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Assassination, Become the Strongest Healer RAW novel - Chapter (161)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1)화(161/240)
암살의 신, 최강 힐러 되다 (161)
또각또각.
길게 뻗은 나선 계단.
지하 수련장으로 향하는 계단 위로 구두 굽이 부딪칠 때마다 스커트 슬릿 사이로 매끈한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숨겼다를 반복했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정도로 매력적인 각선미.
스스로의 매력에 대한 자신감이 차고 넘치는 표정으로 수련장에 도착한 여인은 노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콰자작.
콰작.
자신이 들어왔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피식.
한마디 인사도 없이 검을 휘두르기에 여념이 없는 멍멍이의 모습을 확인한 여인의 입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안녕, 오늘도 열심이네.”
콰작.
대답 대신 들려온 충격음.
“조금 전 이벨다의 수행원들에게서 연락이 도착했어. 1차 거점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이벨다의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래.”
콰자작.
“상처가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에지세크 치료술의 효과가 쓸 만하고 이벨다의 회복력 또한 탁월한 편이니까 후유증이 남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분노에 미쳐 날뛰는 우리 아가를 달래려면 수행원들이 진땀 꽤나 쏟아야 하겠지만.”
콰자자작.
“그중에서도 그 조로스터라는 못난이가 가장 중점적으로 들들 볶이겠지, 뭐.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인 일 같기도 해. 어차피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아가의 짜증 받이 노릇이 전부인 놈이니까 이럴 때라도 잘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콰자자자작.
“이제야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해. 사실 나 시합 막판에는 꽤 조마조마했거든. 큰일이네! 저러다 궁지에 몰린 아가가 분을 참지 못하고 ‘물려받은 힘’을 사용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하고….”
“그 멍청이가 그런 실수를 했다면 지금쯤 이미 내 손에 죽어 있겠지.”
줄곧 대꾸가 없던 무스카가 처음으로 입에 올린 말은 다름 아닌 ‘동료의 척살’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동료의 죽음을 가정하는 그 냉정한 모습을 목격한 아일리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매정하네. 실수 한 번 했다고 바로 죽여 버리겠다는 거야?”
“왜? ‘원’의 대계를 망친 자는 죽음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게 평소 너의 말버릇 아니었나?”
무스카가 멈춰선 채 고개를 돌리자 그의 어깨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땀의 기운이 흠씬 느껴졌고 아일리는 손수건을 들어 입과 코를 가리며 말했다.
“아무튼 나로서는 조금, 아니 상당히 놀라운 결과였어. 아가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
“이렇게 명백하게 보이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말할 테니 잘 들어 둬. 그 ‘인형’이 ‘물려받은 힘’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페이건 클라디우스에게 승리하는 일은 없어.”
“아, 그런 거였군요?”
“뭐, 물려받은 힘을 사용해 얻은 승리 같은 건 애초에 승리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선조들에게서 받은 승리는 승리로 치지 않는다니, 참 너다운 말이네. 하지만 뻐기는 건 이쯤에서 그만해 두고 내 말에 집중하도록 해. 어쨌거나 결국 우리의 계획은 또 한 번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의해 막힌 셈이야.”
아일리는 굳이 손가락까지 꼽아 가며 페이건의 무용담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이델타에서 너희 늑대인간이 한 번, 페스티라카 유적에서 그 모기들이 한 번 그리고 어제 폴리다고스에서 에지세크 교단이 한 번.”
아일리는 패배의 기록을 늘어놓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한 채 재잘거려 댔고 무스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마녀를 노려보았다.
“그 꼬마가 대륙에 모습을 보인지 아직 6개월이 채 안 됐는데 벌써 세 번의 실패가 누적되고 말았어. 네가 보기에도 좀 심각하지? 어떡하지? 그 꼬마를 중요 변수로 상정한 후 ‘섭정’께 다시 재가를 받아야 할까?”
