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8)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8)화(158/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8)
“이야기 들었어? 어제 있었던 1차전에서 우리 쪽이 완전히 깨졌대.”
보급 창고의 나무들에게 공급할 영양액을 제조하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쪽 대표는 누구였는데?”
“4학년의 해글러 나이투 선배.”
“해글러 나이투? 그 사람은 완전히 끝난 거 아니었어?”
“테시온 경쟁이 벌어진다는 공지가 붙자마자 선발 위원들을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나 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이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며 사정사정을 했다나?”
“엄선해서 대표를 뽑아야 하는 선발 위원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카드였겠네. 일단 뽑아 놓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죽기 살기로 펠레스트와 싸워 줄 테니까.”
“그치, 그런 걸 노리고 선발한 거겠지. 그리고 너도 잘 알잖아? 그 선배, 행동은 개차반이지만 그래도 실력은 괜찮았다는 거.”
“…그런데도 1차전에서 완전히 깨져 버렸다. 펠레스트 쪽의 선봉은 누구였는데?”
“이벨다 페르디난드. 아으… 그런데 걔, 생긴 거랑 달리 손속이 장난 아니더라. 그 정도 실력 차라면 좋게좋게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해글러 선배의 갈비뼈를… 어휴! 끔찍해.”
어제 목격한 광경이 떠올랐는지 카밀라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미간을 찌푸렸다.
“필사의 각오를 밝힌 해글러 나이투가 완전히 떡이 되어 버렸으니 선발 위원 교수들은 근심이 크겠네. 다음에는 누구를 내보내려나?”
“솔직히 말하면 누구를 뽑더라도 뚜렷한 답은 없지 뭐. 테시온 경쟁은 승자연전 방식이잖아? 적의 선봉을 꺾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는데 저쪽의 첫 번째 카드가 너무 압도적이니… 어휴.”
펠레스트가 이토록 완벽하게 기선을 제압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던 걸까?
카밀라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숨을 토해 냈다.
“똑똑한 교수님들이 모인 선발 위원회이니만큼 어떻게든 답을 찾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예상했던 범주 내의 결과였던지라(물론 나도 해글러 나이투가 1번 타자로 나서리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별다른 동요 없이 영양액 제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2차전은 내일인데 혹시 2차전도 우리가 지게 되면 아스트라도 동원되지 않을까?”
“아스트라가 동원된다면 적의 선봉을 제압한 다음이겠지. 아무리 승패의 세계가 매정하다고 해도 설마 같은 집안의 사촌 형제를 싸움 붙이기야 하겠어?”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아스트라와 이벨다가 싸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만에 하나라도 아스트라가 이벨다와의 결투에서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위태하던 후계자 자리가 정말 간당간당해질 텐데 그건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었으니까.
‘…아직은 안 돼. 적어도 내가 페르디난드에 숨어 있는 에지세크 놈들의 정체를 전부 다 파악하기 전까지는 아스트라가 후계자 자리를 지켜 주고 있어야만 해.’
찰랑.
영양액 배합을 마친 후 등을 돌리자 턱을 괸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카밀라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하는 눈치인데 과연 뭘 원하는 걸까?
“아! 그리고 혹시 너한테도 선발 제한이 들어오거든 그 즉시 나한테 말해 줘. 선발 위원들한테는 나보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쪽이 저런 식의 개싸움에 훨씬 더 능하니까 그놈 뽑아 가라고 말하면 돼.”
“왜? 내가 이벨다 페르디난드를 못 이길 것 같아서? 그래서 네가 대신 싸워 주기라도 하려고?”
“어.”
“…!”
“물론 카밀라 너라면 그 깡패 같은 꼬맹이라도 좋은 승부가 되겠지. 하지만 네 실력과는 별개로 그래도 내가 남잔데 네가 그 깡패 같은 꼬맹이랑 드잡이질하는 걸 어떻게 지켜만 보고 있겠어. 그러니까 괜히 기분 나빠하지 말고 혹시 너한테까지 순번이 오거든 곧바로 나한테 넘겨. 알았지?”
“….”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조금 두근거려서.”
“하, 그렇게 히죽거리는 얼굴로 두근거려 하는 사람도 있었나?”
