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화(15/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
―페이건 네 마음은 알지만 여기서는 물러서야 해.
―이 멍청아! 길이 막혔는데 무슨 수로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데?
“그래. 분명히 지하 연구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막혔지 하지만 입구가 막힌 거지 연구실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잖아?”
나를 걱정하는 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입구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경로의 하나일 뿐,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뜻하지는 않아.”
고대 왕국의 유산인 아르카. 그리고 그 아르카와 같은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봉인 술식.
오르페우스와 고대왕국 간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너… 미쳤어?
내 손가락은 지하실의 천장, 그러니까 1층의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손짓에 담긴 의도를 파악한 벨제키엘이 눈을 크게 떴다.
―라무테가 말했잖아. 정식으로 개통된 입구를 통과하는 것만으로 네 몸에 적지 않은 부담이 가해질 거라고. 그런데 그걸 그새 까먹기라도 한 거야?
“천만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 부담을 견뎌 내고 지하실에 도달하는 것이 라무테 님이 준비한 시련. 그리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오르페우스 님의 후계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 또한 하셨지.”
―그걸 기억하고 있는 놈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겠다는 말을 해! 너 정말 미쳤어!
퍼억.
격노를 이기지 못한 벨제키엘이 그대로 허공을 날아 내 가슴팍에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바닥에 구멍을 뚫는 것도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구멍을 뚫었다고 치자. 오르페우스의 결계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연구실을 내려가는 걸 허락할 것 같아? 그런 짓을 했다가는 네 몸에 정식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는 것보다 몇 배는 더한 부담이 간단 말이야!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 원래 결계라는 건 편법을 사용하는 자를 가혹하게 응징하는 습성이 있는 주술이니까.”
―야! 보고만 있을 거야! 이 바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하는데 보고만 있을 거야!
―페이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답답한 마음은 우리도 이해해. 하지만 이건 안 돼. 너무 위험해.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애초에 오늘 밤 시험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 건 라무테 님입니다. 그리고 시험이라는 건 위험함을 내포하기 마련이지요.”
―페이건, 안 돼!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야. 난 통상적인 진입로가 살아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통과하는 것으로 너의 의지를 시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아니야. 그런 위험한 행동을 했다가는 이건 더 이상 시험도 뭣도 아니게 되어버리고 말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설령 제가 이 방법을 통해 연구실 진입에 성공한다 해도 시험 통과를 주장하지 않는 걸로 하지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가 하는 행동은 시험과는 완전히 무관한, 제 개인적인 행동이 되니 라무테 님이 결과에 따른 책임을 느끼실 필요도 없게 됩니다.”
―페이건!
그 후로도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뜯어말렸지만 그 설득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알겠어.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정말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우리가 그 즉시 너를 끌어올릴 거야. 알겠지?
―아오! 이 고집불통! 왜 이런 건 또 오르페우스 그 녀석을 이렇게 빼닮은 건데!
결국 둘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한 채 내 양쪽 어깨를 각각 붙잡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닥을 폭파할 준비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정 타협을 끝낸 나는 의지의 관 1층에 널려 있던 약품 가루를 바닥 한편에 집중해서 뿌렸다.
약품 중에는 극도로 불안정한 성질을 가진 것들도 있는지라 그런 것들 몇 개를 적당히 섞은 뒤 소량의 마나를 주입하면 제법 강력한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날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은 고맙지만 당신들은 몰라. 내 손가락 사이에는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히든카드가 숨겨져 있거든.’
벨제키엘과 라무테는 강행돌파가 위험하다며 걱정을 했지만 허물어진 입구에 새겨진 고대왕국의 문양을 본 그 순간, 난 확신했다.
‘걱정할 것 없어. 결국 오르페우스가 만들어 놓은 술식의 핵심은 고대왕국의 문양. 아르카가 날 지켜 주는 이상 치명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설령 오르페우스의 결계가 날 막아서더라도 지난 7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단련해 온 아르카가 내 몸을 지켜 줄 것이라는 걸.
