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6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0)화(160/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0)
“세,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야?”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펠레스트 측 인사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벨다 페르디난드가 바닥에 처박혔을 때 울려 퍼진 묵직한 소음.
오늘까지 내리 다섯 번의 시합을 치르는 내내 단 한 번도 유효타를 허용한 적 없던 차기 유스티니아가 처음으로 타격을 허용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유효타의 형태가 안면 다이빙이라니.
쾅.
한 번 더 터져 나온 그 소음에 펠레스트 수양관의 선수들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는지 폴리다고스의 사냥꾼은 이벨다의 발목을 움켜쥔 손을 한 차례 더 휘둘렀다.
콰앙.
강화석으로 만들어진 시합장 바닥에 다시 한 번 얼굴을 처박고 만 차기 유스티니아 님.
이벨다의 체중은 깃털처럼 가볍고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 또한 온통 가벼운 것들뿐이었음에도 정말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 딸아….”
그 소리만으로 이벨다의 신체에 가해진 어마어마한 충격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조로스터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무대를 주시했다.
휘리리릭.
영원과도 같아 보였던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채찍이 뻗어 나왔다.
차악.
순식간에 뻗어 나온 채찍은 독사의 엄니처럼 날카로웠지만, 채찍이 노렸던 사냥꾼은 어느새 뒤로 물러나 있었기에 독사의 이빨은 애꿎은 바닥을 후려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페이건… 클라디우스!”
제법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 결연한 의지를 조금도 잃지 않은 이벨다의 눈동자.
“그렇게 세게 내려쳤는데 고작 찰과상이 전부야? 너 생각보다 되게 단단하구나.”
겉으로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예상했던 광경인 터라 아주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단단한 몸과 선연한 독기는 에지세크 놈들의 오랜 전통이었고 페이건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팔이 잘리고 복부가 관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지세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돌격해 오던 광신도들.
끔찍하리만치 지독한 맹신의 향연을 떠올린 페이건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이벨다 페르디난드, 아니 그녀의 탈을 쓴 에지세크 교단의 무언가는 알고 있을까?
‘언제까지고 결연할 것만 같던 에지세크 놈들의 눈동자가 결국은 공포로 물들어 가는 걸 보는 것도 참 즐거웠는데.’
전생의 페이건이 에지세크 교단을 그토록 혐오했던 가장 큰 이유가 맹신 때문이었다는 걸.
으드득.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앙다문 이벨다가 도약을 시도했고 터번과 채찍이 거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이잉.
칼처럼 날카로워진 터번과 그 독기를 조금도 잃지 않은 채찍.
당장이라도 페이건을 삼켜 버릴 듯한 폭풍을 일으키며 이벨다는 쏘아져 나갔다.
휘이잉.
하지만 터번과 채찍 그 어느 것도 페이건에게 닿지 못했고.
퍼억.
외려 이벨다는 벼락처럼 뻗어 온 페이건의 오른발에 가슴팍을 그대로 걷어차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신장과 체중, 모든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적에게 걷어차인 이상 이벨다는 다시 한 번 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고.
와아아아.
“잘한다!”
“멋있다! 진짜 멋있으니까 제발 조금만 더 힘내!”
그 순간 관객석에서는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테시온 쟁탈전이 시작된 이래로, 응원하는 쪽이 두들겨 맞는 광경만을 연속으로 봐 온 탓에 잔뜩 기가 죽어 있던 폴리다고스 학생들의 입에서 처음으로 쏟아지는 기쁨의 탄성.
“크윽!”
바닥에 고꾸라지자마자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튕겨 낸 이벨다는 조금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시 한 번 돌격해 들어갔다.
퍼억.
“잘한다! 진짜 잘한다!”
상처를 입자마자 곧바로 돌격을 감행하는 그 투지는 칭찬받을 만했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 이벨다… 내 딸아. 뭐, 뭐 하고 있는 거냐? 저런 건방진 회색분자 따위는 단숨에 짓밟아 줘야지!”
자랑스러운 딸이 순식간에 세 번이나 고꾸라지는 광경을 지켜본 조로스터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미 테시온을 따 온 것처럼 기고만장했던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
본연의 그릇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그런 창백한 표정을 한 조로스터의 입에서는 주문과도 같은 바람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퍼억.
“아악!”
물론 그 멍청한 입에서 얼간이 같은 소리가 나온다 하여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퍼억.
“컥!”
여섯 번째 정타가 아주 깔끔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페이건의 발등이 이벨다의 목덜미 부근에 정확히 꽂히는 걸 목격한 그 순간.
다섯 번째 시합만의 첫 승리를 확신한 관객들 입에서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끝났다! 완전히 끝났어!”
“저기 좀 봐! 펠레스트의 유스티니아가 비틀거리고 있잖아. 이미 승부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야.”
“잘한다! 정말 잘하고 있어!”
“페이건 클라디우스, 마무리만 남았어! 이제 조금만 더 힘내!”
맷집의 차이랄까?
시합이 시작된 이래로 페이건과 이벨다가 서로에게 가한 유효타의 수는 엇비슷했다.
