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7)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7)화(157/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7)
‘아까 오후에 만났던 그 여자아이는 아주 깨끗하다고 그러셨죠?’
―응. 아까 걔한테서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났어. 그런데 이 남자한테는 아주 지독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
‘대놓고 시비를 걸어온 딸은 깔끔했는데 그 태도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지만 어쨌거나 사과를 해 온 아비의 몸에서는 냄새가 풀풀이라니… 재미있군요.’
조로스터와 이벨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수상한지를 묻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벨다였다.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대외활동을 해 온 조로스터에 비해 이벨다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시피(심지어 그녀가 차기 유스티니아에 등극한 경위조차도 알려진 게 없었다) 했으니까.
그런데 지난 행적과는 정반대인 결과가 나오다니.
‘행동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에지세크 그 미친놈들과 더 많이 닮아 있는 건 딸 쪽이라는 말이지.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어쩌면 놈들의 위험도에 따라 감지 여부가 달라지는 것일지도….’
아직 명확한 건 없지만 추론을 전개할 수 있는 단서가 늘어나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
다만 한 사람의 친구로서 아스트라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문의 2인자이자 사실상의 얼굴이라는 자가 이토록 구린 냄새를 풍기다니. 아스트라, 친구로서 이런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너네 가문 꼬라지가 아주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로스터는 여전히 그 뻐기는 얼굴을 한 채 알크페인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내 내 쪽을 향해서도 손을 뻗어 왔다.
“그러고 보니 페이건 군, 자네가 내 조카와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고맙네, 그 녀석 다소 성격이 모난 데가 있어 겉돌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자네 같은 훌륭한 인재가 챙겨 주는 덕분에 한 사람 몫은 해내고 있으니 참 다행인 일이야.”
듣기에 따라 겸양의 말로도, 아스트라를 비하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는 칭찬.
“챙겨 주다니요. 감히 제가 어디라고 페르디난드 공작 각하께서 직접 공인하신 백룡가문의 정식 후계자를 챙겨 주겠습니까?”
“….”
후계자라는 말 한마디에 꿈틀하는 조로스터의 눈썹.
그 눈썹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난 줄곧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을 읊조렸다.
“아스트라처럼 굳건한 후계자가 있다는 게 페르디난드로서는 참으로 축복인 일 아니겠습니까? 백룡가문이 훌륭한 후계자를 얻은 걸 늦었지만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
내 손을 꽉 쥐어 보이는 것을 끝으로 조로스터는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네 녀석도 상당히 독한 혀를 가지고 있구나. 실험국장님에게 총애를 받더니 그것도 닮아 가는 모양이지?”
“천만에요. 총애를 받아 본 적도 그분을 닮아 간 적도 결코 없으니 부디 그런 말씀은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난 그제야 규율국장과 제대로 된 독대를 할 수 있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가지 말고 그 자리에 앉아 있도록.”
드르륵.
서랍장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궐련 상자와 수정 재떨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우….”
순식간에 집무실을 가득 채운 연기.
그리고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두 장의 증서가 놓였다.
“이 증서가 의미하는 것이 뭔지 알고는 있겠지?”
“레기온과 테시온. 위대한 형제가 남긴 영광이 폴리다고스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 아닙니까?”
“그래. 그 두 분의 뜻이 세상에 공개된 이래로 레기온과 테시온은 항상 폴리다고스의 품 안에 머물러 있었지.”
레기온과 테시온.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 대륙 중부를 무대로 활동했던 위대한 마법사 형제였다.
이 형제는 이룩한 업적이 워낙 위대했기에 전 대륙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했고 노년기에 접어든 그들이 그간의 깨우침이 담긴 명상록을 집필 중이라는 소문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관심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레기온과 테시온 형제의 모든 것이 담긴 기록이라면 그 가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귀한 물건임이 틀림없었기에 명상록의 행방 또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형제의 기록이 공개되는 날이 다가왔고 마법사 형제는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선언했다.
