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4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44)화(14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44)
특수한 효과를 발휘하거나 특별한 성질을 머금은 열매는 돈이 된다.
이건 뭐 검증도 확인도 필요 없는 진리였다.
그 싹을 틔우고 줄기를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이 워낙 힘든 탓에 도전하는 학생이 없을 뿐, 내가 메고 온 씨앗들을 키워 수확을 얻는다면 큰돈이 벌릴 거라는 건 명백한 사실.
‘…이번에는 부란다를 사냥하는 걸로 잘 풀렸지만, 매번 일이 생길 때마다 거대 마수 사냥을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앞날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자금줄은 확보해 둘 필요가 있어. 지금부터 경작에 힘쓴다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어디까지나 앞날을 위한 대비책의 일환이지 크리스틴 선배와 카밀라가 귀한 물건들을 숭덩숭덩 조달해 오는 게 부러워서 이런 생각을 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도 어디까지나 아카데미 공용 부지인데 네 마음대로 막 밭 갈고 씨 뿌리고 그래도 돼?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아냐.
‘평범한 학생이라면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난 자랑스러운 학년 대표잖아. 그러니까 해도 돼.’
―어, 그래? 폴리다고스가 학년 대표의 경작권까지 보장해 줄 정도로 인심이 넉넉한 아카데미였어?
‘경작권 같은 건 보장 안 해 주지. 하지만 학년 대표한테는 집무실 외 별도의 연구 공간을 요청할 권리가 있거든. 이제부터 이곳이 내 연구실이 될 예정이야.’
―연구실? 이렇게나 풀이 무성한 데다 사방에 바람까지 솔솔 들이치는데?
‘풀 좀 무성하면 어때? 오히려 난 치료술사고 생명의 신비를 연구할 예정이니까 풀이 무성한 편이 더 좋은 거 아냐?’
상의를 벗고 절반쯤 걷어붙인 소매를 마저 다 걷은 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스윽스윽.
파삭.
챙겨 온 농기구를 이용해 흙을 부수니 보슬보슬하게 흩어지는 알갱이의 기분 좋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되게 잘하네?
‘예전에 유모랑 같이 많이 해 봤으니까요. 흙을 다지는 작업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파종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우리 페이건이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기는 하지만 과연 농사도 잘할 수 있으려나?
‘아마 잘 될 겁니다. 저한테는 이게 있으니까요. 오르페우스 님의 선물이 없었다면 애당초 겁도 없이 희귀 열매들을 재배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겠죠.’
마즈다를 들어 올리자 안쪽에 깃들어 있는 드루이드 오러가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빛을 내뿜었다.
나는 치료 용도로 주로 사용해 왔지만, 드루이드 오러의 본래 권능이 식물을 다스리는 데 특화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경작이 실패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숲의 몬스터들이 밭을 손상시키면 어떡하지? 또 농사가 잘되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점 때문에 이곳을 연구 장소로 정한 겁니다. 경비는 아카이드와 그리폰 친구들에게 부탁하려구요. 평범한 그리폰도 아닌 태양 날개 부족의 전사들이 지켜 주는 연구실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죠?’
밭을 고르고 일정한 간격 사이로 씨앗을 뿌린 후 다시 흙을 덮어 주는 것까지.
초기 경작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물은 아카이드가 일정한 주기로 주겠다고 했으니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고, 라무테 님 마지막 작업입니다. 주변 좀 살펴 주세요.’
―응, 알았어. 웃챠! 페이건, 해도 돼.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아!
라무테 님이 하늘로 날아올라 예리한 투시안으로 주변을 살펴 줬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난 곧바로 오러를 흩뿌렸다.
뾰롱뾰롱.
씨앗이 몸을 누인 흙 이불 사이로 스며든 녹색의 오러.
우리 씨앗 친구들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몸에 좋은 보약을 사발째로 들이킨 느낌이 아닐까?