하지만 신체 조건과 그에 따른 오러 운영 방식에서 워낙 차이가 크다 보니 중반부에 난타를 당하고도 멀쩡할 수 있었던 페이건과 달리 이벨다는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후우… 다행히도 여기서 페이건 학생이 한 번 흐름을 끊어 주는군요. 참 다행인 일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행인 일이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미안해지기도 하는군요. 이번 시합을 이긴다 해도 결국 테시온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꼬박 네 번을 더 승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허허! 입교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학생이 혼자서 폴리다고스의 명예를 짊어진 채 싸우고 있다니. 페이건 학생의 놀라운 성취를 생각하면 기쁘기 한량없지만… 참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그려.”
긴장한 표정으로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교수들의 입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기쁨과 대견함 그리고 자신들의 옹졸함에 대한 반성이 섞인 말들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퍽.
이번에는 복부에 정통으로 들어간 여덟 번째 정타.
끈질기게 버티던 이벨다도 이번 습격에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고 첫 패배를 앞둔 유스티니아의 머리 위로 사냥꾼의 차가운 제안이 주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어차피 더 버틴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잖아?”
“닥쳐! 내가 패배를… 페이건 클라디우스 지금 바로….”
“구태여 더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이제는 재미가 없어졌거든. 여기서부터는 경고인데 네가 여기서 더 시간을 끈다면 그때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
차분한 목소리 속에 감춰진 서늘한 기운을 감지한 이벨다가 애써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페이건의 모습이 전부.
“승부, 이제부터! 분명히 말했어. 후회하게 해 주겠다고!”
그 무방비한 모습에 자극을 받은 이벨다가 다시 한 번 박차고 일어선 순간.
피잉.
무릎 근처에서 실과 비슷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쇄애애액.
“난 분명히 경고했다.”
여전히 팔짱을 낀 페이건이 내뱉은 차가운 한마디.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매서운 파공음.
적을 눈앞에 둔 채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되지만 이대로 정면을 주시하기에는 후방의 소리가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고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이벨다가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 고개가 다 돌아가기도 전에 그녀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벨다가 쓰러져 있는 사이 페이건이 설치해 놓은 바늘 다발이 그대로 그녀의 어깨에 적중해 버린 것이다.
“꺄아아악!”
“딸아!”
침이 어깨에 적중한 순간, 폭발성 기운을 머금고 있던 오러가 그대로 터져버렸고 실제 폭약이 터진 것 같은 괴성이 이벨다의 어깻죽지에서 울려 퍼졌다.
“으으으으….”
잠시 후, 이벨다는 결국 눈을 뒤집어 깐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쿵.
이미 주인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오른팔은 좌우로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를 연상케 하는 오른팔.
그 기괴한 움직임을 보건대 어깨 부근의 뼈와 근육이 완전히 파열된 듯싶었다.
“심판 위원님.”
“…!”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벨다 페르디난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심판은 페이건의 재촉이 있고서야 시합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했다.
“구, 구급반! 당장 시합장 위로, 시합장 위로 와서 이벨다 양의 상태를 살피도록 하시오!”
대기하고 있던 치료술사들을 호출하는 와중에도 심판은 페이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걸 잊지 않았다.
‘똑같아. 두 번째 시합에서 폴리다고스의 대표로 나섰던 여학생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광경과 지금의 구도가 거의 일치해. 이 친구, 설마 의도하고 이런 광경을 만든 건가?’
두 번째 시합에서 폴리다고스의 대표로 나섰던 격투가 출신의 여학생.
해당 학생은 항복을 권유하는 이벨다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 직후에 등 뒤에서 덮쳐 오는 채찍에 난자당한 채 정신을 잃었다.
물론 그 학생의 경우 무릎 뒤쪽 관절이 처참하게 손상당했으니 이벨다와 직접 비교를 하면 상처를 입은 부위의 차이점은 있었다.
하지만 명백히 불리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향한 근성을 불태운 직후에 처참한 모습으로 실신했다는 점에서 두 시합은 완전히 같았고.
심판은 놀란 눈을 한 채 페이건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생긴 거랑은 다르게 굉장히 잔혹한 구석이 있군. 물론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의 기세를 꺾는 데는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겠지만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학생이 이런 과감한 연출을 스스럼없이 해내다니….’
이렇게 보고 있자니 이벨다에게 항복을 권한 제안 역시 이 그림을 위한 준비절차로 보일 지경이었다.
“어떤가?”
“어깨와 근육을 연결하는 근육이 갈가리 찢겼고 뼈 역시 수 조각으로 갈라졌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사절단에 동반된 치료술사들이 모두 달라붙어도 꼬박 사나흘은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흐음….”
심판의 표정이 더욱더 심각해졌다.
이 정도면 팔이 잘리지만 않았을 뿐 이벨다의 오른쪽 어깨는 완전히 짓뭉개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벨다가 지난 네 번의 시합 동안 폴리다고스의 대표들에게 가한 고통이 모두 응집된 듯한 상처.
설마 이것도 페이건 클라디우스의 계산에 포함되어 있었던 걸까?
“일단 이벨다 양을 의무반으로 모시게.”