―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도대체 이렇게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가 뭔데? 이렇게 무리를 하면 안 될 정도로 다급한 이유가 있기는 한 거야?
“서둘러야 하는 이유? 당연히 있지. 너 성녀님의 눈동자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바라본 적 있어?”
내가 강행돌파를 결정하게 된 원인의 비율을 따지자면 오르페우스에 대한 호기심이 9할 이상.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난 1할짜리 이유를 들어 둘을 납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눈동자?
“만약 오르페우스 님이 이 자리에 계셨고, 한계에 다다른 그 눈동자를 봤다면 지금의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러는 편이 둘을 설득하기 더 쉬울 테니까.
―페이건….
“결국 이번 시험이 검증하고자 하는 주된 대상은 저의 의지. 그렇다면 이번 시도로 보다 확실한 결과가 도출되겠군요.”
더없이 촉촉해진 라무테의 목소리를 통해 조금 전의 선택이 100% 적중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치익.
뿌려 놓은 약품에 마나를 주입하자 이내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폭발점으로 향하는 불의 꼬리를 지켜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의 의지가 오르페우스 님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있을 만큼 굳건한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지 말입니다.”
* * *
―삐걱.
문소리가 들리자마자 안내인들의 시선이 곧바로 그쪽을 향했다.
페이건과 라무테가 모습을 감춘 지 벌써 두 시간이 경과했다.
한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클라디우스 공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생뚱맞은 폭발음만 들려오던 터라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마당에 문이 열렸으니 신경이 그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무테님!”
“공자님, 몸은 괜찮으신지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언가에 잔뜩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무테와 조금은 창백해 보이는 낯빛의 페이건.
좋지 못한 안색을 확인한 안내인들의 표정 역시 덩달아 흐려졌다. 성녀님의 병을 낫게 할 방안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짐작한 것이다.
“시간이 너무 늦은 터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돌아가기 전 성녀님이 복용할 약과 그 제조 방법을 기재해 드릴 테니 내일 아침부터 바로 준비 부탁드립니다.”
“공자님! 그렇다면!”
“그리고 의지의 관 내부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 터라 필요한 기록을 전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이곳에 매일같이 출입을 해야 할 것 같으니 그 점 또한 준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클라디우스 공자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낯빛이 다소 창백하기는 했지만 페이건은 분명한 어조로 지시사항을 하달했고 안내인들은 몇 번이고 허리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과거의 오르페우스처럼 대번에 치료방안을 가지고 오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클라디우스의 어린 손님은 상황을 돌파해 낼 타개책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이 섬에 거주하는 모든 파도부족이 공자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기세로 감사 인사를 올리는 안내인들.
―어휴….
안내인들과 페이건을 번갈아 보며 라무테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층 더 고민이 깊어진 듯한 표정을 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괜찮을까?
* * *
―한 달 뒤.
“너, 어쩌자고 매일같이 여기 오는 거야? 집에 할 일 없어? 부모님이 걱정 안 해? 혹시 알아주는 개망나니 이런 거라서 아들이 밤마다 집을 비우는데 너희 부모님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니?”
“지금 내 걱정해 주는거야? 이거 감격인데.”
“웃기고 있네. 내가 왜 너 같은 천것을. 그냥 언제쯤이면 네 그 보기 싫은 얼굴을 안 볼 수 있을까 해서 물어보는 거니까 쓸데없는 착각은 그쯤 해 둬.”
“염려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러고 다니는 거 모르고 계시거든.”
성녀의 치료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라무테의 인도를 따라 전설의 섬에 첫발을 내딛은 그 날 이래로 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모데나스를 찾았다.
처방을 내린 약이 제대로 복용되었는 지를 확인하고, 오르페우스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의지의 관’을 방문한 후 성녀의 거처로 가 진료를 마치고 나면 하룻밤이 얼추 마무리되고는 했다.
