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4)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4)화(154/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4)
“아!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말씀드리자면 조로스터 님 본인은 자상하고 공정하신 분이세요. 본가를 떠나 있는 도련님을 챙겨 주시는 것도 그분뿐이시고. 다만 도련님에 대한 호의와는 별개로 그분의 마음속에 자신의 딸이 후계자가 되는 게 가문을 위하는 길이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자상하고 공정?
그렇게 구린 냄새를 풍기는 노인을 하수인으로 부리는 자가 공정하다고?
소피아 씨, 내 조로스터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본인의 신념이야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니까 제가 참견할 바는 아니고. 그래서 그 이벨다라는 아가씨는 뭐 하는 사람인가요? 그래도 명색이 폴리다고스 학년 대표인 저를 꺾어 버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벨다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펠레스트 수양관’에 입소하셔서 오랜 수양을 쌓으신 분이에요. 얼마 전 입소 12주년을 맞이하셨는데 차기 ‘유스티니아’로 지명되셨다고 하더군요.”
“펠레스트 수양관 소속, 그것도 차기 유스티니아라면 아주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닌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혹시 입만 산 떠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으니 마냥 심심하기만 할 일은 없겠네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아가씨길래 감히 현 가주로부터 공인받은 아스트라의 자리를 노리나 했더니.
조로스터 놈이 쥔 패를 확인하고 나니 조금은 납득이 갈 것도 같았다.
‘그래, 펠레스트의 유스티니아라면 폴리다고스 학년 대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어깨 펴고 다닐 정도는 되지.’
그 역사와 전통이 너무나도 압도적인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카데미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폴리다고스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폴리다고스를 제외한 여타의 교육기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광활한 대륙 곳곳에는 자신들만의 특색을 가진 교육기관들이 산재했고 개중에 폴리다고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상당한 명성을 자랑하는 곳들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펠레스트 수양관.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이카데아 반도에 건립된 곳으로 모든 아카데미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성을 보유한 특급 교육기관 중 하나였다.
그리고 펠레스트 수양관이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유명세를 쌓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독특한 인재 교육 방식에 있었다.
해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의 교육생을 모집하는 여타 아카데미와 달리 펠레스트 수양관의 총 정원은 항시 열 명을 초과하지 않았다.
‘깐깐한 입학 기준을 통해 최소한의 소수 정예 입교생을 선발한 후 그들에게 집중 교육을 가해 대륙 최고의 엘리트로 키워 낸다.’
이것이 바로 펠레스트 수양관의 교육 방침이었고 소수 정예 학습을 통해 길러진 펠레스트의 졸업생들은 지금도 대륙 곳곳에서 혁혁한 명성을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유스티니아’는 펠레스트 수양관의 총 학생 대표를 부르는 명칭.
즉 소피아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로스터의 장녀는 아주아주 뛰어난 자질을 갖춘 특급 인재로 보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조로스터는 자신의 딸을 앞세워 아스트라의 후계자 자리를 박탈하려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의 일환으로 내가 목표가 되었다는 건가? 그 이벨다라는 계집아이가 만에 하나 나를 잡아내기만 한다면 본인이 아스트라보다 우월하다는 간접 증거가 되어 줄 테니.’
그래 봤자 아직은 어린아이 장난 수준에 불과한 실력을 가진 딸아이를 앞세워 벌이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가내(家內) 공작질이라니.
하품이 나올 만큼 따분한 시나리오였지만, 소피아 씨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아카데미 간 사절단이 오고 가는 건 딱히 드문 일도 아니지요. 그래서 펠레스트 수양관이 폴리다고스에 보내는 사절단에 조로스터 님이 묻어올 거라는 말인가요? 아니면 그 반대로 조로스터 님이 주가 되는 사절단에 이벨다라는 아가씨가 묻어올 수도 있겠네요.”
“…죄송합니다, 공자님. 이런 말씀을 올리게 돼서 정말 죄송해요. 공자님께서는 저와 도련님에게 호의를 베푸셨을 뿐인데 이런 곤란을 겪게 되다니. 저같이 미천한 것이 하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페르디난드를 대신해….”
“괜찮습니다. 불쾌하지도, 불편하지도, 짜증 나지도 않았으니까 소피아 씨가 그런 표정 하실 거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다니까요. 야산의 들개가 함부로 짖어 댄다 하여 그 산의 ‘정당한 주인’을 탓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자님, 지금 들개라… 말씀하신 게 맞을까요?”
“조만간 아스트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걔한테도 괜히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전해 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기말고사 이후 쭉 따분하던 차에 모처럼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 아주 반가울 지경입니다.”
자신의 딸을 앞세운 조로스터의 도발이 반가울 지경이라는 말은 100% 진심이었다.
