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1)화(15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1)
견본 채취를 마친 후 시선을 돌리자 푸른 빛 장막으로 분리해 놓은 특별 구획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 장갑 교환권께서는… 부끄러움이 좀 많으시네.’
부쩍부쩍 자라는 것으로 성장의 기쁨을 표현해 내는 여타의 식물들과는 달리 유물국장님이 맡기신 씨앗은 성장 속도가 더뎠다.
지난 일주일간 이룩해 낸 성장이라고 해 봤자 빼꼼하니 머리를 내민 씨앗이 전부.
이미 줄기를 뻗어 내며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거북이 같은 속도라 할 수 있었다.
‘내 사랑이 부족했나? 그렇지만 드루이드 오러는 제일 많이 쐬어 줬는데….’
유물국장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씨앗이 고개를 내민 것만 해도 대견한 일이라며 기뻐하셨지만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이 더디디더딘 성장 속도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야, 너도 기운 좀 내라. 밥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제일 많이 먹는데 먹은 값은 해야지. 네가 잘 자라 줘야 나도 옛 친구랑 조우할 수 있단 말이야.’
지이잉.
대답이 없는 씨앗의 머리 위에 드루이드 오러를 한가득 들이부어 준 후 상업지구를 향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외식.
뭘 먹어야지 점심을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 * *
“그래서 얼마라구요?”
“개당… 금화 400개, 아니 450개 쳐 드리지. 물량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470개까지도 지급해 드릴 수 있고.”
“470개라… 알겠습니다. 그럼 많이 파세요.”
“잠깐, 젊은이! 그러지 말고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어이, 젊은 양반!”
거래가 파탄 날 지경이 돼서야 나를 붙잡는 도구 상인을 매몰차게 외면한 채 밖으로 걸어 나왔다.
‘470개? 이래서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고 하는 건가 봐.’
―왜? 열매 하나당 470개면 헐값인 거야?
‘헐값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사기 수준이야. 조금 전의 그 대머리 영감, 내 나이가 어려 보이니까 등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아앗! 그런 거야? 어쩐지 그 영감 희번덕거리는 눈알이 이상하다 했어.
메모지에 기록해 놓은 목록에서 조금 전 다녀온 도구상을 지워 버렸다.
이걸로 총 열다섯 개를 잡아 놓은 예비 파트너 목록에서 일곱 개가 지워진 셈.
노점상에서 시원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대로변의 큼지막한 건물들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다른 후보자들과는 달리 이번에 찾아가고자 하는 여덟 번째 후보자는 외진 장소에 위치해 있었기에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심정으로 골목을 누벼야만 했다.
“어서 오시게. 옷차림을 보아하니… 학생인 것 같지는 않고 도매상에서 오셨나? 납품처를 찾으려고?”
골목을 지나자 제법 널찍한 길이 나타났고 그 길 끝에는 2층짜리 건물을 터전으로 삼는 아담한 도구점이 있었다.
도구점 입구에 앉아 햇볕바라기를 하고 있던 허연 수염의 노인이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 줬고 난 가벼이 고개를 숙이며 제라르가 들려준 당부를 떠올렸다.
[상업지구에는 정말이지 많은 도구점이 있지만,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다니엘 영감님이 하시는 ‘청동 바구니’야. 크기도 다른 도구점에 비하면 작은 편이고 유명세도 높지 않지만, 품질과 신용 이 두 가지는 정말 확실해. 진짜야,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제라르의 말마따나 청동 바구니의 주인인 다니엘 영감의 눈동자에서는 탁월한 연륜이 느껴졌고 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이곳을 찾아온 용건을 들려줬다.
“흐음… 이렇게나 생명력이 넘치는 줄기 견본이라니. 나는 본업이 연금술인지라 열매를 보는 눈이 아주 탁월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네. 하지만 물건의 좋고 나쁨 정도는 구분할 수 있거든. 이건 상등품, 그중에서도 특상등품에 해당하는 아주 좋은 물건이야. 허허, 이리도 건강한 줄기를 만들어 내다니. 젊은 친구, 솜씨가 좋으시구먼.”
돋보기안경을 쓴 채 감탄을 쏟아 내는 다니엘 영감.
물건값을 후려치거나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저 표정만으로도 제라르의 평가가 꽤나 정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줄기만큼의 물건이 나온다면 개당 750, 아니 800개까지도 가능할지도. 아… 이거, 이거 나이를 먹다 보니 눈만 침침해지는 게 아니라 후각도 둔해져서. 이거 영 판단이 쉽지가 않구먼.”
