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0)화(15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0)
“몇 명이나 남아 있나?”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고베나 라도키아를 포함해 열세 명 남았습니다. 조금 전 올린 보고 사항에서 변동 없습니다.”
“허허… 1등으로 뛰쳐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놈들이 아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니. 도대체 안에서 무슨 짓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진행 상황을 전해 들은 시험감독관 베루스 교수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이 안 된다는 얼굴을 한 채 1등으로 시험을 통과한 3학년 학생.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높아져 버린 중도 탈락자(낙제 확정자)들의 비율.
그리고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페이건 클라디우스와 고베나 라도키아까지.
제법 오랜 기간 실전 시험을 감독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베루스는 연신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시상대에 오를 인물들이 이미 한참 전에 확정이 되었는데도 이 정도 긴장감이 유지되다니.
정말이지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허허, 마음 같아서는 이미 탈락한 놈들을 붙잡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따져 묻고 싶다만 시험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접촉 허용이 안 되니. 정말 답답하구먼, 답답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베루스가 애꿎은 수염을 비비 꼬며 생각에 잠긴 그때.
삐삐삐.
“교수님, 변동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타, 탈락자입니다! 시험장 안쪽에 남아있던 4학년 학생들 모두, 그러니까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제외한 전 학생이… 시, 실격되었습니다. 실격 처리 사유는 목걸이 파손. 탈락 학생 전원 실격자 대기실로 전송되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럼,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해당 학생의 발신기는 무사합니다. 잠깐, 교수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시험장 바깥으로 나오고 있는 걸로 파악됩니다!”
깜짝 놀랄 만한 상황이 연이어 상황실로 전송되었고 베루스는 눈을 부릅뜬 채 직원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어! 이게… 뭐야? 4학년 학생회 간부들… 전원… 탈락? 그것도 고베나 선배님을 비롯한 열두 분의 선배님들은 아주 그냥 한꺼번에….”
“그치? …저기 탈락이라고 써 있는 거 맞지? 내가 잘못 본 거 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거 아니지?”
같은 시각,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베루스 뿐만이 아니었다.
시상대에 오를 영광의 얼굴들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 또한 입을 떡하니 벌린 건 매한가지였다.
대형 수정구를 통해 상위 입상자들과 중도 탈락자들의 명단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기에 구경꾼들 역시 대략적인 진행 상황 파악이 가능했던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우승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한 3학년이 1등을 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러웠는데 4학년 학생 간부 전원이 중도 탈락이라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잠시 후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낼 최후의 생존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참가 번호 47번 페이건 클라디우스입니다. 목걸이 확인 부탁드릴게요.”
당사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발할 듯 달아올랐다.
“페, 페이건 클라디우스 학생 목걸이 확인 이상 없구요. 완주를 성공했음을 알립니다.”
“제가 몇 등인가요?”
“34등입니다. 어, 어흠!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가 지금 막 결승선을 통과했으므로 이 시점을 기해 당해 학기 저학년 특별 시험이 종료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벙찐 표정의 진행 요원이 공식적으로 시험 종료를 선언했음에도 분위기가 가라앉는 일은 없었다.
“4학년 선배들 탈락,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솜씨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쟤가 최후의 생존자 역할을 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아까 20등으로 통과한 선배님이 그랬잖아. 페이건이 결승선 통과 지점을 점거한 채 죽치고 앉아 있는 걸 봤다고.”
“맞아. 그리고 그 말씀도 하셨어. 혹시나 해서 지나가도 되겠냐고 물어봤더니 ‘가세요, 선배님한테는 볼 일 없습니다.’라며 순순히 보내 줬다고.”
“그럼… 그 3학년 선배한테는 볼 일이 없었지만 4학년 선배들한테는 볼 일이 있었던 거구나.”
“야이씨, 지독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페이건 클라디우스,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불꽃 울음 사건,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더니 기억하고 있다가 복수를 제대로 한 거잖아?”
“하긴, 그렇게 순순히 넘어가는 게 좀 이상하기는 했어. 그나저나 어마어마하다 진짜. 기회를 한번 잡으니까 4학년 선배 열여덟 명을 그냥 한방에 다 보내 버리네. 나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성대하고 화려한 복수를 보는 건 처음이야.”
