬 수 없을 정도의 병신으로 만드는 건 문제도 아니야. 이미 그 꼬맹이가 철저하게 고립되도록 양념도 골고루 발라 놓았고. 하지만 아가야, 이런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건 타이밍이거든.”
―타이밍?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신께서 아스트라 페르디난드의 죽음을 원한다는 것.
“또, 또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하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당분간은 직접적으로 움직일 때가 아니라 상황을 주시해야 할 시기’라는 걸 우리 아가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알았어, 일단 가까운 시일 내에 내가 직접 움직여서 아스트라 페르디난드의 거동을 파악할 수 있는 목줄을 하나 더 채워 놓도록 할게. 그러니 너도 지금은 그걸로 만족하도록 해.”
―내가 원하는 건 목줄이 아니라 목을 댕겅 하고 잘라 내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우리 아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고 칭얼거리지? 혹시 최근에 멍멍이나 모기들을 만나기라도 했니? 그래서 그들의 멍청함이 우리 아가에게 전염되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꼬박 30여 분을 설득한 끝에야 아가를 설득할 수 있었고.
“응, 그래 우리 아가. 쑥쑥 크려면 밥 많이 먹어야 하는 거 알지? 맛난 거 많이 먹고 좋은 꿈 꾸고. 언니랑은 며칠 후에 다시 만나아. 후우… 정말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니까.”
교신을 마친 아일리의 입에서는 커다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멍청한 4학년 나부랭이들이 괜한 일을 벌이는 바람에 나만 괜히 더 힘들게 됐잖아. 이래서 얼간이들이란.’
안 그래도 로덴토 가문의 일 때문에 운신의 폭이 가뜩이나 좁아진 마당에 답도 없이 멍청한 놈들이 벌인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지금까지보다 더 몸을 사려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국장을 비롯한 고위 교수진들이 겉으로는 학생들의 일에 무관심한 척하지만, 학생자치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일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이번 불꽃 울음 관련 건만 해도 각 국들의 주목을 받았고 개중 치안국과 실험국의 경우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할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정황증거도 여럿 포착된 바 있었으니까.
한번 학생들 쪽으로 이목이 집중된 이상 그 시선을 쉽사리 거둘 리는 없으니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려야 할 터.
아일리는 양팔을 뻗어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상반신을 감싸며 최근의 흐름을 되새겼다.
‘불꽃 울음 사건이 이토록 빨리. 그것도 철저하게 학생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면 요하임 벤제르센이나 팩셰르 에우리디케, 최소한 둘 중 한 명은 전면에 나서서 사건을 수습하려 들었을 거야.’
요아힘 벤제르센이야 그렇다 쳐도 엉덩이가 무거운 것으로 알려진 그 팩셰르 에우리디케를 움직이게 만들다니.
이번 사건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수습해 버린 장본인을 떠올리자니 다시금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츄룹.
갈증을 달래기 위해 아일리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고 그 바람에 관능적이기 그지없는 그녀의 분홍빛 혀가 입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음모, 그 멍청이들 입장에서는 제법 머리를 쥐어 짜내서 세운 계획이거든. 완전한 성공까지는 힘들더라도 널 곤란하게 만드는 정도는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수월하게 빠져나가 버리는 건 조금 너무한 거 아니니?’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실망 또한 크지 않았다.
4학년 멍청이들의 실패로 얻어 낸 성과가 있다면, 결국 그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서는 ‘게오르그 로덴토’ 정도 되는 인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는 점.
“하앙!”
온몸을 감싸는 흥분을 이기지 못한 아일리 바스티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 커다란 파도가 지나갈 때 즈음, 잔떨림이 선연하게 남아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한번 실컷 설치고 다녀 봐. 결국 넌 이 주인님 품속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까.”
* * *
최초의 이상 징후가 발견된 건 방문 진료 3일 차 일정이 절반 정도 마무리되었을 무렵이었다.
―페이건, 이 두 사람에게서 이상한 징후가 보이면 바로 말해 달라고 그랬잖아.
‘네, 그렇게 부탁드린 바 있죠.’
―저 소피아라는 아가씨, 처음 보는 목걸이를 매고 왔는데 거기서 이상한 기운이 보여. 아무래도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요? 어떤 의미의 이상한 기운인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목걸이 안쪽에서 특수한 파장을 가진 마나가 미약하지만,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 그 파장의 정도가 아주 은밀한 탓에 저 아가씨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만 내 눈에는 틀림없이 보여. 에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라무테 님.
나와 아스트라 모두 그 목걸이의 존재를 감지해 내지 못한 걸 보면 마나의 파장이 더없이 은밀하다는 라무테 님의 발언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했다.
‘장신구로 위장해 특정 파장을 계속해서 흘려대는 마도구라… 보통 이런 경우에는 감시 장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혹여나 두 사람에게 의심을 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 가며 소피아 씨의 목 부근을 살피자 그제야 블라우스 위로 희미하게 돋아나 있는 장신구 자국이 보였다.