거의 두 배는 올라 버린 가격.
아무래도 남은 후보지를 추가로 방문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저 정도 가격이면 나 역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구태여 더 이상의 발품을 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기, 젊은 양반! 자네 많이 바쁘신가? 혹 바쁘지 않다면 여기서 차나 한잔 마시면서 잠깐 좀 기다려 보시지 그래. 실은 오늘 오후에 손님 한 분이 오시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또 이런 열매 감정에는 아주 도가 튼 양반이거든. 괜찮다면 그 친구의 의견을 듣고 매매가를 말해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뭐.”
“흐흐, 그럼 내가 차 한잔 내올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구려.”
잠시 가게 안으로 모습을 감췄던 다니엘 영감은 풍성한 다과상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난 오후의 볕이 쏟아지는 평상에 앉아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우리 젊은 양반께서는 요새 폴리다고스에 관련된 소식은 좀 들으셨나? 왜 요즘 아주 시끌벅적한 신입생 한 명이 나타나서 아카데미가 아주 소란스럽다는데.”
“뭐… 그냥저냥 다른 사람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운 신입생의 정체가 글쎄 클라디우스의 도련님이라지 뭔가? 내가 클라디우스에 대해서는 좀 아는데 거기가 아주 그 선조분들부터 어마어마한 가문이거든. 흐흐, 난 요즘에는 그 공자님 무용담을 듣는 재미로 산다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찌나 속이 후련한지.”
난 적당히 영감의 수다에 맞장구를 쳐 주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우리의 찻잔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어 그래, 그 친구가 저기 오네.”
다니엘 영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쿵쿵.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진동음으로 판단컨대 노인이 말한 ‘손님’은 꽤나 육중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 이 친구야! 일찍일찍 좀 다니지. 뭐하고 있다가 이렇게 늦게 와! 자네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렸잖아.”
“…분명히 지난번 헤어질 때 오늘 중으로 방문하겠다고 말했을 텐데? 난 약속 시간을 어긴 적이 없거늘. 왜 내가 늑장을 부렸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구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님의 건장한 가슴팍을 두드리는 다니엘 영감.
노인은 팔을 활짝 편 채 휘두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신장 차이가 워낙 큰 탓에 그 손끝은 손님의 어깨 부위를 맴돌 뿐이었다.
‘라무테 님.’
―응?
‘저 드라콘, 자세히 살펴 주세요.’
이미 바닥을 보인 찻잔을 들어 입가를 가린 후 ‘거구의 손님’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 라무테 님에게 요청을 드렸다.
―왜? 혹시 저 손님한테서 뭔가 수상한 점이라도 있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요. 드라콘이라는 종족 자체가 워낙에 희귀하기도 하고. 저 드라콘의 몸에서 독초와 관련된 냄새도 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 위험한 존재가 아닌가 싶어 요청을 드린 겁니다.’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물론 드라콘이 아주 희귀한 종족인 건 틀림없었고 저자의 몸에서 맹독의 냄새가 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둘러대기 위한 핑계일 뿐.
‘그래. 100년도 훨씬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신이 살아 있는 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지. 드라콘은 장수를 하는 종족이니까. 하지만 당신과의 재회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
차를 마시는 척하며 청동 바구니를 찾아온 드라콘을 다시금 찬찬히 살폈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1.5배는 족히 될 법한 신장.
거목(巨木)처럼 떡 벌어진 어깨.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온몸의 피부를 빽빽하게 뒤덮은 은색 비늘.
그리고 동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듯한 저 우렁우렁한 목소리까지.
드래곤의 후예들과 인간을 절반씩 섞어 놓은 듯한 외형을 한, 기품이 넘치는 거인을 보고 있자니 해묵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왜 당신이 폴리다고스의 도구점에 와 있는 거지? 그때 나에게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타샤드 제국과 황제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큰 탓에 영원히 세상을 등지고 싶다며 말이야.’
물론 저 드라콘이 과거에 서 있었던 자리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자리는 더없이 소박한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폴리다고스의 상업지구를 ‘세상을 등진 자의 보금자리’라 칭할 수는 없는 노릇.
―페이건, 살펴봤는데 조금 특이한 점이 있기는 해. 지금 이렇게 보면 저 드라콘, 평범한 천옷을 입고 있는 것 같잖아. 하지만 그 천 옷 아래에 강철을 덧대어 명치와 심장 등의 주요 급소를 보호하고 있어. 그리고 소매며 발목이며 곳곳에도 자잘한 무기를 숨기고 있고.