쪼로록.
완성된 영양액을 작은 병에 나눠 담은 후 가죽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걸 보급 창고로 들고 가 뿌려 주면 이번 주 영양 공급은 끝.
“흐으음,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방금 같은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건 또 몰랐네.”
“이 정도 가지고 깜짝 놀라는 거 보면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 대해 참 많은 걸 모르고 있나 봐.”
“그야 네가 항상 비밀이 많으니까 그렇지.”
“딱히 비밀 같은 건 가져 본 적 없지만, 인심 쓴다. 오늘 나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 더 말해 줄게, 나는 말이지.”
사용을 끝낸 조제 도구를 헹구자 향긋한 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쯤 카밀라의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을 향기에 담아 진심을 전했다.
“예의 없는 것들한테는 절대로 안 져. 그러니까 미안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바로 나한테 떠넘기면 돼.”
* * *
서걱서걱.
순은으로 도금된 나이프가 마리네이드된 사슴 고기 표면을 기분 좋게 파고들었다.
2연전을 내리 승리한 덕분일까?
저녁상을 즐기는 조로스터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결과가 이리도 수월해져 버리니 싱겁다는 생각마저 든다는 말이지.”
“….”
“폴리다고스의 4학년이 뭐니 하며 뻐기더니 우리 이벨다 앞에서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스러지는 꼬락서니라니. 크흐! 아스트라, 너도 조금은 분발해야 할 것 같구나. 온통 쭉정이들만 가득한 폴리다고스에 있으면서 학년 대표 자리 하나 쟁취해 내지 못하다니. 이래서야 가문의 수치가 아니겠느냐, 쯔쯔.”
쨍강쨍강.
조로스터가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포크와 나이프를 맞부딪쳐 대자 불쾌한 소리가 식탁 건너편까지 똑똑히 전해졌다.
“이벨다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 냈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두 번의 승부가 끝났을 뿐. 펠레스트의 승리를 선언하기까지는 아직 세 번의 승리가 더 필요하오니 조금은 더 지켜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흥! 지켜보기는 뭘 더 지켜본다는 말이냐! 어제오늘 4학년씩이나 되는 놈들이 연이어 나왔지만, 우리 이벨다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걸 너도 지켜봤을 텐데?”
교만한 짐승의 표정.
조로스터는 오직 아스트라 앞에서만 보여 주는 표정을 한 채 한껏 승리감에 도취되었고 결국 아스트라는 식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방문한 숙부의 저녁 식사 초대라 하여 큰맘 먹고 응했더니만 이토록 더러운 말의 배설을 듣게 될 줄이야.
“숙부님, 외람되이 들릴 수 있겠지만 이 조카 한 말씀 고해 올리겠사옵니다. 아직 폴리다고스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폴리다고스가 전력을 다한 이후에도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는 저 또한 아무 말 없이 숙부님의 의견을 따르겠사오나 지금은 아니옵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니? 하하! 설마 3차전에는 네가 이벨다를 상대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그래, 그것도 나쁠 건 없겠지.”
“제가 3차전에 나서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사오나 설령 제가 나서서 패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네가 아니라면… 설마 페이건 클라디우스, 그 애송이를 말하는 것이냐?”
“숙부님께서 잘 알고 계시는 듯하니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숙부님, 이 조카가 간청 드리옵건데 눈앞의 상황에 현혹되지 않고 장기적인 판을 보는 안목을 키우십시오. 아직 어린 저보다도 안목이 부족하셔서야 어찌 앞으로 가문의 일을 살필 수 있겠사옵니까?”
“뭣이? 네놈이 감히 숙부인 나에게….”
“그럼 할 일이 있어 이만 물러가 보겠사옵니다.”
조로스터가 뭐라고 말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아스트라는 식탁을 떠나 버렸고 졸지에 혼자 남은 숙부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조카의 신뢰를 조롱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흥! 천한 것이 과분한 지위를 꿰차고 앉았더니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군. 유유상종이라더니… 그래, 어디 한번 천한 것들끼리 실컷 서로를 끌어안아 보거라. 그래 봤자 천것들이 맞이하는 결과는 달라질 게 없을 테니.”