‘라무테 님의 투시안이 아니었다면 나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그렇다는 건 엄청나게 정교한 솜씨가 동원된 물건이라는 건데. 누굴까? 이 품위 있는 아가씨에게 이런 물건을 덜커덕 안겨 준 수상한 사람은?’
“소피아 씨, 혹시 최근 며칠 사이에 마나를 강화하는 약품을 드시거나 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늘 먹던 그대로의 식단을 유지하고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데. 공자님, 혹시 제 몸에 문제가 발생한 건가요?”
“아주 심각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요? 소피아 씨 주변의 마나가 묘하게 날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달까요. 보통 마나의 흐름이 미세하게 흐트러지는 경우에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터라 한번 물어본 겁니다.”
“아! 공자님, 이상한 걸 먹거나 한 적은 없지만 말씀드릴 특이 사항이라면 하나 있어요. 사실 이걸 며칠 전에 선물 받았거든요.”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어쩌면 저 감시 도구가 나를 겨냥하고 있는 물건일지도 모르기에 시치미를 뚝 떼며 질문을 던져봤지만, 소피아 씨는 아무것도 숨길 게 없다는 기세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잘 보세요. 제가 여기 이 목걸이 중앙을 누르면….”
삐삐삐.
소피아 씨가 목걸이를 조작하자마자 엉뚱한 곳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서 소리의 진원지인 아스트라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팔찌에서 소리가 나거든. 사실은 며칠 전 누나가 혼자서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적이 있었어. 그러니까 이건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장치랄까?”
“불미스러운 일?”
“대귀족 가문의 하녀들과 시비가, 아니 그 치들이 누나에게 억지로 시비를 건 거지. 주인을 닮은 포악한 자들이었던 터라 하마터면 누나가 큰일을 당할 뻔했어. 다행히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선배님이 중재를 해 주신 덕분에 별 피해 없이 무마되기는 했지만, 만약 선배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깨무는 아스트라.
그러니까 소피아 씨가 단독으로 돌아다니다가 무도한 자들에게 횡액을 겪을 경우를 대비해 만든 긴급 소통 장치라 이건가?
평소의 아스트라가 소피아 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이 이런 장비를 나눠 가지기로 한 사실 자체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 타이밍 좋게 나타나 소피아 씨를 위기에서 구해 준 선배라니, 대체 누굴까?
쓰레기, 등신들만 가득한 이곳에서 그렇게 마음씨 좋은 선배님이 계셨나?
“그럼 혹시, 이 목걸이와 팔찌도 그 선배라는 분이?”
“응, 아일리 바스티아 선배님께서 선물해 주셨어. 남자는 여자를 항상 지켜 줘야 하는 법이라면서 고맙게도 이런 물건까지 지원해 주셨지 뭐야.”
“아일리 바스티아라면 6학년에 재학 중이고 ‘푸른 달’의 회장을 맡고 있는, 그 아일리 바스티아?”
“그분 맞아. 그런데 말이야, 남의 일에는 통 관심 없어 보이는 페이건이 성함과 소속을 알고 있을 정도라니. 이런 걸 보면 역시 바스티아 선배님이 유명하기는 한가 봐. 하하!”
이제는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아스트라는 좀처럼 하지 않는 농담을 건넸다.
그런데 어쩌나….
나 역시 백룡기사께서 표해 주는 친밀함의 표시가 반갑기는 하다만 내가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 터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
‘비상 연락 장치 정도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은밀한 장비를 선물한 게 누군가 했더니 그 아일리 바스티아였다는 말이지?’
아직 뚜렷한 방향이 잡힌 건 아니지만 그 독버섯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선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뱃속이 거북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일리 바스티아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내 개인적인 소감과 꽤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아스트라는 계속해서 아일리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바스티아 선배, 워낙에 후배들을 잘 챙기고 친절해서 별명이 친절한 바스티아 선배래. 재미있지?”
친절한 바스티아?
부담감으로 사람 목을 조르는 바스티아가 아니고?
“그럼 이만 가 볼게.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어, 페이건.”
“공자님, 부디 편안한 밤 보내시기를.”
치료를 마친 두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도 발신 장치에 관한 생각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그 친절왕으로 통하는 예쁜 여자애가 이상한 장비를 소피아에게 준 이유는 뭘까?
“북슬아, 우리 한번 가정을 해 보자. 만약에 네가 아스트라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따고 싶어. 하지만 그걸 위한 감시 장치를 아스트라 본인에게 부착하는 건 꽤나 부담스럽겠지?”
―음,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있지. 아까 그 장치를 봐서는 쉽게 발각되지 않을 듯 보이지만, 어쨌든 아스트라라는 꼬맹이는 꽤나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 아스트라에게 직접 수작을 부리는 건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아스트라의 행적을 꼭 감시해야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소피아 씨는 좋은 대안이 되어 주지 않을까?”