물론 내가 가족들에게 들키는 일이 없이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라무테를 비롯한 영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스페타라의 밤을 지키는 부엉이 영수 타포마가 만들어 주는 환영 덕분에 내 부재(不在)를 알아차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에스페타라에 머무는 낮 시간을 이용해 어머님과 라나, 에밀과는 친밀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있었기에 가족들은 내가 매일 밤 밤놀이를 다닌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아버지였는데, 아버지 역시 라무테가 조치를 취해 준 덕분에 의심을 사는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가주님! 영원의 숲 입구에서 전언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 내용이 뭐라고 써 있던가?”
“재능이 충만한 소년에게 필요한 건 시간, 충분한 인내를… 이라고 적혀 있었사옵니다.”
“그래? 흐음, 아무리 봐도 페이건에게 하는 말 같은데. 영수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거지? 벨도루시에게 물어봐도 그 녀석은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질라치면 영원의 숲에서 뭔가 의미심장한 전언이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아버지와 장로들은 한데 모여 그 전언의 의미를 해석하기에 바빴다.
영원의 숲 입구가 완전히 폐쇄되지 않는 상황은 꽤나 장기화되었고, 그 상황이 계속되는 한 섣불리 실망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아버지는 그곳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이런 여러 가지 배려 덕분에 나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 없이 너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이런 배려에 감사하는 의미에서라도 조금 더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어떨까?”
“누가 너 따위가 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치료가 시작된 지 한 달.
에스텔은 여전히 치료에 극도로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켜보는 눈이 있을 때는 어찌저찌 지시사항을 따르는 척은 했지만 둘만 남는 상황이 되면 곧바로 적개심을 드러내고는 했다.
“…음, 요정잎을 처방한 지 오늘로 일주일. 차도를 확인하고 싶은데 팔 좀 이리 뻗어 볼래?”
“흥!”
“나한테 소리를 지르거나 언젠가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무턱대고 치료를 거부하는 건 곤란해.”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에스텔의 분노는 조금의 여과도 없이 그대로 전해졌다.
안타까운 건 저 분노가 그녀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명확한 대상이 있는 분노의 경우 시원하게 발산해 버리는 게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에스텔의 분노는 특정인을 향한 게 아니라 지난 5년간의 고통의 세월이 축적시켜 놓은 방향을 잃은 분노.
그녀가 나를 향해 분노의 날을 세우는 이유 역시 내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녀의 고통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섬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아무런 슬픔도, 부담도 없이 떠나 버릴 외부인에 불과했으니까.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네가 이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분들이 무척 슬퍼하지 않을까?”
“…죽일 거야.”
“그래그래, 일단 몸부터 낫고. 그다음에 참수를 할지, 사약을 내릴지 생각을 해 보자고.”
그녀는 매일같이 격렬한 저항 의사를 보였지만 그 반란을 진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녀의 약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그녀가 섬사람들을 사랑하는 한 결국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언제나처럼 작별 인사를 건넸지만 오늘도 답이 돌아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에스텔은 대답 대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는 걸 택했고, 오래 앓아 온 병의 흔적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든 그녀의 피부’는 하얀 시트에 가려져 조금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끄윽끄윽….”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터져 나온 울음.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시트 위로 내려앉은 무거운 절망.
그 절망을 똑바로 주시한 채 다시 한 번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내일 보자.”
* * *
사흘 뒤.
“우욱….”
여느 때처럼 달빛이 드리운 에스텔의 침실.
하지만 침실 안의 풍경은 쏟아지는 달빛만큼 낭만적이지는 못했다.
“우욱… 저리… 꺼지란 말이야.”
“미안. 그럴 수 없어.”
수정으로 만들어진 대형 용기에 얼굴을 파묻은 에스텔. 꽤나 큼지막한 수정 용기의 바닥에는 그녀가 토해낸 피와 토사물이 깔려 있었다.