요 며칠간 게오르그 로덴토를 흔드는 데에 중점을 두고 움직이다 보니 에지세크 교단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페르디난드의 일부 세력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알아서 기어 와 주는 데다 긁어 볼 수 있는 건수까지 만들어 주겠다니, 나야 고마울 따름이지 뭐. 아무래도 페르디난드는 로덴토 보다 더 규모가 영세한 가문이니까 몇 대 두들겨 주면 훨씬 더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겠지?’
하지만 이런 속내를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일.
조로스터의 무리를 ‘들개’로 지칭한 비유법을 들은 이래로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피아 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난 절반 정도의 진심이 담긴 핑계를 둘러댔다.
“안 그래도 제가 견문이 짧아 다양한 아카데미를 겪어보지 못했는데 조로스터 님의 장녀께서 저를 보기 위해 직접 먼 길을 와 주시다니 아주 기대가 큽니다. 저를 겨냥한 채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펠레스트의 차기 유스티니아를 상대해야 한다니. 이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 * *
“너 미쳤어? 네가 여길 왜 와?”
―내가 가는 거 아냐. 가는 건 조로스터. 난 그저 그의 사절단에 얹혀 가는 부산물일 뿐.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장녀가 아빠를 따라 여행을 가는 거 드문 일 아냐. 이상할 거 없음. 아일리, 과민 반응 지나쳐.
“너 자꾸 되지도 않는 궤변으로 말 돌릴래? 네가 그냥 조로스터라는 얼간이를 따라 세상 구경을 나오는 거라면 내가 이렇게 반응하지도 않아! 그런데 네 목표는 따로 있는 거잖아.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잡겠다니. 왜 갑자기 너답지 않은 무리수를 두고 그래?”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아일리였지만 지금만큼은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에지세크의 인형이 거처를 벗어나 폴리다고스에 오겠다는 것만 해도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여기 와서 뭘 어쩌겠다고?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꺾음으로써 페르디난드를 삼키는 과업을 촉진시키겠다니.
아일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섭정께서도 허락하셨어. 섭정께서 허락하신 일, 아일리가 막을 권리 없어. 나 지난 17년간 교단과 페르디난드 저택 그리고 임시 신전, 세 곳만 오락가락하며 꾹 참았어. 섭정께서 말씀하시길 내 인내심이 가상하대. 그래서 나에게도 조금은 자유를 주고 싶다 하셨어.
“누려, 자유든 뭐든 네 맘대로 누려! 누가 누리지 말래? 그런데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여기에서 왜 나와? 의욕을 보이는 건 좋다만 네 할 일, 페르디난드를 삼키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해!”
―아일리가 늑장만 안 부렸어도 나 가만히 있었어. 하지만 1학기가 다 지나도록 아스트라 페르디난드. 치명상 없어, 중독도 없어, 사지도 말짱해. 그래서는 안 돼.
“야! 내가 그건 나름 진척이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그 꼬마의 행동반경을 따는 데 성공했으니까 조만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잖아!”
―아스트라가 학년 대표에서 밀린 건 좋은 소식이지만 그거 아일리가 한 일 아냐. 그리고 나만 못 참는 거 아냐. 주교님들도 부글부글. 이제 안 기다려. 마녀들이 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직접 하겠어. 막지 마, 아니 막고 싶어도 막지 못해. 섭정께서 허락하신 일이니까.
“어휴… 그래, 됐다 됐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결국 아일리는 수정구를 앞에 둔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현장 사령관의 권한을 모두 사용해서라도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아가의 말마따나 섭정께서 허락하신 일을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 없었으니까.
―아일리, 친구이자 동지끼리 속상하게 해서 미안. 하지만 이해해 줘. 이건 우리에게 기회야. 이번 학기를 통해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아스트라 페르디난드보다 뛰어나다는 게 분명히 입증됐어.
“그래그래, 그건 분명히 입증됐지. 아가야, 그래서 그게 그렇게 좋아?”
―이런 상황에서 내가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잡는다면 흐름은 완전히 내 쪽으로 넘어와. 눈치를 보던 영감들도 내 쪽으로 넘어와. 다 넘어오면 공작도 더 이상은 못 버텨. 그럼, 그렇게만 되면 근 시일 내에 공작의 숨통도 완전히 끊어 버릴 수 있어. 그럼 대업도 가까워져. 우리 교단만을 위한 일 아냐. 모두를 위한 일. 아일리, 이해해야 해.
치켜올려진 아일리의 눈썹이 염려되었는지 아가는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가며 설득에 나섰다.
―그리고 나 자신 있어. 아일리, 지난번에 말했어. 무스카 벨타지온이 페이건 클라디우스 때려눕혔다고. 무스카가 한 일 나도 할 수 있어. 나 여기서 열심히 훈련했어. 이제 무스카처럼 할 수 있어.