―음, 생각해 보니 그러네. 요 며칠간 지켜보니까 아스트라 쟤는 수업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소피아랑 딱 붙어 다니던데. 소피아의 행적을 알게 된다면 자연스레 아스트라의 움직임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리고 아무래도 소피아 씨 쪽이 아스트라보다는 훨씬 더 상대하기 수월하기도 할 테고.”
혹시나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며 이리저리 생각을 해 봤지만, 드러난 정황 증거상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더없이 명백했기에 결국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내일 그 예쁜 친절왕 선배님을 만나러 갈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궁금한 게 생겼다고 당장 찾아가는 건 좀 촌스럽지. 솔직히 말하면 그 선배를 마주하는 건 많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티아매트를 꺼내 든 후 손질에 들어갔다.
언제나 예리하기만 한 티아매트는 오늘도 영롱한 빛을 내며 반짝였고 그 매끄러운 칼날에 비치는 내 얼굴을 향해 다짐했다.
“그쪽에서도 내 주변을 들쑤시고 있잖아. 그렇다면 나도 외곽부터 조금씩 깎아 들어가야지. 그러다 그쪽에서 먼저 조바심을 느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는데 말이야.”
* * *
콰앙.
강철로 만들어진 수련용 인형이 바닥을 나뒹굴자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저저적.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갈래갈래 부서져 나가는 인형.
“…저학년용 수련장은 영 시시하기만 했는데 확실히 이쪽에 오니까 그래도 제법 재미가 있네. 앞으로 심심하거나 몸이 찌뿌둥하면 여기로 놀러와야겠다.”
벌써 십 수 개째의 수련 인형을 아작 낸 장본인은 세상 쿨한 미소를 지으며 흑검 위에 손질용 기름을 흩뿌렸고.
“저 새끼가… 아직 1학년밖에 안 된 놈이 감히 상급생용 수련장을 제멋대로 들어와?”
“가만히 보지만 말고 누가 가서 말 좀 해 봐. 1학년 애송이가 상급생 훈련장에 와서 재미있네, 뭐네 하면서 떠드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거야?”
이 광경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급생들은 입술을 깨문 채 서로의 등을 떠밀었다.
폴리다고스 교정에는 학생들의 발전을 위한 훈련장이 수십 개 준비되어 있었고 학년에 따른 이용 제한 또한 상당히 엄격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상급생 전용 훈련장에는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훈련 시설이 배치되기 마련이었고.
수련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하급생들이 상급생 훈련장에 출입하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콰자작.
“…몸은 충분히 풀었으니 이제 다른 걸 좀 해 볼까?”
하지만 그 원칙은 1학년에 재학 중인 기린아(麒麟兒) 혹은 탕아(蕩兒)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는 중이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상급생들의 자존심에도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야! 너랑 너, 나 따라와. 아무리 저놈이 잘나간다 해도 이 꼬라지를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어. 내가 앞장서서 한마디 할 테니까 너희들은 옆에서 나를 지원해.”
결국, 상급생 훈련장이 모욕을 당하는 꼴을 보다 못한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나섰고.
우람한 덩치가 인상적인 6학년은 아랫배에 한껏 힘을 준 채 불청객의 이름을 불렀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무슨 일이시죠, 선배님?”
“…여기는 상급생 전용. 그것도 5, 6학년들이 사용하는 훈련장이야. 훈련을 하고 싶다면 네 수준에 맞는 훈련장을 찾아가는 게 어때?”
마음 같아서는 ‘시건방 떨지 말고.’라는 말을 붙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던 6학년은 짐짓 눈을 부라린 채 페이건을 내려다봤다.
“수준에 맞는 장소를 찾으라니,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 생각에는 이곳이야말로 제 수준에 딱 들어맞는 맞춤형 장소라 생각하는데요.”
“…!”
하지만 한껏 부라린 눈동자가 무색하게 페이건은 선배의 조언 아닌 조언을 단번에 까 버린 후 사무국의 직인이 찍힌 허가증을 내밀었다.
“굳이 선배님한테 이래야 할 의무는 없지만 쓸데없는 일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무국의 허가를 득한 후에 이곳에 온 거고요. 선배님께서는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이익….”
“그러니 더 이상 훈련 방해하지 말고 이쯤에서 물러나 주시죠. 아! 그리고 가는 김에 저기 모여서 수군거리는 다른 선배님들에게도 말 좀 전해 주세요. 괜스레 번거로운 일 여러 번 하기 싫으니까.”
완전히 구겨져 버린 상급생의 자존심.
하기만 여기서 대책 없이 버럭거리기에는 눈앞의 불쾌하기 짝이 없는 1학년이 이뤄 낸 성과가 너무나도 거대했다.
“….”
해소할 길 없는 분노를 느낀 6학년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온몸을 부들거렸지만, 페이건은 훈련장에 모여 있는 전원이 들으라는 듯한 기세로 혼잣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이래서 권력이라는 게 참 좋아. 학년 대표씩이나 되니까 이런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