‘자,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이제 이틀 후에 다시 와서 상태를 보면 될 것 같아요.’
―수고했어! 우리 페이건은 아직 나이도 어리면서 부모님 도움 없이 뭐든지 자기 손으로 해내려는 게 참 이뻐. 아우 이럴 땐 진짜 티베리와 멜리사가 부러울 지경이라니까.
―저기, 있잖아! 열매들 쑥쑥 자라서 돈 많이 벌면 나 맛있는 거 더 많이 사줄 거지?
각각 어깨와 정수리를 차지한 채 재잘거리는 둘.
북슬이가 돈을 언급한 탓일까?
기숙사로 향하는 길, 돈나무가 쑥쑥 자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 * *
톡톡.
자박자박.
길쭉한 막대가 먼저 흙바닥을 집고 그 뒤를 자분자분한 발걸음이 뒤따랐다.
“요호♫♪.”
과거 자색 수림, 현재는 13구역이라 불리고 있는 울창한 수풀 사이로 살랑이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듣는 사람을 절로 기분 좋게 만드는 멜로디를 자아내는 주인공은 회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엘프 노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엘프가 노화를 아예 모르는 종족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진행 속도가 더딜 뿐 엘프 또한 나이를 먹고 세월의 흔적을 입어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엘프 노파의 신체 곳곳에서는 노화의 흔적이 엿보였다.
까칠해진 손등과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 가는 눈가의 잔주름.
“어머! 이곳에 언제부터 이런 밭이….”
물론 노화의 흔적이 보인다 하여 그 자연스러운 신체의 기록들이 노파의 품격을 갉아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노파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이가 아름답게 들어가는 법을 체득하고 있었고 세월의 색으로 자신의 생애를 채색해 가는 그 과정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외려 자신이 언젠가 죽음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이토록 나이를 먹은 지금도 ‘일상의 경이’에 감탄하는 눈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세상에나… 이다지도 행복해 보이는 씨앗이라니. 도대체 누가 이토록 훌륭한 싹을 틔워 낸 걸까?”
황금목 근처에서 예상치도 못한 놀라움을 발견한 노파는 소녀와도 같은 눈동자를 한 채 ‘이름 모를 밭’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리도 귀엽고 건강한 싹을 ‘영원의 숲’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얘, 너 누구 자식이니? 너를 이렇게 행복하게 길러 주는 부모님은 어디 계셔?”
노파는 마치 사람을 대하듯 이제 막 흙을 뚫고 모습을 보인 새싹을 향해 살가운 목소리로 연신 말을 걸었다.
카아악.
한데 재미있는 건 그녀가 밭에 다가서는 걸 제지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밭의 소유자가 한 말에 따르면 자신의 경작지는 누구보다 든든한 경비병들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을 텐데.
왜 그 경비병들은 노파의 접근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는 걸까?
혹여 경비병들은 저 노파가 무척이나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라도 한 걸까?
“응, 나예요. 물어볼 게 있어서 교신을 보냈어요. 혹시 최근 보름간 황금목 인근에 부지 사용 허가 신청이 들어온 게 있나요? 네? 부지 사용 허가는 들어온 게 없지만, 그 인근을 연구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한 학생은 있었다구요? 그게 누군데요?”
호기심을 참지 못한 노파는 수정구를 꺼내 들어 행정처로 신호를 보냈고 직원의 대답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얼굴에 걸린 미소 또한 커다래졌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아! 그 얼마 전에 1학년 대표로 선발된 그 학생을 말하는 거죠? 물론 알죠. 내가 기억력이 워낙 별로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실험국장님께서 몇 번이나 언급하신 학생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답니다.”
세상만사에 염증이 난 듯 초연한 태도로 일관하는 그 팩셰르 에우리디케가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보이는 아이가 이 신비로운 밭의 주인이라니.
노파의 눈동자가 반짝임을 더했고 이내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실험국 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탁탁탁.