그간 쌓아 온 이름값치고 34등이라는 순위는 소박하기 그지없었지만, 그걸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페이건의 순위를 탓하기에는 4학년 간부 전원 중도 탈락이라는 광경을 만들어 낸 그 연출력이 너무나도 탁월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그럼 4학년 선배님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기는, 개망한 거지. 최악의 경우 한 학기 유급될 수도 있고 설령 유급은 피한다 해도 이제 떵떵거리는 학교생활은 다 한 거지 뭐. 선배들이 그동안 콧대 높은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가문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인데 유급이나 당하는 등신들을 어떤 미친 가문이 밀어주겠냐? 가문의 명예에 먹칠한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하긴… 지체 높은 분들일수록 위신이라든가 체면 문제라든가 그런 거에 신경을 많이 쓰기 마련이니까 선배님들 입장에서는 치명타겠네.”
“아마, 가문 내 경쟁자들은 지금쯤 쾌재를 부르고 있을걸. 이런 개망신을 당한 이상 선배님들도… 앞으로 가문 내 생활이 많이 괴로워질 거야.”
4학년 간부들이 맞이할 자갈밭 미래.
재미있는 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하급생들의 표정이 퍽 즐거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왁자지껄한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을 무렵.
지금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며 한참 전부터 관람객석을 지키고 있던 녹안(綠眼)의 구경꾼이 불쑥 페이건에게 다가섰다.
“수고 많으셨어용! 용사님, 이거 한잔 쭉 들이키면서 피곤을 가라앉히시는 게 어떨까요? 호호.”
“34등짜리한테 용사는 무슨… 과하다 못해 중압감에 짓눌릴 것만 같은 발언이야.”
“어허! 34등이라도 다 같은 34등인 줄 알아. 등수가 뭐가 중요해. 네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루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내가 원하는 바가 뭔데?”
“쪼기, 저기 있네. 네 목표.”
카밀라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대각선 뒤쪽을 가리켰는데 그곳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미남자가 있었다.
“어라, 들켜 버렸네.”
“그럼 안 들킬 줄 알았어? 아우, 아. 미. 새. 부들거리는 꼴 좀 봐. 저학년 학생회에 심어 놓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건 천하의 게오르그 로덴토에게도 뼈 아픈 일인가 보네.”
아미새, 풀어서 말하자면 ‘아가씨에 미친 새끼’.
그녀가 게오르그에게 붙여 준 별명을 입에 올리며 카밀라는 키득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페이건, 네가 무슨 이유로 게오르그를 적대시하는 지 모르겠지만 오늘 너 진짜 마음에 든다. 우리 제라르 불러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네가 기쁘게 해 줬으니까 오늘은 이 누나가 화끈하게 쏠게.”
아마도 게오르그는 자신이 아끼는 후배를 격려해 주기 위해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런데 격려는커녕 자신이 오랜 시간 공들인 저학년 학생회의 손발이 쓸리는 꼴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저리 화난 표정을 짓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제라르도 지금쯤이면 시험 다 끝냈을 테니까 오늘은 맛있는 것 좀 먹자.”
카밀라가 준비한 음료수를 마시면서도 페이건은 게오르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그 보람이 있었는지 잠시 후 두 사람의 시선은 정확히 마주쳤다.
빙긋.
페이건은 게오르그와의 첫 만남 때처럼 미소를 지어 보였고.
“…돌아간다.”
게오르그는 벌게진 얼굴을 한 채 돌아가 버렸다.
일전에 만났을 때보다 한결 더 격렬해진 적대감.
그 사실을 확인한 페이건은 한결 더 마음 편히 음료를 들이켰다.
비록 순위는 34등인 터라 시상대에 오르거나 다음 학기 시작 시에 가점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허울뿐인 시상대나 받으나 마나 한 가점보다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게오르그의 눈동자를 보는 게 몇 배는 더 기쁜 일이었으니까.
* * *
“으아아아아아!”
그날 밤.
게오르그 로덴토가 토해 내는 괴성이 그가 점거하고 있는 특실 지하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 개새끼… 이 빌어먹을 천민 새끼가!”
그 고귀하고 고결한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육두문자를 쏟아 내며 게오르그는 발광을 해대고 있었다.
산산이 조각난 원목 가구들과 유리 파편이 되어 버린 고급 술병들.
어느 것 하나 초고가가 아닌 물건들이 없었지만, 학생회에 심어 둔 손발이 뭉텅 잘려 나갔다는 분노에 꼭지가 돌아 버린 게오르그의 눈에 이따위 물건들의 가격표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하아… 하아….”
꼬박 한 시간에 걸친 지랄발광을 떨고 나서야 조금은 냉정해질 수 있었던 게오르그는 그제야 오늘 자신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손익계산서를 찬찬히 살폈다.
‘좋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4학년 학생회는 대부분 물갈이될 테고 고베나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유리안을 지지하는 녀석들로 채워질 거야. 그렇게 되면 저학년 학생회 전반에 걸친 내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될 텐데… 이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지?’