* * *
“오늘 있었던 3차전도 결국 우리 아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어. 이쯤에서 전투 전문가님의 소감을 듣고 싶은데, 어때?”
“넌 일주일 전에 그 질문을 한 바 있고 난 그에 따른 대답을 줬어. 그런데 뭐가 또 궁금하다는 거지?”
“그때는 1차전도 하기 전이었고 지금은 아가가 3차전을 내리, 그것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리한 상황이잖아. 상황이 바뀌었으니 무스카 군의 소감도 바뀌지 않았을까 싶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어머! 그럼 무스카 벨타지온 군께서는 결국은 폴리다고스가 승리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거야? 폴리다고스가 궁지에 몰리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도 뜻을 바꾸지 않다니. 정말, 심지가 굳건하기도 하지.”
아일리는 짐짓 호들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도발을 시도했지만 무스카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을 뿐 의견을 바꿀 마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폴리다고스에는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있으니까?”
“입으로는 주시 대상이니 뭐니 하며 요란을 떨더만 아직도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대한 파악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지? 비록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페이건 클라디우스는 진짜야. 아직도 그걸 몰라?”
“어머나! 도통 칭찬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우리 멍멍이 군이 웬일이실까? 지난번에 페이건 군과 치른 대련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아직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대한 완전한 파악은 끝내지 못했어. 하지만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게 전부인, 그 머저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지금도 알 수 있지.”
더 이상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던 무스카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수련장으로 향하며 이벨다를 위한 전언을 남겼다.
“그 멍청한 인형한테 전해. 험한 꼴 보며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거든 설치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고 얌전히 있다 꺼지라고.”
* * *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선발을 맡은 교수님들도 이 카드만은 꺼내고 싶지 않았을 텐데.”
“내리 4연패를 당했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꺼내 들 수 있는 초강수를 꺼내는 수밖에.”
“나도 조금 전에 들은 건데 4차전이 그렇게 끝나자마자 교수님들이 단체로 그 녀석을 찾아가 거의 엎드려 빌다시피 했대.”
“엑! 그 자존심 강한 교수님들이 1학년 꼬마를 상대로 고개를 숙였다고?”
“어쩔 수 없잖아. 교수님들 대에서 테시온을 빼앗기는 치욕을 겪는 것보다는 자존심을 꺾고 고개 한번 숙이는 게 100배는 낫지.”
폴리다고스와 펠레스트 간의 테시온 쟁탈전 4차전이 종료된 그날 밤.
폴리다고스 대강당 복도에는 내일모레 있을(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5차전의 대표가 정해졌음을 알리는 공지가 나붙었고.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그 녀석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
“그러게,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놈 생각하면 짜증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설마 아카데미의 명예가 그놈 어깨에 걸리는 상황이 올 줄이야.”
그 순간 극도로 침울해져 있던 폴리다고스 학생들의 분위기가 일거에 반전되기 시작했다.
그간의 무지막지한 일들 때문에 그 이름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수야 없었지만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5차전 대표로 당연히 그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모레는 우리가 이기겠지?”
“당연하지. 차기 유스티니아라는 그 페르디난드의 꼬마도 진짜 어마어마하기는 하지만… 그 녀석이 지겠냐? 아니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해?”
“하긴 유스티니아가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그 괴물을 어떻게 이겨. 참 웃기지? 적일 때는 꼴도 보기 싫었는데 이럴 때는 또 세상 든든하네.”
“사실 냉정히 생각하면 진즉에 이 카드를 꺼냈어야 해. 해글러 나이투가 개박살이 났을 때부터 이건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아무튼, 5차전은 좀 마음 놓고 볼 수 있겠네.”
그렇게 1차전부터 4차전까지 내리 4연패를 당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나누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대화가 오가는 동안.
침울한 분위기 일색이었던 카페테리아 또한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고.
모처럼 만의 기대가 넘실거리는 분위기 틈 사이로 시간은 다시금 내달리기 시작해 마침내 운명의 5차전 당일의 아침이 밝아 왔다.
* * *
―으하아암!
‘아침부터 기운 빠지게 왜 하품을 하고 그래?’