도중에 마음이 급해진 노파는 지팡이를 겨드랑이 사이에 낀 채 계속해서 내달렸지만, 지팡이가 남긴 기분 좋은 떨림은 고스란히 남아 녹색 새싹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 * *
“거참, 그 지팡이는 여전히 가지고 다니시는구려. ‘유물국장’님의 허리 상태를 감안하면 지팡이 같은 게 필요할 일은 없을 텐데?”
“습관이 되어서요. 이제는 이게 없으면 허전할 지경이랍니다.”
“애초에 습관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소이까? 허허, 우리 국장님같이 현명하신 분께서 굳이 비능률적인 행동을 자처하시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따름입니다.”
인사를 마친 팩셰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을 뻗어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평소대로였다면 굳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 마나를 운용해 찻잔을 들어 올렸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 앞에서 함부로 마나를 운용하지 않는 건 팩셰르의 오랜 습관 중에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이곳까지 어쩐 일로 오신 거요?”
“왜요? 나는 용건이 없으면 국장님을 찾아오면 안 되는 사람인가요?”
“아니요,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우리 유물국장님의 방문이라면 내 언제나 환영이지. 하지만 국장께서는 내 연구실처럼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공간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걸 내 익히 알고 있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외다.”
팩셰르치고는 굉장히 정중한 말투와 온화한 반응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보통 팩셰르를 폴리다고스 국장들 중 최연장자로 취급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폴리다고스의 일곱 국장들 중에는 아예 나이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규격 외 존재가 있었기에 원래대로라면 팩셰르가 최연장자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됐다.
하지만 그 규격 외의 존재가 인간이 아닐뿐더러 반쯤은 외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그동안은 팩셰르가 좌장(座長) 역할을 맡아 왔던 것이다.
“오늘 황금목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가 재미있는 걸 봤어요. 그리고 그 일로 인해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학생에게 큰 관심이 생겼답니다. 클라디우스 학생, 국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신다면서요?”
“…뭐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편이기는 합니다.”
팩셰르의 눈썹이 꿈틀하는 걸 목격한 하이엘프 노파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가 오늘부터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페이건 학생에게 조금 관심을 가져 볼까 하는데 실험국장님께 이 사실을 미리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찾아온 거랍니다.”
“허허! 난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담당 교수도 아니고 후견인도 아닌데 유물 국장께서 굳이 이 사람에게 허락을 받으실 일이 뭐가 있겠소? 뜻대로 하시구려.”
“어머나, 그럼 제가 이 시간부로 클라디우스 학생을 많이 귀찮게 해도 되는 거죠?”
“그야 전적으로 국장님과 클라디우스의 그놈, 둘 사이의 일이니 내가 따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국장께서 굳이 이 사람의 의견을 물으시니 내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 들어 보시겠소?”
“물론이지요. 기꺼운 마음으로 듣도록 할게요.”
생각에 잠긴 팩셰르의 눈썹 기울기가 점점 더 급격해졌고 마침내 그 경사가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팩셰르는 본격적인 조언을 시작했다.
“예상컨대 그놈을 만나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면 우선 국장께서는 놈의 반반한 얼굴에 한 번 놀라게 되실 겁니다. 하고 다니는 짓과는 어울리지 않게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거든.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 유물국장님 눈에는 녀석이 마냥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처럼 보이겠지.”
“부정은 못 하겠네요. 제가 참 이리도 철이 없답니다, 호호.”
“하지만 말이외다, 부디 조심, 또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소이다.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그놈, 사실은 호랑이거든. 그것도 수틀릴 때마다 이빨을 드러내는 걸 마다하지 않는 아주 사나운 호랑이.”
“어머! 여기서 또 그런 반전 매력이.”
“나야 워낙에 미치광이로 소문난 종자인 터라 그런 놈을 다루는 요령을 아주 약간은 알고 있다만 아무래도 국장께서는 나와 사정이 다르지 않소이까?”
