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4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41)화(14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41)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데 왜 그러고 서 계십니까?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더 있으신가?”
“….”
“아! 알겠다. 모처럼 후배가 먼 길을 왔는데 이렇게 시시한 인형을 붙잡고 노는 게 안타까웠나 보군요. 그래서 선배님께서 직접 상대를 해 주시려고?”
상급생 훈련장에 도착한 이래로 페이건의 말투는 애매한 반존대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여느 선후배 사이였다면 그 무례한 말투는 뭐냐며 당장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잘됐군요. 선배께서 맞상대를 해 주시는 걸로 제 무료함을 달랠 수 있다면, 제가 과연 수준에 맞는 장소를 찾은 것인가에 대한 검증 또한 이루어질 터이니 여러모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
하지만 총대를 메고 나섰던 6학년은 무례함을 질타하기는커녕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의 무례를 탓하기에는 불쑥 들어온 대련 요청이 주는 중압감이 너무나도 무거웠던 것이다.
‘대련을 한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1학년인데 잘하면 무승부 정도는….’
‘이 멍청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고대 유적에서 있었던 소문 못 들었어? 해글러 나이투가 묵사발 당한 건 또 어떻고?’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점멸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나 6학년은 좀처럼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고.
“아, 또 그럴 자신들은 없으신가?”
그 속내를 정확하게 포착한 페이건은 또다시 어중간한 반존대로 선배들의 속을 긁어 놓았다.
“자신 없으시거든 그만 물러나 주시죠. 선배님들을 상대할 수 없다면 수련용 인형을 가지고서라도 좀 놀아 보고 싶으니.”
벅벅.
6학년 선배들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대면 그들의 알량한 자존심이 긁히다 못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톡톡톡.
선배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페이건은 목검으로 수련용 인형 목 언저리를 두드리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점점 더 깊어지는 소리 만큼이나 선배들의 굴욕감도 깊어질 무렵.
“괜찮다면 그 기회 내가 한번 받아 보고 싶은데.”
6학년들 입장에서는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스카!”
“왔구나, 무스카.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유독 날카로운 눈동자를 가진 껑충한 키의 청년이 현장에 도착하자 6학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표정들을 보건대 6학년들은 ‘서리발톱 초원에서 온 청발의 전사’라면 자신들이 차마 하지 못했던 과업인.
‘건방진 신입생 혼쭐내기’를 달성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무스카… 벨타… 지온 선배님?”
“그래, 그 이름이 맞아. 경이의 신입생께서 힘들게나마 내 이름을 기억해 주고 계시니 이거 고맙다고 인사라도 올려야 하나. 우리, 지난번 과자 가게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건 기억하고 있겠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훈련장에 들어와 목검을 집어 드는 무스카의 행동에서는 분노, 동요 등의 혼란과 맞닿아 있는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선배들 중 누군가는 저 건방진 신입생을 상대해 줘야 한다는 ‘당위’뿐.
그리고 그런 무스카를 마주하는 페이건의 마음속에서는.
‘그래,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주셔야지. 하루 종일 수련장에서 산다고 알려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할 뻔했잖아.’
무스카의 당위와는 닮은 듯 다른 만족스러움이 피어올랐고 오늘의 ‘진짜 목표’를 확인한 라무테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 무스카 벨타지온이라는 남자아이가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여자가 그, 아일리 바스티아라는 말이지?
‘네. 보시는 바와 같이 생긴 것도 잘생긴 데다 그 실력도 전 학년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출중한지라 무스카 벨타지온을 흠모하는 여학생들의 수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스카 선배가 도무지 그들을 돌아봐 주지 않는 터라 다들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네요.’
―어머!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초원의 미남자라니. 그런 취향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가슴이 아주 두근두근하겠는걸.
‘그 목석같은 남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일리 바스티아와는 주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심지어는 서로의 기숙사에 방문하는 모습까지 종종 목격되고 있으니. 무스카 선배의 추종자들 입장에서는 두근두근하다 못해 아주 속이 터질 지경이겠죠.’
무스카의 입장에서는 아일리 바스티아와 관련된 소문이 나는 건 죽는 것만큼 싫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는 분이 이토록 많은데 완벽한 비밀을 유지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 괜히 사람들을 속인답시고 모르는 사이인 척하다 우리가 만나는 게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오히려 그게 낭패지.] [무슨 관계가 좋을까? 그래! 어릴 때부터 인연이 있어 온 친구 사이라고 해 두자. 그럼 우리 둘이 만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더라도 문제없이 넘길 수 있겠지. 잘 부탁해, 나의 소꿉친구 멍멍이 군.]‘거짓은 진실 속에 숨기는 편이 가장 가치가 있다.’라는 게 현장지휘관의 지론인 터라 무스카는 의지와 관계없이 아일리의 ‘역겨운 역할놀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꽃처럼 화사한 아일리와 서릿발처럼 단호한 무스카는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물론 무스카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극심한 수치심을 느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를 둘러싼 염문 또한 짙어져만 갔다.