[대륙에서 가장 위대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아카데미 다섯 곳에 초대장을 보낼 것이니 초대장을 받은 아카데미들은 스무 살이 넘은 학생과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은 학생을 각 다섯 명씩 선발해 지정된 장소로 보내도록 하시오.] [한데 모인 학생들을 상대로 시험을 치른 후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이 소속된 아카데미에 우리의 기록을 전해 줄 것이오. 스무 살이 넘은 학생은 레기온의 기록을 받게 될 것이고 스무 살이 되지 않은 학생은 테시온의 기록을 받게 될 것이외다.] [비록 지금은 다섯 아카데미로만 초대장을 보내지만, 훗날 우리의 기록을 보관할 기회는 모든 아카데미에 열릴 것이니. 부디 우리의 자그마한 성취가 후학들의 수양을 도모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오.]자신들의 기록을 아카데미에 기증하겠다는 형제의 결단.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 위대한 선택에 박수갈채를 보냈고 머지않아 명상록을 얻기 위한 아카데미 간 대항전이 벌어졌다.
대항전의 결과 승리자는 폴리다고스가 되었고(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레기온과 테시온은 안 그래도 드높던 폴리다고스의 명예를 한 층 더 드높여 주는 깃발이 되었다.
“레기온과 테시온이 폴리다고스에 온 지 498년. 그동안 이 비보(祕寶)의 탈환을 노리는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우리의 선현(先賢)들께서는 그 모든 도전을 이겨 내시고 폴리다고스의 영광을 지켜 오셨다. 타 아카데미가 폴리다고스에 도전하기 위해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느냐?”
“레기온, 테시온 형제의 부름을 받은 최초의 아카데미 전부를 제압하여야 합니다. 만약 최초의 다섯 아카데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명상록을 노리고자 한다면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네 곳의 아카데미를 제압하고 올 필요가 있겠지요.”
500년에 달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레기온, 테시온을 둘러싼 도전이 자주 발생하지 않은 건 무척이나 까다로운 도전 절차에 기인하는 바가 컸다.
현재 보관자인 폴리다고스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아카데미 네 곳을 모두 제압해야만 했는데 그게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분명히 말해서 우리에게 도전할 자격을 갖추는 게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지. 하지만 지난 500년간 그 쉽지 않은 일들은 몇 번이고 일어났었고 그때마다 폴리다고스는 상당히 까다로운 도전을 맞상대해야만 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연기를 내뿜는 알크페인.
그 표정을 보아하니 펠레스트 수양관의 차기 유스티니아가 자신의 아비까지 동반하여 이곳에 온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펠레스트 수양관이 레기온과 테시온에 대한 도전장을 내민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 당사자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이미 다른 아카데미의 제압을 완료했다는 뜻이고 말입니다.”
“그래. 테시온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다는구나. 자격을 갖춘 당사자가 승부를 요청했고 결격 사유가 없으니 우리는 그 도전을 받아들여야겠지.”
“레기온은 도전하지 않고 테시온만 도전을 하겠다는 겁니까?”
“보통은 두 군데 모두 도전을 하기 마련인데 레기온은 내버려 두고 테시온에만 도전을 하겠다니. 참으로 영악한 자들이 아니더냐? 유리안이 버티고 있는 레기온 쪽은 도전해 봤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게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레기온에 도전하지 않았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테시온의 경우는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겠군요?”
“그래, 바로 보았다.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부연 설명을 하자면 펠레스트 쪽은 차기 유스티니아로 지명된 페르디난드의 여식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선봉에 서 준다면 폴리다고스를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긴 모양이지.”
여느 폴리다고스의 학생이라면 ‘건방진 자들이 어찌 감히 우리의 영광에 도전을!’이라며 비분강개했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알크페인 역시 나에게 그 정도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일 오전부로 펠레스트의 도전에 응대할 학생을 뽑는 과정에 돌입할 것이다. 4학년 이하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선발이니만큼 1학년 대표인 네 녀석 역시 유력 후보로 거론될 터.”
“저는 그 부분에 관해서 국장님과 생각이 다릅니다. 대표 선발은 별도로 구성되는 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인데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지체 높은 교수님들께서 과연 저 같은 회색분자를 폴리다고스의 대표로 선발하려 드실까요?”
“회색분자라… 그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네 입을 통해 듣게 되다니, 재미있구나.”
“앞장서서 폴리다고스의 명예를 지켜 줄 4학년 선배들이 있고. 2, 3학년에도 우수한 선배들이 즐비한 마당에 저같이 미천한 1학년에게까지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역시 네 녀석은 혀가 독해. 유리안이나 그 게오르그 로덴토조차도 내 앞에서 이 정도까지 독기를 품지는 못하는데 말이지.”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미소.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규율국장은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그 노인네들이야 처음에는 이를 악물고 너를 외면하려 들겠지. 하지만 궁지에 몰리게 되면 결국은 너를 찾게 될 거야.”
