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59)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9)화(159/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59)
와아아.
“나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나왔어!”
“내가 쟤를 응원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제발 힘 좀 내 줘. 너까지 오늘 쓰러져 버리면 정말 끝이란 말이야!”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 무대로 들어서자 열화와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중앙 무대를 빙 둘러 감싼 관객석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긴장한 관객들이 쏟아 내는 열기 덕분에 분위기는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해글러 나이투 때와 비교하면 적어도 열 배는 되겠군.’
폴리다고스의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는 비상 상황이 목전으로 다가왔다는 위기감 때문일까?
대부분의 관객들은 한마음이 된 채 나를 향해 응원을 보내고 있었고.
“그럼 잠시 후에 있을 시합에 앞서 장비 확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양 선수는 중앙 위치로!”
그 열화와도 같은 함성 건너편에 이벨다 페르디난드가 위치해 있었다.
눈썹 위에서 일자로 잘린 단발머리와 발목 중간쯤에서 찰랑이는 발찌.
시원한 민소매 대련복을 입은 탓에 훤히 드러난 팔목은 형이상학적인 문양의 문신으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만났어. 지난번에 말했지. 후회하게 해 주겠다고.”
숲에서의 첫 만남이 그토록 불쾌했던 걸까?
심판을 사이에 둔 채 마주 서자마자 꼬맹이는 눈을 부릅뜬 채 엄포를 늘어놓았다.
“미안, 지난번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그때 꼬맹이 네가 후회 어쩌고 했던가?”
“…!”
“뭐 어쨌거나 이렇게 마주한 것도 인연이니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그제 있었던 4차전까지 아주 떠들썩하게 날뛰었다면서?”
갈비뼈 골절상 두 건에 관절 중대 손상이 여섯 건.
여기에 심각한 타박상 여덟 건과 자잘한 상처들 수십 개까지.
지난 네 번의 승부에서 이 독하디독한 꼬맹이가 폴리다고스의 대표들을 상대로 거둔 전과였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상처가 생기기도 전에 승부는 진즉에 갈렸다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뭐야?”
친선전(물론 그 특성상 다소 치열하게 전개될 수는 있겠지만)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과한 상처들.
사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굳이 물어봤다.
뭐든지 확실한 게 좋은 법이니까.
“과하지 않아. 우리 입장에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무대야. 그 정도 화려함, 절대로 과하지 않아.”
“아, 그러셔?”
“기다려 온 무대의 끝을 장식할 제물, 아주 좋아. 페이건 클라디우스, 넌 오늘 내 앞에 선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
“그래 좋아. 그 알량한 명예욕에 동의해 줄 생각은 없다만, 그 꼴을 연출했다는 건 피차 각오는 되어 있다는 거겠지?”
나에게도 나쁘지만은 답변이었기에 아무런 부담 없이 선전포고할 수 있었다.
“이걸로 확인 절차는 모두 종료되었으니 양 선수는 각자의 위치로 이동해 주십시오. 3분 후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터져 나온 심판의 선언.
샤르르륵.
짜악.
심판의 선언이 있자마자 이벨다 페르디난드는 무기를 꺼내 들었고 꼬맹이의 주무기인 채찍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려 퍼졌다.
‘공수에 완전한 구분은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채찍을 이용해 공격하고 폭이 넓은 터번을 이용해 방어한단 말이지? 그놈들이 이거랑 비슷한 수법을 애용하고는 했는데….’
오른손에 들린 채찍과 왼손에 감긴 터번.
극도의 유연성을 자랑하는 공방 일체의 무기를 보고 있노라니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스르릉.
“시작!”
티아매트의 날이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심판이 목소리를 높였고.
“하아!”
광기에 듬뿍 적셔진 꼬맹이의 육신이 벼락같은 기세로 쏘아져 들어왔다.
* * *
챙채쟁챙챙.
결투가 시작된 지 10분.
날카롭게 날을 세운 파공음이 무대를 가득 메웠다.
날을 가진 병장기와 실크 터번이 맞부딪치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지만, 관객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앞서 치러진 네 번의 시험을 통해 오러를 머금은 이벨다의 터번이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 질리도록 목격한 바 있었기에 놀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핑핑핑핑.
재빨리 거리를 벌린 페이건이 열 개가 넘는 침을 한 번에 흩뿌렸지만 이벨다의 전신을 감싼 터번 앞에 허무하게 막혀 버리고 말았다.
“…아까부터 「베가스의 송곳니」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의도적인 거겠지?”
“당연하지. 이벨다 페르디난드처럼 극강의 기동력을 가진 적을 상대할 때는 발동 시간이 긴 마법은 거의 도움이 안 돼. 적이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광범위한 마법이라면 효과가 있겠지만 「베가스의 송곳니」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또 그 정도는 아니잖아?”