‘그래요? 그게 사실이라면 도구 감별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군요.’
―그리고 판금 보호대 주위로 액체가 든 병이 줄줄이 매어져 있는데 그 병 모양이 꼭 투척용 무기 같아. 네가 맡았다는 독 냄새 말이야. 혹시 저 병 안에 있는 게 독액은 아닌 걸까?
한가로이 상업지구 나들이를 나왔다기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는 도망자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법한 옷차림.
저 드라콘이 폭력 행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 년 전 저 드라콘은 손가락 움직임 하나로 수만의 병사를 움직일 수 있는 지고(至高)한 지위에 있었지만 사사로운 폭력 행위를 극도로 경계한 바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그가 무장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자연스레 내 생각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로 나를 찾은 건데?”
“으응, 사실은 여기 우리 앞에 있는 젊은 양반이 줄기 표본을 좀 가지고 왔거든. 그런데 이게 상당한 가치의 물건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 질이 너무 좋은 터라 세부 등급을 매기는 게 영 힘이 들어서 말이야. 마침 자네가 오늘 오는 날이니 그 잘난 솜씨를 봄 빌리려고 그랬지.”
“흥, 결국 이 늙은 몸을 부려 먹을 생각에 찾았다는 거로군.”
“드라콘이 얼마나 오래 사는 종족인지 내 알고 있는데 노인은 무슨. 허튼소리 말고 이 견본이나 들여다봐. 자네, 덩치는 미련하리만치 크지만 그 눈은 날카롭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솜씨 한번 발휘해 보라고.”
“흐음, 귀하께서 준비했다는 그 물건. 내가 잠깐 살펴도 되겠소이까?”
“얼마든지요.”
내 승낙을 얻자마자 드라콘은 안경을 꺼내 든 후 준비한 표본을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120여 년 만에 다시 대화를 한 탓인지 그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폐하께 버림받고 제국으로부터 내쳐진 다 늙은 짐 덩어리일 뿐이오. 미쳐 가는 제국을 막지 못한 이 죄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귀인께서는 이 못난 놈을 구하는 수고를 기울이신 것이오?”
“정녕 당신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한다면 그 막대한 죄를 갚을 방법을 강구해야지요. 도와주시오. 미쳐 가는 제국을 바로 잡을 수는 없겠지만 당신이 키워 낸 미친 불꽃이 세상을 태워 버리는 불상사는 내 막아 드리리다.”
과거로부터 도망친 저 드라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타샤드의 폭군, 갈브레이드 3세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갈브레이드 3세가 처음부터 그렇게 미친놈은 아니었다.
다소 과격하고 호전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즉위 중반부까지의 갈브레이드 3세는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영민하고 결단력 있는 군주임이 분명했다.
그 당시 갈브레이드 3세의 곁에는 적재적소에서 그를 보좌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타샤드 제국은 번영의 나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광의 나날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즉위 후반기에 접어든 갈브레이드 3세가 광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제국은 급속도로 혼란스러워져만 갔고.
황제의 폭주를 억누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신하들이 목숨을 건 간언을 올렸다.
하지만 이미 대륙 통일이라는 야욕에 휩싸인 황제에게 신하들의 충언이 통할 리 만무했으며.
결국,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건 충신들 또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져야만 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부디 백성들을 헤아려 주십시오.”
“스승님… 더 이상 듣기가 싫사오니 그만 물러나시지요.”
“폐하, 소신 목숨을 걸고 간언해 올리옵니다. 부디 어리석은 야망을 포기하시고 과거의 영민하던 폐하의 모습으로….”
“듣기 싫다 하지 않았습니까! 스승, 아니 재상 키에르고! 이 황제의 말을 똑똑히 새겨들으시오. 경의 노망을 참아 주는 것도 여기까지요. 아시겠소? 아버님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 당신을 지켜 주는 것도 여기까지니 그 주둥이 닥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는 말이오!”
황제와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신하들.
그중 가장 명성이 높았던 재상 키에르고.
황제의 스승이었던 키에르고 역시 끝내 황제의 폭주를 막지는 못했고 결국 그조차 미친 황제의 칼날 아래에 목이 잘려 나갔다는 게 세간에 ‘알려진’ 진실이었다.
하지만 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은 아까부터 계속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타샤드의 명재상이자 황제의 스승이었던 키에르고 경. 나와 헤어지던 그 날, 영원히 세상을 등지고 싶다 하였잖습니까? 그런데 어이하여 이곳에 와 계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