“…충고 하나 할까?”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들어는 줄 테니까.”
생글거리는 아일리의 표정에서 ‘네가? 나한테? 감히 충고를?’이라는 모멸이 느껴졌지만 무스카는 애써 무시한 채 조언을 이어 나갔다.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 아직도 모르겠나? 그 꼬마는 감히 너 따위가 인형 놀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너 따위? 풋! 내가 명령하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하는 장기말 주제에 지금 뭐라고 떠드는 거야?”
두 사람 사이로 뜨겁다 못해 따가운 시선이 오갔고.
쾅.
결국 매일 같은 눈싸움에 싫증이 난 무스카가 먼저 수련장의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으득.
그리고 무스카가 자리를 떠난 걸 확인한 후에야 아일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멍멍이 앞에서는 태연한 척을 했지만 사실 페이건 클라디우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조언이 꽤나 아프게 다가왔던 것이다.
“…욕심을 버리라고?”
살짝 벌린 분홍빛 입술 사이로 욕정과 소유욕, 집착과 갈망이 이 한데 섞인 뜨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고 그 한숨보다 조금 더 뜨거운 독백이 마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이렇게 머리 아픈 고민을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 * *
페이건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다음 날.
극히 일부 지역(이를테면 불온한 기운이 가득한 지하 수련장이라든가)을 제외하면 폴리다고스 교내는 아직도 승리의 여운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사건의 주인공은 어느새 승리의 기운에서 빠져나온 채 자신의 업무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 승리가 기적 같은 역전의 시발(始發)로 보였겠지만 페이건 본인에게 있어 승리란 이미 정해진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과정에 불과했기에 딱히 기쁠 것도 들뜰 것도 없었던 것이다.
정신을 사납게 만들 뿐인 승전의 여흥에서 진즉에 벗어난 페이건은 오늘도 정해진 일과처럼 보급 창고를 찾았고.
하루가 멀다 하며 쑥쑥 자라나는 군자금의 성장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아주 순조롭게 자라 주고 있는데. 장갑 교환권,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비실대는 거지? 성장 속도가 더뎌도 너무 더딘데.’
도무지 성장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장갑 교환권의 근황을 확인한 페이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정도 속도로 자란다고 가정하면 열매를 보기 위해서는 족히 수년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잘못하면 내 졸업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어.’
차라리 아예 진척이 없다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다른 방안을 찾아볼 텐데 또 마냥 포기해 버리기에는 씨앗이 더디게나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놈도 골치고 페르디난드를 잠식해 버린 에지세크 놈들도 문제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는 게 가장 효율이 좋을까?’
문제는 문제를 부르기 마련.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않는 장갑 교환권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단서를 잡은 바 있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벨다 페르디난드와 그 아비가 에지세크의 주구(走狗)라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페르디난드는 혼돈의 기둥에게 상당 부분 잠식되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에지세크 놈들의 단독 활동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그럴 리가 없겠지?’
에지세크 놈들의 준동이 중차대한 문제이기는 했으나 놈들이 단독으로 날뛰는 거라면 얼마든지 상대해 낼 자신이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 했던 일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에지세크 놈들의 암약 배경에 다른 혼돈의 기둥들이 연관되어 있다면 그때부터 문제는 정말로 심각해졌다.
에지세크 교단과는 치열하게 치고받은 전력이 있었기에 놈들의 습성이며 약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빠삭하게 분석이 완료된 에지세크와 달리 다른 기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 페이건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흘렀다.
‘키에르고를 다시 한 번 찔러 봐야 하는데 어떤 구실로 접근하는 게 자연스러울까?’
혼돈의 기둥이 갈브레이드 3세에게 접근해서 종국에는 황제를 타락의 길로 이끄는 전 광경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키에르고라면 놈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알고 있을 터.
‘키에르고의 신뢰는 얻되 내 의도가 발각되지 않을 만한 방법이라면…!’