“우웨… 엑!”
그녀는 벌써 30여 분이 넘게 구토를 하고 있었고 난 그 옆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꺼져! 우욱… 제발 좀 꺼지라고!”
토사물과 피로 범벅이 된 입가를 훔치는 와중에도 그녀는 나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수치스럽겠지. 그것도 죽고 싶을 만큼.’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에스텔은 나를 정말로 싫어하고 있다.
그런데 끔찍이도 싫은 타인에게 토사물로 범벅이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야 하다니, 그녀가 얼마나 막심한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지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표정 하고 있지만 사실은… 너도 내가 더럽다고 생각하지? 이렇게 구역질 나는 모습이나 보이는 주제에 무슨 성녀냐며 마음속으로는 비웃고 있는 거잖아!”
“여기서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믿어 줄래?”
“나쁜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지금 상황에서 네가 구토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조금 전 처방한 약의 부작용에 구토 증세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잖아.”
어린 소녀가 구토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게 바람직한 예법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알았어! 그 약이든 뭐든 다 먹을 테니까 이제 좀 꺼지란 말이야!”
“구토를 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섞여 나오는 피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바로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해. 그러니 어쩔 수 없어. 구토 증세가 완화되는 걸 확인하는 즉시 나가 줄 테니 거북하더라도 참아.”
“나쁜… 새끼!”
여러 번에 걸쳐 내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에스텔의 적의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거짓말… 날 위해서라는 건 다 거짓말이고 사실은 넌 날 비웃고 싶은 거잖아. 토사물 범벅이 된 더러운 성녀님이라니…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날 추하다고 비웃고 있는 거지?”
“이번만큼은 제발 내 답을 믿어 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대답할게.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미추(美醜)라는 하등 쓸모없는 기준 따위를 생각하고 있을 만큼 클라디우스는 허술하지 않아.”
“그놈의 클라디우스, 지겨우니까 좀 닥치란 말이야!”
끊임없이 밀려오는 구토 증상 때문에 그릇에 머리를 파묻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당장 나를 향해 팔다리를 휘둘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어떻게 하면 꺼져줄래? 싫어… 싫단 말이야. 이런 건 이제 싫어….”
결국 에스텔은 극심한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번에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분노가 잦아든 뒤에 찾아오는 비애(悲哀).
토사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에스텔의 얼굴을 보게 되리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치료술사로서의 책임감이 가슴을 찔러 오는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담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뭐?”
“넌 치료가 필요한 환자고 아직 해야 할 치료는 끝나지 않았으며 오르페우스 님의 안배 덕분에 병의 차도를 장담할 수 있는 처방전 또한 보유하고 있어. 더군다나 네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는 치료술사로서의 내 믿음 또한 확고해. 그런데 여기서 널 포기하라고?”
내가 클라디우스의 이름 하에 태어난 이후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고한 생명’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었다.
에스텔 또한 이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구토 증세가 잦아든 듯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페이건 ‘클라디우스’인 이상 그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너도 내가 여기서 물러날 거라는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아.”
“….”
“잠을 이루기는 힘들겠지만 억지로라도 자두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지 내일 치료를 견딜 수 있을 테니까.”
“너….”
“그럼 내일 또 보자.”
달칵.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닫고 침실을 나와 버렸다.
“공자님….”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신관과 무녀들이 나를 맞이해 줬다.
아주 세밀한 상황까지는 모르지만 내가 에스텔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대략은 알고 있을 터.
나에 대한 미안함과 성녀에 대한 걱정 등 여러 가지 감정으로 범벅이 된 그들에게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괜찮습니다. 곧 좋아질 거예요.”
당장이라도 눈물방울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표정의 수석 신관님. 난 신관님이 준비한 쟁반 위에 놓인 피로 회복용 음료를 단숨에 삼킨 후 말했다.
“그럼 내일 또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