전투가 워낙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보니 관객들 또한 끊임없이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빛살처럼 빠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날카로움의 경우는 페이건이, 유연성 면에서는 이벨다 쪽이 각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오러의 총량은 나와 큰 차이가 없어.’
침을 날리는 것으로 얻어 낸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 한숨을 돌리며 페이건은 십여 분간의 전투를 통해 파악한 사실들을 정리했다.
현재 페이건의 마나 고리 현황은 네 개까지 완성을 끝낸 뒤 다섯 개 초입을 바라보는 수준.
그 통이 말도 안 되게 커져 버린 아르카를 채워 나가는 데 집중을 하다 보니 앙겔루스의 진척은 상대적으로 더딘 게 사실이었다.
‘오러 총량에 큰 차이가 없다면 결국 중요한 건 그 운용 방법인데. 문제는… 이놈이 도무지 학생 같지 않은 수준의 활용법을 보여 주고 있다는 거야. 우리 잘난 선배님들께서 왜 그리 쪽도 못 쓰고 픽픽 쓰러져 나갔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학생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오러 운용을 보여 주고 있는 건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원래 사람의 눈에는 타인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신묘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채찍과 터번을 보고 있자니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르카와 드루이드 오러를 사용하면 문제가 간단해지겠지만 지켜보는 눈이 워낙에 많으니 그럴 수도 없고….’
페이건 본인이 에지세크라는 혼돈의 기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는 갈브레이드 3세의 목을 벤 암살의 신을 기억하는 자들도 분명히 존재할 터.
확실히 죽여 그 입을 막을 수 있는 적을 상대하는 게 아닌 이상 아르카를 꺼내 들 수는 없는 일.
결국 이번 생애에서 얻은 것들로만 이벨다 페르디난드를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을 깨달은 페이건은 자신도 모르게 티아매트를 움켜쥔 손에 힘을 꽈악 줬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제법. 내가 당신을 쉽게 봤다는 건 인정하겠어. 당신은 지금껏 상대했던 얼간이들과는 확실히 달라. 물론 그래 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가슴까지 밖에 오지 않는 데다 예의도 모르는 버릇없는 꼬맹이한테 칭찬을 들어 봤자 하나도 기쁘지 않아.”
으드득.
이벨다 입장에서는 나름 큰마음을 먹고 내뱉은 한마디였건만 그 발언 역시 비웃음의 재료로 사용될 뿐이었고 차기 유스티니아는 한층 더 표독스러운 표정을 한 채 팔을 뻗었다.
스르르륵.
지금껏 주로 방어를 담당했던 터번이 괴이한 각도로 꺾여 가며 페이건을 향해 날아들었고.
페이건은 오러가 깃든 티아매트를 휘둘러 터번의 습격을 막아 내려 했지만.
휘리릭.
티아매트의 날에 닿는 순간, 엿가락처럼 흐물흐물해진 터번은 그대로 칼을 휘어 감아 버리고 말았다.
취리리릭.
터번의 뒤를 이어 곧바로 날아든 채찍.
건틀릿을 낀 손을 이용해 채찍을 잡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바람에 페이건의 양손이 모두 묶였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쇄도해 온 이벨다의 무릎이 페이건의 복부에 그대로 꽂혔다.
퍼어억.
“아앗!”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페이건의 몸을 본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전투 최초의 유효타를 터뜨린 주인공이 폴리다고스의 1학년 대표가 아닌 펠레스트의 차기 유스티니아라는 사실이 관중석을 소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깨끗하게… 완전히 정타로 들어갔어.”
“그러게… 지금껏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건드려 보기라도 한 건 유리안 선배와 무스카 선배님뿐이었는데. 펠레스트의 유스티니아가….”
물론 이 한방 때문에 페이건을 의심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철옹성과도 같던 신뢰의 벽에 아주 약간의 금이 가 버린 것도 사실.
“마, 만회하겠지?”
“당연하지! 특별 시험에서 4학년 선배 열여덟 명을 한번에 보내 버린 페이건 클라디우스가 질 리….”
퍽퍽.
“아, 안되는데!”
하지만 이벨다 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결투의 흐름은 좀처럼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퍽퍽퍽.
2, 3분 간격으로 꾸준히 타격음이 들려왔고 그때마다 바닥에 나뒹구는 건 페이건 쪽이었다.
다행히 치명타를 허용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잔매로 인한 충격이 쌓이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 광경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입안은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내 딸! 역시 장하구나! 하하 폴리다고스 행정처 분들도 하실 일이 많을 텐데 굳이 더 끌고 갈 필요가 뭐 있겠느냐! 그냥 오늘 여기서 끝내 버리자꾸나!”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웃음을 터뜨리는 조로스터.
안 그래도 불안한 관객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웃음소리 덕분에 관람석의 분위기는 한층 더 침울해졌다.