그렇게 페이건이 고민의 심연 속으로 침전(沈澱)해 들어가고 있을 무렵.
“볕이 참 좋네. 안녕, 우리 꽤 오랜만이지?”
어쩌면 페이건의 고민을 한층 더 깊게 만들지도 모를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코델리아나 선배님?”
“페이건 네가 요즘 흙 놀이에 푹 빠져 있다는 말을 카밀라로부터 전해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본격적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깐 구경 좀 해도 될까?”
“아, 네. 편할 대로 하세요.”
폴리다고스 소속의 인물들 중 그 속내가 짐작되지 않는 걸로 따지면 팩셰르 에우리디케와 더불어 1, 2위를 다투는 인물의 등장에 페이건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
“정말 멋진 정원이네. 유리안이 이걸 보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들어 놓은 주제에 자기한테는 한마디 말도 안 해 줬다며 화를 낼 거야.”
“선배님이요?”
“응, 사실은 아까부터 유리안이 널 찾고 있거든. 한시라도 빨리 널 찾아서 어제의 멋진 승리를 축하해 주고 싶은데 도대체 아침부터 어디 갔는지 통 보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걸 목격하고 오는 길이야. 자기가 큰맘 먹었을 때마다 쏙쏙 피해 다니는 네가 너무 얌체 같다나 뭐라나?”
“보통은 이런 걸 얌체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걔는 지금 애먼 장서관이랑 도서관만 들입다 뒤져 가며 널 찾아다니는 중이거든. 그러니까 적어도 당분간은 유리안이 이곳에 들이닥쳐 널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예의 그 올림머리를 한 채 나뭇등걸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닥이는 크리스틴을 보고 있자니 페이건의 머릿속에는 궁금증이 샘솟았다.
이 묘한 분위기의 선배님께서는 설마 자신은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흐흐흥♪ 숲에 오는 건 오랜만인데 참 좋네.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나와야겠어.”
설마 자기는 나를 방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둘 중 뭐가 되었든 간에 본인에게 바람직한 결과는 절대로 아니었기에 결국 페이건은 먼저 칼을 빼 들기로 마음먹었다.
“선배님, 하실 말씀이 있거든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넓고 넓은 숲을 놔두고 굳이 제 연구 공간으로 오셨다는 건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는 뜻이겠죠. 전 준비가 되어 있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응, 그럼 말할게. 수고했어, 짊어진 짐이 무거워 걸음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정도로 잘 해낼 줄이야. 정말 수고 많았고 아주아주 잘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뭘까요?”
“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선배님께서 굳이 저를 치하하자고 여기까지 오셨을 리는 없잖아요. 선배님의 말씀은 충분히 감사하게 받아들였으니 이제 본 용건을 말씀하시라는 겁니다.”
“다른 거 없는데… 그냥 너한테 수고했고 잘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서 여기 온 거야.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니?”
“아니요. 안 될 건 없는데요.”
안 될 건 없다는 말로 얼버무리기는 했다만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놀랐다.
헤실헤실 모드의 유리안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크리스틴 코델리아나가?
“뭐, 굳이 이유가 필요하다면 네가 지난번에 해 주다 만. 그 어린 너의 마음가짐을 정해 줬다는 환자분의 이야기 다음이 듣고 싶어서 온 걸로 해 두지 뭐.”
“저의 유년 시절에 관심을 가져 주는 건 감사한 일입니다만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다음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억지 이유라고 한 거잖아. 네가 그다음을 말해 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한번 얼쩡거려 보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폴짝하고 등걸에서 뛰어내린 크리스틴은 페이건을 향해 등을 돌리고 선 채 말을 이어 나갔다.
“학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니까 이번 방학에는 본가에 안 가고 폴리다고스에 남아 있을 예정이지? 괜찮다면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2, 3일 정도만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무슨 이유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여쭤도 괜찮을까요?”