폴리다고스 학생회는 얼핏 보면 학생들의 자유로운 자치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판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정치판을 휘어잡고 있는 가장 큰 두 개의 축은 ‘유리안 알렉세예브’와 ‘게오르그 로덴토’.
한데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 세력 중 한쪽에 구멍이 숭숭 뚫려 버렸으니 반대쪽으로 힘의 추가 기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뿌드드득.
게오르그의 어금니 사이에서 거친 소리가 터져 나왔다.
4학년 부하들이 줄줄이 나가리 된 것도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욱더 화가 나는 일은 자신이 제의한 휴전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는 것이었다.
사실 게오르그는 적어도 당분간은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론 ‘죽도록 가지고 싶은 아일리 바스티아’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 꼬맹이를 묵사발 내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으니까.
지난번 광산 사건 이래로 알크페인은 계속해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게오르그의 입장에서는 괜스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1등으로 치고 나가더라도 그냥 보내 주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자신이 손을 멈추면 페이건 클라디우스 역시 확전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게오르그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고 게오르그는 오늘 오후 그 건방진 천민 꼬맹이의.
‘등신, 끝내기는 누구 마음대로 끝내? 기대해. 앞으로가 더 재미있어질 테니까.’
라는 미소를 목격해야만 했다.
“후우, 후우….”
얼굴을 감싼 게오르그의 입에서 거친 숨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대련이니 뭐니 구실을 만들어서 당장에라도 페이건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과연 나였다면 고베나를 비롯한 4학년 학생 간부 전원을 한 자리에서 그렇게 깔끔하게 제압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유리안 알렉세예브였다면 당연히 가능한 일이고 무스카 벨타지온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는 가능할까?
혹시 페이건 클라디우스와의 대련이 성사되었는데 거기서 내가, 무려 7학년인 내가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으아아아아!”
결국 게오르그는 다시 한 번 괴성을 내질렀다.
게오르그 본인이 줄곧 야만적이고 무식하다며 무시해 왔던 무스카 벨타지온의 무력이 이토록 부러워지는 순간이 올 줄이야.
태어난 이래로 거의 처음으로 느껴 보는 극도의 무력감.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앞에서 로덴토 가의 철부지는 한참 동안 몸을 떨어야만 했고 결국 게오르그는 선택을 내리고야 말았다.
삐익.
“찾으셨사옵니까, 공자님?”
밀실 한쪽 벽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누르자 날렵한 인상을 한 사내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고 게오르그는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께 전해.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그 시술, 학기를 마치고 본가를 방문하는 대로 받을 것이니 모든 준비를 해 놓으시라고.”
* * *
갉작갉작.
기말고사가 끝난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황금목 인근의 보급 창고에 도착한 나는 절개용 나이프를 통해 줄기 표면을 섬세하게 긁어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잔뜩 뿌려 준 드루이드 오러의 효과가 있었는지 씨앗은 어느새 내 정강이 높이만큼이나 자라 있었고 그 줄기 또한 제법 굵직해져 있었기에 별다른 죄책감 없이 표면을 긁어낼 수 있었다.
―페이건, 이럼 못 써! 식물도 엄연한 생명인데 왜 그 표면을 긁고 그래. 그럼 아야 한단 말이야. 이 스승님이 못된 장난 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장난은 네가 내 머리 위에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하면서 뒹굴거리는 걸 가리키는 말이고. 난 이 아이들이 맡은 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준비 작업에 열중할 뿐이니 허튼소리는 삼가 줬으면 해.’
―본연의 임무? 나무한테 본연의 임무가 있어? 그냥 물이랑 햇빛을 잔뜩 먹고 쑥쑥 자라면 되는 거 아냐?
‘돈 많이 벌면 맛있는 거 많이 사달라며? 말했지, 얘네는 단순한 내 취미 생활이 아니라 군자금 창고라고. 지금 하는 작업은 효율적인 군자금 조달을 위한 필수적인 절차니까 일단 보고 있어.’
―호에에?
이 정도까지 설명을 해 줬음에도 줄기 견본을 채취하는 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건지 롤빵이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이 녀석들의 열매지만 수확하기 전에 시장조사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솜씨 좋은 감정사들은 줄기 표면을 보고도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열매가 열릴지 예측할 수 있는 법이거든.’
종류별로 갈무리한 줄기 견본을 보관함에 수납한 후 보존 마법과 충격 완화 주문이 걸려 있는 비단 보자기로 감싸며 말했다.
‘시험도 끝났고 하니 오후에는 상업지구에 갈 거야. 거기 가서 모처럼 맛있는 점심도 먹고 추후 이 아이들이 맺을 열매를 구매할 사업파트너도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