“아가야, 아가야, 귀여운 우리 아가야. 네가 잘 모르나 본데 그 멍멍이는 순전히 싸움 실력 하나 때문에, 그 멍청한 대가리에도 불구하고 잠입의 과업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별종이야. 싸움에만 특화된 특이종 늑대가 했다고 너도 할 수 있다 믿으면 어떡해?”
아일리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을 통통 두드리자 그녀의 쇄골이 미려한 진동을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내 보고서 끝까지 안 읽었어? 그 멍멍이가 분명히 말했어.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결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즉, 그렇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건 진짜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아니란 말이야.”
―상관없어. 그럼 전력을 다한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부셔서 내가 무스카 벨타지온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하겠어. 아일리, 잘 들어. 우리가 교단 배움의 전당에 ‘펠레스트 수양관’이라는 껍데기를 걸쳐 놓은 채 90년간 숨을 죽인 이유는 단 하나. 나를 완성시키기 위함이었어.
화르륵.
마냥 무표정하기만 할 것 같던 아가가 눈을 부라리자 ‘보라색’ 불꽃이 그녀의 실루엣을 따라 피어올랐다.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어. 이제부터는 우리 에지세크가 기울인 노력이 검증되는 시간이야. 그리고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그 검증 대상으로 아주 적당해.
광기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맹신(盲信)의 결의가 묻어나는 눈동자를 부라리며 에지세크의 인형은 장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아일리, 그곳에서 똑바로 지켜봐.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나 조만간 폴리다고스로 가. 그리고 그곳에서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반병신을 만들어 놓을 거야.
* * *
“하하! 어서 오게. 열 시는 되어야 올 줄 알았더니 이렇게 일찍 와 줄 줄이야. 물론 자네를 일찍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니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일세. 하하!”
정규 수업 마무리를 사흘 앞둔 어느 날 아침.
난 요아힘 벤제르센의 집무실을 찾아 차 대접을 받고 있었다.
“참 신기하지? 지금껏 정말 많은 학생들을 만나 왔지만, 자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오늘의 만남은 조금 더 특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거든. 하하! 요즘 같아서는 실험국장님께서 왜 자네를 그리도 각별히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아니요, 치안국장님 부탁입니다만 그건 끝까지 모르셨으면 합니다.
알아서 좋을 게 없잖아요?
‘후우….’
요아힘 벤제르센 몰래 숨을 들이마셨다.
학년 대표로서의 의무와 권리.
생각해 보면 대표로 취임한 이래 난 줄곧 학년 대표로서의 권한만을 누려 왔었다.
이를테면 상급생 훈련장을 거들먹거리며 내 마음대로 드나든다든가, 아스라의 숲을 혈혈단신으로 출입한다든가.
하지만 모든 권리에는 그에 따른 의무가 부과되기 마련이었고 결국 난 줄곧 미뤄 왔던 채무를 탕감하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해야만 했다.
“본격적인 업무는 다음 학기부터 맡게 되겠지만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 자네에게도 더 좋을 것 같아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게나.”
“배려 감사합니다, 국장님.”
“이 정도 가지고 배려는 무슨. 자, 여기 자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탁자 위에 쭈욱 깔아 놓았으니 원하는 걸로 골라 보게나. 흐음, 과연 우리 폴리다고스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기린아께서 어떤 선택을 할지 나도 몹시 궁금해지는 걸.”
탁자 위에는 내가 다음 학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목록이 기재된 문서가 늘어서 있었고 그 문서 상단에는 해당 업무를 주관하는 부서 명칭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첫 번째 문서를 막 집어 든 바로 그때.
“그런데 국장님, 페이건 군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굉장히 많네요. 이 정도로 다채로운 경우의 수가 주어지는 건 드문 일 아닌가요?”
“확실히 그런 편이기는 하지. 다른 학생회 간부들이 본다면 섭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나? 부서를 담당하는 교수들이 다음 학기에는 페이건 군과 꼭 일을 해 보고 싶다며 지원서를 들이밀어 오는데. 내 마음대로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하!”
“아, 그랬군요. 페이건, 알고 보니 인기쟁이였네. 그것도 교수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진짜 인기쟁이.”
오늘따라 유독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이 앉아 있는 이 장소가 치안국장 집무실이라는 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폴리다고스의 왕자님.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한 나는 맞은편에 앉은 채 차를 홀짝대며 깔깔거리기에 여념이 없는 당사자를 향해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
‘친애하고 존경하는 유리안 선배님. 제 다음 학기 중점 추진 과제를 선정하는 자리에 선배님이 굳이 오셔서 깔깔거리고 계시는 이유가 뭔지 몹시도 궁금한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답변을 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