“다음 학기부터 너도 대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해야 하잖아. 그런데 대표로서의 활동이라는 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래도 너만 괜찮다면 내가 이것저것 좀 사전 학습을 해 줄까 해서. 난 대표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지난 5년간 유리안을 쭉 보좌해 온 덕분에 대표로서의 업무를 나름 잘 알고 있거든.”
차갑고 이지적인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스하고도 훈훈한 제안.
“어… 죄송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시간을 빼기 힘들 것 같아서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내가 제안을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한테 이것저것 듣고 가면 다음 학기 학교생활이 훨씬 더 수월해질 텐데?”
“사실은 다음 주에 부모님과 동생들이 폴리다고스를 방문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외부 활동을 최대한 억제한 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신입생이 학부모 방문? 그거 가능해? 확실히 알아본 거 맞아?”
“네, 치안국장님께서 직접 확인해 주신 사항입니다. 원래는 안 되는 게 맞는데 전 조금 특수하게 대표로 취임된 만큼 이번 한 번만 예외를 인정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잘됐네. 알겠어,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맞지. 그치만 내 제안이 싫거나 한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내가 다시 일정을 잡던가 할게. 어차피 방학은 길고 나도 이번 방학에는 쭉 이곳에 있을 계획이거든.”
페이건은 목젖까지 올라온 ‘굳이 그러실 것까지야.’라는 말을 억지로 눌러 참았다.
뭐랄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저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은 삼키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가족분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치안국장님과 치안국 소속 직원분들을 제외하면 선배님이 유일합니다. 치안국장님께서 혹시 모르니 너무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건 피해 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래. 음, 확실히 너무 소란스러운 건 여러모로 좋지. 역시 치안국장님다운 선택이야.”
기분 탓일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크리스틴의 목소리에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뿌듯함이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럼 이만 갈게. 덕분에 좋은 구경 잘했어. 그리고 다시 한 번 축하해. 어제는 아주 많이 멋있었어.”
여기까지 말을 남긴 채 크리스틴은 숲의 요정 같은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고.
“후우….”
페이건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다.
사림의 심리를 짐작해 내는 데엔 꽤 도가 텄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왜 저 아가씨의 행동거지며 말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 걸까?
* * *
토돗.
‘페이건의… 부모님과 동생들이 여기에 온다고!’
타다다닷.
잰걸음으로 시작했던 크리스틴의 이동은 어느새 달음박질로 변해 있었다.
방금 전 입수한 소식에 가슴이 설레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페이건의 가족분들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바다의 요정님, 감사해요! 요, 몇 달간 기도를 열심히 올렸더니 드디어 응답을 해 주시는군요!’
페이건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열망에 불타는 크리스틴에게 있어 클라디우스 일가의 방문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는 존재하지 않았고 숲을 내달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바삐 회전하고 있었다.
‘모데나스에 있을 때 페이건이 분명히 그랬어. 나이 차가 제법 나는 엄청나게 귀여운 동생이 두 명 있다고. 부모님과 동생 둘… 선물! 선물은 뭘 준비해야 하지?’
지난번 일정의 답례, 환영의 의미, 축하, 선배의 아량, 하다못해 그냥 선심까지.
페이건의 가족들에게 선물할 핑계는 쌔고 쌨고 정 이유가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면 그만이었다.
이미 페이건의 가족에게 선물을 주는 건 정해진 사실이었기에 주느냐 마느냐 여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떤 선물을 준비해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를 고민하는 것뿐.
“히힛♫♪.”
고민에 잠겨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의 오뚝한 콧날 아래로는 연신 경쾌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세상에나, 유리안도 카밀라도 아직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일을 자신이 가장 먼저 알게 되다니!
기쁨과 설렘을 사방에 흩뿌리며 내달리는 숲길.
오늘따라 유독 짙푸른 잎들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살을 만끽하며 크리스틴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물었다.
‘뭘로 하지? 어떤 걸 준비해야 아버님, 어머님께서 나를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들어 해 주실까?’