그리고 이런 소문이 파다하다 보니 수상쩍은 여선배에 관한 조사를 하던 페이건의 시야에 초원의 전사가 포착되고야 말았고.
마침내 아일리의 주변을 깎아 내기 위한 도구로 무스카가 선정되었다.
사실 페이건이 관심도 없는 상급생 훈련장을 굳이 찾아와 깽판을 치며 도발을 한 것도 무스카를 자신 앞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아일리 바스티아와 무스카 벨타지온이 긴밀한 관계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 여기서 잘만 두드리면 재미있는 반응이 있을지도.’
능구렁이 같은 속내를 꼭꼭 숨긴 채 페이건은 건방진 신입생 연기를 계속했고 목검을 집어 든 무스카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물었다.
“지난번 과자 가게에서 봤을 때는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거야?”
“심경의 변화라고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물이 맑으면 얼굴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닦는 게 순리라는 말도 있잖아요. 여기서 몇 달 지내다 보니 나 정도면 내키는 대로 발 좀 씻어도 되지 않나, 라는 깨달음이 들어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이곳이 탁류로 가득하다는 네 말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야. 하지만 멋모르는 신입생의 시건방을 마냥 참아 주기에는 나도 인내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서.”
“네. 저도 선배님께서 인내심이 많은 분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듣고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면 바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빙긋.
무스카의 결의를 받아넘기는 미소를 지어 보인 후 페이건은 주변을 살폈다.
“드디어, 드디어 건방진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피를 보는 날이 오는구나.”
“저 오만방자한 새끼가 그동안 뭘 이뤄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상대는 다름 아닌 서리발톱의 무스카라고!”
조금 전, 페이건의 도발에 당황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상급생들의 얼굴에는 절대적인 신뢰만이 가득했다.
여기 있는 상급생 전원은 ‘무스카 벨타지온’이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이제 곧 곤죽이 되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은 채 눈동자를 반짝이는 사람들.
그 흉흉한 눈빛을 똑바로 받아넘기며 페이건은 목검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줬다.
―아일리 바스티아를 직접 찾아가는 건 촌스럽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이런 방법을 쓰겠다는 거였어?
‘독을 품은 짐승을 사냥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하는 점은 내 사정거리로 적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거야. 진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아일리 바스티아는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시끌벅적하게 놀다 보면 뭐라도 반응을 보이겠지.’
―독을 품은 짐승이라니? 흐흐 너, 아일리라는 여자애를 아예 나쁜 사람으로 정해 놓고 일을 벌이는구나?
‘자세한 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런 분야에서만큼은 내 예감이 꽤나 정확도가 높은 편이거든.’
페이건과 가벼운 눈짓을 주고받은 무스카는 곧바로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주변을 치우고 뒤로 물러서.”
무스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훈련장은 곧바로 대련장으로 모습을 바꿨다.
페이건과 무스카 사이의 거리는 약 4미터.
만약 무스카가 소문대로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정도 거리는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터.
“혹시 선배로서 선수를 양보하겠다 같은 말씀을 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네가 원한다면 그리해 주지.”
“딱히 그런 양보까지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
무스카의 대답이 들림과 거의 동시에 페이건의 머리 위로 목검이 떨어졌다.
한 번의 도약으로 4미터의 공간을 무의미하게 만든 무스카는 정확하게 정수리를 겨냥해 목검을 휘둘렀고.
쾅.
쩌어어엉.
페이건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최초의 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 목검 너머로 전해지는 엄청난 중압감에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한 번의 교환.
이 한 번의 맞부딪침을 통해 페이건은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처럼 전해지는 농담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폴리다고스의 학생들 중에서 유리안 알렉세예브를 원망하는 게 허용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면 그건 무스카 벨타지온일 것이다. 유리안이 없었다면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그 숱한 영광들은 고스란히 무스카의 것이 되었을 테니까.’
유리안의 다음이 누구이냐를 논할 때 ‘게오르그 로덴토’나 ‘크리스틴 코델리아나’의 이름이 간혹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유리안의 뒤를 가장 바짝 추격하고 있는 건 무스카 벨타지온이라는 사실을 페이건은 한 번의 방어를 통해 여실히 느꼈다.
쾅쾅쾅.
해일과도 같은 기세로 쏟아지는 검격의 파도.
무스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검을 휘둘렀고 페이건 역시 그 습격을 나름 열심히 막아 가며 선방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쪽이 우위를 잡고 있는지는 명백해 보였다.
“힘내, 무스카! 아주 그냥 부셔 버려!”
“잘한다! 아주 조금만 더 힘내!”
무스카의 목검이 빨라질수록 상급생들의 응원 소리 또한 더욱더 거세졌고.
쿵.
쿠쿵.
쿠궁쿵.
5분… 10분… 15분….
어느덧 둘의 대련이 15분 넘게 경과된 시점.
“후읍!”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와 함께 시종일관 공세로 일관하던 무스카의 검이 아주 잠시간 호흡을 멈추었다.
줄곧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목검이 왼손으로 자리를 옮겼고 무스카는 고개를 숙인 채 페이건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맙다, 이곳에 와 줘서.”