“국장님께서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거라고 예상하시는 겁니까?”
“…페르디난드의 여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들은 바가 있지. 그 소문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리될 가능성이 꽤 높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냥 싸구려 같아 보이기만 하던 조로스터의 웃음.
하지만 그 웃음 속에 숨겨진 칼은 싸구려가 절대 아닌 듯했고 폴리다고스의 규율국장은 눈을 감은 채 묵직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처음부터 너를 후보로 선발했으면 모를까. 궁지에 몰려 허겁지겁 너를 찾는 건 정말이지 추한 일이지. 사실은 그래서 너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이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혹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폴리다고스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싸워 주기를 바란다. 나를 포함한 교수들이 그간 너에게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는… 내가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사과하도록 하마.”
“국장님?”
“내 사과로 우리의 옹졸함이 모두 지워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네가 폴리다고스의 명예를 조금은 간절하게 생각해 줬으면 하는구나.”
사과라니… 저 깐깐한 알크페인이 사과?
그것도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기에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규율국장은 조금 전의 그 미소를 지어 보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결코 인정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조차 인정하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던 분의 말버릇이셨지.”
평소의 알크페인답지 않은 아련하고 쓸쓸한 눈동자.
“네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잊었던 이 말을 떠올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담배 연기가 걷힘과 동시에 알크페인의 눈동자를 물들였던 색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알크페인은 예의 그 빙하와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건은 이걸로 끝이다. 혹시 할 말이 있다면 하고 없다면 이만 나가보도록.”
* * *
“이벨다, 역시 네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더구나. 그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놈, 아주 보통 교만한 게 아니야. 한참 어른인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데 감히 한다는 말이 뭐? 사과를 받아들이고 없던 일로 하겠다고? 그 알량한 명성에 취해 있는 모습이라니. 이래서 천한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하는 거겠지.”
“….”
“그리고 알크페인, 그놈 역시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야. 우리의 도전을 거부할 명분이 없으니 도전을 받아들이기는 했다만. 그 눈 치켜뜨는 꼬라지는…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아빠.”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네 덕분에 이 아비가 아주 통쾌했단다. 네가 건방지게 뻐기던 놈들을 꺾었다는 징표를 알크페인 놈에게 들이미니….”
“시끄러!”
“응? 우리 딸, 지금 뭐라고?”
“시끄러우니까 입 닥치라고.”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던 이벨다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폭언.
“내가 말했지? 명상하고 있을 때는 입 닥치고 있으라고! 또 그사이에 그걸 다 잊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아, 아니. 그게 말이다….”
지체 높은 귀족가의 아가씨께서 친부(親父)를 향해 폭언을 일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욱더 경악스러운 건 딸의 폭언을 받아들이는 아비의 태도였다.
“미, 미안하구나. 내가 조금 들떠 있다 보니… 그만….”
조로스터는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는데 그 모습은 꼭 난폭하기 그지없는 상사를 대하는 비굴한 부하 직원을 연상케 했다.
“…아빠, 이리 가까이 와 봐.”
이벨다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조로스터는 허겁지겁 딸의 곁으로 다가갔고.
‘조로스터 페르디난드의 딸’이자 ‘에지세크의 충실한 인형’인 소녀는 아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빠 화내서 미안. 그치만 이게 다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아빠한테 페르디난드를 안겨 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 다 알지?”
“알다마다. 이 아비가 우리 속 깊은 딸의 진심을 모를 리 없지 않니?”
“그래. 역시 우리 아빠는 똑똑해. 그리고 걱정하지 마. 아빠가 오늘 받은 굴욕감은 이 딸이 조만간에 몇 배로 갚아 줄 테니. 아빠를 화나게 만든 그 건방진 놈은 반드시 대표로 나올 거야. 처음에는 어떨지 몰라도 궁지에 몰리게 된다면 결국 폴리다고스 놈들은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카드를 꺼내 들겠지.”
반복된 학습과 세뇌로 반쯤은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랑하는 아빠’를 내려다보며 ‘이벨다 페르디난드’는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놈과 무대에서 만나게 되거든 내가 그놈을 아예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날을 기다리며 며칠만 더 참아. 알겠지,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