미소.
종종 페이건 앞에서 보여 주고는 했던 그 위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팩셰르는 진심이 100% 묻어나는 조언을 마무리했다.
“항상 사람의 좋은 면을 보려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시는 유물국장님의 따뜻한 시선을 나 또한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구려. 고결한 하이엘프께서 감당하기에는 그놈이 내뿜는 선천적인 독기가 너무 진할 수 있으니 말이외다.”
* * *
“거봐, 내가 뭐랬어.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파닥거려 줄 거라 그랬지?”
보람찬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기숙사.
하루를 마무리하는 샤워를 끝낸 나는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북슬이가 이걸 좋아한다, 머리카락 위에 깔아놓은 수건을 밟으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나 뭐라나) 두 장의 봉투를 살폈다.
분홍빛 색지와 은색 띠지로 장식된 첫 번째 봉투 위에 적힌 발신인의 이름은 아일리 바스티아.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상대적으로 수수한 갈색 봉투 위에 적힌 발신인의 이름은 ‘아리안느 플레뵐라.’
서신을 받기 위해 들인 수고를 생각하면 당연히 아일리 바스티아 쪽의 서신을 먼저 열어 보는 게 맞았지만, 무턱대고 이쪽에 집중하기에는 플레뵐라라는 성 옆에 찍힌 유물국장의 직인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그 유물국장이라는 사람이 보낸 편지부터 열어 보기로 한 거야?
“응. 바스티아 선배가 보낸 편지는 열어 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 것 같은데 이 갈색 봉투는 그 내용이 뭐일지 궁금하네.”
편지가 우편함에서 나를 기다린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물국장이 보낸 편지 봉투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고 개봉용 칼을 봉인 사이로 밀어 넣자 곧 향긋한 내음이 방안에 퍼져 나갔다.
―어디, 어디 뭐라고 써 있는지 내가 좀 볼게. 그러니까 친… 애… 하는… 하각생?
“하각생이 아니라 학생. 하이엘프가 사용하는 표기법은 조금 유별난 데가 있어서 넌 읽기 힘들 거야. 줘 봐, 내가 읽어 줄 테니까 귀 쫑긋 세우고 들어.”
진한 솔나무 향이 느껴지는 편지지에는 그 작성자를 닮은 기품 있는 글자가 단정히 늘어서 있었고 난 별로 길지 않은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렸다.
친애하는 페이건 클라디우스 학생에게.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이런 편지를 받아서 놀랐죠. 내 이름은 아리안느 플레뵐라. 유물국 건물 근처에 살고 있는 당신의 친구예요.
오늘 우연히 산책을 하다가 학생이 만들어 놓은 정말 멋진 밭을 봤습니다. 그토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아가들이라니. 아주아주 행복한 광경이었어요.
당신의 밭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다면 내가 있는 곳을 방문해 줄 수 있을까요?
시간은 아무 때나 괜찮아요. 난 하루 대부분을 유물국 근처의 숲에 머물고 있으니 유물국 사무실로 오면 언제라도 날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갑작스럽게 이런 요청을 하는 게 실례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아주 조용한 자매’가 당신께 꼭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결례를 무릅썼으니 부디 용서해 줬으면 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간은 아무 때고 괜찮아요. 원래대로라면 용무가 있는 내가 직접 학생을 찾아가는 게 맞겠죠. 하지만 실험국장께서 학생은 그런 식의 요란스러운 방문을 정말 싫어할 거라 말씀해 주셔서 참기로 했어요.
그런고로 이런 식의 방문 요청을 드리게 되었으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를 거듭, 거듭 청할게요.
그럼 내용은 이만 줄이고 당신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디 오늘 밤 당신의 꿈에 푸른 바람이 불어오기를.
유물국 건물에서 당신의 친구 아리안느 플레뵐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