물론 정말 훌륭한 치료술사들은 절단된 사지 또한 복원시킬 수 있는 만큼 폴리다고스에 재직 중인 치료술 교수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단시간에 이벨다를 회복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벨다아아! 내 딸, 내 딸아!”
문제는 벌게진 눈을 한 채 시합장으로 뛰어내려 오는 조로스터가 순순히 폴리다고스의 도움을 받으려 들지 않을 것 같다는 점.
“…어떻게, 어떻게 너에게 이런 일이… 네 이놈!”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진 이벨다를 부둥켜안은 채 통곡을 늘어놓던 조로스터가 돌연 눈을 부릅뜨며 페이건을 노려봤다.
“이미… 이미 승부가 갈린 시합에서 그토록 악독한 수를 사용하다니! 이 무슨 막돼먹은 짓이란 말이냐! 용서, 절대로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니 네놈 또한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핏발이 선 눈을 한 채 소리를 질러대는 조로스터.
그 과격한 표정과 언사에 조금은 위축될 법도 하건만 페르디난드의 3남을 상대하는 페이건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승부가 정해진 이후에 가해진 무력 행위. 그래요, 평소에 자비심이 넘치는 분이라면 충분히 문제 삼을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비로운 마음이 발현되는 시기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시기라니, 네놈이 감히 무슨 궤변을….”
“조로스터 경의 그 넘치는 자비심이 우리의 세 번째 대표였던 돌게스 선배의 갈비뼈가 부러질 때도 발현되었다면 모두에게 참 좋은 일이었을 텐데….”
“이… 이놈이!”
“조로스터 경,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네 번째 시합이 끝난 직후 이벨다 양의 과도한 손속을 나무라는 페노 교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지요?”
분통은 터지지만 반박할 수 없는 페이건의 말에 조로스터의 낯빛이 한층 더 붉게 달아올랐다.
“패배자의 명예를 지켜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인들의 인정과 침묵뿐이다. 조로스터 경, 이벨다 양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사람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따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저를 향한 원망은 이쯤에서 거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크윽… 이… 이놈이!”
“저야 경께서 그런 눈으로 저를 쳐다본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경의 그 표정이 페르디난드 영애의 명예에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조금 전, 숨 가쁜 결투를 마친 자가 보여 주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분한 표정과 말투.
조로스터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달아오르는 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페이건은 말을 이어 나갔다.
“더군다나 펠레스트 수양관에는 저를 패배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무려 네 번이나 더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음 시합이 내일모레였던가요?”
부르르르.
페이건의 시선이 펠레스트의 대표 잔당(병풍처럼 서서 이벨다가 낚아 오는 승리를 받아먹기에만 여념이 없던)을 향한 순간.
그들의 몸이 태풍 속의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오롯이 단 한 명의 힘으로 수렁에 빠질 뻔한 폴리다고스의 명예를 건져 낸 승리자는 입술에 묻은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곧 있을 다음 시합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이벨다 양이 이토록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줬으니 뒤에 계신 분들 또한 예사 분들은 아닐 터. 어디 어느 정도나 씩씩하고 용맹한 분들이 제 상대로 나올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출사표를 끝으로 무대를 내려온 페이건.
하지만 예정되어 있던 다음 시합이 열리는 일은(관객들과 페이건, 양쪽 모두에게 애석하게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벨다 페르디난드의 패배가 있던 그날 저녁.
펠레스트 수양관 측에서 갑작스럽게 도전 중단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날 새벽, 펠레스트 수양관은 그대로 폴리다고스를 떠나 버렸고 평온이 찾아온 폴리다고스 곳곳에서는 승전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겼다! 이겼어!”
“그런데 있잖아. 물론 나도 테시온을 방어한 점은 참 기쁘기는 한데. 이걸 폴리다고스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이건 그냥 페이건 클라디우스 혼자만의 승리라고 봐야 하는 거 아냐?”
“그, 그렇기는 한데. 어쨌거나 페이건 클라디우스도 폴리다고스 소속이잖아! 그럼 폴리다고스의 승리가 맞지 뭘 그래?”
“그, 그런가? 아무튼 폴리다고스, 만세! 그리고… 페이건 클라디우스도 이번만큼은 만세!”
테시온 쟁탈전이라는 큰 파도가 휩쓸고 간 이후 폴리다고스 학생들 사이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제는 페이건 클라디우스를 향한 지지가 어느새 다수 의견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페이건을 향한 호의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조금씩 페이건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교내 민심의 향방에 결정타를 날렸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게오르그 로덴토의 추종 세력을 위시한 소수의 대귀족들은 여전히 페이건을 향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닌, 순수 머릿수로만 따지면 페이건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대다수가 되어 버린 게 분명한 사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내년 2학년 대표도 벌써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네.”
“2학년 대표만 정해진 게 아닌 것 같은데? 총학생회장 출마가 가능한 건 5학년부터잖아? 그렇다는 건 이제 3년 조금 더 남았네. 어쩌면, 흐흐흐.”
그렇게 학생들은 폴리다고스 교내를 덮친 승리의 물결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고 그들이 숨 쉬듯이 호흡하는 승리의 기운 한가운데에는 ‘페이건 클라디우스’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