쿠우우웅.
“페이건 클라디우스, 너와는 꼭 한번 이렇게 해 보고 싶었거든.”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말이 끝난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일격이 페이건의 방어선을 덮쳐 왔다.
“큭!”
충격의 본편은 겨우 막아 냈지만, 완전히 가시지 않은 잔여 파동이 목검을 짓눌러왔고 결투가 시작된 이래로 처음 페이건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온 바로 그때.
퍽.
예측하기 힘든 각도에서 날아온 무스카의 오른발이 그대로 페이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목검에 시선을 집중하다 보니 그 자체로 흉기나 다름없는 무스카의 발을 견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걸로 끝.”
측면의 충격을 완전히 흘리는 데 실패한 페이건의 몸이 동력을 상실한 팽이처럼 휘청거렸고 순전히 자신만의 의지로 대련 종료를 선언한 무스카는 페이건의 가슴팍을 그대로 걷어찼다.
풀썩.
와장창.
페이건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훈련장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겼다, 무스카가 이겼어!”
“그렇지, 당연히 이렇게 돼야지! 내가 말했잖아. 저 꼬맹이가 무스카의 상대가 될 리 없다고!”
승패가 갈리자마자 열화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 나왔고 상급생들이 쓰러진 페이건을 둘러싸고 조롱을 퍼부으려는 그때.
“처음에는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나를 상대로 실력을 숨기며 대련에 임하다니.”
무스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순간 잔뜩 들떠 있던 상급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 그러니까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전력을 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럼… 무스카의 그 연격을 막아 낸 건 뭔데. 힘을 숨긴 상태에서 그 무시무시한 습격을 10분 넘게 버텨 냈다고?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상급생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 이게 아니라는 표정을 한 채 무스카를 바라봤지만.
초원의 전사는 그들의 저급한 욕구 따위야 알 바 아니라는 자세로 페이건을 주시할 뿐이었다.
“하지만 네가 1학년이고 본업이 치료술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작 이 정도 사실을 가지고 일일이 흥분을 하는 것도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보아하니 너의 천장은 꼭꼭 숨긴 채 내 천장만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되지.”
물론 무스카가 생각하는 페이건의 천장과 ‘진짜 천장’의 깊이가 같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페이건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스카의 탁월한 눈썰미는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
무스카는 쓰러진 채 아무런 말이 없는 페이건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준비가 되어 있고 할 마음이 있거든 다시 찾아와. 하지만 그때는 너의 천장을 남김없이 내보일 각오를 해야 할 거야. 한 번만 더 이따위 어쭙잖은 각오로 나를 상대하려 들었다가는 정말로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까.”
철컥.
그 목소리만큼이나 절도 넘치는 동작으로 납검을 마친 무스카는 그대로 훈련장을 떠나 버렸고.
‘북슬아, 네가 선배야. 그런데 네 눈앞에 건방지기 짝이 없는 후배가 나타나 깽판을 치고 있다면 어떻게 할래?’
무스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페이건은 감았던 눈을 떴다.
―페이건, 너 괜찮은 거야? 방금 전, 네 배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는데. 정말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질문부터 대답해. 너라면 어떻게 할래?’
―잠깐, 질문이 뭐였지? 아 그러니까 내가 선배고 건방진 후배가… 그런 상황에 나라면 절대로 가만 안 있지. 그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당장 혼내 줄 거야.
‘그래. 보통은 혼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테고 개중에 과격한 사람이 있다면 본격적인 실력 행사를 해서라도 아주 따끔한 맛을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말이야….’
무스카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자신을 향해 모욕적인 발언을 날리는 상급생들이 여럿 있었지만 페이건은 그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질문을 던졌다.
‘그 따끔함 속에 살기가 섞여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뭐! 살기라니, 누가? 방금 그 무스카라는 꼬맹이가 너한테?
‘무스카가 고마우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며 날린 검격 있잖아. 그 검격에서 아주 희미한 살기가 느껴졌어. 뭐랄까?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꾹꾹 눌러 왔던 살기의 끝 조각이 결국 인내심의 둑 너머로 약간 흘러넘친 느낌이랄까?’
라무테와 벨제키엘 앞에서는 느낌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했지만 사실 페이건은 자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살기를 잘못 감지했을 리는 없으니 무스카 벨타지온의 마지막 검격에는 분명한 살의(殺意)가 섞여 있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억누르고 또 억눌러 왔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분출되고만 약간의 살의.
‘아무리 후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텐데. 이렇게까지 하셨다? 어쩌지,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 케이크까지 준 그 파랑 머리 꼬마가 왜 너를 죽이고 싶어해!
‘그 이유가 뭔지는 지금부터 한번 파헤쳐 봐야지. 결국, 정답은 둘 중 하나야. 내가 대련을 하는 내내 수세에 몰린 탓에 착각을 했거나….’
옆구리와 가슴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탓에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페이건은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무스카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완전히 두 동강이 나버린 목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니면 무스카 벨타지온의 마음속에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증오해야만 할 이유가 따로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