―그치만 그제랑 어제 이틀 연속으로 잠을 설쳤단 말이야. 히히! 수염 허연 교수들이 떼거지로 이 방에 찾아와서 ‘클라디우스 군, 부디 잘 부탁하네.’라거나 ‘우리의 과오는 잊고 아카데미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게.’라고 사정사정한 걸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져서 잠을 잘 수 없었는걸. 히히힛!
‘그 정도 광경을 가지고 이틀 연속을 낄낄대다니 그야말로 간장 종지만 한 소갈머리네.’
북슬이에게 가벼운 핀잔을 준 후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이벨다 페르디난드와의 결투가 벌어지기까지 앞으로 두 시간.
이번 일을 통해 내 몸값을 높일 수 있을 만큼 높여 놓는 데 성공했으니 그 몸값에 어울리는 증명을 해 보여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내린 거창한 정의가 무색하게도 결투 당일의 아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폴리다고스에 입학한 이래로 결투 비스무리한 걸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정말이지 덤덤한 기분으로 준비에 임할 수 있었으니까.
똑똑.
―흐에에, 누구징?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평소처럼 북슬이에게 줄 과자를 급양하고 라무테 님과 나를 위한 차를 끓이고 있으려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스트라, 네가 이 시간에는 웬일이야? 오늘은 치료하는 날 아니잖아?”
“페이건… 너에게 사과할 일이 있어서. 그래서 네가 결투를 하기 전에 찾아왔어.”
“사과? 글쎄,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내가 너한테 사과받을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방문을 열자 평소에 비해 조금 더 침울한 표정의 아스트라가 보였다.
“이벨다와의 승부. 네가 아니라 내가 책임졌어야 하는 문제인데, 미안. 내가 못난 탓에 너한테 부담을….”
“아침 일찍 와서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나한테 다섯 번째 선수를 책임져 달라고 간청한 것도 선발위 교수님들이고 내 이름을 적은 공지를 붙인 것도 교수님들인데 네가 나한테 왜 미안해? 너 혹시 뒤에서 교수님들 조종하고 그랬던 거야?”
“….”
반쯤은 농담을 섞어 말을 해 봤지만, 아스트라의 표정은 여전히 침울하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 지금쯤 이 녀석의 가슴은 죄책감과 분노.
그리고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을 터.
물론 난 아스트라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스트라가 당당하게 이벨다 페르디난드를 상대하겠다고 나서지 못한 건 작금의 상황이 워낙에 복잡하기 때문이지 아스트라가 비겁했기 때문이 아니니까.
“야,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두는데 설령 네가 대표로 나가겠다고 해도 그건 내가 뜯어말렸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표정 지을 거 없어.”
“왜? 내가 이벨다한테 질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에는 아스트라가 끝내 억누르지 못한 이글거림이 잔뜩 배어 있었다.
“네가 제대로 된 몸 상태로 가진 힘을 100% 발휘할 수 있다면 네 사촌 동생을 상대로도 충분히 해 볼 만하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
“너 최근 10년간 단 한 번이라도 전력을 기울여서 싸워 본 적 있어?”
“알고 있었구나.”
“내가 너와 소피아 씨의 치료를 담당한 지 한 달 반이 다 되어 가는 데 설마 그걸 몰랐을까 봐?”
아스트라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난 화상의 흉터로 가득한 녀석의 가슴을 쿡 하고 찔러 보인 후 말을 이어 나갔다.
“너와 소피아 씨의 상처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완치시켜 놓을 거야. 버릇없는 사촌 여동생과 승부를 가리고 싶은 네 마음은 이해한다만 그거 잠깐 뒤로 미뤄 놓도록 해.”
“페이건….”
“아 그리고 나 너한테 한가지 확인받고 싶은 게 있는데. 이벨다 페르디난드 말이야, 내가 좀 세게 때려도 되냐?”
“…뭐?”
“오늘 내 몸 상태가 좀 지나치게 좋거든. 그래서 힘 조절이 잘 안 될지도 몰라.”
“내가 말한다고 안 때릴 것도 아니면서.”
줄곧 침울했던 아스트라의 얼굴에 옅게나마 미소가 맺혔고 난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두 시간 후를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좀 많이 아프게 때릴 예정이거든. 그래서 통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