갑작스럽게 불리해진 흐름.
이 불길한 흐름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라고는 오직 한 명.
‘라무테 님, 제가 지금부터 우측으로 크게 돌아 저 꼬마에게 접근할 겁니다. 그럼 저 꼬맹이는 채찍으로 제 공격을 막아 낸 후 터번으로 제 상반신을 휘감으려 들 거예요.’
난타를 당하고 있는 장본인, 페이건 클라디우스뿐이었다.
‘그때 저 꼬마의 반대쪽 다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지를 봐 주세요.’
일곱 발째의 정타를 허용한 후 일어서는 길.
페이건은 무대 근처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라무테를 향해 전언을 건넸다.
‘북슬아, 너는 반대쪽 팔이야. 터번을 쥐고 있는 손이 어떤 각도로 움직이는 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 알겠지?’
벨제키엘에게까지 전언이 끝나자마자 페이건은 달리기 시작했고.
쩌엉.
그가 예언했던 그 지점에서 매서운 공방이 벌어졌다.
짜악.
채찍을 이용해 티아매트의 습격을 막고.
휘리릭.
길게 풀린 터번을 이용해 페이건의 가슴팍을 후려치고.
“큭!”
충격의 상당 부분을 흘리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번에도 유효타를 허용한 건 페이건 쪽이었다.
피피피핑.
다급하게 바늘을 날려 거리를 확보한 페이건의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안쪽으로 2보 정도 이동했다가 잠시 제자리걸음을 한 후 후방으로 횡 이동, 맞습니까?’
―응! 맞아. 페이건이 말한 그대로 움직였어.
―페이건, 팔은 있잖아, 쟤 팔이 어떻게 움직였냐면….
‘45도 정도 꺾인 상황에서 버티다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변주를 준 후 원운동, 맞아?’
―어! 마,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 혹시 나한테 보라고 해 놓고서 네가 직접 지켜본 거야?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차곡차곡 쌓여 간 충격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
주르륵.
찢어진 입술 사이로 피가 뚝뚝 흘러내렸지만, 조금 전 그 공방을 통해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기에 페이건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꼬맹이, 너….’
조금 전 이벨다가 보여준 그 신묘하고도 독특한 움직임.
그 기적 같은 움직임 속에는 에지세크 교단에 대대로 전해지는 체술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번드르르한 껍데기 속에 그 추악한 본성을 꾹꾹 눌러 숨겼지만, 과거 놈들과 수많은 혈투를 겪은 바 있는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는 일.
그리고 에지세크 놈들이 교단 외부인에게 자신들의 비기를 전수하는 일이 절대 없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그 구역질 나는 놈들의 후예였구나.’
어디까지나 의혹 또는 의심 수준에 머물렀던 일들이 이제는 확신으로 변해 버린 이상 이벨다 페르디난드를 상대하는 마음가짐 또한 응당 달라져야 할 터.
‘내가 기억력이 좀 많이 좋거든. 확인이 끝났으니 이다음부터는 네 맘대로 안 될 거다.’
호흡을 한 차례 가다듬은 후 페이건은 다시 한 번 우측으로 크게 돌아 이벨다를 향해 접근했다.
“호오, 제법 똑똑한 친구라 해서 기대가 컸었는데 완벽하게 막힌 수법을 고집하다니. 이거 이거, 슬슬 물건을 넘겨받을 준비를 해야겠는걸.”
조금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돌진하는 페이건의 모습이 부나방 같다고 생각한 걸까?
조로스터는 낄낄거리며 잔 가득 따른 미주(美酒)로 입술을 적셨다.
“흥!”
페이건의 속도는 여전히 빨랐지만 이미 똑같은 공격 방법을 겪어 본 적 있는 이벨다는 코웃음을 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채앵.
“어?”
하지만 티아매트와 맞부딪친 채찍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고.
결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무기가 통제를 벗어나는 광경을 목격한 이벨다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사라락.
페이건이 날린 침이 채찍과 로브 사이를 은밀하게 파고들었고 화들짝 놀란 이벨다가 허겁지겁 스텝을 밟았다.
“…!”
지금까지 그녀가 성공시킨 유효타는 확인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었을 뿐이라는 걸 펠레스트의 유스티니아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확인 절차가 끝난 이상 에지세크의 체술은 더 이상 그녀를 지켜 주는 보호막이 될 수 없었고.
“어딜 가려고?”
불쑥 튀어나온 페이건의 왼손이 공중으로 달아나는 이벨다의 발목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페이건 클라…!”
앙칼진 표정의 이벨다 페르디난드가 뭐라 뭐라 외치려 하였으나 발목을 움켜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조금 더 빨랐고.
콰아앙.
기세 좋게 떠올랐던 이벨다의 육신은 그대로 추락해 바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